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권 제 8장 마사다와 마사다를 지키고 있던 시카리파에 대하여, 그리고 어떻게 실바가 마사다 요새를 포위 공격하는데 노력했는지, 그리고 엘르아살이 포위되어 있는 유대인들에게 한 연설에 대하여

 


제 8 장



 마사다와 마사다를 지키고 있던 시카리파에 대하여, 그리고 어떻게 실바가 마사다 요새를 포위 공격하는데 노력했는지, 그리고 엘르아살이 포위되어 있는 유대인들에게 한 연설에 대하여



1. 플라비우스 실바가 유대의 최후의 요새인 마사다를 공격하는 것에 관하여



 한편 유대에서는 바수스가 죽자 플라비우스 실바(FlaviusSilva)가[㈜ 플라비우스 실바 노니우스 바수스(L. Flavius Silva Nonius Bassus : 비문에 있는 성명이다)는 주후 81년에 집정관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전쟁. 5권. 4:3(162).] 실바는 유대전 지역이 로마군에 의해 정복되었는데, 단지 한 요새만이 아직도 계속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알고는 이 요새를 모든 병력을 총동원하여 남아있는 한 요새로 집결시켰다. 유대에 남아있던 최후의 마지막 요새는 바로 마사다(Masada)였다.[㈜ 세베(Sebbeh). 사해의 서쪽 해안 위, 엔게디(En Gedi)의 남쪽 아래 끝쪽에 있는 로마의 공격 공사는 아직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시카리파가 주후 73년에 마사다를 점령함]



 마사다를 차지하고 있던 시카리파들(the Sicarii)의 지휘관은엘르아살(Eleazar)이라는 인물로 영향력이 상당한 사람이었다.엘르아살은 이미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 전쟁.2권. 8:1(118), 참). 5권. 17:8 (433).] 유다(Judas) 후손이었다.[㈜ 야이루스(Jairus)의 아들(고대.2권. 17:9(447이며 외관상으로는 유다(Judas)의 손자.] 유다는 구레뇨 (Quirinius)가 유대에 총독으로 파견되었을 때, 많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이름을 명부에 올리는 것을 거부하도록 선동한 인물이었다.



[시카리파의 범죄]



 이 당시 시카리파 사람들은 로마에 복종하는 것을 인정하는 자들에게 대항하여 그런 자들을 적으로 여기고 자기들끼리 함께모여 다니면서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였으며 가축을 가져 가거나집에 불을 질렀다. 로마에 항복하는 자들에게는 힘들게 얻은 자유를[㈜ 또는 \”높게 평가했다\”, \”~위해 싸웠다\”.] 비겁하게 포기하고 로마의 속박을 스스로 허용한 자들이라고 비난하면서 그런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시카리파의 잔인함과 탐욕을 가리기 위한 일종의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후에 그들의 행동에 의해 분명하게 증명되었다. 왜냐하면 그들과 함께 반역에가담하여 로마군과 대항해 싸웠던 주민들은 오히려 그들의 손에더욱 잔인한 수모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시카리파는 그들이 이러한 핑계가 거짓으로 판명이 되자, 그들의 비열함에 대해정당하게 비난하는 자들을 더욱 탄압하였다.



[다른 유대인들의 범죄]



 사실[㈜ 반란의 마지막 본거지이자 그들의 주된 요새인 마사다(Masada)에 관해 언급하다가 다른 반역자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의 일반적 부정에 관한 이러한 지역적 문제를 다룬다.] 이 당시는 유대인들 사이에 온갖 죄악들이 너무나 들끓고 있어서 사악한 죄악이라면 자행되지 않는 죄악이 없을 정도였으며, 인간의 머리로 짜낼 수 있는 갖가지의 극악한 범죄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따라서 죄악이 염병처럼 퍼져 사적이나 공적인 것을 막론하고 서로 경쟁하다시피 앞을 다투어 죄악을 저질렀는데, 심지어 하느님에 대한 불경스런 행동을 저질렀으며,인근 지역 주민들에 대해서도 불의한 행동을 자행하였다. 권력을 지닌 자들은 대중들을 억눌렀으며, 대중들은 권력있는 자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권력 아래서 탄압 당하는 자들은 맹렬하게 공격하여 부유한 자들의 재산을 약탈하였다. 시카리파 사람들은 불법적인 죄악과 자신들의 혈족에게 까지도 잔혹한 행동을 저지르고 온갖 험악한 욕설과 온갖 파괴적인 행동을서슴치 않은 제일 최초의 모델이라 하겠다. 또한 시카리파는 자기들의 음모에 자기들이 피해를 입은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기스칼라의 요한]



 그러나 시카리파는 요한에 비하면 좀 온건한 편이었다. 왜냐하면 요한은 올바르고 유익한 방법을 제시하는 자들까지도 모두살해 하였으며, 그런 자들을 자신의 큰 적으로 간주하고 가장 잔혹하게 처리하였을 뿐 아니라 유대를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사악한 죄악으로 가득차게 했으며, 심지어 감히 하느님께 불경을 자행하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은 인물이었다. 요한은 또한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음식을 먹었으며, 조상들의 유전에 따른 결례(潔禮)를 지키지도 않았다. 따라서 요한처럼 하느님께 이같은불경을 범하는 죄인이 사람들에게 온화함과 자비를 베풀 수 없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기오라의 아들 시몬]



