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티투스가 안토니아 망대를 허물도록 명령하고 요세푸스에게 유대인들이 항복하도록 다시 설득하게 한 것에 대하여
1. 안토니아 망대의 무너짐[주후 70년 8월]
한편 티투스는 그와 함께 있던 병사들에게 안토니아 망대의 기초를 무너뜨려서 전 부대가 성벽을 쉽게 올라올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티투스는 바로 그날(파네무스월 17일)이 유대인들이 소위 상번제라는[㈜ 매일 드리는 조석의 제사. 히브리어로는 타미드(Tamid). 참). 민 28:6 상번제의 중지는 유대 전통을 탐무즈(Tammuz, 수리아력(曆)으로는 파네무스). 달 17일과 관련된 5대 재난중의 하나이다.] 제사를 드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제사드릴 사람이[㈜ 혹은(수정본으로)새끼양들.] 없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해 유대인들이 극도로 의기소침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요세푸스를 불러 그전에 유대인들에게 했던 권면의 말을 요한에게[㈜ 기스칼라의 요한.] 다시 되풀이해서 권면하라고 지시했다.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만일 요한 그대가 전쟁에 대한 끔찍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시키는 일이 없도록 그대가 이끌 수 있는 부하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서 싸워보자. 요한 그대는 이제 더 이상 성전을 더럽혀서는 안되며 더 이상 하느님께 범죄해서도 안된다.그대가 원한다면 그대가 뽑은 유대인들과 함께 중단되었던 제사를 다시 드릴 수도 있다.\”
요세푸스는 요한뿐 아니라 주민들의 귀에도 다 들릴 수 있게서서 히브리말로[㈜ 즉 아람어. 참). 행21:40, 22:2.] 티투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요세푸스의 설득]
요세푸스는 진지하게 유대인들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우리조국을 살립시다. 이미 성전을 불태우기 시작한 불길을 꺼버리고 하느님께 속죄의 제사(expiatory sacrifices)를 다시 드립시다.\”[㈜ 참). 전쟁. 1권. 1:1(32).] 이와같은 요세푸스의 간절한 권면의 말에 주민들은 조용히 우울한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폭군 요한은 요세푸스에게 온갖 악담과 저주를 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루살렘은 바로 하느님의 도시이기 때문에 결코 포로가 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요한의 대꾸에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요한 당신이 정말 하느님을 위해 예루살렘을깨끗이 지켰단 말이오? 성전 역시 더럽혀지지 않고 남아 있단말이오? 당신이 그렇게 바라던 하느님께서 당신 때문에 불경을당하지 않았단 말이오? 또한 하느님이 매일 받으시던 제사들 지금도 받고 계신단 말이오? 가장 사악한 자여! 당신의 일용할 양식을 빼앗는 자가 있다면, 당신은 그를 적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오. 당신은 영원히 받으실 하느님께 대한 제사를 드리지 않고서이 전투에서 하느님의 도우심을 기대한단 말이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죄를 로마군의 탓으로 돌리려고 하지 않소? 로마군은사실 이날까지 우리 유대의 율법에 대해 배려해 주었으며 당신이 중단했던 제사를 하느님께 다시 드리게 하려고 오히려 애쓰고 있지 않소? 그 누가 이렇게 엄청나게 변모한 예루살렘을 보고 비탄에 잠겨 통곡하지 않겠소? 이방인들과 적들도 당신의 사악함을 고치려고 하는 이 판국에, 유대인인 당신은 유대 율법으로 교육받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로마군보다도 더 율법을 혹독하게 파괴하다니 이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요한이여 잘 들으시오. 마지막 순간에라도 그 악행을 회개하는 것은 전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오. 