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권 약 1개월간의 사건을 다룸
유대인들이 정복당할 최악의 궁지에서부터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까지
제 1 장
유대인들의 비참한 상태가 더 악화되고 로마군은 안토니아 망대를 공격한 것에 대하여
1. 로마군의 새 토성들이 완공됨
예루살렘이 당하는 고통은 매일 더욱 증가 되었고, 강도단들은 재난을 겪게 되어 그들의 분노는 점점 그 도를 더해 갔다. 또한 기근의 여파는 주민들에게서 강도떼들에게 까지 퍼졌다. 예루살렘은 사방에 깔린 시체더미로 보기 조차 끔찍하고, 시체 썩는 악취가 진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투를 행하는군인들에게는 공격할 때 걸리적 거리는 방해물이 되었다.
강도떼들은 수많은 시체들에 익숙한 사람들처럼, 시체 위를 밟으면서[㈜ 혹은 (다른 본문에는)\”전쟁터에서 셀수도 없이 많은 자들을 학살하면서 전진 하는 사람들 처럼 그들은 시체를 내리 밟지 않으면 안되었다\”등.] 행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강도떼들은 시체를 밟으면서도 전혀 전율이나 동정심도 없었으며, 죽은 시체를 발로 밟는 이러한 참혹한 행위가 바로 자기 자신들의 당할 불길한징조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강도떼들은 마치 하느님께서 로마군을 벌하시기를 지체하는 것에 대해 이를 원망이라도 하듯이(나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동족을 살상한 피로 더럽혀진 손을 가지고 로마군과 싸우러 돌격했다. 왜냐하면 강도떼들은 승리할 희망도 없고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로마군과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로마군들은 토성을 쌓는데 있어, 앞서 이미 언급했듯이[㈜ 전쟁.5권. 523.] 예루살렘성 주위에서 사방 90퍼얼롱 떨어진 전 지역의 나무들을 완전 벌목했기 때문에. 재목을 구하는데 아주 애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21일 만에 토성을 완공했다. 예루살렘의 모습은 너무나 애처로왔다. 그 전에는 나무들과 숲으로 둘러싸인 평야를 지닌 아름다운 예루살렘의 자태가 이제는 나무가 다 베어져 버린 벌거숭이의 황량한 사막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유대(Judaea)의 옛모습과 예루살렘의 아름다운 교외를 보았던 적이 있는 자들은 현재의 황량함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너무나 삭막하게 변한 것에 대해 한숨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전쟁으로인해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황폐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옛 모습을 알았던 자들이 갑자기 예루살렘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누구도 그곳에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으며 예루살렘 부근에 산다 할지라도 한참 도시를 찾아보아야 그산세와 지형을 겨우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페허가 되어 버렸기때문이다.
2. 로마군의 낙망
토성을 쌓는 일이 완성되자 유대인들 못지 않게 로마군에게도근심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새로 쌓은 토성을 다시 불태우지 못한다면 예루살렘은 정복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반면 로마군들은 이 토성마저 무너지게 된다면 결코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토성을 쌓을 재료가 부족한데다가 병사들의몸은 노역으로 피곤해 있었으며, 병사들의 마음도 계속되는 패배로 지쳐있었다. 이처럼 예루살렘의 재난은 주민들보다 로마군에게 더 큰 낙망을 초래하였다. 왜냐하면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이 심한 불행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며, 반면 로마군의 토성들은 유대인의 전략으로 정복당하고, 그들의 공성 무기로도 예루살렘 성벽의 견고함을 무너뜨릴 수 없었으며, 유대인과의 접전에 있어서도 적들의 과감함에 눌리게 되는 등,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로마군의 희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 둘 꺾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것보다 가장 로마군을 낙담하게 했던 것은, 기근과 전쟁과 수많은 재난에 시달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불굴의 강한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의 용맹성을 꺾을 수 없으며, 고통 속에서도 활기를 잃지 않는꿋꿋한 유대인들을 도저히 정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즉 유대인들은 재난 가운데에서도 도리어 용기를 내어 분발하는 자들인데, 만약 그들에게 운마저 따른다면 무엇으로 그들을 가로막을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군들은 토성의 수비를 더욱 더 강화했다.