 또한 그와 같은 인물로는 기오라(Gioras)의 아들 시몬(Sim-on)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몬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가 없었다. 시몬은 자신을 따랐었던 주민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을 자제할줄 몰랐다. 시몬은 우정이나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잔인하고 대범하게 악을 자행하는 인물이었다. 시몬은 이방인들에게 악을 자행하는 것은 사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데 반해 가장 가까운 친족들을 혹사시키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두매인들]



 악을 자행하는 데 있어서 이두매인들(Idumaeans)은 한술 더떴다. 이두매인들은 가증스러운 사악한 인간들로 대제사장들의목을 잘라 종교적인 의식을 중단시켰으며, 더 나아가 온갖 불법적인 악행을 도입하면서 유대의 남아있던 통치 체계를 전멸시켰다.



[열심당]



 불법적인 사악한 행동에 있어서는 소위 열심당(Zealots)들도이들 못지 않았다. 열심당은 이름 그대로 악한 행동에 열심을 다하는 일단의 무리들이었다. 열심당들은 모든 악한 행동을 서슴치않고 자행하였으며, 역사에 기록된 그전의 모든 비열하고 잔인한행동들을 열심히 경쟁하듯 답습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선한 행동에 대해 열심이라는 뜻에서 열심당이라고 자칭했었다. 그들은 야만스런 그들의 성품을 보여주는 악한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든지 아니면 최고의 악을 선으로 생각했든지 간에 아무튼 실제로는 악을 행하는데 열심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악을 자행하는 열심당들은 행한 짓에 합당한 최후를 맞이하였으며, 하느님이 이들모두에게 벌을 주셨다. 하느님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처벌을 그들에게 내리셨으며, 심지어 다 죽어 가는 자들도 마지막까지갖가지 혹심한 고통 가운데 죽어가게 만드셨다.[㈜ 참). 전쟁. 5권. 9:4(417)이하. 왜냐하면 가이사(Caesar)자신이 주(lord)로 그들에게 설득시키려는 목적으로 시카리파(Sicarii)에게 가한 고통으로 인해, 초기 기독교 순교자들이 결단할 가치를 주게 되었다 ; 이들 열성자들은 어쨌든 고귀하게 죽었다.] 그러나 이들이당한 고통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저지른 죄악대로 처벌받아야 한다면 그 어떤 처벌로도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열심당들의 야만스러운 범죄의 희생자들을 애통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잠시 중단되었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2. 마사다 포위공격을 위한 실바(Silva)의 준비사항들



 로마 지휘관 실바(Silva)는 마사다를 차지하고 있는 엘르아살과 시카리파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병력을 이끌고 마사다를 향해진군하였다. 실바는 즉시 마사다 인근의 전 지역을 장악하면서가장 적절한 지점에 수비대를 배치했으며, 마사다 요새 지방을둘러가면서 벽을 쌓아서 포위된 마사다 요새 안에 있던 자들이도망가기 어렵게 하였고, 그것을 감시하기 위해 보초병들을 배치하였다. 실바는 포위 공격을 위한 가장 적절하다고 선택한 곳에 진을 쳤으며, 그곳은 마사다 요새가 세워진 바위산과 가까이인접해 있는 산이었다. 비록 그곳이 병참관계에 있어서는 아주나쁜 위치였으나 마사다와 근접해있기 때문에 그곳에 진을 쳤던것이다. 그곳은 멀리서 식량을 운반해야 되며 따라서 이 일이 상당히 힘든 노역이었을 뿐 아니라 인근지역에 샘도 있었기 때문에 진영까지 물도 길러와야만 했다. 이에 실바는 이러한 예상되는 모든 문제점들을 완전히 해결한 후에 마사다 공격에 주의를기울였다. 마사다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자연적인 지형의 특성상 아주 막강한 요새였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과 상당한 노력이요구되었던 것이다.