만약 당신이 조국을 구하고자 한다면, 유대의 왕 여고니아(Jeconiah)의 좋은 전례를 기억해야 하오. 여고니야 왕은 나이 들었을 때, 그의 잘못된 행동으로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 오게 되었는데 그는 예루살렘이 점령되기 전에 스스로 예루살렘성 밖으로 나와 가족과 함께 자진해서 포로가 되었소. 여고니아 왕은 성전이 적에게 넘어가고 하느님의 집이 불타는 것을 보느니 보다 차라리 스스로 포로가 되었던 것이었소.[㈜ 왕하 24:12의 부연(敷衍)이다. \’유다왕 여호야긴이 그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참).고대. 10권. 7:1(100).] 따라서 여고니아 왕은 성경에 기록되어 모든 유대인들에게 존경받게 되었으며,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후세인들에게 새롭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오. 요한이여! 이러한 여고니아 왕의 선례를 따르는 것이 위험스러울 것이요. 그러나 나는 로마군이 당신을 용서해 주도록 보장할 수 있소. 당신에게 권면의 말을 하는 나 자신도 같은 유대인임을 명심하시오. 같은 동족으로서 하는 이 약속을 잊지 마시오. 당신은 권면하는내가 누구이며 어디 출신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하오. 나는 동족을 저버리거나 조상의 율례를 잊어 버리는 야비한 사람으로 살진 않았소!\”
\”그러나 당신은 또다시 분개해서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소. 죽어야 될 당신의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권면을 하는 것과 하느님이 이미 버리신 자들을 구해보려고 고군분투하는 나의 행위는 천벌을 받을 짓이라는 것도 알고 있소. 이 비참한 도시(예루살렘)가 멸망하리라는 옛 선지자들의 예언과 신탁이 지금 성취되고 있음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소. 옛 선지자들은 누군가 동족을 살해하기 시작할 때 예루살렘이 멸망될 것이라고 예언했었소.[㈜ 언급이 불분명하다. 참). \’신탁집\'(Orac. Sybill), iv : 155이하. \’신탁집\’ 제4권은 주후 80년경에 시작되었으므로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와 거의 동시대이다.] 지금 예루살렘과 성전 전체에 온통 동족들의 시체들이 가득차 있지 않소? 바로 하느님께서 로마군과 함께 친히 성전을 정결케 하기 위해 불을 지르기 시작했으며 더러움으로 가득찬 예루살렘을 치고 계신 것이오.\”
2. 요세푸스의 권면의 결과 많은 유대인 저명인사들이 로마군으로 투항해 오다
요세푸스는 위와 같은 권면의 말을 하면서 애통하여 눈물을 흘렸으며 목이 메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로마인들은 요세푸스의 애통함을 가련하게 생각하며 그의 결단력에찬사를 보냈으나, 반면 요한과 그 추종자들은 요세푸스를 자기들 수중에 사로잡아 두기를 열망하며 로마인들에 대해 더욱더 분개했을 뿐이다. 그러나 상류 계층의 많은 유대인들은 요세푸스의 권면에 감동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강도떼들의 감시에 위협을 느껴, 예루살렘과 자신들이 모두 멸망 당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도망갈 생각을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안전하게 도망칠 기회를 엿보아 로마군에게 도망쳐 왔다. 로마군에게 투항해 온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대제사장인 요셉(Jeseph)과 예수(Jesus)가 있었으며 대제사장의 아들들이 있었다. 즉 구레네(Cyrene)에서 참수형을 당한 이스마엘(Ishmael)의[㈜ 파비(Phabi)의 아들 이스마엘이 가능하다. 그의 대제사장 직임과 로마에서 네로가 불모로 잡은것에 관해 다른곳 즉, 고대. 18권. 2:2(34) 20권. 8:8, 11(179, 194)이하를 보라.] 3명의 아들과 마티아스(Mat-thias)의 4명의 아들과 또 다른 마티아스(Matthias)의[㈜ 보에투스의 아들 마티아스.] 아들이 있었다. 