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권 제 13장 예루살렘에서 대학살과 신성모독이 있었던 것에 대하여

 


제 13 장



 예루살렘에서 대학살과 신성모독이 있었던 것에 대하여



1. 시몬은 그의 지지자였던 마티아스와 다른 사람들을 학살함



 시몬은 마티아스(Matthias)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을 장악했는데 그가 고문을 당하게는 하지 않았지만, 그를 죽이고도 괴로와하지 않았던 이 마티아스는 대제사장 가문의 보에투스(Boe-thus)의 아들로, 주민들의 존경과 특별한 신임을 얻고 있던 인물이었다. 마티아스는 주민들이 열심당 때문에 시달리고 있었을때(요한이 그 열심당의 주도세력이었다) 시몬을 동맹군으로 불러들이고자 주민들을 설득했다.[㈜ 전쟁. 4권. 9:11(574).] 마티아스는 시몬과 사전에어떤 약정을 하지 않았으며, 시몬쪽에서 비열한 짓을 하리라 예상치도 못했었다. 그러나 시몬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와서 성을 장악한 후 정복자가 되자, 자기를 천거해 주었던 그 마티아스가 너무 순진하고 천진난만하게 행동한다고 여기고 다른 나머지 사람들처럼 그도 적으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마티아스의 넷째 아들이 티투스에게 도망갔는데, 이것을 빌미로 마티아스를끌어오도록 하고 그를 로마군과 같은 편이라고 고소했으며, 그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죽였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중 3명도 함께 죽였다. 게다가 마티아스가 그전에 시몬에게 성문을 열어 주었던 사실에 대한 답례로 아들들 보다 자신을 먼저죽여달라고 마지막 애원하였지만 오히려 시몬은 마티아스를 제일 나중에 죽이라고 명령했다. 아들들은 로마군이 보는 앞에서끌려 나온 후에, 마티아스가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했던 것이었다. 따라서 마티아스는 아들들의 시체 위에서 살해당했다. 시몬은 바가다테스(Bagadates)의 아들이며, 그의 심복중 가장 잔인한 아나누스(Ananus)에게[㈜ 후에 로마군에 넘어간 엠마오출신. 전쟁. 6권. 4:2(229).] 그들을 처형하도록 명령하였다.시몬은 또한 다음과 같은 조롱의 말도 잊지 않았다. \”마티아스가 의지하려 했던 친구들(로마인들)이 그를 도와주러 올것인지 아닌지 한번 두고 보겠소\” 시몬은 게다가 시체들을 장사하는 것조차 거절했다. 마티아스와 그의 세 아들이 처형당한 후, 마스발루스(Masbalus)의 아들이며, 유명한 인사인 제사장 아나니아스(Anhanias)와 엠마오(Emmaus)출신이며 공회(Council)의[㈜ 산헤드린.] 서기관인 아리스튜스(Aristeus)와 주민들 가운데 15명의 유력인사들이 처형당했다. 시몬과 그 일당들은 요세푸스의 아버지를 감옥에 억류시켰으며, 예루살렘 그 어떤 곳에도 한 곳에서 모이거나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이것은 주민들이 반역할 것을 두려워 한데서 생긴 조처였으며, 처형당한 자를 애도하는 자들은 심문도 하지 않은 채 죽여 버렸다.



 2. 예루살렘을 넘겨 주려는 공모와 시몬이 이를 알아차린 것에 관하여



 이러한 장면들을 보고, 시몬의 부관 중 하나인 유대스(Judes)의 아들 유대스(Judes)는 시몬이 시켜서 망대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그 유대스가 자기 휘하의 가장 믿고있는 10명의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왜냐하면, 유대스는 잔인하게 살해된 희생자들을 불쌍히 여겼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대스는 10명의 부하를 불러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얼마동안 더 이런 끔찍한 죄악을 가만히 참고 있어야 하는가? 이런 사악한 사람과 신의를 지킨다고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예상하는가? 기근은 이미 우리에게닥쳐 왔으며, 로마군은 거의 성 안을 장악했고, 시몬은 그의 은인 조차도 배신하지 않았던가? 시몬이 곧 우리를 처벌하리라는두려움이 충분히 있지 않은가? 반면 로마군이 우리의 생명을 보장한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자! 성벽을 넘겨주고우리들과 예루살렘을 구하자. 시몬은 이미 생명을 자포자기한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만일 더 빨리 처형당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유대스의 제안에 10명이 찬성을 하자, 유대스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그의 휘하에 있는 나머지 병사들을 뿔뿔히 흩어지게 했다. 이것은 음모가 들통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으며, 유대스는 제 3시 경에망대에서 로마군에게 투항하겠다고 소리쳤다. 로마군들 중에,어떤 이들은 그를 경멸했으며, 다른 이들은 그를 의심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나 대부부분의 로마병사들은 예루살렘이 별 어려움없이 머지않아 함락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에,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티투스가 군대와 함께 성벽으로 진군을 준비하는동안, 시몬은 때 마침 이 정보를 입수하고 망대를 급히 점령함으로써, 티투스의 기선을 제압했으며 로마군이 보는 앞에서 사람들(유대스와 10명의 부하들)을 체포하여 살해했으며, 그들의 시체를 절단해서 성벽밖으로 던져버렸다.



