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33주일; 탈렌트의 비유

남의 재능이 더 멋져 보이는 이유

요한이는 악기를 잘 다루는 형제와 그림을 잘 그리는 형제를 부러워하여 하느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 형제는 악기도 잘 다루고, 그림도 잘 그립니다. 그런데 저는 피리도 못 불고, 그림도 못 그립니다. 왜 저에게는 저런 재능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아무런 재능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꿈에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이렇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요한아! 너에게는 말을 잘 하는 재능과 글을 잘 쓰는 재능을 주었잖느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것을 인정하지 않더냐?”

주님! 저는 말 잘하는 재능보다, 글 잘 쓰는 재능보다는 주님 품에 있는 이태석 신부처럼 악기를 잘 다루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그림을 잘 그리고 싶습니다. 저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아무나 다 하는 그런 것보다는 뭔가 창조적이고 폼 나는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아! 이태석 신부는 그 재능 때문에 톤즈에서 고생하다가 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내가 불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재능 때문에 엄청 어려웠지? 욕도 많이 먹었단다. 네가 원하니 그럼 오늘부터 악기를 다루고, 그림을 그려 보거라. 대신 원망하지 말거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꿈에서 깬 요한이는 그날부로 음악학원과 미술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먼저 폼이 나는 색소폰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시끄럽다고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미술학원에서는 꼬마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아저씨는 왜 그림을 그리실까? 종이가 아깝다. 아까워.”그러자 옆에 있는 꼬마는 ! 물감이 더 아깝다.”

이런 소리를 듣자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음악과 미술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원망을 했습니다.

 

주님! 저 악기 그만 할래요. 사람들이 소음이 심하다고 경찰서에 민원도 넣었어요. 그리고 그림 그린다고 했더니 그것이 무슨 그림이냐! 종이가 아깝다. 물감이 아깝다.’고 합니다. 분명 재능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안 주시고, 놀림만 당했습니다.”

 

그날 밤, 하느님께서는 요한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아! 나는 네가 음악과 미술을 잘 할 수 있도록 재능을 주었단다. 그런데 그 재능은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너의 즐거움으로 삼아야만이 너의 실력이 된단다. 아무도 태어나면서부터 그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없단다. 그 재능을 키우고 또 키웠기 때문에 실력이 생긴 것이고, 그것에 흥미와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능력이 된 것이란다.”

 

주님! 저는 그냥 될 줄 알았지요. 하긴 그렇게 재능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연습이나 노력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에게 주신 재능을 더 잘 발휘 할 수 있도록 다른 것들은 탐내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거라. 남의 재능이 더 좋아 보이는 이유는 그의 재능이 너의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고, 너의 재능은 너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네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눈에는 너의 재능이 다른 사람의 재능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인단다. 네가 너에게 얼마나 좋은 재능을 주었는데…,”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가해 31-34주일, 연중시기(가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가해 연중 제 33주일; 탈렌트의 비유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탈렌트의 비유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맞는 탈렌트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탈렌트를 잘 활용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길 원하십니다. 그 탈렌트를 우리는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는 탈렌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탈렌트를 잘 활용하고, 어떤 이는 그 탈렌트를 전혀 활용하지 않고, 원망과 좌절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탈렌트의 비유에서 주인은 각자에게 능력에 따라 돈을 맡겼습니다. 주인은 각자의 능력을 알고 있기에 그에게 알맞은 탈렌트를 맡겼습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맡기는 것입니다. 은총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주시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은총은 베풀지 않으십니다. 다다익선이 아니라 과한 것은 나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받은 사람들의 태도는 각각 다릅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두 탈렌트를 받은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이들은 부지런히 노력하여 두 배로 늘린 것입니다.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는 게으른 종인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돈을 감출 때, 흔히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은행이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신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마당을 파 보면 묻혀 있는 돈이나 금덩이가 나오지 않을까요?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왜 그랬을까요? 다른 사람들의 탈렌트가 더 많아서 화가 나서 그랬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자신에게 한 탈렌트를 맡겼습니다. 한 탈렌트는 6000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니 하루 품삯을 50,000원이라고 한다면 3억정도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억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탈란트를 보고 자신은 적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도 한 탈렌트를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맡기신 한 탈렌트는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오로지 다른 사람에게 주신 탈렌트들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불평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질투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존감의 결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만족하면서 살아갈 때, 더 나아가서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나는 질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탈렌트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내가 받은 탈렌트는 무엇이고, 나는 그 탈렌트를 어떻게 개발하고 있으며, 그 탈렌트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그 탈렌트를 통하여 어떻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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