3. 유대인들이 토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로 끝남
한편 안토니아 망대에 있던 요한과 그 일당들은 머지 않아 성벽이 무너져 내리게 될 것에 대비하여 대비책을 강구하면서 로마군의 공성기구들이 이동되기 전에 토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이번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요한 일당은 횃불을 들고 나갔으나 토성에 접근하기도 전에 부푼 기대가 물거품이 된 채[㈜ 문자적으로 \”기대했던 것보다 더 실망한 채\”.] 되돌아왔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들은 계획과 행동에 있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작은 무리로 나뉘어공격을 했으며, 계속 공격하지 못하고 간격을 두고 공격한데다가 불안에 떨고 주저하면서 공격을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대인답지 못했다. 즉 대담성과 맹렬성과 동시적 공격과 최악의 상태에서도[㈜ 혹은 아마 \”거침없이 후퇴하여야 하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 유대민족의 특성을 이번 전투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유대인들의 공격은 예전과는 달리 정신력이 떨어졌으며, 반면 로마군들은 평상시 보다 더욱 튼튼한 전투대형을 갖추고 있었고, 병사들의 몸과 무기로 완전히 토성을 막고 있어서 사방 어느 쪽에서도 횃불을 놓아 불지를 구멍이 없었으며, 로마병사들의 마음도 자기 자리를 지키지못하고 도망가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필사적인 각오로 무장하고있었다. 로마군들은 만약 이 토성들마저 불타 없어진다면, 그들의 모든 희망이 산산히 무너질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을 이기기어렵게 되고 망신거리가 되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굳은 결심을 한것이었다. 노련한 전투 경험과 훌륭한 무기와 기술을 지닌 로마군이 단지 용감성과 필사적인 열정과 인해전술적 방법 뿐인 유대인들의 공격을 막지 못한다면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임하여 토성을 지켰던 것이었다.게다가 대포도 한 몫을 해내어 공격해오는 유대인들을 많이 쏠수 있었으며, 대포를 맞고 쓰러진 사람들 때문에 뒤 따르는 자들의 진격이 방해를 받았고, 대포로 인해 계속 전진하는 것이 두려워서 유대인들의 사기가 많이 꺾였다. 대포의 공격을 뚫고 투석장비들(projectiles)의[㈜ 사정거리가 긴 투석장비들 ; 참). 전쟁. 3권. 212 tw\’n de povrrw; ballomevnwn ejn doteirw ginovmenoi prodevkeinto 등.]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유대인들 중에서, 일부는 로마군의 빽빽히 늘어선 전투 대열과 난복할 만한 질서정연한 모습에 놀라서 로마진영 가까이에 가지 못하고 재빨리 후퇴했으며, 나머지 유대인들은 단지 창(javelin)[㈜ pila, 즉 공.] 끝으로 스치기만 해도 후퇴했다. 결국 유대인들은 서로 비겁하다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공격 대상을 내버려 둔 채 모두 퇴각하고 말았다. 이공격은 파네무스월 1일에 있었다[주후 70년 약 7월 20일]. 유대인들이 퇴각하자, 로마군들은 공격무기를 이동시켰다. 돌과 횃불과 쇠뭉치와[㈜ 쇠 뭉치 화살 : 참). 전쟁. 3권. 240.] 각종 던질 만한 것들을 다 던지면서 안토니아망대에서 공격하는 유대인들의 방해를 받으며, 로마군들은 공성무기들을 이동시켰다. 유대인들은 성벽이 무너지지 않으리라고확고히 믿고 있었고, 로마군의 공성무기들을 무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군이 공성무기를 이동시키지 못하도록 공격했던 것이다. 로마군은 성벽이 다소 약하다는 점 때문에 유대인들이 안토니아 망대를 공격에서 구해내려고 애쓰는 것이라 생각했으며, 안토니아 망대의 기반이 부서지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를 쓰고 공성 무기를 이동시켜 공격을 가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토니아 망대는 공성무기에 잘 버텨냈다. 그러나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이 계속 횃불을 던지는 가운데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공성 무기를 운반하여 성벽을 치기시작했다. 그러나 로마군이 불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이 던진 표석(漂石)에 맞았다. 로마군은 머리 위로 방패로 얹어 공격을 막으면서 손과 쇠지레를 이용하여 기초석을 파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4개의 기초석을 빼내는데 성공했다. 밤이 되자 양쪽 편의 공방전은 중단되었다. 기초석이 빠진데다 공성무기로 두드려 맞았던 성벽이 밤중에 갑자기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요한이 안토니아 망대 밑으로 로마군 토성에이르는 땅굴을 팠던 곳인데[㈜ 전쟁. 5권. 469.] 땅굴이 무너지면서 성벽이 무너진것이다.
