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24주일

형제를 심판하지 마라.”

신앙인들에게 가장 큰 힘과 위로를 주는 이들이 대부 대모이지만, 힘을 빠지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이들도 대부 대모입니다. 대모가 대녀를 부를 때, “대녀!”라고 부르면 그리 기뻐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데레사, 마리아!”라고 본명을 불러 주는 것이 훨씬 더 기뻐합니다. “대녀!”라는 말 안에는 거리감도 있지만, “너는 나의 대녀이니 내 말을 따라야 해!”라는 권위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명을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편안해 합니다(참고로 대녀! 대녀!”라고 부르는 사람 중에 그리 멋진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또한 내가 세례 받은 지 얼마 됐는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도 별것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숫자로 표현하고, 직책으로 표현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았으니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상대방을 단죄한다면, 나는 예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잘난체하며,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내가 주님의 소유임을 확신하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나는 반드시 예수님의 뜻을 따릅니다.” 다 버렸는데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나를 죽였는데, 어떻게 형제자매를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저 주님을 위해, 주님을 향해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오직 주님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눈에는 나 밖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1. 판단하지 않는 마음

믿음이 있는 이들은 말로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고, 삶으로 자신의 신앙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하나를 알고 있는 이들은 열을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열을 알고 있는 이들은 백을 모르고 있다고 인정을 합니다. 고수는 하수를 배려하지만, 하수는 결코 하수를 배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은 결코 믿음이 없는 이들을 배려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쉽게 판단하고 단죄 하는 데는 매우 익숙합니다.

 

한 형제가 미사 후에 성당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형제가 다가와성당 나오신지 얼마 안 되신 것 같아요?’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형제는 영세 받은 지 얼마 안 됐고, 주일미사만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형제는 매일 미사에 참례하며, 열심히 봉사하는 형제였습니다. 그 형제는 웃으면서 , 얼마 안 됩니다.’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뭐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 궁금한 것이 있으면 꼭 물어보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화가 났지만 화낼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고, 얼굴을 붉힐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대답한 것입니다.”

 

하나를 알고 있는 이들은 열을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열을 알고 있는 이들은 백을 모르고 있다고 인정을 합니다. 고수는 하수를 배려하지만, 하수는 결코 하수를 배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은 결코 믿음이 없는 이들을 배려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쉽게 판단하고 단죄 하는 데는 매우 익숙합니다.

 

2. 로마서14장의 믿음이 약한 이들.

유다인들은 채소나, 고기나 술에 관한 규정, 안식을 규정 등을 세심하게 지켰습니다. 또 경건한 바리사이들은 한 주간에 두 번(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을 했습니다. 이런 삶을 살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인들은 부정한 음식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음식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말씀하셨고,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르코 7,19). 하지만 소심한 사람들은 개종한 뒤에도 이 규정들을 세심하게 지켰는데, 이들을 믿음이 약한 이들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약한 이들과 반대되는 이들이 이런 규정들에 자유로운 태도를 지닌 이들, 즉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음식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거나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음식 때문에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유다인들은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 목숨까지도 바쳤기에 그 전통을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인정을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로운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며, 서로 사랑해야 함을 알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3. 형제를 심판하는 사람은

그러므로 내가 내 형제자매들을 판단한다면, 더 나아가 나는 하는데, 너는 왜 이것을 안 하느냐?”라고 업신여긴다면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서죄인으로 판명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남을 심판한다면 결국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이고,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죄짓는데 사용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나는, 매일 매일 똑같은 죄를 짓고도 주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용서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형제자매를 판단하지 않고, 단죄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내가 한 것에 흔들어서 넘치도록 갚아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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