3. 마사다가 위치해 있는 바위산에 관하여



 마사다 요새가 위치해 있는 암벽은 넓고 아주 긴 우뚝 솟은 원주의 형태로 사방이 깊은 계곡의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곡의 절벽은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이가 상당히 깊고 가파랐기 때문에 두 곳을 제외하고는 사람이건 동물이건 걸어올라갈 수 없었다. 이 두 곳도 바위 때문에 올라가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두 개의 통로 중 하나는 동쪽으로[㈜ 문자적으로는 \’일출(日出)무렵\’이 어귀는 헤로도투스(iii.98)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스팔티티스(Asphaltitis) 호수까지[㈜ 사해.] 이르렀으며, 또 하나는 오르기가 좀더쉬운 통로로 서쪽으로 이어졌다. 아스팔티티스 호수로 이어지는통로는 뱀(snake)이라고 불려졌는데, 뱀처럼 꼬불꼬불하고 계속 길이 굽어져 뱀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 길은불쑥 튀어나온 울퉁불퉁한 바위산을 지나가기 때문에 쭉 뻗지 못하고 굽어질 수밖에 없으며, 자주 길이 되돌아 오고 다시 길어져서 앞으로 전진하는데 무척 힘들었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는사람은 한발 한발 교대로 한걸음씩 내디뎌야만 지나갈 수 있는좁은 통로였다. 따라서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이었다. 길양편에 넓게 벌어진 틈새들이 군데군데 있어서 제 아무리 심장이 강한 자라 할지라도 기가 꺾이고 두려워할 정도였다. 이러한위험한 길을 30퍼얼롱 올라가면 정상에 오르는데, 이 정상은 끝이 좁아지는 뾰족한 정상이 아니라 평지가 펼쳐져 있다. 이 평지위에 대제사장 요나단(Jonathan)이[㈜ 유다 마카베오(Judas Maccdabaeus)의 형제와 유대 지도자로서의 그의 계승자. 주전 161-143, 전쟁. 1권. 2:1(48)이하.] 최초로 요새를 건축하였으며 그것을 마사다라 불렀던 것이다. 요나단 다음으로 헤롯 왕(King Herod)이 심혈을 기울여 건축하였다. 헤롯 왕은 우선 바위산의 정상에 완전히 사방으로 7퍼얼롱 되는 곳에 흰 돌로 높이 12규빗, 너비 8규빗의 성벽을 삥둘러 쌓았다. 또한 헤롯은 성벽 위에 높이 50규빗의 망대 37개를 세웠으며, 성벽 안쪽을 둘러가면서 만든 건물들을 통해 망대에 올라갈 수 있게 만들었다. 정상 부분이 다른 평지보다 토양이 부드럽고 비옥했기 때문에 헤롯왕은 정상부분을 경작지로 만들었으며, 외부에서 식량의 부족현상이 발생했을 때에 요새 안에 있는 자들은 경작지를 통해 기근을 겪지 않도록 만들었다. 헤롯은 또한 그곳 서쪽 경사지에 왕궁을 건축했으며, 산꼭대기 성벽아래에 북쪽으로 치우쳐서 세웠다. 왕궁의 벽은 견고하고 상당히 높았으며, 사방 모퉁이에 60규빗 높이의 4개의 망대들이 있었다. 안쪽에 있는 부속 건물들인방들과 회랑들과 목욕탕들은 화려하고 상당히 다양하였다. 하나의 돌로 된 각 석주(石柱)들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었으며, 건물들의 벽과 바닥에는 다양한 갖가지 색상의 돌들이 놓여져 있었다. 게다가 헤롯은 정상 위와 왕궁 근처 적당한 곳뿐 아니라 성벽 앞에다 바위를 파내 큰 저수 용기를 많이 만들어서 샘에서 나오는 물만큼 풍부히 물을 공급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곳에는 왕궁에서부터 산 정상까지 이르는 길이 있었는데, 움푹 패여 있어서 밖에서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적군들은 노출된 길을 이용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동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앞서 살펴보았듯이,[㈜ 전쟁. 7권. 8:3(281-283).] 지형적 특성상 접근할 수 없었으며 서쪽에 있던 길에는 헤롯이 산 정상에서 1,000규빗 정도 떨어진 곳에 커다란 망대를 세워 가장 좁은 지점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망대는 지나갈 수도 없었으며 점령하기도 쉽지 않았다. 출구가 공포심이 없는 아무리 용감한 자들에게 조차도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마사다 요새는 지형상의특성에다 인간이 심혈을 기울여 요새화 한 아주 막강한 요새여서적군의 공격에 든든하게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4. 헤롯왕이 마사다 요새에 많은 생필품을 비축해 두어 완벽한 조건을 갖추어 놓은 것에 관하여



 마사다는 아주 화려하고 튼튼한 요새였으며,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많은 생필품들을 비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곳에는 몇 년 동안 버텨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식량이 비축되어 있었으며, 포도주와 기름도 풍부했으며 게다가 각종 콩들과 대추야자들도 가득 보관해 두었다. 엘르아살이 시카리파 사람들과 함께 계략을 꾸며 요새를 차지했을 때,[㈜ 전쟁.2권. 17:2(408), 참).전쟁.5권. 10:3(433).]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비축되어 있던 것을 보았으며 그것들이 햇 곡식보다 조금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비축된 식량들은 비축된 때로부터 로마군이 이 요새를 점령할 때까지 거의 100년 동안이나 저장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햇 곡식보다 조금도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요새가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의 일생동안 축조되었다면 주전 31년 이전부터 주후 73년까지 한세기 이상이 경과된 것이었다.] 사실 로마군은 이 요새 안에 남아있던 열매들이 썩지 않고있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같이 부패되지 않고 그대로 식량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환경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사다 요새가 워낙 높은 지역이어서 오염된 물질이나 먼지같은 것에 의해 더러워지지 않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마사다 요새에는 각종 무기들이 많이 있었는데, 헤롯 왕이 비축해둔 것으로 10,000명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밖에 세공하지 않은 철과 놋과 주석들도 비축되어 있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준비해둔 것은 사실 그만큼 중대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롯은 이 마사다 요새를 다음과 같은 두가지 위험을 예상하여 자신을 위한 도피처로 쓰려고했다. 한 가지 위험은 유대 백성들이 그를 폐위시키고 그전의 왕조를 복귀시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었고, 이 보다 더 심각하고큰 불안 요소는 애굽의 여왕 클레오파트라(Cle4opatra)때문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의도를 결코 감추지 않고, 노골적으로 안토니(Antony)에게 헤롯을 죽이고 그녀에게 유대의 왕권을 넘겨 달라고 부탁하면서 계속 안토니를 들볶았기 때문이었다.[㈜ 참). 전쟁. 1권. 18:4(359)이하. (주전34년경).] 그런데 안토니는 예상밖으로 클레오파트라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애정으로 사랑의 노예가 되어버린 안토니는 이번만큼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쨌든 이 같은 사실은 안토니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헤롯은 이렇게 클레오파트라와 유대 백성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다를 요새화시켰던 것이며, 헤롯은 결국 마사다 요새를 유대전쟁에서 최후의 보루를 만들어놓게 된 결과가 되었다.