4. 안토니아 망대 뒤에 또 다른 성벽의 발견
성벽이 무너져 내리자 로마군과 유대인들 양쪽 모두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성벽이 무너졌기 때문에 당연히 낙담해야 될 유대인들은 이러한 재난을 각오하고 대비책을 강구하고있었고, 안토니아 망대도 아직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자신만만 하였다. 반면 요한과 그 일당이 성벽 안에 쌓은 제2의 성벽을 보자 의외로 쉽게 성벽이 무너져 좋아하던 로마군의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사실 제2의 성벽은 첫 번째성벽보다 공격하기가 더 쉬워 보였다. 왜냐하면 제2성벽은 제1성벽이 무너져 내릴 때 생긴 파편 더미로 인해 오르기가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로마군들은 또한 제2성벽이 안토니아 망대의 성벽보다 훨씬 더 약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그 까닭은 그것이 임시변통으로 세운 것이어서 빨리 무너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성벽을 오르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맨 처음 공격하는 자들이 죽는다는 것은 너무도 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5. 티투스가 낙심한 병사들에게 한 연설
티투스는 전쟁 중에 있는 병사들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말이 가장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며, 권면과 약속의 말을 통해 위험을 잊어 버리게 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죽음 조차도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충실하고 용감한 부하들을 함께 불러놓고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는 연설을 하였다. 티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료 병사 여러분! 위험성이 전혀 없는 일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이 말을 듣는 여러분에게 직접적인 모욕을 주는 일입니다. 또한 그렇게 말한 나 자신도 남자답지 못함을 분명히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권면의 말이란 오로지 위험 부담이 많은 일에만 요구되어 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위험이 없는 다른 상황에서는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처음부터 여러분에게 이 성벽을 오르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우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려움과 부딪혀 싸우는 것은 영웅적 자질을 갈망하는 자들에게 둘도 없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명예스럽게 전사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며 그 길을 가는 자들의 용감함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상이 뒤따를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누차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유대인들이 오랜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잘 견디기 때문에 쉽사리 이기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여러분을 자극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로마군은 평상시 전쟁을 위해 훈련받아 왔으며, 전쟁에서도 늘 승리를 한 자들이기 때문에 힘이나 용감성에서 유대인들에게 진다는 것은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것도 최후의 승리가 눈앞에 와 있고, 하느님의 도우심도함께 하는 이 마당에 유대인들에게 진다는 것은 로마군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역전을 당한 것은 유대인들이 필사적으로 싸운 결과이며, 한편 유대인들의 고통은 여러분의 용감한 전공과 하느님의 계속적인 도움에 의해 증가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내분이나 기근, 예루살렘이 포위당한 사실과 공성무기의 공격 없이 성벽이 무너진 사실 등,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이 유대인들에게 진노하시며 하느님이 도움의 손길을 우리에게 내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우리보다 못한 유대인들에게 패배당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나 하느님의 도움을 저버린다는 것은 우리 로마군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노예 생활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패배한다해도 전혀 심각한 불명예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유대인들이 그들의 노예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고 계속해서 우리 로마군 중앙을 향해 돌격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의 수치입니다. 그들의 돌격은 승리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들의 용맹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물며 가까이 있는 온 땅과 바다를 정복한 로마군이 유대인의 대열 속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하지 않고, 이와같은 무기를 가지고 한가로이 앉아서 기근과 요행으로 유대인들을 물리칠 수 있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약간의 위험만 무릅쓴다면,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여러분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안토니아 망대만 오르게 된다면 예루살렘은 우리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안토니아 망대 안에 도 다른 성벽이 있어 앞으로 계속 전쟁이 우리를 기다린다 해도, 여러분은 지형상 유리한 위치(꼭대기)를 차지하게 되고 유대인들은 아래에 있기 때문에 우리 로마군의 승리는 확실하며 전쟁은 빨리 끝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전사자(戰士者)들의 죽음이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죽은 자들의 불후의 명성에 대한 찬사를 이야기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자들에게 내가 바라는 가장 최악의 저주는 병으로 조용히 죽어서 영혼과 몸이 함께 저주받은 자처럼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용감한 자들은 전쟁터에서 칼에 찔려 죽게 되면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은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요소인 에테르(ether)에 의해 영접받고 별들 사이에 위치하게 되어 선한 수호신들과 다정한 영웅으로 후손들에게 그들의 현존(現存)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왜 모르겠습니까? 