 3. 요세푸스가 부상당한 것과 그가 죽었다는 소문



 한편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에게 권면의 말들을 계속 끈질기게하기 위해 성벽을 쭉 돌아보는 중에 머리에 돌을 맞고 의식을 잃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요세푸스에게 돌진을 했으며, 요세푸스는 만일 가이사 티투스가 구출하려고 신속하게 병사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예루살렘성 안으로 끌려 들어 갔었을 것이다.

 계속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요세푸스는 로마군에 의해 로마군 진영으로 실려 왔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한편 강도단들은 그들이 가장 죽이고 싶어했던 요세푸스를 죽인줄 알고, 기쁨에 들떠 소리를 질렀다. 이 소문이 성 안까지 퍼지게 되자, 나머지 주민들은 아주 낙담했다. 왜냐하면 주민들은 그들에게 탈주하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요세푸스가 정말 죽은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세푸스의 어머니는 감옥에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간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타파타(Jotapata)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혹은 \’요타파타에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참). 전쟁.3권. 9:5(432)이하.] 나는 아들이 죽었다고 믿었소. 아들이 살아 생전에도, 나는 아들에 대해 기쁨을 느껴보질 못했소.\” 그러나 요세푸스의 어머니는 하녀들에게 솔직하게 애통함을 호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내가 축복 받은 아들을 낳은 업보인가 보다. 내가 아들의 손에 장사되기를 그토록 원했는데, 아들의 장례식조차도 거절당하다니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다행히도요세푸스가 죽었다는 헛 소문 때문에 당한 그의 어머니의 애통함과 강도단들의 위안도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요세푸스는 부상에서 빨리 회복되어, 로마군 대열 앞에 서서 적들에게 그의 부상에 대한 원한을 머지않아 갚을 것이라고 소리치면서, 주민들에게 자신의 권면을 수락하라고 다시 한번 권고했다. 요세푸스를 보자 주민들은 다시 생기가 돌았으며, 강도단들은 크게 낙담하였다.



4. 유대인 탈주자들이 수리아인과 아랍인에 의해 찢겨지는 끔찍한 최후



 유대인 탈주자들 일부는 달리 취할 방법이 없자, 급히 성벽에서 뛰어 내렸다. 다른 나머지 유대인들은 마치 탈주자들을 뒤쫓아 가는 듯이 돌을 던지면서 로마군에게 넘어왔다. 그러나, 거기에는 예루살렘성 안에 있는 동료들의 운명보다 더 모진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탈주자들에게는 예루살렘성 안에 있었을 때의 기근보다 오히려 로마군 진영에서의 안도감이 더 치명적이었다. 왜냐하면 탈주자들은 수종(水腫)에 걸린 사람들 처럼, 굶주림으로 부은 채 로마 진영에 도착했는데, 빈 속에 너무많이 음식을 갑자기 먹었기 때문에 내장(內臟)이 터져버렸다.경험을 통해 식욕을 절제할 줄 알았던 자들과, 내장이 많은 음식물을 소화해 낼 수 없어서 음식물을 조금씩 먹은 자들은 살 수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남은 자들도 후에 또 다른 재앙을 당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수리아계가 지키는 수용소에서 탈주자중의 한 사람이 자기 배설물에서 금화를 찾아내다 감시병에게 들켜 버렸다. 이 금화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전쟁. 5권. 10:1 (421).] 탈주자들이 성 밖으로 빠져 나오기 전에 입으로 삼켰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강도단들에게 온통 수색 당했으며, 성 안에는 금이 너무나 풍성해서 그 전에는 아덴의 25 드라크마(Attic drachmas)에[㈜ 참).전쟁. 6권. 6:1(317) (예루살렘 약탈의 결과로서)수리아 전역에 금의 기준가가 이전가(former value)의 반으로 낮아졌다.] 해당되는 금화가 12 드라크마로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수법도 한번 발각되어 버리자, 탈주자들이 금화를 가득가지고 왔다는 소문이 로마진영에 쫙 퍼졌다. 그래서 아랍인과수리아인 어중이 떠중이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유대인 탈주자들의 배를 갈라, 내장을 온통 뒤졌다. 내 생각으로는, 유대인들이 이것보다도 더 잔인한 재난을 당한 적이 없다고 생각된다.실제로 단 하룻밤 사이에, 2,000명에 달하는 유대인 탈주자들이 배를 갈리는 재난을 당했던 것이다.



