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주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입니다. 우리 모두는 설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미리 마련해둔 새 옷(설빔)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처럼, 어제의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나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아침 식사를 하고, 어른에게 세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함께 성당에 모여서 조상을 위해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의 설날은 믿지 않는 이들의 설날과는 많이 다릅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형식만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형식에 마음을 담아 조상을 위해 기도합니다. 

새해 첫날을 미사로 시작하신 형제자매님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셨으니, 이 마음, 이 믿음으로 한 해를 열심히 살아갈 때, 올 한 해를 마칠 때 즈음에는 주님께 감사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올 한해, 큰 은총 받으시길 빕니다. 복 많이 받으시길 빕니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시길 빕니다. 또한 자녀들을 더욱 사랑하시고, 부모님을 더욱 정성껏 공경하시길 빕니다. 이렇게 온 마음으로 은총 안에서 살아갈 때,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좋으신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올 한해, 큰 은총 받을 수 있도록 복 주머니를 준비하시길 빕니다. 그 복 주머니의 크기는 기도에 의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복주머니가 클 것이고, 그 안에 복이 가득 담길 것입니다. 하지만 복주머니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그 복을 담을 곳이 없을 것입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가족들과 차례를 지내십니까?

천주교 신자들은 당연히 차례를 안 지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상 제사 때문에 교회가 박해를 받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조상 제사를 거부했을까요? 신앙의 선조들이 거부한 것은 조상을 공경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제사는 조상이나 우상들(나무, 산, 바다, 돌 등)에게 바쳐졌기 때문입니다.




1. 차례란?

차례는 명절에 지내는 제사입니다. 명절 중에서 차례를 가장 보편적으로 지내는 명절은 설과 추석입니다. 설과 추석의 차례는 외지에 나갔던 집안사람들이 모두 모여 함께 친교를 나누고, 다양한 민속놀이가 행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차례를 지낼 때는 제상 뒤로는 병풍을 둘러치고 지방(紙榜)을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를 제사상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냅니다.




① 위패와 신주

위패(位牌)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그의 혼을 대신한다는 상징성을 갖는 나무 조각입니다. 영위, 위판이라고도 합니다. 종이로 만든 신주를 지방이라 하고, 나무로 만든 신주를 위패라고 합니다. 주로 밤나무로 만들며 주신과 받침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주를 모시는 그릇을 신줏단지라고 합니다. 보통 장손의 집안에서 오지항아리나 대바구니 따위에 조상의 이름을 써 넣어 안방의 시렁 위에 모셔 둡니다. 천주교에서는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2. 교회의 제사 거부

달레 교회사에서 순교자 이경언(바오로)는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쓸데없는 노릇이라, 옳은 敎에서 금하는 것은 지당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 착한 사람의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악한 사람의 영혼은 지옥으로 갑니다. 거기 들어간 다음에는 영영 다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영혼은 非物質的인 것이니 物質的인 것을 어떻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위패(位牌)로 말씀하면 그저 목수가 만든 물건에 지나지 않으니 그것을 부모처럼 공경하고자 한다면 욕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모두 이치에 맞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믿는 것입니다.”







① 조상이 와서 음식을 먹고 간다는 것을 거부

비신자들은 제사를 지내며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이 와서 음식을 먹고 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조상들이 집에 들어올 때 걸린다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의 모든 줄을 걷어 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얻고 있는 이들이 어찌 지상에 내려와 음식을 먹고 가겠습니까? 연옥에서 천국을 바라보며 보속하고 있는 이들이 어찌 음식을 먹겠습니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② 위패를 죽은 조상으로 대하는 것을 거부

우리 속담에 무엇을 소중하고 귀하게 대할 때는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신주를 마치 죽은 부모를 모시듯 했는데, 그리고 부모라고 생각을 했는데 교회는 그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어찌 목수가 만든 물건이 부모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교회는 우상이라고 합니다. 신앙인들은 결코 우상에게는 절하지 않습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은 헛된 것이고, 없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 한국의 조상공경 및 가족일치 풍습

