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권 제 4장 토성이 완공되고 공성무기를 끌어와도 소용이 없자 티투스가 성전 문에 불을 지르라고 명령한 것과 조금 후에 티투스의 뜻과는 반대로 성전 본당까지 타게 된 것에 대하여

 


제 4 장



 토성이 완공되고 공성무기를 끌어와도 소용이 없자 티투스가 성전 문에 불을 지르라고 명령한 것과 조금 후에 티투스의 뜻과는 반대로 성전 본당까지 타게 된 것에 대하여



  1. 공성 망치와 사다리를 이용해 성벽을 공격하나 소용이 없음 [8월 27일경]



 한편 로마군 2개 군단이 루스(Lous)월 8일에 토성 쌓는 작업을 완성하자,[㈜ 참). 전쟁. 6권. 2:7(150).] 티투스는 성전의 바깥뜰 서쪽 건물 맞은편에 공성 무기를 이동시키라고 지시했다. 이 공성 무기를 배치하기 전부터 공격 무기들 중 가장 강력한 무기로 6일동안 계속 성벽을 부숴 뜨리려고 시도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성벽의 돌들이 무겁고 컸으며 잘 연결되어 있어서 새로 배치한 공성 무기도 효과가 없었다. 일부 다른 로마 병사들은 북쪽 성문의 기초 부분을 팠으며, 힘든 노력 끝에 앞쪽에 있는 기초석들을 빼내는데 성공했다.그러나 성문은 안쪽의 기초석들이 바치고 있어서 끄떡도 하지않았다. 로마 병사들은 공성 무기와 쇠지레를 가지고 온갖 시도를 다해봐도 소용이 없자, 마침내 사다리를 회랑에 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서둘러 막으려 하지 않았으며 로마군이 사다리를 타고 다 올라오자 즉시 용감하게 공격했다.유대인들은 일부 로마 병사들을 뒤로 떠밀어서 거꾸로 떨어지게했으며 나머지 병사들은 접전을 해서 죽였다.[㈜ 또는 이문(異文)에는 \”그들은 만나서 죽였다\”.] 유대인들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많은 로마 병사들을 쫓아가 그들이 방패로 가릴 사이도 주지 않고 칼로 찔러 죽였다. 또한 유대인들은 사다리에 로마 병사들이 잔뜩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사다리를 밀어 쓰러뜨렸으며 아래로 돌진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상당한 사상자가 있었다. 군기(軍旗)를 이동시킨 로마군들은 그 주위에서 맹렬하게 싸웠으며 깃발을 잃는다는 것은 가장 큰 수치요 재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군기들을 탈취했으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로마 병사들을 모두 섬멸시켰다. 나머지 로마 병사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동료들이 살상되는 것에 위협을 느껴 후퇴하였다. 물론 로마병사들 중에는 용감히 싸우다 죽은 병사들이 많이 있었다.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그전의 전투에서 맹활약을 보였던 자들이 이번 전투에서도 또한 용맹스럽게 싸웠다. 시몬의 조카인 엘르아살(Eleazar)역시 그러한 인물이었다. 반면 티투스는 유대인의 성전을 살펴보려는 그의 노력과 결과가 단지 로마 병사들의 피해와 죽음으로 나타나자 성문에 불을 지르라고 명령을 내렸다.



 2. 두명의 뛰어난 유대인 탈주자



 그러는 동안 두 명의 유대인 탈주자들이 티투스에게 넘어왔다.

 한명은 엠마오(Emmaus) 출신의 아나누스(Ananus)라는 인물로 시몬의 부하들 가운데 가장 잔인한 자였고[㈜ 이전에는 시몬의 후원자였으며, 대제사장 마티아스(Mattias)의 사형 집행자로 시몬이 고용하였다. 전쟁.5권. 13;1(531). 아나누스는 거기서 바가다투스(Bagadatus)의 아들로 불리는데, 이 이름은 마갓다투스(Magaddatus)와 같다고 추정된다. 본문에서는 다른 탈주자, 즉 아켈라오(Archelaus)의 아버지로 나온다.] 또 한명은 마가타투스 (Magaddatus)의 아들 아르켈라우스 (Archelaus)였다.