 5. 부하들을 엄하게 훈계하는 티투스



 티투스는 이와같은 야만적인 살인에 대한 보고를 받자, 기병들에게 범죄자들을 포위하고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하려 했으나이 만행에 연루된 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 그만 두었다. 처벌 받아야 될 범죄자들의 수는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의 수보다 훨씬더 많았다. 그러나 티투스는 원군의 지휘관들과 로마군의 지휘관들을 불러 모으고 연설을 했다. (왜냐하면 일부 로마병사들도이런 혐의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티투스는 그의 휘하에 있는병사들이 금덩이가 있는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그와 같은 만행을 저지른 것과 자랑스러운 로마군인으로서 그런 짓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병사들에게 분개한다고 말했다. 티투스는 아랍인들과 수리아인들에게도 격노했는데, 첫째로는 아랍인들과 수리아인들이 해외 원정에서 탐욕을자제하지 못하고 방종한 점 때문이며, 둘째로는 일부 로마 병사들이 그러한 파렴치한 행위에 가담케 하여 아랍인과 수리아인자신들이 저지른 살인과 같은 야수적인 행위와 유대인에 대한증오를 모두 로마 병사들의 짓으로 돌렸기 때문에, 이 두가지 사실로 티투스는 아랍인과 수리아인을 크게 나무랐던 것이다. 티투스는 원군들이 또 다시 이와 같은 죄악을 저지른 다면,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티투스는 로마군 중에혐의가 있는 사람은 조사하여 자기에게 끌고 오라고 명령했다.그러나, 사람들은 돈에 대한 탐욕이 생기면 그 어떤 처벌도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같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욕망보다 훨씬 더 강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다른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뿌리깊은 탐욕이라도 어느 정도 그 한계성을 넘지 않고 재제될 수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다른 이가 아닌 하느님이 친히 유대 백성을 심판하셨기 때문에 사정은 달랐다. 하느님은 유대인들에 대한 모든 구원의 길을 돌이켜, 그들을 멸망하게 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티투스가 위협을 하면서 금지하게 했던 탈주자들의 배를 가르는 사악한 죄악은 여전히 자행될 수 밖에 없었다. 야만인들은 로마군이 탈주자들을 알아채기 전에 한발 앞서 탈주자들을 만나 그들을 살해했다. 그리고 나서 야만인들은 사방을 둘러 보고 로마군이 보고있지 않음을 확인한 후, 탈주자들의 배를 갈라 내장에서 더러운 돈을 꺼냈다. 그러나 돈을 찾는 경우는 얼마 없었으며, 단지 돈을 찾겠다는 탐욕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만든 것이었다. 이러한 끔찍한 살인행위 때문에 사실 많은 탈주자들을 도로 돌아가게 하였다.