이 마티아스의 아들은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전쟁. 5권. 8:1. (527-531).] 기오라스(Gioras)의 아들 시몬의 손에 아버지와 3명의 형님이 전부 살해당하자 도망쳤던 마티아스의 막내 아들 이었다. 다른 많은 상류계층의 유대인들도 대제사장들과 함께 로마군에게로 넘어왔다. 가이사 티투스는 이들 모두를 정중하게 우대해 주었으며 그들이 이방 풍습을 따라 생활하는 것을 싫어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고프나(Gophna)로[㈜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12마일 되는 주프나(Jufna).] 보내면서 당분간은 그곳에서 있으라고 말하면서 전쟁이 끝난후 여유를 찾게 되면 곧 각자의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그들은 기꺼이 그리고 완전한 보호속에서 지정된 작은 고을 고프나에서 은신하였다.그러나 강도떼들은 로마군에게 넘어간 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들은 남아있는 자들이 또다시 로마군에게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탈주자들이 로마군에게 살해당했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 참). 전쟁. 5권. 11:2. ; (453)이하.] 이러한 술책은 그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얼마동안은 성공적이었다.[㈜ 참). 전쟁. 5권. 11:2, ; (453)이하.] 공포심에 질린 나머지 유대인들이 감히 탈주를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3. 유대인 탈주자들이 강도떼에게 항복할 것을 호소함
그래서 티투스는 고프나에서 유대인 탈주자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요세푸스와 함께 성벽 앞에 가서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주민들에게 그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지시했다. 이에 많은 유대주민들이 로마군에게 도망쳐 오게 되었다. 이렇게 탈주한 유대인들은 로마군 대열 앞줄에 함께 모여 서서 애통과 눈물로 강도떼들에게 애원했다. 즉 가장 좋은 방법은 강도떼들이 로마군을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조국을 구하는 것이고, 그 방법이 불가능하다면 어쨌든 성전에서 나와 성전을 보존하게 해달라는 애원이었다. 왜냐하면 로마군은 가장 절박한 필요성이 아니라면, 성전을 불지르는 일은 결코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탈주자들의 호소는 강도떼들을 더욱 자극했을 뿐이었다. 강도떼들은 탈주자들에게 비난을 쏟아 부으면서 응수했고 속사포(quick-firer)와[㈜ 혹은 \’투석기들\’.] 석궁(石弓)과 투석기(投石機)를 성전 문위에 배치하였다. 이리하여 성전 뜰 주위에는 많은 시체들로 인해 마치 공동 묘지와 같았으며 이로 인해 성전이 마치 요새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였다. 강도떼들은동족의 피가 손에서 마르기도 전에 무장을 한채, 신성 불가침한곳(성소)로 몰려 들어갔다. 강도떼들의 죄악이 이미 도를 넘어 성소를 범하는 죄를 보고 유대인이 분노를 내어야 마땅한데 도리어 로마군이 분노하였다. 로마 병사들 가운데 성전을 경외감과 존경심을 가지지 않고 바라보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으며 모든 병사들은 성전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만나기도 전에 강도떼들이 회개할 것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4. 티투스가 강도떼들에게 호소하지만 소용이 없음
