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31주일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은 자신이 하느님을 섬기고 있음을 하느님께 보여 드려야 합니다. 겸손하게 손을 내 미는 사랑과 용서의 삶을 통해서, 온화하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함을 통해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신의 발걸음을 통해서…,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은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하느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전한 봉헌의 삶을 통해서,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기쁨의 표현을 통해서, 그리고 그 사랑을 형제자매들에게 전하여, 그들이 하느님께로 나아오도록 하는 삶을 통해서…,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은 자신이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음을 하느님께 보여 드려야 합니다. 반복되는 빈 말이 아니라 믿음 가득한 행동을 통해서, 처음의 마음을 기억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함을 통해서, 그리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진리와 정의 편에 서서, 주님의 법을 실천함을 통해서 보여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고 말하면서 하느님께 그 증거를 보여 드리지 못하는 이들은 형제자매들에게도 그 증거를 보여 주지 못합니다. 그 증거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오는 것이고, 온 몸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사람입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가해 31-34주일, 연중시기(가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가해 연중 제 31주일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겸손한 삶의 자세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사람들은 내 제자라는 말을 쓰기를 좋아합니다. 즉 제자라는 말을 통해 자신이 스승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를 제자라고 하여 내가 올라가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하고, 인생에 있어서는 그가 나의 스승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마태23,8)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을 스승으로 부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 호칭들을 좋아하고, 그것만을 노리는 명예심과 오만을 배척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의 스승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라는 표현은 신앙인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조금만 잘 나가면 막말하고, 반발하고, 목에 힘주는 사람들. 그들은 가르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다스려야만 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현명하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심오한 지혜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한 분의 스승은 하느님뿐이십니다. 그렇다면 가르치는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더욱 겸손해 져야 합니다.

     

    너희는 모두 형제다.”라는 표현은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사람 사이의 보편적 형제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옆에 있는 사람들을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형제입니다.

    유다인들의 전통에서 아버지는 아브라함, 이사악과 야곱 등 세 조상에게만 사용되었고, 어머니는 사라와 레베카와 레아와 라헬에게만 붙였던 존칭입니다. 그 후에는 아버지라는 칭호를 유명한 사람이나 학자에게 붙였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밑에서는 모두가 형제이고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두가 한 형제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형제자매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마태23,9)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마태23,10)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목적은 사람이 너무 호칭에 집착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배제시켜야 할 세 가지 칭호(스승, 아버지, 지도자(선생님))의 예는 아무렇게나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칭호들은 초대 교회의 위계질서의 요소를 반영해 줍니다. 특히 유다계 사회에서 제자들은 다소 신심의 모델이 되는 행위와 혼돈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특히 유다인들의 사회에서는 랍비(나의 스승)라는 경칭이 사용되고 있었으나, 제자들은 그러한 칭호를 의식적으로 거부해야만 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분명 윗자리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윗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는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월등히 나아서가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명예 때문에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23,11)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제자들의 탁월한 스승이요 지도자가 되시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기에, 교회안의 어떤 스승이나 지도자도 이러한 칭호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유다교의 랍비들의 본보기를 따라 자기 자신의 교리적인 견해를 주장하거나, 어떤 교리 학파를 세우거나, 거기에 가담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아무리 교회 공동체 내에서 으뜸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된 영광으로 가는 길은 겸손 뿐 입니다. 온유하시고 겸손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자신을 높이는 결국 자신을 낮추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은 들어 올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