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힌 이유
나바태아인의 침략 위협을 받은 헤로데 안티파스는 동쪽 국경을 굳게 지키려고 그들의 왕 아레타 4세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복 동생 헤로데 필립보를 찾아 갔을 때 계수요, 조카벌인 헤로디아를 만나 자기와 결혼하자고 유혹을 했습니다. 허영심에 가득 찬 헤로디아는 인륜을 저버리고 곧 승낙을 했습니다. 헤로디아는 필립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살로메를 안티파스의 양녀로 삼아 데리고 갔습니다. 패륜의 이 한 쌍은 추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간통이요, 가정파괴요,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이었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솔직하게 꼬집어 주었습니다. 어떠한 위협이나 협박도 세례자 요한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2.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이유.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이 드러나게 하기 위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서 드러나게 합니다.
또한, 요한이 불신에 의해서 제자들을 보냈다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11,11)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도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자였기에 사자의 사명을 다 한 것입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온 것이기에 엘리야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한 것입니다.
3. 의심을 품지 않는 행복한 사람.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요한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걸림돌입니다.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발에 돌에 걸려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걸림돌은 남이 쓰러질 기회가 되는 것이나 혹은 사람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림돌들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로 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수많은 걸림돌들을 물리치고 예수님께로 당당히 걸어가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그들 신앙을 흔들어 놓아서도 안 됩니다.
4.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삶으로 당당하게 선포했으며, 심지어는 왕에게까지 그의 잘못에 대해서 직언을 하였습니다. 또한 낙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 나갔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위해 파견된 예언자로서,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백성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소명을 부여받은 예언자이십니다. 요한은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음을 알리며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주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장애되는 모든 것들을 치우는 회개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세례자 요한이 위대하기는 하지만 하늘 나라에 있는 자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는 구약시대에 속하고 선구자로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입니다. 그런데 복음위에 서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본다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명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는 은총의 시대는 요한이 머물고 있는 율법의 시대보다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고, 세례자 요한은 단지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묻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감옥에서까지도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봅시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2.1.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
헤로데는 이복 동생 필립보의 아내요, 자신에게는 조카벌인 헤로디아를 유혹하여 혼인을 하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누차 외쳤고, 세례자 요한의 입을 막고 싶은 헤로데와 헤로디아는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2.2.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내는 세례자 요한
요한은 감옥에서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내어 이렇게 묻게 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11,3) 요한은 왜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냈을까요? 혹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의심해서 제자들을 시켜서 확인하려고 그랬을까요?
① 요한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세례자 요한의 사명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고, 백성들을 메시아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도 당연히 예수님을 따라야 했습니다. 요한은 이 일을 성실하게 해 왔지만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에게 세례 받은 예수님보다는 요한을 더 큰 인물로 생각하고 요한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렸고,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예수님께 가서 묻게 하였던 것입니다. 가서 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은 감옥에 갇힌 몸이지만 감옥에서조차도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수행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한이 자신의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냈다면 “예수님!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리기 위해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요한이 자신의 불신 때문에 제자들을 보냈다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11,11)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도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자였기에 사자의 사명을 다 한 것입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온 것이기에 엘리야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한 것입니다.
② 제자들을 위해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을 더 큰 인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제자들이 직접 예수님을 만나 뵙고, 보고 믿으라고 예수님께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니 예수님께 “예수님! 이들이 예수님을 뵙고 믿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청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투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백성들을 요한에게 모여들도록 하고 싶었지만 이미 백성들은 예수님께로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유다인은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 옳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에게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요한3,26) 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3,30)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제자들이 깨닫기 못했기에 죽음을 앞둔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로 메시아다.”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본 대로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귀머거리가 듣고, 절름발이가 뛰놀며, 소경이 보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을 예수님께서 하고 계시다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이유는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이끌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지만 서서히 예수님께로 돌아설 것입니다.
③ 예수님을 위해서
요한은 사명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면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드러나게 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이 백성들에게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요한은 충실하게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④ 웃어봅시다.