한편 티투스는 좀더 깊은 비탄에 잠기게 되어 다시 한번 요한과 그 일당들을 꾸짖었다. \”이 가증스러운 인간들이여! 바로 너희들이 성전 앞에 이 벽(난간)을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바로 너희들이 아무도 이 벽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출입금지라고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글을 새긴 돌판을 이 성전을 둘러친 벽에 설치해 놓지 않았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들은 그곳을 통과하는 자는 비록 로마인이라 할지라도 죽이겠다는 너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악한 너희들은 도대체 왜 성전안에서 지금 시체를 짓밟고 있단 말인가? 왜 너희들은 성전을 이방인과 유대인의 피로 더럽히는가? 나는 내 조상의 신들과 이 성전을 한번이라도 지켜본 신들(왜냐하면 나는 이 성전에 그 어떤 신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과 로마군과 함께 있던 유대인들과 너희 자신들의 이름으로 맹세하건대, 너희들로 하여금 이 성전을 더럽히도록 강요한 자는 분명히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른 곳으로 전투장소를 바꾼다면, 로마군은너희들의 성전에 접근하지도 않을 것이며 성전을 범하지도 않을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원하지 않는다 해도 너희를 위해 성전을 보존할 것이다.\”
5. 로마군의 야간 공격과 안토니아 망대에서 이것을 지켜보고 있는 티투스
티투스의 이러한 전갈이 요세푸스를 통해 전해지자, 강도들과 그들의 폭군 요한은[㈜ 기스칼라의 요한.] 그의 권면의 말을 선의에서가 아니라 비겁함 때문에 호소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경멸했다. 이에 티투스는 요한 일당이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성전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자, 한번 더 내키지 않는 전투를 다시 계속했다.그런데 전투할 장소가 한정된 좁은 곳이라서, 티투스는 전 병력을 데리고 올 수 없었다. 따라서 티투스는 백인대 (100명의 보병으로 편성된 부대)마다 각각 30명의 정예 병사를 뽑아서 각 군단 사령관에게 1,000명씩 맡기고 케레알리우스(Cerealius)를[㈜ 제5군단의 장군, 섹스투스 케레알리스 베툴레누스(Sextus Cerealis Vettulenus). 전쟁.3권. 7:32(310).] 총 지휘관으로 임명하면서 그날 밤 제 9시경에 성전 수비병들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티투스 자신도 무장을 하고 그들과 함께 성전을 공격하러 가려고 준비했으나 측근들이 너무 위험하다고 말렸다.[㈜ 참). 삼하 18:2이하(다윗이 압살롬을 치러 싸움터에 나가는 것이 제지되었다).] 티투스의 측근 지휘관들은 그에게 병사들과 함께 성전으로 가서 전선에서 직접 싸우는 것보다 안토니아 망대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것이 더 큰 일을 하는 것이라고 건의했다. 왜냐하면 티투스가 싸움을 지켜 보고 있다면, 병사들은 자기들이 용감하게 전투하는 모습을 티투스가 지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더욱 열심히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근들의 설득에 티투스는 동의하고, 자신이 안토니아 망대에 남아있는 단하나의 이유는 바로 병사들의 용감성을 잘 판단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였다. 티투스는 또한 용감한 병사들을 눈여겨 보아 두었다가 반드시 보상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병사들은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모든 병사들을 엄밀히 주시하여 상과 벌을 확실히 주겠다고 말했다. 티투스는 앞서 언급했듯이 밤 제9시경에 계획대로 병사들을 파견했으며, 자신은 밑 바닥까지 다내려다 볼 수 있는 지점으로 올라가서 안토니아 망대로부터 날아올 결과를 기다렸다.
6.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나게 된 야간 전투