 그들은 유대인이 승리하고 있을 때에 넘어왔기 때문에 용서받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티투스는 그들의 행동을 발칙한 계략이라 비난했다. 티투스는 그들이 동족에게 한 잔혹한 행위에 대해 듣고 나자, 그들을 둘다 죽여야 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그는 그들이 로마군에게 넘어 온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없이 기근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마지 못해 넘어온 것을 알았고, 불길에 휩싸인 고향 도시를 버리고 도망쳐 온 자들은 살려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투항자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강한 증오심을 억제하고 결국 그들을 살려 주었다. 그러나 티투스는 그들을 다른 탈주자들과 똑같은 자격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성전 문과 회랑이 불에 탐]



 한편 로마 병사들은 성문에 불을 질렀고 사방에 은이 녹아서 불길이 빨리 나무에 옮겨 붙었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삽시간에 불길이 확산되어 회랑을 태워 버렸다. 유대인들은 불길에 둘러 쌓이자, 몸과 마음의 모든 힘이 다 빠졌으며 완전히 대경실색을 하여 아무도 불길을 막으려거나 끄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몸이 굳은채[㈜ 문자적으로는 \’마르다\'(참). 전쟁.1권. 19:5(381) \”공포로 마르다\”).] 그냥 멍하니 바라 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렇게 성전이 파괴되는 것에 비록 놀라긴 했어도 남아 있는 성전에 대해서 교훈으로 삼지 않았다. 단지 그들은 마치 성전 본당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로마군에 대한 격분만으로 더욱 불태웠다. 불길을 그날 내내 타고 다음날 저녁까지 계속 진행되었다. 왜냐하면 로마군들은 한번에 회랑 전체를 불지를 수 없었고 단지 회랑의 일부분씩 불을 지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3. 성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티투스는 그의 참모를 불러 회의했다 [8월 28일경]



 그 다음날 티투스는 일부 병력에게 불을 끄고 로마 군단이 쉽게 올라갈 수 있기 위한 길을 닦으라고 지시한 후, 지휘관들과 함께 회의를 소집했다. 6명의 최고 지휘관들이 참석했으며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었다. 전군 사령관인[㈜ Preaefectus castorum, 즉 js 진영을 감독하는 보급 장교의 한 종류 ; 참), 전쟁. 5권. 1:6(45)이하.] 티베리우스 알렉산더(Tiberius Alexander)와 제5군단 지휘관인 섹스투스 케레알리우스(Sextus cerealius)와 제10군단 지휘관인 라르키우스 레피두스(Larcius Lepidus)와 제15군단 지휘관인 티투스 프리기우스(Titus Phrygius)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온 2개 군단의 사령관인 프론토하테리우스(Fronto Haterius)와[㈜ 전쟁.5권. 1:6(44).] 유대의 총독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율리아누스(Marcus Ant-onius Julanus)였다. 또한 다른 지방의 총독들과 군단 사령관들도 소집되었다. 티투스는 성전 문제를 회의에 의제로 삼았다. 어떤 사람들이 의견은 유인대들은 성전이 사방에서 모이는 중심집합 장소로 남아있는 한 결코 반역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전쟁의 법에 따라 성전을 파괴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다른사람들의 의견은 유대인들이 만약 성전을 단념하고 성전에 무기들을 두지 않는다면, 성전은 보존되어야 하며, 만일 전쟁을 위해계속 성전을 차지하고 있겠다면 불을 질러야 된다는 의견이었다. 왜냐하면 성전은 이제 성전이라기보다 요새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전을 불지른 만행은 로마군이 아니라 로마군으로하여금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게 한 유대인들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티투스의 의견은 유대인들이 성전을 계속 차지하고 그곳에서 공격해 온다 하더라도 유대인을 대신하여 아무 잘못없는 성전 건물에 분풀이로 복수하지는 않겠다는 주장이었다. 티투스는 어떤 상황이라 해도 이같은 웅장한 건물을 불지르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성전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면 로마 제국의 장식물이 될것인데, 성전을 파괴하는 것은 로마인들에게도 손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서 티투스가 판단하는데 고심했던 것에 관해 2권의 서문을 보라.] 티투스의 이같은 주장에 프론토(Fronto), 알렉산더(Alexander), 케레알리우스(Cerealius)는 티투스의 견해에 동감했다. 이에 티투스는 회의를 끝마쳤으며, 지휘관들에게 힘의 재축적을 위해 병사들을쉬도록 지시하면서 보병대에서 뽑은 정예 병사들에게는 황폐화된 곳에 길을 터서 불을 끄도록 명령을 하달했다.