어느 신부님께서 새벽미사 때가 되면 늘 미사에 늦으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제의방을 담당하시는 수녀님께서 신부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오실 분이 신부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그 후로는 신부님께서 새벽미사에 안 늦으셨다고 합니다.
2.3. 요한의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시는 예수님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11,3)라는 질문에 당신께서 메시아라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하시지 않고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이 당신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음을 이야기 해 주십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마태11,4-5)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하신 일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진다는 것은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났다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고 계시니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저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알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듣고 본 대로”에 의하면 예수님은 메시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듣고 본 것을 믿고 있는가?”를 반성하게 됩니다. 내가 듣고 본 것을 믿고 있다면 내 생각과 말과 행위는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말과 행위가 바뀌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신앙 안에서 듣고 본 것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고 내가 듣고 본 것을 받아들이고 굳게 믿으며, 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② 요한의 제자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11,6) 의심은 “믿지 못해 이상히 여기는 마음이나 생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러한 마음이나 생각은 걸림돌이 되어 예수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나를 넘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의심은 예수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하느님 나라(행복)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을 향한 이 말씀은 제자들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예수님보다는 세례자 요한을 더 따랐던 그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요한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좁은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지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림돌들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가졌던 편견이나 착각, 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로 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많은 걸림돌들을 물리치고 예수님께로 당당히 걸어가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그들 신앙을 흔들어 놓아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을 도와주는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편견이나 착각, 의심을 버리고 굳게 믿어야 하고, 그 믿음을 보여 주어야합니다.
2.4. 요한을 칭찬하시는 예수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없는 데서 요한을 칭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멋지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① 세례자 요한은 심지가 곧은 사람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요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이 군중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요한의 선포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요한이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치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태11,7)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메시지를 삶으로 당당하게 선포했으며, 사람들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헤로데에게까지 그의 잘못에 대해서 직언을 하였습니다. 요한은 오늘은 저쪽에, 내일은 이쪽에 달라붙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심지가 곧은 사람이었습니다.
② 세례자 요한은 고행자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마태11,8) 세례자 요한은 고행자였습니다. 아니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고운 옷을 입고 화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낙타털옷과 들꿀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고행 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③ 세례자 요한은 가장 중요한 예언자
예수님께서는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마태11,9)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참된 예언자였습니다. 백성들은 예언자를 찾고 있었으며 예언자를 발견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언자가 지금은 헤로데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비록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군중들은 세례자 요한이 그 어느 예언자 보다 훌륭한 예언자임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지,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위해 파견된 예언자로서,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백성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소명을 부여받은 예언자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예언자인데, 가장 중요한 사명과 가장 중요한 것을 전달한 예언자이기에 가장 큰 인물이 됩니다.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고, 메시아를 세상에 알리며, 사람들을 메시아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맡았기에 가장 중요한 예언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④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사자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이렇게 예언을 하였습니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마태11,10)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몸소 오시는데, 한 선구자가 그분보다 앞서 옵니다. 이러한 예언의 말씀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세례자 요한을 바라보게 하고, 더 나아가 바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사자인 요한이 길을 준비했고, 메시아께서 오셔서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메시아의 사자임을 알게 되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11,11)라고 칭찬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특별하게 태어났고, 그가 전한 메시지는 그 어느 예언자가 전한 메시지보다 귀한 메시지였으며(메시아의 오심을 선포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메시아께로 돌리는 것),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여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알리는 가장 고귀한 사명을 수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겸손하게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였고, 자신의 삶으로 그것을 증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럼 예수님 다음이어야지 왜 첫째입니까?”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을 칭찬하시면서도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마태11,11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위대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에 있는 이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는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들이고, 구원의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아무리 빠른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할지라도 비행기를 타고 가는 이보다 빠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따라가는 이들은 먼저 가 있는 이들보다 클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는 구약시대에 속하고 선구자로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입니다. 그런데 복음위에 서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본다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명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는 은총의 시대는 요한이 머물고 있는 율법의 시대보다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고, 세례자 요한은 단지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한계는 분명하니 요한의 제자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실하게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요한을 예수님께서는 칭찬해 주십니다. 나 또한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성실하게 수행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듯 그렇게 나를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칭찬받는 내가 되어 봅시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묻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감옥에서까지도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봅시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2.1.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
헤로데는 이복 동생 필립보의 아내요, 자신에게는 조카벌인 헤로디아를 유혹하여 혼인을 하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누차 외쳤고, 세례자 요한의 입을 막고 싶은 헤로데와 헤로디아는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2.2.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내는 세례자 요한
요한은 감옥에서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내어 이렇게 묻게 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11,3) 요한은 왜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냈을까요? 혹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의심해서 제자들을 시켜서 확인하려고 그랬을까요?