 5. 마사다 포위공격



 앞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전쟁. 5권. 4:4(275)이하.] 로마 지휘관 실바는 마사다의 전외곽지역 둘레에 토성을 쌓는 일을 끝내고 마사다의 유대인들이아무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저한 조처를 취한 후에 공격에 들어갔다. 실바는 토성을 쌓을 만한 한 곳을 찾아내었다. 서쪽에왕궁과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망대의 뒤쪽에상당히 넓고 툭 튀어나온 바위가 있었다. 그러나 이 바위는 마사다의 정상까지 올라가려면 아직도 300규빗이나 남아있는 지점이었다. 그곳은 류케(Leuce)라고[㈜ \’흰(절벽)\’.] 부르는 곳이었다. 따라서실바는 이곳까지 올라와 점령하고 병사들에게 토성을 쌓아 올리라고 지시하였다. 로마 병사들은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열심히작업을 했으며, 높이 200규빗의 견고한 토성을 쌓을 수 있었다.그러나 이 토성은 공성장비들을 배치하기에는 안정성이나 넓이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 위에 큰 돌을 서로 꼼꼼하게 붙여 가면서 돌을 쌓아 높이와 너비가 각각 50규빗이나 되게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공성장비들은 베스파시안이 최초로 고안해 냈고, 그후 티투스가 여러 성을 공격을 할 때 사용한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무기들이었다. 게다가 실바는 완전히 철로 입힌 60규빗의 망대를 세웠으며, 이 망대에서 로마 병사들은 수많은 속사포와 투석기(ballistae)들을 이용해 활과 돌을 쏘면서 성벽에 있던 유대인들을 격퇴시켰으며, 얼씬도 못하도록 만들었다. 동시에 실바는 큰 공성기구들을 마련하여 중단하지 말고 성벽을 집중 공격하라고 지시하였으며, 결국 어렵게 성벽에 구멍을 내어 일부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시카리파 사람들은 이미 안쪽에 또 다른 성벽을 급하게 쌓았는데, 이번 성벽은 공성장비들에 전과 같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쌓았다. 왜냐하면 이 성벽은 유연했으며, 충격에 부숴지지 않게 계산해서 성벽을 쌓았기 때문이었다. 그 건축 방법은 다음과 같다. 커다란 막대기들을 양쪽끝을 이어 놓은 후에 두 줄로 서로 성벽 두께 만큼 마주보게 세우고 그 사이 공간을 흙으로 메꾸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렇게 토성을 세움으로써 토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세로로 세운 나무 막대 위에 가로로 막대기들을 고정시켰다. 이렇게 만든 토성은 석조 건물처럼 튼튼했으며, 따라서 로마군의 공성 장비로 공격을 가해도 탄력있고 유연한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충격을 견딜 수 있어 토성벽은 아주 견고하였다. 실바는 이것을 보고 토성벽에 불을 질러서 무너뜨리는 것이 더 쉽다고 판단하고 병사들에게 횃불에 불을 붙여 사정없이 던지라고 지시하였다. 성벽이 주로 나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빨리 불이 붙었으며 속이 비어 있어서 더욱더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처음에 불이붙기 시작했을 때는 북풍이 불어 로마군 앞쪽으로 불길이 붙어서 로마군을 당황하게 하였다. 불길이 위쪽으로 퍼지면서 그들을 향해 불어왔으며, 공성 기구들이 모두 불태워 질 것 같은 두려움으로 거의 절망상태에 빠졌다. 그때 갑자기 마치 신의 섭리인양[㈜ 가말라에서 유사한 신의 도움에 대해 4권. 1:9(76).을 보라.]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남쪽으로 불면서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불기 시작했으며, 불길이 휩싸이게 하였다. 그리하여 성벽은 모두 다 구석구석까지[㈜ 또는 \”철두철미하게\”.] 불에 타 버렸다. 이리하여로마군은 신의 도움을 받은 후에 그 다음날 적군을 공격하기로 마음먹고 즐겁게 다시 진영으로 되돌아 왔다. 로마군들은 그날밤 내내, 유대인들이 몰래 밖으로 빠져나가 도망칠까봐 좀더 엄중한 감시를 계속하였다.