한편 성전으로 침투한 로마 병사들은 그들이 바랬던 것처럼 성전 수비병들이 잠들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유대인 수비병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들었고, 이를 계기로 그들은 서로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유대인 보초병들의 고함소리에 동료 유대인들이 안쪽에서 빽빽히 무리를 지어 달려 나왔다. 로마군들은 앞에 달려 나온 유대인들의 돌격을 저지했다. 반면 뒤에 있던유대인들은 같은 아군과 충돌 했으며 동료를 적으로 착각했다. 왜냐하면 양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목소리로는 적군인지 아군인지 구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는 흥분해서, 다른 나머지는 두려움 때문에 눈이 멀어 부딪히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무분별하게 죽였던 것이다. 로마군은 방패를 맞물려서 열을 지어 공격했기 때문에 이런 아우성 가운데에서도 피해를 덜 입었으며 로마병사들은 각자 암호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군인지 아군인지 식별이 가능했다. 반면 유대인들은 곧 뿔뿔히 흩어져서 제멋대로 공격하고 후퇴했기 때문에 아군을 서로 적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유대인들은 어두움 속에서, 되돌아서는 동료들을 공격해오는 로마군으로 오인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적에게 당한 숫자보다 동료들에게 당한 숫자가 더 많았다. 새벽이 되서야 그때부터 아군인지 적군인지 식별이 가능해서[㈜ 혹은 \’눈으로 구별된\'(혹은 결정이 되는).] 전투가 제대로 될 수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대열에 서서 무기를 사용하여 공격하거나 질서정연하게 방어할 수 있었다. 양편 그 어느 쪽도 물러서거나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로마군들은 티투스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용감하게 싸우면 승진할 날이 올 것을 믿으면서 병사는 병사끼리, 중대는 중대끼리 서로 경쟁하며 용감하게 싸웠다. 반면 유대인들이 용감하게 싸운 것은 그들 자신과 성전에 대한 두려움과 폭군 요한[㈜ 기스칼라의 요한.] 때문에도 용감하게 싸우지 않을수 없었다. 왜냐하면 요한은 일부 유대인들을 격려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협박과 매질로 용감히 싸우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이 전투는 어쩔 수 없이 답보 상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좁은 공간에 제한되어 있어서[㈜ 사본들은 \’겨우 1퍼얼롱 이내에 억지로 가둬진\’이라고 나온다.] 이리저리 움직일 수 없었고 도망가거나 추격할 여지가 없었다. 안토니아 망대에서는 전투의 매 상황마다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안토니아 망대에 있던 로마군은 성전에서 싸우고 있는 동료들이 기선을 잡고 몰아 붙일 때에는 응원의 함성을 질렀고, 밀릴때에는 빨리 맞서 싸우라고 함성을 질렀다. 그것은 흡사 무대위에서 전투하는 것과 같았다. 왜냐하면 티투스와 그의 측근들이 전투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밤 제 9시경에 작전을 개시한 로마군의 공격은 낮 제 5시경에 끝났다. 양편중 어느쪽도 전투가 시작된 그 지점에서 적을 눈에 띄게 많이 밀어 부치지 못했으며 승부가 나지않는 전투여서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났다. 로마군 중에는 용감히 싸운 특출한 병사들이 많았으며 유대인 가운데도 출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시몬의 부하 중에서는 마레오테스(Mar-eotes)의 아들 유대스(Judes)와 호사이아스(Hosaias)의 아들 시몬(Simon)이 있었고 이두매인들 중에는 야고보(James)와 시몬(Simon)이 있었다. 시몬은 아카텔라스(Acatelas)의[㈜ 그 이름은 다른곳에서는 카아타스(Caathas)나 카틀라스(Cathlas)로 나타난다. 전쟁. 4:4(271), 5권. 6:1(249).] 아들이며 야고보는 소사스(Sosas)의 아들이었다. 요한의 부하중에는 게프타이우스(Gephthaeus)와 알렉사스(Alexas)가 있었고, 열심당 가운데는 아리(Ari)의 아들 시몬(Simon)이 있었는데, 이들이 모두 용감히 싸운 출중한 유대인들이었다.