4. 완강한 저항에도 유대인들은 패배하고 퇴각함 [8월29일 경]



 한편 그날 유대인들은 피로와 놀라움으로 완전히 지쳐 버렸다. 그러나 그 다음날 그들은 체력을 회복하고 용기를 되찾아 제2시경에 성전의 바깥뜰의 수비병들을 동쪽 성문을 통해 습격하였다. 이에 로마군들은 유대인들의 돌격을 완강히 막았으며, 방패를 연결해 마치 벽처럼 앞을 가리면서 유대인들은 대열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로마군들은 숫자로도 너무 차이가 나고 유대인들의 무섭게 달려드는 맹렬함 때문에 오래 버틸 수 없는 것은 분명하였다. 안토니아 망대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가이사 티투스는 로마군의 전열이 파괴되는 것을 예상하여 정예기병을 선발해 그들을 도우러 보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로마군의 반격을 막아낼 수가 없었으며 선두에 섰던 자들이 죽자 대부분 퇴각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로마군이 물러설 때면 다시 공격을 가했으며, 로마군이 다시 방향을 바꾸어 공격을 가해오면 또다시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낮 제5시경까지 공방전을 벌였으나 결국 로마군에게 패배해 퇴각하여 성전 안뜰의 문을 굳게 잠그었다.



 5. 티투스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성전에 불을 지르는 사건



 한편 티투스는 안토니아 망대로 철수했으며 그 다음날 새벽에 전 병력을 동원하여 성전을 포위하여 공격하겠다고 결심했다.그런데 성전 건물은 오래 전부터 하느님이 불로 심판을 했었다.오래전 바벨론왕에 의해 성전이 불탔던 루스(Lous)월 10일이세월이 흘러흘러 다시 돌아와 그 운명의 날<8월 30일 경(니이제는 29일로 봄)>이 이르렀다.[㈜ 렘52:12과 일치함. 본문에서는 느부갓네살의 수행원의 장(captain)인 느부사라단이 성전을 불태운 것은 제 5월(히브리에서는 아브월, 수리아 력(曆)으로는 루스(Lous)월) 10일에 일어났다고 한다. 왕하 15:18에는 아브월 7일로 나와있다. 유대 전승은 이중화재의 기념일로 아브월 9일을 지정하고 있다. 이 두 공격과 관련된 사건들 사이에는 가공의 조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 성전이 불타게 된 발단과 그 원인은 유대인들에게 있었다.[㈜ 또는 \”그들 자신의 백성들에게\”.] 왜냐하면 티투스가 철수하자 유대인들은 잠시 휴전 상태로 있다가 다시 로마군을 공격했으며 전투는 성전 수비병들과 성전 안뜰에서 불을 끄고있던 로마군 사이에서 일어났다. 로마군은 유대인들을 패주시키고 성전 본당까지 그들을 추격했다. 이때에 한 로마 병사가 명령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신이 저지르려 하는 행동이 얼마나 두렵고 엄청난 일인지도 모르고 초자연적인 충동에 의해 불에 타는 나무들 중에서 하나를 집어들고 동료 한명 위에 올라타고서는 금으로 된 낮은 문쪽으로[㈜ 또는 \”그들 자신의 백성들에게\”.] 불타는 나무 토막을 내던졌다. 금으로 된 문은 성전 본당의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방들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불길이 치솟자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유대인들 쪽에서 흘러 나왔다. 유대인들은 이때까지 경계하면서 보호해온 성전이 불에 타고 있는 마당에 자신들의 목숨은 돌볼 생각도 잊은채 온 힘을 다해서 성전의 불을 끄려고 우르르 달려갔다.