① 미풍양속(美風良俗)

미풍양속은 우리의 아름답고 좋은 풍속이나 기풍으로 어른들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베풀고, 존중하고, 함께 친교를 이루는 것들을 말합니다. 죽은 부모에게 절하는 것은 미풍양속으로 효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그런데 죽은 부모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로지 하느님께만 절하겠다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인사를 할 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듯이, 죽은 부모를 기억하고, 그 사랑에 보답하고, 더욱 열심히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이 바로 절인 것입니다.

물론 시집온 며느리는 알지도 못하는 조상에게 절하는 것이 그리 마음 내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남편이 바로 그 조상에게서 비롯된 사람임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원수같은 남편이 아니라면” 절하지 않겠습니까?




② 천주교 신자들의 조상 공경

사실 천주교 신자들만큼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기일이나 생신 때를 기억하며 미사를 봉헌하고, 또 위령성월에는 조상들을 위해 무덤을 찾고,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설과 추석에는 조상들을 위해서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런데 불행한 이야기들도 들릴 때가 있습니다. “제사 지내기 싫어서 교회에 다닌다.”라는 말입니다. 음식을 차리고, 손님을 맞이하고, 예를 갖추는 것이 싫어서 교회에 다닌다는 것입니다. 즉 조상을 공경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일을 하기 싫어서 교회에 다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설이나 추석 합동 위령미사 때 상을 차려놓고, 조상들을 기억하는 것은 “조상들을 귀신이나 우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공경하고, 기억하며,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이렇게 조상들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고, 열심히 살고 있으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저희들의 희생공로를 보시고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천상 행복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교회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③ 딸랑 미사만

한국 사람들은 한국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가정에서 이어오는 가풍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어가야 합니다. 조상을 기억하고 조상들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일, 서로 친교를 나누며 화해하고 일치하는 일, 배려하고 아껴 주는 일. 이 모든 것들이 우리민족의 가족문화이고, 신앙인들의 가풍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모여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일 때 비신자들은 모두 모여서 조상들을 기억하지만, 신자들은 가족이 다 모이지 않습니다. 그저 몇 만원 봉투에 넣어서 미사 봉헌하고, 미사에 참례하지도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족이 흩어져 있다면 각자 근처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는 상황은 보통 그렇다는 것입니다.

부모 기일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미사에 참례하는 집안들은 참 보기가 좋습니다. 그렇게 가족의 가풍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집안에서 차례를 지내는 방법 등은 교회에서 권하는 방식이 있으니 참조하시어 좋은 집안의 가풍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도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 되십시오. 자녀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들에게 존경받으시길 빕니다.”




4. 명절 차례 지내는 방법

♥ 준 비 ♥

① 고백성사로써 마음을 깨끗이 한다.

② 정성껏 차례상을 차리되 형식을 갖추려하지 말고, 평소에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린다.

③ 차례상에는 촛불(2개)과 꽃을 꽂아 놓으며, 향을 피워도 좋다.

④ 벽에는 십자고상을 걸고, 그 밑에는 선조의 사진(영정)을 모신다.

(* 사진이 없으면 이름을 \”OO0 베드로\” 또는 “부친000” 이라고 쓴다.)




♥ 차례예식 ♥

① 시작 – 십자 성호

② 성가 – 가톨릭 성가집에서 성가 하나를 선택하여 부른다. (227 – 233번, 519 – 521번)

③ 독서 – 다음 성경구절 중 하나를 선택하여 봉독한다.

( 요한 14, 1-4. 요한 15, 1-12. 요한 17, 1-26. 루카 2, 41-52. 마태 5,1-12. 로마 9, 1-18. 로마 12, 1-21. 1고린 13, 1-13. 에페 5, 5-20)




④ 가장(家長)의 말씀

ㄱ) 선조들을 소개하고 가훈, 가풍, 선조의 말씀을 전함.