7. 성전에 이르는 도로공사와 새 토성을 쌓기 시작함
한편 남아있던 나머지 로마군은 7일동안 안토니아 망대의 기초를 무너뜨린후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을 넓게 닦았다. 첫 번째 성벽에 다가간 로마 군단들은 토성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중 첫 번째 토성은 성전안뜰의 북서쪽 귀퉁이 맞은편에 쌓았고,두 번째 토성은 두 개의 성문 사이에 있는 북쪽 복도 반대편에 쌓았으며 세 번째 토성은 성전 바깥뜰의 서쪽 회랑 맞은편에 쌓았고 네 번째 토성은 성전 바깥뜰 북쪽 회랑 맞은편에[㈜ 혹은 \’밖으로 더 멀리\’.] 쌓았다. 그러나 토성을 쌓아 올리는 작업은 병사들의 노고와 고생없이 진척된 것은 아니었다. 목재들은 100퍼얼롱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운반해야만 했다.[㈜ 참). 전쟁. 6권. 1:1. (5).] 병사들은 또한 그들의 압도적 우세로 인해 경계를 느슨하게 했기 때문에 유대인의 계략에 자주 말려들었으며, 유대인들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게 되자 최후의 발악으로 전보다 더 맹렬하게 로마군을 방해했기 때문에 토성 쌓는 작업은 어렵고도 힘든 작업이었다. 로마군 기병들의 경우도 힘든것은 마찬가지였다. 기병들은 나무나 사료들 구하러 갈 때면, 말들의 고삐를 벗겨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게 했는데 이때 유대인들이 떼를 지어 습격해 말을 빼앗아 갔다. 이런 일이 계속 되풀이 되자, 티투스는 유대인들의 이러한 습격이 그들의 용기라기 보다 로마 기병들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특별히 엄중한 조처를 취해 병사들이 말을 간수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했다. 따라서 티투스는 말을 잃어버린 병사 한명을 사형에 처하도록 지시했다. 이것은 무서운 선례가 되어 병사들은 말을 잘 간수하였다. 병사들은 말이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도록 하지 않았으며 사람과 말이 떨어지지 않게 반드시 붙어 다녔다. 이리하여 로마군은 성전 공격과 토성 쌓기에 온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8. 감람산의 로마군 진영을 공격하는 유대인들
한편 강도단은 로마군이 성벽을 올라온 그 다음날, 사람들을모아 감람산(Mount of Olives)에 있는 로마 보초병들을 공격하였다.[㈜ 어디에서 열 개 군단이 진을 쳤는가, 5권. 2:3(69)이하를 보라.] 그때가 낮 제11시경이었다. 강도떼들은 더 이상 약탈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근으로 심한 타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강도떼들은 로마군이 방심하고 있을 것을 예상하고 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공격하면 쉽게 뚫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그러나 로마군은 강도떼들의 접근을 미리알고 인근 성채에서 뛰어나와 한 곳에 집결해 성벽을 오르려고 기를 쓰거나 로마군 진지로 가는 길을 뚫으려하는 강도떼들을 저지했다. 이리하여 서로 난투극이 벌어진 가운데 양편 모두 용맹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로마군은 힘과 기술이 조화된 전투 모습을 보여 주었고, 유대인들은 무모한 맹렬성과 불같은 열성을 보여주었다.로마군은 부끄럽지 않으려고 열심히 싸웠고 유대인들은 어쩔 수없이 필사적으로 열심히 싸울 수 밖에 없었다. 로마군들로서는,그물안에 다잡은 것 같은 유대인들을 놓치게 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고,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신변안전의 유일한 희망은 로마군의 방어망을 뚫는 길 밖에 없었으므로 안간힘을쓴 것이었다. 따라서 전투는 치열했으며 용감무쌍한 장면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중 한가지만 소개하기로 하겠다. 로마 보병대 소속인 페다니우스(Pedanius)라는 병사가 말을 타고 최고 속력으로 유대인들의 측면을 따라 달리면서 도망가는 유대인 한명을 붙잡았다. 이때가 유대인들이 싸우다 결국은 격퇴당해 계곡으로 몰리고 있을 때였다. 페다니우스는 억센 체격에 완전 무장을 한채 도망가는 유대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었다. 그는 완벽한 마술(馬術)로 달리면서 말위에서 허리를 굽혀서 억센 팔힘과 몸을 이용해 유대인의 발목을 휘어잡았다. 페다니우스는 마치 귀중한 보물인 것처럼 유대인 포로를 끌고, 가이사에게 왔다. 가이사 티투스는 페다니우스의 힘을 극찬했으며, 그 포로를 토성을 기습한 죄목으로 처벌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나서 티투스는 성전 공격과 토성 쌓는 것에 박차를 가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9. 성전 회랑들이 처음에는 유대인에 의해 불타고 다음에는 로마군에 의해 불에 탐
한편 유대인들은 접전으로 계속 조금씩 밀리게 되고 마침내성전까지 밀리게 되는 궁지에 몰리자, 마치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이미 상한 사지를 몸에서 잘라내는 것같은 조치를 취했다.다시말해 유대인들의 안토니아 망대와 연결된 북서쪽 회랑의 일부분을 불질러 버린 후에 약20규빗 가량 회랑을 부서뜨림으로써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성전을 불지르게 된 것이다. 이틀후, 그러니까 앞서 말한 파네무스월 24일[8월 12일경]에 로마군은 인접해 있는 회랑에 불을 질렀으며, 불길이 50규빗 정도 확산되자 다시 유대인들이 회랑 지붕을 다 부수었다. 유대인들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토니아 망대와 성전이 연결된 부분을 잘라버리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즉, 안토니아(Antonia)와의 관계를 단절하는것.]인해 유대인들은 건물이 불타는 것을 막을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이 번질 때에 그냥 가만히 있었으며 불길이 확산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리라 단순히 생각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성전주위에서의 전투는 계속해서 일어났으며 양편의 기습공격도 간간히 계속되었다.