 6. 성전에 불이 붙었다는 것을 받고 진화를 지시하는 티투스



 한편 티투스는 전투를 끝낸 후에 자신의 장막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 병사 한명이 성전이 불타고 있다는 소식을 가지고 달려왔다. 티투스는 이 소식을 듣고 즉시 일어나 불을 끄려고 성전으로 달려갔다. 티투스의 뒤를 따라 최고 사령관들도 모두 달려나갔다. 또 최고 사령관들의 뒤를 따라 군인들도 곧 따라 나섰기 때문에 일시에 많은 병력이 다급하게 움직여 혼란하고 소란스러웠다. 가이사는 병사들에게 불을 끄라고 소리치면서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병사들은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티투스의 고함소리를 듣지 못했으며 너무나 맹렬히 싸우는데 정신이 빠져 티투스가 손으로 신호 보내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로마 병사들의 맹렬함과 분노는 어떠한 권면의 말이나 위협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병사들에게는 오로지 의분만이 있을 뿐이었다. 성전입구는 병사들로 붐볐으며 많은 병사들이 동료들의 발에 밟혔다. 또한 많은 병사들이 아직도 타고 있고 연기나는 회랑의 잿더미 위에 넘어지면서 불에 타죽은 유대인들과 별도 다를 바 없는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로마 병사들은 성전 본당으로 더 가까이 접근하자 가이사 티투스의 명령을 못들은 척했으며 오히려 앞에있는 병사들에게 횃불을 던져 불을 지르라고 소리쳤다. 한편 강도들은 대부분 불에 타죽거나 도망쳐 버렸기 때문에 불을 끌 수없었다. 무장을 하지 않은 힘없는 일반 주민들은 로마군에게 잡히는 대로 목이 잘려 살해당했다. 이리하여 제단 주위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었으며, 성전 본당의 계단을 따라 아래로 살해된 자들의 피로 바닥은 피바다를 이루었으며 위에서 살해된 시체들이 바닥에 많이 굴러 떨어지기도 하였다.



 7. 성전을 구하려는 티투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다



 티투스는 분노에 찬 병사들의 성급한 행동을 자제시킬 수 없고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지휘관들과 함께 성전안으로 들어갔으며 성전 본당의 성소(holy place)와 그 안에 있던 모든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있던 것들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이야기 되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훌륭했으며 유대인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조금도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참으로 뛰어난 것이었다.[㈜ 참). 이와 유사한 폼페이의 \’성스러운 곳\'(Holy Place)의 방문에 관해 전쟁.1권. 7:6(152).] 불길이 아직 내부로는 번지지않고 성전 본당을 둘러싸고 있는 방들을 불태우자, 티투스는 성전 본당 건물은 아직도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하여 급히 뛰어와 직접병사들을 설득하여 불을 끄도록 애를 썼다. 또한 티투스는 그의 경호 창기병(槍騎兵)인 백부장 리베랄리우스(Liveralius)에게곤봉을 사용하여 명령을 따르지 않는 병사들을 저지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로마 병사들은 막무가내였다. 가이사에 대한 존경심이나 그들을 저지하려고 애쓰는 상관에 대한 두려움도 그들의 분노와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과 전쟁에 대한 갈망을 제어할수는 없었다. 더욱이 대부분의 로마 병사들은 성전 안의 사방이 온통 금으로 입혀져 있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서는 성전 내부에는 돈이 가득히 있다고 생각하고 약탈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제지하기가 어려웠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티투스가 병사들을 제지하려고 막 뛰어나오는 순간에,성전 안으로 들어왔던 로마 병사 한명이 성문 돌쩌귀 어두 컴컴한 곳을[㈜ 본문이 확실치 않음.] 향해 횃불을 던졌다. 이에 성전 본당 안쪽에 불길이 치솟았으며 티투스와 지휘관들은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제는 아무도 성전에 불 지르는 것을 밖에서 제지할 자가 없었다. 이리하여 티투스의 생각과는 반대로 성전은 불에 타고 말았던 것이다.



 8. 성전의 화재가 그 전에 있었던 화재와 같은 날 일어났다.



 예루살렘 성전같이 그 구조나 웅장함이나 세밀한 부분까지 화려하게 장식된 점이나 거룩한 성전이라는 명성,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볼 때 이제껏 보고 들은 건물 가운데 가장 훌륭한 건물이 불에 타 없어졌다는 사실에 누구나 비통한 슬픔에 젖지 않을 수없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피할 도리가 없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게 된다. 운명은 살아있는 생명체 이상으로 건물이나 장소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운명의 정확한 운행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운명의 수레바퀴는 과거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성전이 불탔던 바로 그달 그날을 기다려 로마군에 의해 다시 불타게 했던 것이다.[㈜ 전쟁.6권. 4:5(250) 각주 57).] 예루살렘 성전이 솔로몬 왕에 의해 기초가 세워진 때부터 현재 베스파시안의 즉위 2년에 이렇게 파괴될 때까지의 기간이 1130년 7개월 15일이다. 고레스(Cyrus)왕재위 2년에 학개(Haggai)에 의해 성전이 재건된 때로부터 베스파시안 통치하에 소실될 때까지의 기간은 639년 45일이 되는 것이다.[㈜ 연대기는 불분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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