 6. 요한이 성전 물품을 약탈하는 신성모독의 죄를 저지름



 요한은 예루살렘 주민들을 약탈할 것이 없자, 신성모독의 죄악까지 저질렀다. 요한은 성전의 많은 헌납 기구들과 공식 제사때에 쓰이는 많은 그릇들과 접시와 쟁반과 탁자들을 불로 녹이는 죄를 저질렀다. 요한은 또한 아구스도(Augustus)와 그의 아내가 봉헌한 포도주 담는 용기(用器)들도 녹여 버렸다. 로마 주권자들은 성전을 존중히 여기고 성전 장식품까지 바친 반면에, 요한이란 이 작자는 이방인들이 바친 물품까지 손을 대었으며,동료들에게 하느님을 위해서 성전 기구들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요한은 또한 자기들이 성전을 위해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성전의 원조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참). 고전 9:13.] 따라서 요한은 성전 내부(the innertemple)에 있는 번제물 위에 뿌리는 거룩한 포도주와 기름을 모조리 끌어 내서[㈜ 미쉬나의 미도트 ii.6에 따르면 술과 기름은 여인들의 뜰 남서쪽의 모퉁이에 있는 방에 보관하였다.] 무리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었으며, 받은 자들은 아무 두려움도 없이 기름을 자기 몸에 뿌리고 포도주를 마셨다.[㈜ 어떤 사본들에는 \’한 힌( a hin)이상\’이 첨가되었다.] 여기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꼭 하고 지나가야 하겠다.내 생각으로는, 로마군들이 요한의 무리와 같은 구제할 길 없는 죄인들을 처벌하는 것을 만약 지체했었다면, 땅이 갈라져서 예루살렘을 삼켜버리거나,[㈜ 고라와 그의 동료와 같이. 민 16:32.] 홍수로 씻어버리거나[㈜ 노아의 세대같이.] 소돔(Sod-om)처럼 다시 유황불을 맛보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일당의 광란으로 전 주민이 파멸에 빠지게 함으로써 금방 말한천벌의 희생자들 보다 요한 일당이 훨씬 더 불경건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7. 예루살렘에서 죽은 사망자들의 수



 내가 유대인들의 참상을 자세히 이야기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라자루스(Lazarus)의 아들인 만나이우스(Mannaeus)가 유대인들이 내란을 당한 바로 그때 티투스에게 도망쳐 왔는데, 그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자기가 맡고있던 성문 하나를 통해 운반되어진 시체만 해도 115,880명에 이르며, 그 숫자는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진을 쳤던[㈜ 전쟁. 5권. 3:5(133).] 크산티쿠스(Xanthicus) 월14일부터 파네무스(Panemus)월 사이에[㈜ 즉 주후 70년 5월 1일과 7월 20일 사이(Niese).] 죽은 사망자 수인 것이다. 사망자들은 전부 가난한 계층에 속했다. 만나이우스는 이 일을 직접 관할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시체 운반을 위한 공금을 지급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체의 숫자를 셀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친척들이 장례를 치러 주었으며, 장례라야 겨우 시체를 끌고 나가서성 밖으로 던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만나이우스를 뒤따라 많은 저명한 예루살렘 시민들이 티투스에게로 도망쳐 왔다. 그들의 보고에 따르면, 성문을 통해서 내던져진 하층 계급의 시체들 숫자만해도 총 600,000명에 이르며, 나머지 시체들에 대해서는 숫자 파악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탈주한 저명 유대인들은 다음과같은 말을 덧붙였다. 즉 가난한 자들의 시체를 운반하는데 힘이부치면, 그들은 가장 큰 집(mansion)에[㈜ 혹은 \’방들\’.] 시체들을 쌓아 올리고문을 잠갔다는 것이다. 또한 곡물 한 되가 한 달란트(talent)에팔렸으며, 도시가 전부 성벽으로 에워 싸여져 있어서 나중에는 풀(잡초)조차 뜯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어, 어떤 이들은 하수구(sewer)나[㈜ 이 두가지 드문 단어들은 호머식( ajutw\’n : \’일리아드\’. 21. 259, o[nqo\” : 23. 775~7)의 표현이다.] 오래된 소똥(Cow dung)까지[㈜ 혹은 허드슨과 다른 사람들과 같이 ajutw\’n을 남성명사 ajutw\’n으로 취하고 있다. 중성명사 ajutw\’으로는 위에 번역한 것같이 된다. 참). 예, 고대. 15권. 6:4(182)에서의 \’들어가기까지\'(mevcri tou\’de proelqei\’n).] 뒤져서 부스러기를 먹을 정도로 궁핍함에 시달렸던 것이다. 전에는 쳐다보기조차 싫어했던 것들이 이제는 먹는 음식이 되었다. 이러한 처참한 이야기는 로마군의 동정심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러나 처참함을 직접 목격한 강도단들은 측은히 여기지도 않았으며 계속해서 최악의 상태로 상황을 몰고 갔다. 왜냐하면 강도단들은 그들 자신과 예루살렘에 닥쳐온 운명에 의해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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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권 제 13장 예루살렘에서 대학살과 신성모독이 있었던 것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13 장