 6. 포위당한 유대인들에게 자살을 권하는 엘르아살의 첫번째 연설



 그러나 엘르아살은 자신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다. 성벽이 불에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엘르아살은 더 이상 살 가망도 없었고 용감히 싸울 힘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더욱이 로마군이 성벽을 넘어 들어오는 날이면 유대인들이 당할 것들, 특히 부녀자들과 아이들이 당하게 될 것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함께 자살할것을 신중히 생각해 보았다. 엘르아살은 지금 사태가 이러하니그 길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난 뒤, 가장 용맹스러운 동료들을 불러모아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하면서 설득하였다.

 \”용감한 나의 동료들이여! 우리는 오래 전부터 로마를 섬기지않으며 하느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결코 섬기지 않기로결심했었소. 왜냐하면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이 참되시며 의로우신 만인의 주(主)가 되시기 때문이오. 이제 우리의 결심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때가 되었소. 지금 바로 이와 같은 절박한 위기의 순간에 우리의 결심을 깨뜨리는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할 것이오. 우리는 과거에 목숨을 구하려고 노예가 되는 짓은 거부했던 자들이었소. 만약 우리가 로마군의 손에 생포된다면, 노예가 되는 것은 물론 돌이킬 수 없는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니만큼 그러지 않토록 신중히 처신하도록 해야 하오. 왜냐하면 우리는 제일 처음으로 로마에 반역을 일으킨 자들로 결국 제일 나중까지 로마군과 싸우게 된 자들이오. 또한 나는 우리가 스스로자유롭고 고귀하게 죽을 수 있는 권한을 우리에게 보장해 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 생각하오. 이것은 예상치 못한 불시의 공격을 당한 자들에게는 부여받지 못한 특권이오. 이제 우리는 새벽이 되면 분명 체포될 운명에 놓여 있소.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죽음을 선택할 시간이있소. 적군이 아무리 우리를 생포하려 해도, 우리가 그들을 꺾을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어쩔 수는 없으며 더욱이 영광스럽게 죽겠다는 의지를 막지는 못할 것이오. 아마 우리는 처음부터 그러니까 우리 유대인들의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반역을일으키려고 결정한 때부터 내란 때문에 고통을 겪었으며, 더욱이로마군에게 더욱 시달림을 당했었소. 우리는 그때부터 하느님의목적이 무엇이었던가를 읽었어야 했었소. 하느님께 한번 은총을 받은 우리 유대 민족은 망할 운명에 처해졌다는 것을 일찍이깨달아야 했었단 말이오. 왜냐하면 만일 하느님께서 계속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있거나 혹은 단지 가볍게 분노하셨다면,결코 하느님께서 이러한 유대의 완전한 파멸을 그냥 보고만 계시지는 않았을 것이며, 거룩한 하느님의 도성이 적군에 의해 불에 타 완전히 파멸되도록 내버려두시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오. 사실 우리는 모든 유대인들 가운데 우리만이 살아남아서 마치 우리가 하느님께 죄가 없는 사람들이나 되는 것처럼, 아니면 백성들의 지도자나 되는 것처럼 자유를 수호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지도자적인 입장에서 하느님께대하여 범죄치 않은 자들로써 깨끗하다고 자부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와같은 우리의 기대가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하느님께서는 잘 보여 주셨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같은 처참한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 우리를 몰아 넣으셨소. 마사다 요새와 같은 난공불락의 요새조차도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없으며, 식량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고 무기들과 그밖에다른 각종 필수품들이 넘치도록 많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우리의 모든 구원의 희망을 앗아가 버리셨소. 적군 쪽으로 향하던 불길이 우리가 세운 성벽 쪽으로 바꾸어진 것은 저절로 된 일이 아니었소.[㈜ 전쟁. 7권. 8:5(317)이하.] 이 모든 일은 우리가 동족들에게 저지른 수많은 죄악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를 나타내신 것이오. 이러한 죄악들에 대한 처벌을 적군인 로마군이 심판하게 하지말고 우리 스스로 심판하시도록 합시다. 그것이 로마군에게 심판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견디기 쉬울 것이오.[㈜ 참). 삼하 24:4 \”우리가 야훼의 손에서 빠지고\”등.] 우리의 부녀자들이 더럽혀지지 않고 우리의 자녀들이 노예가 되지 않게 합시다.부녀자들과 자식들을 죽인 후에, 우리도 서로 영광스럽게 죽도록 하여 우리의 자유를 고귀한 수의(壽衣)로써 간직하도록 합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소지품들과 요새를 불질러 파괴하도록 합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다면 로마군들은 우리의몸과 재산을 한꺼번에 잃게 되어 슬픔에 잠길 것이기 때문이오.그러나 우리의 식량만은 그대로 놔둡시다. 왜냐하면 로마군들은 우리가 죽은 것을 보고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우리의 시종일관한 결심을 지키기위해 자결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7. 엘르아살의 연설은 효과가 없음