반면 병으로 죽어 몸에서 사라져 버린 영혼은 그것이 오점이나 오염에서 벗어난 깨끗하고 순수한 것이라 해도 지하의 어둠속에사라져 버리고 영원한 망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며, 그들의 삶과 육체와 그들에 대한 기억은 이와 동시에 끝이 나는 것을 왜 모른단 말입니까? 인간이 한번 죽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용감히 싸우다 칼에 맞아 죽는 것이 병으로 죽는 것보다 훨씬 더 고귀한 것이며 어차피 우리가 죽음의 운명 앞에 굴복해야할 것이라면 공적인 군인 복무중에 그것을 거절한다는 것은 분명히 비열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성벽을 맨먼저 오르는 위험한 공격을 시도하는 자는 필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나 용맹한 자는 가장 위험스런 경우에서 조차도 안전하게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무너진 성벽은 오르기가 쉬울 것이며 남아있는 두 번째 성벽들도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자! 여러분!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면서 이 일을 위해용기를 모아 봅시다. 여러분의 결심여하에 따라 유대인의 정신력을 곧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시작하기만 한다면, 이러한 영광스러운 공훈이 혹시라도 피흘림 없이 이루어 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아마도 여러분이 성벽을 못 오르도록 기를 쓰고 방해를 하겠지만, 여러분이 방패로 몸을 가리면서 한번 앞으로 계속 밀고 나간다면, 유대인들의 방어선은 무너지게 될 것이고 따라서 여러분 중 몇 명은 유대인들의 손에서 벗어나서 성벽 오르는데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벽 오르는 공격을 맨 먼저 시도하는 자에 대해서는 명예스런 보상을 하여 그를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 것입니다. 성벽을 맨 먼저 오르는 자가 살아 돌아온다면,그는 그후부터는 이제까지 동료였던 같은 병사들을 지휘하게 될것이며, 전사한 자들에게도 반드시 그 용감함에 대한 보상이 뒤따를 것입니다.\”
6. 영웅 사비누스가 성벽을 오름
티투스가 이렇게 열변을 토하였으나 대부분의 병사들은 너무나 큰 위험 부담 때문에 주저했다. 그러나 이때 보병대(cohort)[㈜ 지원부대.] 소속 병사들 가운데 수리아(Syria)출신의 사비누스(Sabinus)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일어섰다. 사비누스는 전투 기술이나 정신력, 양면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전에 그를 보고 외모로 판단했던 사람이 있다면 사비누스를 보통 일반 병사(군인)로 조차도 여기지 않을 만큼 빈약한 체구였다. 그의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몸은 말라서 쇠약해 보였다. 그러나 타고난 용맹성이 깃들어 있기에는 너무 왜소해 보이는 갸날픈 체구와는 달리 그의 가슴에는 영웅적 기백이 담겨져 있었다. 사비누스는 제일 먼저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이사여! 제가 당신께 기꺼이 저를 바치겠습니다. 제가 맨 먼저 성벽을 오르겠습니다. 저의 용기와 결심이 폐하에게 행운이 되기를 바랄 뿐 입니다.[㈜ 티투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라며. 참). 전쟁. 5권. 2:5(88).] 만일 어떤 불운 때문에 저의 의도가 실행되지 못하더라도, 저는 죽음을 이미 각오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이 그리 놀랄만한 일이 못되며 폐하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하고 싶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비누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왼손으로 방패를 잡아 머리위로 쳐들고 오른손에는 칼을 뽑아들고서 성벽쪽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때가 거의 정확하게 낮 제6시경이었다.이때 사비누스의 용기에 고무되어 11명의 다른 병사들이 그를뒤따랐다. 그런데 사비누스는 다른 11명보다 훨씬 앞서 전진하였는데 마치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 같았다. 성벽에서는 유대인 수비병들이 돌진해 오는 사비누스 일행을 향해 창을 던지고 사방에서 활을 비오듯 쏘아대는가 하면 커다란 돌을 아래로 굴려서 사비누스를 뒤따르던 11명 중에 몇 명을 쓰러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사비누스는 유대인들이 던지는 활과창을 잘 피하면서도 결코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돌격한 결과 성벽의 정상에 도달하여 유대인들을 패주시켰다. 유대인들은 사비누스의 힘과 용맹성에 두려움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로마군이 올라온 줄로 생각하여 도망을 쳤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운(fortune)을 탓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운이 용기있는 공훈을 시기하며 영광스러운 업적의 성취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불운하게도 사비누스는 목적을 달성하기 일보 직전에 그만 미끄러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위 위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자 도망쳤던 유대인들은 되돌아와서 사비누스가 혼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사방에서 그에게 활과 창을 던졌다. 사비누스는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방패로 몸을 가리면서 얼마동안 적이 다가오지 못하게 방어했으며 접근해 오는 유대인 몇 명을 찔러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사비누스는 심한 부상으로 인해 곧 칼을 떨어뜨리게 되었고 유대인들이 던지는 창과 활에 만신창이가 된채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비누스의 경우, 그의 용맹성은 좀더 나은 행운을 누릴 자격이 있었지만 어쨌든 이렇게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비누스의 죽음은 그의 공적과 함께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11명의 그의 동료들 가운데 3명은 성벽의 정상에 오른후 돌에 맞아 죽었으며, 나머지 8명은 부상당한 채 로마군에 의해 구출되어 진영으로 후송되었다. 사비누스의 이 사건은 파네무스월 3일에 발생한 사건이었다[약 7월22일].