     예루살렘에서 대학살과 신성모독이 있었던 것에 대하여


    1. 시몬은 그의 지지자였던 마티아스와 다른 사람들을 학살함


     시몬은 마티아스(Matthias)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을 장악했는데 그가 고문을 당하게는 하지 않았지만, 그를 죽이고도 괴로와하지 않았던 이 마티아스는 대제사장 가문의 보에투스(Boe-thus)의 아들로, 주민들의 존경과 특별한 신임을 얻고 있던 인물이었다. 마티아스는 주민들이 열심당 때문에 시달리고 있었을때(요한이 그 열심당의 주도세력이었다) 시몬을 동맹군으로 불러들이고자 주민들을 설득했다.[㈜ 전쟁. 4권. 9:11(574).] 마티아스는 시몬과 사전에어떤 약정을 하지 않았으며, 시몬쪽에서 비열한 짓을 하리라 예상치도 못했었다. 그러나 시몬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와서 성을 장악한 후 정복자가 되자, 자기를 천거해 주었던 그 마티아스가 너무 순진하고 천진난만하게 행동한다고 여기고 다른 나머지 사람들처럼 그도 적으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마티아스의 넷째 아들이 티투스에게 도망갔는데, 이것을 빌미로 마티아스를끌어오도록 하고 그를 로마군과 같은 편이라고 고소했으며, 그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죽였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중 3명도 함께 죽였다. 게다가 마티아스가 그전에 시몬에게 성문을 열어 주었던 사실에 대한 답례로 아들들 보다 자신을 먼저죽여달라고 마지막 애원하였지만 오히려 시몬은 마티아스를 제일 나중에 죽이라고 명령했다. 아들들은 로마군이 보는 앞에서끌려 나온 후에, 마티아스가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했던 것이었다. 따라서 마티아스는 아들들의 시체 위에서 살해당했다. 시몬은 바가다테스(Bagadates)의 아들이며, 그의 심복중 가장 잔인한 아나누스(Ananus)에게[㈜ 후에 로마군에 넘어간 엠마오출신. 전쟁. 6권. 4:2(229).] 그들을 처형하도록 명령하였다.시몬은 또한 다음과 같은 조롱의 말도 잊지 않았다. “마티아스가 의지하려 했던 친구들(로마인들)이 그를 도와주러 올것인지 아닌지 한번 두고 보겠소” 시몬은 게다가 시체들을 장사하는 것조차 거절했다. 마티아스와 그의 세 아들이 처형당한 후, 마스발루스(Masbalus)의 아들이며, 유명한 인사인 제사장 아나니아스(Anhanias)와 엠마오(Emmaus)출신이며 공회(Council)의[㈜ 산헤드린.] 서기관인 아리스튜스(Aristeus)와 주민들 가운데 15명의 유력인사들이 처형당했다. 시몬과 그 일당들은 요세푸스의 아버지를 감옥에 억류시켰으며, 예루살렘 그 어떤 곳에도 한 곳에서 모이거나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이것은 주민들이 반역할 것을 두려워 한데서 생긴 조처였으며, 처형당한 자를 애도하는 자들은 심문도 하지 않은 채 죽여 버렸다.


     2. 예루살렘을 넘겨 주려는 공모와 시몬이 이를 알아차린 것에 관하여


     이러한 장면들을 보고, 시몬의 부관 중 하나인 유대스(Judes)의 아들 유대스(Judes)는 시몬이 시켜서 망대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그 유대스가 자기 휘하의 가장 믿고있는 10명의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왜냐하면, 유대스는 잔인하게 살해된 희생자들을 불쌍히 여겼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대스는 10명의 부하를 불러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얼마동안 더 이런 끔찍한 죄악을 가만히 참고 있어야 하는가? 이런 사악한 사람과 신의를 지킨다고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예상하는가? 기근은 이미 우리에게닥쳐 왔으며, 로마군은 거의 성 안을 장악했고, 시몬은 그의 은인 조차도 배신하지 않았던가? 시몬이 곧 우리를 처벌하리라는두려움이 충분히 있지 않은가? 반면 로마군이 우리의 생명을 보장한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자! 성벽을 넘겨주고우리들과 예루살렘을 구하자. 시몬은 이미 생명을 자포자기한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만일 더 빨리 처형당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유대스의 제안에 10명이 찬성을 하자, 유대스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그의 휘하에 있는 나머지 병사들을 뿔뿔히 흩어지게 했다. 이것은 음모가 들통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으며, 유대스는 제 3시 경에망대에서 로마군에게 투항하겠다고 소리쳤다. 로마군들 중에,어떤 이들은 그를 경멸했으며, 다른 이들은 그를 의심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나 대부부분의 로마병사들은 예루살렘이 별 어려움없이 머지않아 함락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에,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티투스가 군대와 함께 성벽으로 진군을 준비하는동안, 시몬은 때 마침 이 정보를 입수하고 망대를 급히 점령함으로써, 티투스의 기선을 제압했으며 로마군이 보는 앞에서 사람들(유대스와 10명의 부하들)을 체포하여 살해했으며, 그들의 시체를 절단해서 성벽밖으로 던져버렸다.