 엘르아살은 이와 같이 연설을 끝냈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모든 유대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지는 못하였다. 일부 유대인들은 엘르아살의 연설에 동조하면서 그렇게 명예롭게 죽는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가득차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마음이 연약하여 아내나 가족들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마음이 동요되었으며, 자신들의 최후가 임박한 것이 확실해지자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엘르아살의 의견에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냈다. 이에 엘르아살은 그들이 주춤하면서 꽁무니를 빼려는 것과 거대한 이 계획 앞에 용기를 잃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눈물과 흐느끼는 모습이 그의 연설을 듣고 굳게 마음 먹은자들조차 나약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따라서 엘르아살은 권면의 말을 늦추지 않고 더욱 분발하여 강한 열정에 사로잡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한층 더 높은 어조로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분개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전쟁이 끝날쯤에 했던 이 연설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행한 아그립바(Agrippa)의 연설과 일종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전쟁. 2권. 16:4 (345-401)>. 국가의 죄악에 대해 인정하는 것은 폭도들의 지도자 중 한명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엘르아살의 재 호소]



 \”참으로 내가 잘못 생각했소. 나는 내 곁에 명예롭게 살지 못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결심한 자유를 위해 용감히 싸우는 투사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생각했었소. 그러나 여러분들도 용맹성이나 용감함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별로 다를 바가 없소.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을 가장 비참한 악에서 구원할 수 있는 죽음 조차도 두려워하고 있소. 사실 이러한 이유로는 여러분들은 잠시도 주저하거나 충고자를 기다릴 필요도 없는 것이었소. 왜냐하면 예전부터 그러니까 지성을 갖기 시작하면서[㈜ 참). 아피.2권. 18(178) \”태어나면서부터\”. 그러나 영감이 있는 것은 히브리 율법이라기 보다는 헬라 시나 철학이다. 자살 범죄에 관하여 요타파타(Jotapata)에서 한 요세푸스의 연설을 비교하는 것은 흥미가 있다. 전쟁. 3권. 8:5(362)이하.]부터 우리는 계속 조상과 하느님의 율례를 배워왔으며 그것은 바로 우리 선조들의 행동과 고귀한 정신력으로 실천했던 바였기 때문이오. 죽음이 불행이 아니고 삶이 바로 인간의 불행이오[㈜ 유리피데스(Euripides)의 병행귀와 함께 전쟁. 7권. 8:7(358)을 참조.]



 [죽음은 재난이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인간의 영혼에 자유를 주며 영혼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재앙도 없는 순수한 곳으로 출발하게 해 주기 때문이오. 그러나 영혼은 썩을 육신과 결합되어 있을 동안은 육신이 겪는 모든 불행을 함께 겪어야 하며 냉정히 말하자면 그것은 죽은 영혼이오. 왜냐하면 썩을 것과 거룩한 것이 연합되었다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오. 사실 영혼은 썩을 육신 속에 갇혀있을 때조차도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소. 왜냐하면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게 육신을 움직여 육신으로서는 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행동을 진척시키면서 육신을 영혼의 인식기관으로 만들기 때문이오. 그러나 영혼은 땅으로 끌어내리는 힘에서 벗어나게 될 때 비로소 영혼의 고유한 장소에 안착될 수 있으며, 그곳에서 복된 능력을 즐기며, 하느님처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 아무 구속도 받지 않는 권세를 누리게 되는 것이오 물론 영혼이 육신 안에 있을 때에도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사실이오. 영혼은 이렇듯 지각되지 않고 보이지 않으며, 그 자체로써 한 성질만을 지니고 있는 결코 부패되지 않는 존재로 육신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근본 원인이요. 왜냐하면 영혼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생기를 띄게 되며 융성하게 되어지는[㈜ 소포클레스의 \”Trach\’. 235에 kai; xw\’ta kai; qallonta 이후의 xh\’ kai; tevqhlen. 바로 그 시인은 그 어구에 \”건드리다\”(touch), 을 보충한다.] 반면 영혼이 떠나면 무엇이든 간에 시들해져서 죽게 되는 것이오. 그만큼 영혼의 불멸성은 위대한 힘이 있는 것이란 말이요.\”



[잠의 비유]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들에 대해 가장 확실한 증거로 잠(sle-ep)에 대해 설명하기로 하겠소. 잠의 상태는 영혼이 육신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상태로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휴식을 완전히독립된 상태속에 누리게 되는 것이며,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로 대화를 나누게 되며, 우주를 조용히 안정시키면서 다가올 미래의 것들을 많이 예언하게 되는 것이오. 그런데 왜 우리는 잠의 안식을 즐기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해야만 하는 것이오? 세상에서 자유를 추구하면서 영원한 자유를 꺼리는 것은 분명히 어리석은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인도인이 자기 희생의 모범이 됨]