ㄴ) 오늘의 집안 현실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하여

ㄷ) 하느님의 말씀과 선조의 유훈에 따라서 성실하게 살아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간의




대화를 통하여, 사랑과 일치를 다진다.




⑤ 큰절 – 서열순으로 영정에 큰 절을 올린다.

⑥ – 사도신경

– 부모를 위한 기도

– 자녀를 위한 기도

– 부부의 기도

– 가정을 위한 기도 (가톨릭 기도서 참조) 등을 바친다.

⑦ 신자들의 기도 – 가능한 참석자 모두가 자유기도 형태로 바칠수 있다.

⑧ 성가 – 가톨릭 성가집에서 선택한다. (227 – 233번, 519 – 521번)

⑨ 주님의 기도를 다 함께 바친다.

⑩ 차례음식 나누기(음복:飮福) – 사랑과 일치의 식사

⑪ 마침 성호 – 성호 긋는 것으로 모두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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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주보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새해에는…,

    오늘은 어제가 머물던 자리에 머물고, 내일은 오늘이 머물던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어제가 자리를 내어 주었기에 오늘이 자리를 잡는 것이고, 오늘이 자리를 비켜 주어야만이 내일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모든 것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날들을 기다리며 그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희망에 차게 됩니다. 그렇게 희망차게 한 해를 또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이라는 시간, 새해라는 시간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고 싶었던 수많은 이들이 오늘을 보지 못하고 지상에서의 삶을 끝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은 은총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은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Time, Talents, Treasure”를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나는 이것들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입니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나는 분명 시간의 주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동안, 허락된 시간 안에서 슬기롭고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간은 나만을 위해서 쓰라고 맡겨 주신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 내어 주라고 맡겨 주신 것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라고, 그들에게 시간을 내 주라고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바로 나의 생명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시간을 내 옆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 내어 놓는 것이 바로 사랑의 행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음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재능도 마찬가지입니다. Talents라는 말은 빌려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알맞은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 재능을 주신 이유는 나만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 밀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재능도 시간 위에 머물게 되니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맡겨진 시간 안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이니 나만을 바라보지 말고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 재능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하며, 하느님 안에서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새해에는 할 수 있는 것들을 기쁘게 해 봅시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이웃을 위해서 해 봅시다.

     

    또한 나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넉넉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한 없이 부족하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재물들에 대해서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재물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보물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물도 주어진 시간 위에서만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족들에게 너그럽게 베풀며, 내 이웃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내가 가진 재물을 통해 어떻게 하면 세상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작은 나눔부터 실천해 봅시다.

     

    새로운 한 해가 밝아왔습니다. 올 한 해도 분명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마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시간이 부족해서 끝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시간 위에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옆에 있는 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내어 주고 싶다면 오늘부터 그렇게 합시다. 옆에 있는 이들에게 내 재능을 나눠주고 싶다면 오늘부터 그렇게 합시다. 옆에 있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주고 싶다면 오늘부터 그렇게 합시다. 오늘의 나의 결심과 실천은 내일의 나의 모습을 만들어 줍니다. 오늘을 그렇게 충실하게 살아, 내일을 더욱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 봅시다. 함께 행복해 지는 세상을 만들어봅시다.

     

  2. 관리자 님의 말:

    ()

    복이라는 것은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겠지만 국어사전에서는 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복이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복이라는 말 안에는 거창한 것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한자를 풀어보면 복()은 밭에서 나온 소출이 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은 먹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들이 먹는 것만 보아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성실하게 일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 또한 복이고, 내가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 음식을 먹는 것도 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는데, 그렇게 일용할 양식을 얻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복은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을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라는 글자에서 내가 받은 것이 일용할 양식임을 보게() 되는데, 보여주시고 가르치시며 알려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에, 복은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주님께서 주신 복임을 고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새해가 되면 보통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 합니다. 그런데 그 인사에서 드러나는 행운과 행복은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을 통해서 얻게 되는 오붓한 행복은 일상 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행운들입니다. 그리고 불편함을 이겨내고 더 나아가 받아들여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행복들입니다. 그래서 그 복은 이렇게 네 가지로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행복.

