제 4권 제 6장 열심당원들이 이두매인들에게서 자유롭게 되자 얼마나 많은 예루살렘 시민들을 살해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베스파시안이 그때 유대인들과 전투를 하고 싶어하는 로마군을 달래 진격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하여

 


제 6 장



 열심당원들이 이두매인들에게서 자유롭게 되자 얼마나 많은 예루살렘 시민들을 살해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베스파시안이 그때 유대인들과 전투를 하고 싶어하는 로마군을 달래 진격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하여



 1. 이두매인들이 경멸하며 떠남



 이두매인들은 이 말을 수긍하였다. 이들은 우선 감옥에 감금된 약 2,000명에 달하는 자들을 풀어주었다. 석방된 자들은 곧 시몬에게로 몰려갔다. 시몬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언급하게 될것이다.[㈜ 전쟁.4권. 9:3(503)이하.] 이제 이두매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두매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난다는 사실은 예루살렘 주민들이나 열심당에게나 놀라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주민들의 경우 이두매인들이 후회한 것을 알지 못하고 얼마동안은 용기를 다시 낼 수 있었다. 주민들은 적의 수가 줄었다는 것에 대해 안심했기 때문이다.



2. 베스파시안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하여 장군들과 숙의하다



 한편 로마군의 모든 지휘관들은 적들의 이러한 내분을 그들의 최고의 잇점으로 생각하여 예루살렘으로 진격하기를 매우 열망했다. 그들은 최고 사령관인 베스파시안에게 서둘러 줄 것을 간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적들이 서로서로 죽이는 내분이 일어난 것을 볼 때, 하느님의 섭리가 우리 편에 있습니다.그런에 이런 경우에 있어 갑자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내분에 의해 약화되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내분의 참상을 후회하든지 하여 하나로 빨리 뭉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스파시안은 이들의 생각이 아주 잘못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여러분들은 마치 경기장에서 칼솜씨나 뽐내고 싶어하는 사람들 같소, 여러분들은 신변의 안전이나 잇점에 대해 전혀 생각지 않고 모험을 걸려고 하고 있소. 만약 우리가 지금 예루살렘을 공격한다면 우리 적들에게 서로하나로 뭉칠 기회만을 제공하는 셈이 되오 그러나 우리가 조금더 기다리면, 유대인들은 서로 죽이는 내분으로 숫자가 감소될것이고, 따라서 적의 숫자가 훨씬 더 줄어드는 결과가 되는 것이오. 하느님이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로마군의 지휘관이 될것이오. 하느님은 우리의 어떤 수고 없이 유대인들을 우리에게 넘겨주시며, 어떤 위험부담도 없이 우리 군대에 승리를 보장할 것이오. 따라서 유대인과 직접 맞붙어 싸우기보다 적들이 내분으로서로 물고 뜯고 싸우면서 최대한으로 불행에 떨어지는 것을 아무 위험부담도 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하겠고. 유대인들은 지금 서로 죽이고 피 흘리는데 여념이 없단 말이오. 만약 여러분 중에 싸우지 않고 얻은 승리가 김빠진 승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얻어진 승리는 전쟁의 위험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오. 왜냐하면 전쟁에서 전투로 큰 명성을 얻은 사람 못지 않게 절제와 신중한 행동을 한 사람도 그만큼 더 훌륭하기 때문이오. 그렇기 때문에 나는적이 줄어들기를 기다리고, 계속되는 전투를 한 우리병사들을쉬게 해서 더 큰 힘을 가진 군대로 몰고 갈 작정이오. 그러나 승리를 장담하기는 아직 시기상조요.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아직무기를 만들거나 성벽을 쌓지 않으며 원군을 요청하지도 않고있소. 이러한 경우에는 지연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오. 하지만 내분으로 그들은 제손으로 목을 조이는 격이 될 것이며 점점 약해지고 우리가 공격하여 그들이 패하므로 당하는 아픔보다 더 큰 고통을 매일 당하고 있소. 그러므로 안전하게 길목만 지키면서 유대인들이 자멸하게 방치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오. 여러분들이 더 큰 명예를 갖다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자중지란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공격하여 승리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내분에 시달리는 유대인들을 공격해서는 안되오.\”



 3. 많은 유대인들이 로마군에 투항하다



 로마군 지휘관들은 베스파시안의 말에 모두 동의하였다. 베스파시안의 의견이 얼마나 현명했는가가 곧 드러났다. 많은 유대인들이 매일 열심당의 손아귀에서 탈출하여 도망을 갔다. 열심당들이 예루살렘 길목마다 감시병들을 세워놓고 잡히는 사람을 로마군에 항복하는 자로 여겨 모조리 살해했기 때문에 도망하는것이 매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도망치다 잡힌 자들은 감시병에게 돈을 주면 살아날 수 있었다. 반면, 돈이 없는 자들은 배신자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따라서 부자들은 돈을 주고 도망갈 수 있었고 가난한자는 살해당할 수 밖에 없었다. 길을 따라 수많은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도망치려고 벼르고 벼르던[㈜ 혹은 \’갈망해 왔던\’.] 많은 사람들은 결국 도망가다 죽느니 차라리 예루살렘 안에서 죽기를 작정했다. 왜냐하면 성안에서 죽으면 고향 예루살렘에 묻힐 수 있는 희망이 있기에, 도망치다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당원들은 결국 성안에서 살해된 자들이든 길가에 쌓여있던 시체든 둘 다 장사지내 주지 않는 야만성을 보였다. 열심당원들은 마치 자기 나라의 관습을 모두 폐하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사악한 행동으로 인간성을 모독할 뿐 아니라 뜨거운 태양아래 시체를 썩도록 내버려두어 하늘 자체를 모독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장사지내준 사람들에게도 도망간 자들과 똑같은 처벌로 사형시켰다. 다른 사람을 장사지내 주려고 한 자들은 자신의 무덤을 파야하는 것이 되고만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그 당시에는 자비란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인간의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감정이 무엇보다도 이사악한 열심당들을 성가시게 만들었으며, 열심당들은 살아있는사람을 분노하여 죽이고 또다시 다른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분노하였다. 살인행위는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에 살아 남아있는 자들은 먼저 죽은 자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안식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감옥안에서 고문당하는자들은 죽어서 장사되는 편이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무서운 공포분위기 속에 있었다. 따라서 열심당들은 인간의 모든 법을 묵살하고 하느님의 율법마저도 비웃고 짓밟았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사기꾼의 속임수라고 조롱했다. 선지자들은 선에 대한 보상과 악에 대한 심판에 관해 많은 것들을 예언했다. 이들 열심당들이 이런 못된 악행을 저지름으로써 많은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선지자들 가운데 어떤 오래된 선지자가 유대인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서 하느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때가 오면[㈜ 역자는 그 말의 \’오래된\’ 자료를 인용할 수 없다. 다음에 나오는 \’사건뒤의 예언\'(vaticinium post eventus)은 주후 약80년경에 쓴 작품에 나온다. 네로의 싸움과 로마 내전에 따르는 언급. \’신탁집\'(orac. sibyll.)iv : 117이하.] 전쟁으로 성전이 불타고 예루살렘이 함락되리라는 것을 예언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열심당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이 예언을 성취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osephus, TN-catholicdictionary-C2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