7. 성전 입구에서 벌어진 양쪽간의 결사적인 결투
이틀 후 토성 외곽 수비를 하던 20명의 로마 수비병들은 제5군단의 기수와 기병대(squadron)에서[㈜ alae, 즉 지원기병.] 2명의 기수와 나팔수 1명의 도움을 얻어 밤 제 9시에 안토니아 망대쪽으로 무너진 성벽을 통해 조심조심 소리내지 않고 접근했다[7월 24일경]. 그들은 안토니아 망대로 들어가면서 마주친 제 일선의 잠자고 있는 보초들을 죽였으며, 성벽을 장악하고 나서 나팔수에게 나팔을 불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다른 보초병들은 로마군이 몇이나 올라왔는지 알아 보기도 전에,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당황한데다 나팔소리까지 들리자 로마군의 많은 병력이 올라온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티투스는 나팔 신호를 듣자 급히 병사들을 불러 무장시키고 지휘관들과 정예부대와 함께 제일 먼저 성벽에 올라왔다. 유대인들은 성전으로 도망갔으며 로마군 역시 요한이 로마군 토성까지 연결되게 파놓은 지하터널을 통해 성전으로 들어갔다.[㈜ 전쟁.6권. 1:3(28).] 요한과 시몬에게 속한 두 강도떼들은 두 패로나뉘어 로마군들의 진입을 막으려고 애썼으며 온 힘과 정신을쏟아 성전으로 못들어 오도록 막았다. 왜냐하면 강도떼들은 로마군이 성전안에 들어오게 되면 결국 만사가 끝장나고 포로가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로마군은 성전으로 진입하는 것을 승리의 서곡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로마군은 성전을 장악하려 하고, 유대인들은 로마군을 안토니아 망대로 퇴각하게 하기 위해 양쪽이 모두 성전 입구 부근에서 결사적인전투를 벌였다. 창이나 화살은 양쪽 병사들에게 필요 없었다. 그들은 칼을 뽑아들고 서로 접전을 했으며, 이러한 난투극(melee)속에서 어느쪽이 어디서 싸우는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으며 적과 아군이 모두 뒤섞여 있었고, 한정된 좁은 장소에서 뒤범벅이된채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그들의 고함소리가 무슨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양편 모두에게 많은 사상자들이 생겼고 시체와 죽은 자들의 무기는 병사들에게 밟히고 짓눌러졌다. 전쟁의 승패에 따라 승리하는 쪽은 추격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도망가는 쪽은 애통해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워낙 좁은 한정된 장소이기 때문에 도망칠 곳도 추격할 곳도 없었다. 다시 말하면 몸과몸이 부딪히는 육박전이었으므로 싸우는 위치가 바뀔 뿐이었다.앞에 있는 자들은 양편 모두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상대를 죽이든지 죽든지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양편 모두 뒤에있던 자들이 자기편 앞쪽으로 계속 동료들을 밀어내므로 싸우다가 뒤로 물러날 공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로마군이 안토니아 망대로 후퇴하다]
결국 유대인의 필사적인 저항이 로마군의 전투기술을 이기게 되자, 로마군의 전체 대열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밤 제9시부터 낮 제 7시까지 계속 싸웠는데 유대인들은 포로가 된다는 위험부담 때문에 더욱 용기를 내 온 힘을 다해 싸운 반면, 로마군들은 병력의 일부만이 싸웠고 지금 전투에 참가한 일부 병사들이 속해있는 부대의 나머지 전 인원들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기때문에 로마군이 몰리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 상태로는 안토니아 망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도 로마군으로서는 만족하게 여겨졌다.