① 요한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세례자 요한의 사명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고, 백성들을 메시아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도 당연히 예수님을 따라야 했습니다. 요한은 이 일을 성실하게 해 왔지만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에게 세례 받은 예수님보다는 요한을 더 큰 인물로 생각하고 요한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렸고,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예수님께 가서 묻게 하였던 것입니다. 가서 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은 감옥에 갇힌 몸이지만 감옥에서조차도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수행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한이 자신의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냈다면 “예수님!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리기 위해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요한이 자신의 불신 때문에 제자들을 보냈다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11,11)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도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자였기에 사자의 사명을 다 한 것입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온 것이기에 엘리야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한 것입니다.
② 제자들을 위해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을 더 큰 인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제자들이 직접 예수님을 만나 뵙고, 보고 믿으라고 예수님께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니 예수님께 “예수님! 이들이 예수님을 뵙고 믿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청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투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백성들을 요한에게 모여들도록 하고 싶었지만 이미 백성들은 예수님께로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유다인은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 옳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에게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요한3,26) 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3,30)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제자들이 깨닫기 못했기에 죽음을 앞둔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로 메시아다.”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본 대로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귀머거리가 듣고, 절름발이가 뛰놀며, 소경이 보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을 예수님께서 하고 계시다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이유는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이끌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지만 서서히 예수님께로 돌아설 것입니다.
③ 예수님을 위해서
요한은 사명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면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드러나게 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이 백성들에게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요한은 충실하게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④ 웃어봅시다.
어느 신부님께서 새벽미사 때가 되면 늘 미사에 늦으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제의방을 담당하시는 수녀님께서 신부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오실 분이 신부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그 후로는 신부님께서 새벽미사에 안 늦으셨다고 합니다.
2.3. 요한의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시는 예수님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11,3)라는 질문에 당신께서 메시아라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하시지 않고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이 당신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음을 이야기 해 주십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마태11,4-5)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하신 일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진다는 것은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났다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고 계시니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저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알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듣고 본 대로”에 의하면 예수님은 메시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듣고 본 것을 믿고 있는가?”를 반성하게 됩니다. 내가 듣고 본 것을 믿고 있다면 내 생각과 말과 행위는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말과 행위가 바뀌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신앙 안에서 듣고 본 것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고 내가 듣고 본 것을 받아들이고 굳게 믿으며, 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② 요한의 제자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11,6) 의심은 “믿지 못해 이상히 여기는 마음이나 생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러한 마음이나 생각은 걸림돌이 되어 예수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나를 넘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의심은 예수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하느님 나라(행복)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을 향한 이 말씀은 제자들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예수님보다는 세례자 요한을 더 따랐던 그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요한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좁은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지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림돌들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가졌던 편견이나 착각, 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로 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많은 걸림돌들을 물리치고 예수님께로 당당히 걸어가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그들 신앙을 흔들어 놓아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을 도와주는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편견이나 착각, 의심을 버리고 굳게 믿어야 하고, 그 믿음을 보여 주어야합니다.
2.4. 요한을 칭찬하시는 예수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없는 데서 요한을 칭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멋지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① 세례자 요한은 심지가 곧은 사람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요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이 군중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요한의 선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