     3. 요세푸스가 부상당한 것과 그가 죽었다는 소문


     한편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에게 권면의 말들을 계속 끈질기게하기 위해 성벽을 쭉 돌아보는 중에 머리에 돌을 맞고 의식을 잃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요세푸스에게 돌진을 했으며, 요세푸스는 만일 가이사 티투스가 구출하려고 신속하게 병사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예루살렘성 안으로 끌려 들어 갔었을 것이다.

     계속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요세푸스는 로마군에 의해 로마군 진영으로 실려 왔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한편 강도단들은 그들이 가장 죽이고 싶어했던 요세푸스를 죽인줄 알고, 기쁨에 들떠 소리를 질렀다. 이 소문이 성 안까지 퍼지게 되자, 나머지 주민들은 아주 낙담했다. 왜냐하면 주민들은 그들에게 탈주하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요세푸스가 정말 죽은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세푸스의 어머니는 감옥에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간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타파타(Jotapata)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혹은 ‘요타파타에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참). 전쟁.3권. 9:5(432)이하.] 나는 아들이 죽었다고 믿었소. 아들이 살아 생전에도, 나는 아들에 대해 기쁨을 느껴보질 못했소.” 그러나 요세푸스의 어머니는 하녀들에게 솔직하게 애통함을 호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내가 축복 받은 아들을 낳은 업보인가 보다. 내가 아들의 손에 장사되기를 그토록 원했는데, 아들의 장례식조차도 거절당하다니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다행히도요세푸스가 죽었다는 헛 소문 때문에 당한 그의 어머니의 애통함과 강도단들의 위안도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요세푸스는 부상에서 빨리 회복되어, 로마군 대열 앞에 서서 적들에게 그의 부상에 대한 원한을 머지않아 갚을 것이라고 소리치면서, 주민들에게 자신의 권면을 수락하라고 다시 한번 권고했다. 요세푸스를 보자 주민들은 다시 생기가 돌았으며, 강도단들은 크게 낙담하였다.


    4. 유대인 탈주자들이 수리아인과 아랍인에 의해 찢겨지는 끔찍한 최후


     유대인 탈주자들 일부는 달리 취할 방법이 없자, 급히 성벽에서 뛰어 내렸다. 다른 나머지 유대인들은 마치 탈주자들을 뒤쫓아 가는 듯이 돌을 던지면서 로마군에게 넘어왔다. 그러나, 거기에는 예루살렘성 안에 있는 동료들의 운명보다 더 모진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탈주자들에게는 예루살렘성 안에 있었을 때의 기근보다 오히려 로마군 진영에서의 안도감이 더 치명적이었다. 왜냐하면 탈주자들은 수종(水腫)에 걸린 사람들 처럼, 굶주림으로 부은 채 로마 진영에 도착했는데, 빈 속에 너무많이 음식을 갑자기 먹었기 때문에 내장(內臟)이 터져버렸다.경험을 통해 식욕을 절제할 줄 알았던 자들과, 내장이 많은 음식물을 소화해 낼 수 없어서 음식물을 조금씩 먹은 자들은 살 수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남은 자들도 후에 또 다른 재앙을 당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수리아계가 지키는 수용소에서 탈주자중의 한 사람이 자기 배설물에서 금화를 찾아내다 감시병에게 들켜 버렸다. 이 금화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전쟁. 5권. 10:1 (421).] 탈주자들이 성 밖으로 빠져 나오기 전에 입으로 삼켰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강도단들에게 온통 수색 당했으며, 성 안에는 금이 너무나 풍성해서 그 전에는 아덴의 25 드라크마(Attic drachmas)에[㈜ 참).전쟁. 6권. 6:1(317) (예루살렘 약탈의 결과로서)수리아 전역에 금의 기준가가 이전가(former value)의 반으로 낮아졌다.] 해당되는 금화가 12 드라크마로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수법도 한번 발각되어 버리자, 탈주자들이 금화를 가득가지고 왔다는 소문이 로마진영에 쫙 퍼졌다. 그래서 아랍인과수리아인 어중이 떠중이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유대인 탈주자들의 배를 갈라, 내장을 온통 뒤졌다. 내 생각으로는, 유대인들이 이것보다도 더 잔인한 재난을 당한 적이 없다고 생각된다.실제로 단 하룻밤 사이에, 2,000명에 달하는 유대인 탈주자들이 배를 갈리는 재난을 당했던 것이다.