 진정 우리는 가정에서 양육 받은 대로 죽음에 대해 준비되어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만 되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 문제에 있어서 다른 이방 민족들의 예를 굳이 볼 필요가 있다면 철학을 생활로 실천하는 인도인들(the Indians)을[㈜ 참). 여기에 인용된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유대인들의 조상이라고 여겼던 인도철학자들에 대한 아피. 1권. 22(179)의 암시.] 살펴보도록 합시다. 인도인들은 본래 선한 사람들로서 살아 있는 삶의 기간을 인생의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기간으로 생각하여 육신으로부터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를 서두르고 있소. 그들은 비록 어떤 재난이 그들의 육신과 영혼을 분리시키지 못하고, 불멸의 상태(the Immortal state)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이루게 하지 못했을지라도 동료들에게 자신들이 곧 세상을 떠나게될 것이라고 알리고 있소.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의가는 길을 훼방놓지 않고 오히려 축하해 주며, 그들에게 이미 죽은[㈜ 성경에는 \”떠났음.\”] 자신들의 친지들에게 각자 안부를 전해달라는 위임장을[㈜ 또는 \”서신들.\”] 주게 되오. 인도인들이 죽은 사람의 영혼이 서로 대화를 나눌 수있다고 믿는 생각은 이렇듯 확고하고도 절대적인 것이오. 안부의 말을 들은 그들은 곧 불속으로 몸을 던지게 되며 영혼이 가장 순결한 상태에서 육체로부터 분리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칭송하는 찬송을 듣는 가운데 죽게 되는 것이오. 다시 말해서 가장 절친한 친구들이 불속에 몸을 던져 죽는 자가 죽을 때까지 그를 배웅하는 것이며 그것은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는 것보다 더욱더 기꺼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오. 왜냐하면 절친한 친구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이제 불멸의 세계에 들어간[㈜ 또는 \”받은\”.] 죽은 친구를 행복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오. 우리가 인도인들보다 비천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소? 또한 우리의 용기 없는 비겁한 행동으로 인해온 인류의 선망의 대상인 우리 율법이 수치스러운 비난을 받게된다면 그 또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소?\”



[하느님이 우리를 멸망케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처음부터 인간의 가장 고귀한 것은 삶이며 죽음은 재앙이라고[㈜ 추측컨데 여기서는 전쟁.7권. 8:7(343)에 있는것처럼 유리피데스(Euripides)를 회상케 하는 구절이다. Tiv\” oi&dev, eijto; xh\’n mevn ejsti katqanei\’n,  to; katqanei\’n, de; xh\’n kavtw nomivxetai (Dindofr, Frag. 634).] 반대되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하더라도, 이와같은 위급한 우리의 현재 상황에서는 마음을 단단히먹고 죽음을 감당할 수밖에 없소. 왜냐하면 우리가 어차피 죽어야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자 필연적인 사실이기 때문이오.하느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유대민족 전체를 멸하려고 결정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죽어 마땅한 것이오. 여러분은 로마군의 이 전쟁이 우리 모두를 파멸시킨다고 해서 여러분 자신을 비난하거나 로마군의 탓으로 돌리지 마시오. 왜냐하면 이런 불행이 일어난 것은 로마군의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더 강력한 어떤 원인이 있어 로마군을 승리자로 만들었기 때문이오.