    둘째, 기대하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함에서 오는 소박한 행복.

    셋째,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행복.

    넷째,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 얻게 되는 행복.

     

    그런데 이러한 복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복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또 다른 것들을 추구하고 있기에 행복지수가 올라가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위의 네 가지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주신 것을 복이라고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살아갈 때, 나의 삶은 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을 맛보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관리자 님의 말:

    오복(五福)

    많은 복을 받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많은 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처럼, 내가 받은 복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 줍니다. 그런데 복을 빌어주면서 질투하거나 시기해서는 안 되고, 복을 빌어주면서 내가 받은 복을 걷어차서는 안 됩니다.

    많은 이들이 다섯 가지 복을 이야기 합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오복은 오래 사는 것(), 부유한 것(),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康寧),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것(攸好德), 그리고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考終命)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망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거창한 것은 온전히 받기가 힘들 수도 있고, 기준도 각각 다르기에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삶이 값지고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부유하지 못하지만 가진 것에 만족하며 마음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복의 기준은 각각 다를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하신 분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상은 병실에서 청소나 궂은일을 하시며 기쁘게 봉사하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장기간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신 분들은 건강을 회복하고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많이 하신다고 합니다. 그 봉사의 가치를 병상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다리로 걸어 다님 내 손으로 음식을 먹음 . 내 눈으로 사물을 봄 내 입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함 내 귀로 듣고 싶은 것을 들음이 사실은 오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걷고 있는 것이 당연하게 보이지만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성당에 오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어서 못 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그리고 내 손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미사에 참례하여 제단앞으로 나아가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하며 주님의 성체를 보여줄 때 아멘하고 응답하며 가장 겸손한 손으로 받아 성체를 모시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또한 내가 보고 있는 것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는 분들의 고통을 생각해 본다면 정말로 감사해야 하고, 더 나아가 보지 못하시는 분들의 눈이 되어 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내 귀로 들을 수 있음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말하려 해도 입이 움직이지 않는 분들의 고통을 생각해 본다면 내가 말하고 듣는 것 또한 복()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오복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복을 걷어차는 사람이 아니라 복을 끌어 당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을 끌어당기는 방법은 아주 소박합니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사소한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며,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며 주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나는 온갖 복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복을 가득히 받으며, 또 복을 끌어당기는 삶을 살아갑시다.

     

  4. 관리자 님의 말: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 날인데, 양력 11일 신정(新正)의 상대적 개념으로 구정(舊正)이라고도 합니다. 또 설은 설을 쇠서 한 살 더 먹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설은 사실상 섣달 그믐부터 시작되는데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말하며 새해를 깨어서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또 설 음식은 떡국인데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말하였습니다.

    설날에 입는 옷을 설빔이라 합니다. 설날에 색깔이 있는 옷을 입는데 특히 여자 어린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습니다. 노랑이나 녹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는 오늘날까지도 설에 어린이들이 입는 가장 보편적인 옷입니다.

    설은 설명절이라고도 하는데 설명절은 하루에 그치지 않고 실제 명절은 대보름까지 이어집니다. 한민족은 설날은 한 해가 시작하는 첫 달의 첫 날로서 중요하게 여겼고, 농경사회에서 보름달, 곧 만월은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에 대보름을 크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월 보름은 첫 보름이라는 점에서 보다 중시되어 대보름명절이라고 하였습니다.

    설날은 대체로 소망을 기원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상들과 먼저 가신 부모 형제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며 그들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하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또한 하느님께 한 해 동안 풍성한 복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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