     5. 부하들을 엄하게 훈계하는 티투스


     티투스는 이와같은 야만적인 살인에 대한 보고를 받자, 기병들에게 범죄자들을 포위하고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하려 했으나이 만행에 연루된 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 그만 두었다. 처벌 받아야 될 범죄자들의 수는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의 수보다 훨씬더 많았다. 그러나 티투스는 원군의 지휘관들과 로마군의 지휘관들을 불러 모으고 연설을 했다. (왜냐하면 일부 로마병사들도이런 혐의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티투스는 그의 휘하에 있는병사들이 금덩이가 있는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그와 같은 만행을 저지른 것과 자랑스러운 로마군인으로서 그런 짓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병사들에게 분개한다고 말했다. 티투스는 아랍인들과 수리아인들에게도 격노했는데, 첫째로는 아랍인들과 수리아인들이 해외 원정에서 탐욕을자제하지 못하고 방종한 점 때문이며, 둘째로는 일부 로마 병사들이 그러한 파렴치한 행위에 가담케 하여 아랍인과 수리아인자신들이 저지른 살인과 같은 야수적인 행위와 유대인에 대한증오를 모두 로마 병사들의 짓으로 돌렸기 때문에, 이 두가지 사실로 티투스는 아랍인과 수리아인을 크게 나무랐던 것이다. 티투스는 원군들이 또 다시 이와 같은 죄악을 저지른 다면,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티투스는 로마군 중에혐의가 있는 사람은 조사하여 자기에게 끌고 오라고 명령했다.그러나, 사람들은 돈에 대한 탐욕이 생기면 그 어떤 처벌도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같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욕망보다 훨씬 더 강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다른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뿌리깊은 탐욕이라도 어느 정도 그 한계성을 넘지 않고 재제될 수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다른 이가 아닌 하느님이 친히 유대 백성을 심판하셨기 때문에 사정은 달랐다. 하느님은 유대인들에 대한 모든 구원의 길을 돌이켜, 그들을 멸망하게 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티투스가 위협을 하면서 금지하게 했던 탈주자들의 배를 가르는 사악한 죄악은 여전히 자행될 수 밖에 없었다. 야만인들은 로마군이 탈주자들을 알아채기 전에 한발 앞서 탈주자들을 만나 그들을 살해했다. 그리고 나서 야만인들은 사방을 둘러 보고 로마군이 보고있지 않음을 확인한 후, 탈주자들의 배를 갈라 내장에서 더러운 돈을 꺼냈다. 그러나 돈을 찾는 경우는 얼마 없었으며, 단지 돈을 찾겠다는 탐욕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만든 것이었다. 이러한 끔찍한 살인행위 때문에 사실 많은 탈주자들을 도로 돌아가게 하였다.