8. 또 다른 영웅 율리아누스(Julianus)의 운명
한편 율리아누스(Julianus)라는 비두니아(Bithynia)부대의 백부장이 있었는데, 그는 훌륭한 전투 기술과 강인한 신체와 용감한 정신력을 갖춘 사람으로 명성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이 전쟁 기간 동안 내가 알았던 그 누구보다도 탁월한 인물이었다. 율리아누스는 안토니아 망대에서 티투스 옆에 서 있었는데 로마군이 몰리기 시작하고 제대로 방어도 못하는 것을 보자, 앞으로 달려나가 이미 승리를 거두어 의기양양해 있는 유대인들을 혼자서 성전 안뜰의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유대인들은 율리아누스의 강인함과 용기를 초인적인 것으로 판단하여 떼를 지어 도망쳤다. 이에 율리아누스는 흩어지는 유대인의 대열 중앙을 뚫고 나가며 닥치는 대로 모두 죽였다. 가이사 티투스가 보았던 전투 장면 중에서 지금 율리아누스가 보여준 장면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광경은 없었으며, 반면에 그만큼 유대인들에게는 그 광경보다 더 끔찍한 광경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율리아누스도 인간인 고로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굴레 앞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율리아누스는 다른 병사들과 같은 복장을 갖추었는데, 뾰쪽한 못이 촘촘하게 박힌[㈜ \”못으로 박아진\”, 헬라어 구절로는 호머식의 표현이 된다.(\’일리아드\’, i:246, xi:633).]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포장된 길을 건너다가 미끄러져 벌렁 넘어졌다. 그런데 넘어질 때 나는 갑옷의 육중한 금속성 소리가 들리자 도망치던 유대인들이 다시 되돌아왔다. 넘어진 율리아스를 걱정하는 함성이 안토니아 망대에 있던 로마군들에게서 터져 나왔으며, 반면 유대인들은 율리아누스 주위를 에워쌌고 창과 칼로 사방에서 그를 찔렀다. 율리아누스는 방패로 무수히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면서 일어나려고 애써봤으나 중과부적으로 얼마 못가 다시 넘어졌다.율리아누스는 비록 뒤로 넘어져 있었지만 많은 유대인들을 칼로 찔러 죽였다. 그는 투구와 갑옷으로 생명에 치명적인 급소가 보호되어 있었고 목을 집어넣고 잔뜩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빨리 처치하기 힘들었다. 결국 율리아누스는 사지가 모두 잘려나갔으며 아무도 그를 도우러 온 자들이 없었으므로 마침내 죽게 되었다. 가이사 티투스는 이토록 용감한 율리아누스가 많은 사람들의 눈 앞에서 학살당해 죽어간 사실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았다. 티투스는 개인적으로는 그를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반면 율리아누스를 도울 수 있는 상황에 있었던 로마 병사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리하여 율리아누스는 죽음과의 힘든 고투 끝에 끝까지 싸우다 죽게 된 것이다. 그는 자기에게 치명타를 입힌 유대인들을 공격하면서 죽어갔으며, 로마군과 가이사에게 뿐 아니라 적인 유대인들에게도 최고의 명성을 남기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율리아누스를 죽인 다음 다시 로마군을 격퇴시켜 그들을 안토니아 망대로 몰아 넣었다. 유대인들 중 이번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자들은 요한의 수하에 있는 인물로는 알렉사스(Alexas)와 기프타에우스(Gyphthaeus)였으며 시몬이 이끄는 무리 중에서는 말라키아스(Malachias)와 메르톤(Merton)의 아들 유다(Judas)와 소사스(Sosas)의 아들이자 이두매인들의 지휘자인 야고보(James)였다.[㈜ 전쟁. 4권. 4:2(235).] 그리고 열심당에서는 아리스(Aris)의[㈜ 아마 C사본(codex C.)으로는 야리우스(Jarius)일 것이다.] 아들들인 시몬(Simon)과 유대스(Judes) 두 형제가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