10. 유대인과 로마군의 일대일 전투
성전주위에서의 전투와 기습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요나단(Jonathan)이라는 유대인이 로마군 중에서 가장 훌륭한 병사는 나와서 자기와 일대일로 대결하자고 결투를 신청하였다. 요나단은 작은 체격에 보잘 것 없는 외모를 지닌 자로, 출생신분도 좋지않은 비천한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대제사장 요한의[㈜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 ; 그의 기념비 주위는 티투스가 첫공격을 한 곳이다. 전쟁.5권. 6:2(259).] 무덤 맞은편에서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로마군을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은후 일대일로 싸워보자고 도전을 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로마군의 대열에서는 대부분 그를 경멸스럽게 여겼다. 그중 몇몇은 불안감도 있었으며 일부 병사들은 죽기로 작정한 자와 싸우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자는 필사적으로 싸울 뿐 아니라, 하느님의 긍휼하심을 입고있다는 것을 알고[㈜ 문자적으로는 \’신도 쉽게 얼떨떨하게 했다\’. 즉 \’쉽게 애원에 의해 움직였다\’.]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싸워서 이긴다해도 별 큰 공훈이 되지 못하고 혹 지게 되며 모욕스러운 일인데 그런자와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은 용감한 행동이 아니라 무모한짓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꽤 얼마동안 로마군에서는 선뜻 나서는 자가 없었으며 이에 유대인들은 계속하여 로마군은 겁쟁이들이라고 조롱하였다. 요나단은 아주 우쭐거리면서 로마군을 업신여겼다. 이때 기병대(squadron)소속의 한 로마 병사가 요나단의 욕설과 우쭐거리는 모습이 메스꺼워 앞으로 나왔다. 푸덴스(Pudens)라는 이 로마 기병은 요나단의 보잘것 없는 체구를 우습게 보고 달려나오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는데 이것은 운명의 장난이었다. 왜냐하면 푸덴스가 넘어지자 이에 요나단은 그에게 달려들어 재빨리 해치워 버렸다. 요나단은 시체를 발로 밟고 피묻은 칼을 휘둘렀으며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흔들어 보이면서 엎드러진 푸덴스의 시체위에서 자랑스러운 듯이 서서 로마군을 조롱했다. 요나단이 우쭐거리며 잘난체를 하면서 열을 내고 있을 때, 로마 백부장인 푸리스쿠스(Pri-scus)가 활을 당겼으며 화살은 요나단의 몸을 꿰뚫었다. 유대인들과 로마군 양편에서 함성을 동시에 질렀으며 그 함성의 성격은 전혀 달랐다. 화살을 맞은 요나단은 고통으로 몸부림 치면서 결국 푸덴스의 시체위에 쓰러졌다. 이것은 전쟁에서 불합리한 승리에는 곧 보복이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잘보여준 예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