     6. 요한이 성전 물품을 약탈하는 신성모독의 죄를 저지름


     요한은 예루살렘 주민들을 약탈할 것이 없자, 신성모독의 죄악까지 저질렀다. 요한은 성전의 많은 헌납 기구들과 공식 제사때에 쓰이는 많은 그릇들과 접시와 쟁반과 탁자들을 불로 녹이는 죄를 저질렀다. 요한은 또한 아구스도(Augustus)와 그의 아내가 봉헌한 포도주 담는 용기(用器)들도 녹여 버렸다. 로마 주권자들은 성전을 존중히 여기고 성전 장식품까지 바친 반면에, 요한이란 이 작자는 이방인들이 바친 물품까지 손을 대었으며,동료들에게 하느님을 위해서 성전 기구들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요한은 또한 자기들이 성전을 위해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성전의 원조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참). 고전 9:13.] 따라서 요한은 성전 내부(the innertemple)에 있는 번제물 위에 뿌리는 거룩한 포도주와 기름을 모조리 끌어 내서[㈜ 미쉬나의 미도트 ii.6에 따르면 술과 기름은 여인들의 뜰 남서쪽의 모퉁이에 있는 방에 보관하였다.] 무리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었으며, 받은 자들은 아무 두려움도 없이 기름을 자기 몸에 뿌리고 포도주를 마셨다.[㈜ 어떤 사본들에는 ‘한 힌( a hin)이상’이 첨가되었다.] 여기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꼭 하고 지나가야 하겠다.내 생각으로는, 로마군들이 요한의 무리와 같은 구제할 길 없는 죄인들을 처벌하는 것을 만약 지체했었다면, 땅이 갈라져서 예루살렘을 삼켜버리거나,[㈜ 고라와 그의 동료와 같이. 민 16:32.] 홍수로 씻어버리거나[㈜ 노아의 세대같이.] 소돔(Sod-om)처럼 다시 유황불을 맛보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일당의 광란으로 전 주민이 파멸에 빠지게 함으로써 금방 말한천벌의 희생자들 보다 요한 일당이 훨씬 더 불경건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7. 예루살렘에서 죽은 사망자들의 수


     내가 유대인들의 참상을 자세히 이야기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라자루스(Lazarus)의 아들인 만나이우스(Mannaeus)가 유대인들이 내란을 당한 바로 그때 티투스에게 도망쳐 왔는데, 그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자기가 맡고있던 성문 하나를 통해 운반되어진 시체만 해도 115,880명에 이르며, 그 숫자는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진을 쳤던[㈜ 전쟁. 5권. 3:5(133).] 크산티쿠스(Xanthicus) 월14일부터 파네무스(Panemus)월 사이에[㈜ 즉 주후 70년 5월 1일과 7월 20일 사이(Niese).] 죽은 사망자 수인 것이다. 사망자들은 전부 가난한 계층에 속했다. 만나이우스는 이 일을 직접 관할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시체 운반을 위한 공금을 지급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체의 숫자를 셀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친척들이 장례를 치러 주었으며, 장례라야 겨우 시체를 끌고 나가서성 밖으로 던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만나이우스를 뒤따라 많은 저명한 예루살렘 시민들이 티투스에게로 도망쳐 왔다. 그들의 보고에 따르면, 성문을 통해서 내던져진 하층 계급의 시체들 숫자만해도 총 600,000명에 이르며, 나머지 시체들에 대해서는 숫자 파악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탈주한 저명 유대인들은 다음과같은 말을 덧붙였다. 즉 가난한 자들의 시체를 운반하는데 힘이부치면, 그들은 가장 큰 집(mansion)에[㈜ 혹은 ‘방들’.] 시체들을 쌓아 올리고문을 잠갔다는 것이다. 또한 곡물 한 되가 한 달란트(talent)에팔렸으며, 도시가 전부 성벽으로 에워 싸여져 있어서 나중에는 풀(잡초)조차 뜯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어, 어떤 이들은 하수구(sewer)나[㈜ 이 두가지 드문 단어들은 호머식( ajutw’n : ‘일리아드’. 21. 259, o[nqo” : 23. 775~7)의 표현이다.] 오래된 소똥(Cow dung)까지[㈜ 혹은 허드슨과 다른 사람들과 같이 ajutw’n을 남성명사 ajutw’n으로 취하고 있다. 중성명사 ajutw’으로는 위에 번역한 것같이 된다. 참). 예, 고대. 15권. 6:4(182)에서의 ‘들어가기까지'(mevcri tou’de proelqei’n).] 뒤져서 부스러기를 먹을 정도로 궁핍함에 시달렸던 것이다. 전에는 쳐다보기조차 싫어했던 것들이 이제는 먹는 음식이 되었다. 이러한 처참한 이야기는 로마군의 동정심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러나 처참함을 직접 목격한 강도단들은 측은히 여기지도 않았으며 계속해서 최악의 상태로 상황을 몰고 갔다. 왜냐하면 강도단들은 그들 자신과 예루살렘에 닥쳐온 운명에 의해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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