 나는 여러분에게 한번 묻고 싶소. 여러분은 로마의 무기가 가이사랴의 유대인들을 죽였다고 생각하오?[㈜ 전쟁. 2권. 18:1(457) (주후 66년 전쟁시작).] 결코 그렇지 않소.가이사랴의 유대인들은 그 당시 로마에 반역할 것은 생각지도않고 있었으며 단지 그들의 안식일을[㈜ 헬라어는 \”일곱째날\” ; 예루살렘에 있던 로마의 주둔군과 가이사랴(Caesarea)의 유대인들의 대량학살이 안식일 동시에 일어났다. 전쟁. 2권. 17:10 (456)이하.]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소. 그때 가이사랴인들이 급습하여 대항도 하지 않는 그들을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들 로마군의 의사를 무시하고 살해하였소. 사실 로마군은 우리가 로마군에게 반기를 들기 전에는 우리를 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소. 그러나 혹자는 가이사랴인들이 가이사랴에 정착해 사는 유대인들과 심한 분쟁을 일으키고있었기 때문에 그때를 기회로 삼아 오랫동안 쌓였던 증오심을 폭발시킨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오. 그렇다면 스구도볼리(Scy-thopolis)에 있던 유대인들에[㈜ 전쟁. 2권. 18:3(466).]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단말이오? 그들은 헬라인을 위해서 우리와 전쟁을 하던 자들로 로마에 대항을 하면서도 우리와 연합하기를 거절하지 않았던가요? 과연 그들이 스구도볼리의 주민들에게 호의와 신의를 베풀어 주고나서 얻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요? 그들이 스구도볼리 주민들을 도와준 댓가로 받은 보상은 그들과 그들 가족들 모두가스구도볼리의 주민들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단 말이오.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이웃을 도와주려다 마치 스스로 원했던 것처럼 도리어 보복을 당하게 된 셈이오. 이와 같은 경우에 대해 내가 하나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할 시간적 여유는 없소. 왜냐하면 여러분도 알다시피 수리아에 있는 도시 치고 그곳에 사는 유대인 거주자들을 살해하지 않은 도시가 없기 때문이오. 사실 수리아인들은 로마군에게 보다[㈜ 우리는 \”로마인들보다\”로 읽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에게 적대적이었소. 이리하여 다메섹(Damascus)의 주민들은 그럴 만한 핑계를 만들 수 없었음에도 불구 하고 그들의 도시를 미친 듯이 날뛰는 살해자들도 들끓게 하여 18,000명의[㈜ 전쟁. 2권. 20:2 (561)에 의하면 10,500. 현재 본문에서 헤게시푸스(Hegesippus)는 8,000으로 읽는다.] 유대인들과 그들의 아내들과 가족들까지 모두 살해했었소.[㈜ 전쟁. 2권. 20:2(559)이하.] 또한 애굽에서도 고문을 당하다 죽은 유대인들의 수가 60,000명이 넘었다고 하고 있소.[㈜ 전쟁. 2권. 18:7 (487)이하.]  이러한 유대인들은 단지 이방 땅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그곳에서 적대적인 행위를 한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오. 그렇다면 이방 땅이 아닌 고향 유대 땅에서 로마군과 전쟁에 들어간 우리를 한번 생각해 보시오.우리는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서 분명히 승리하리라는 희망으로 가득차 있지 않았소? 우리는 무기와 단단한 성벽과 접근하기 불가능한 난공불락의 요새뿐 아니라, 자유를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정신력을 갖추고 로마에 반기를 들었소.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잠깐 동안 효력이 있었고 우리를 희망으로 부풀게 하였으며 곧 더 큰 재난의 시작을 가져오게 했소. 왜냐하면 우리가 갖추고 있었던 이러한 모든 강점들은 우리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마치 적군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위해 마련된 것처럼 모든 것을 점령당하고 적군의 손에 함락되었소. 따라서 전쟁을 하다 죽은 자들은 축하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되오. 왜냐하면 그들은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자유를 수호하다가 죽었기 때문이오. 그러나 로마군의 수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소? 또한 그들의 그러한 처참한 운명을 함께 나눌바엔 차라리 목숨을 끊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가 누가 있겠소?로마군의 수중에 포로로 잡힌 자들중에 일부는 고문대(拷問臺)위에서 고문을 당하거나 불이나 채찍질로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으며 또 일부는 짐승의 밥이 되어 적군들의 희롱거리와 유희의 대상이 되어 처참하게 잡아 먹혔소.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비참한 포로들은 아직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자들이오. 그들은더 이상 살려고 하지 않고 죽음만을 바라고 있소.

 자, 이제 예루살렘을 한번 생각해 보시오. 예루살렘은 전 유대인들의 어머니와도 같은 그런 도시로 단단한 성벽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많은 요새와 거대한 망대들로 철통같이 보호되어져 있는 데다 각종 많은 전쟁 장비를 갖추고 수많은 수비병들을 자랑하던 대도시였소. 그런데 지금 그 예루살렘이 어디 있단 말이오? 하느님이 친히 만드셨다고 믿었던 그 예루살렘이[㈜ 더 오래된 번역에서는 \”거주민\”으로 번역한 것은 근거가 없다 ;  oijkisthv\”는 전쟁. 2권. 13:7(266)에서 ktivsth\”와 동의어이다.] 지금 어찌되었소? 그 기초까지 완전히 황폐화되어 버리지 않았던가요! 지금 예루살렘 땅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폐허 속에 네 군데 있는 전승비 뿐이지[㈜ 본문이 의심스럽다 : 만약 옳다면 mnhmei\’on은 \’기념비\’와 \’무덤\’의 이중적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다른 여러 사본들에 나오는 \”예루살렘을 파괴시킨 자들의 진영\”이 아마도 정확할 것이다.] 않습니까! 예루살렘은 불운한 늙은이들과 야비한 로마군이 남겨둔 약간의 여자들만이 성전의 잿더미 옆에앉아 있는 처참한 도시가 되고 말았소.

 이러한 사실들을 깊이 새겨볼 때 우리들 가운데 누가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며 걱정 없이 살 수가 있겠소? 또한 목숨이 아까와 너무 비겁하게 행동하는 자가 아니고서야 지금까지 목숨을 붙이고 살아 있다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 자가 누가 있겠소. 나는 예루살렘이 적군의 손에 함락 당하고 거룩한 성전이 무참하게 폐허화 된 것을 보기 전에 우리가 함께 죽기를 바랬소. 그러나 우리는 적군을 복수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를 걸었다가 스스로 속고 나서야 이제 그 기대가 헛된 것이었으며, 우리를 재난에 남겨 두었다는 것을 안 이상 서둘러서 명예스럽게 당당히 죽도록 합시다. 그것은 아직 우리 힘으로 가능한 일이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죽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또한 죽기위해서 자식들을 낳았기 때문이오. 죽음은 제 아무리 운이 좋은행운아라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오. 그러나 모욕감과 노예생활과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수치를 당하며 끌려가는 광경 등은 인간들에게 부과된 필요악은 아닐진대, 먼저 죽음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겁함으로 인해 죽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생기게 되는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용기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로마군에게 반기를 들었소. 또한 마지막까지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제안해 왔을 때에도 우리는 그 제안을 거절했소.

이 글은 카테고리: josephus, TN-catholicdictionary-C2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