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기도”
단식은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를 굳건하게 하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고자 해도, 내 몸이 편안함을 추구한다면 나는 기도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내가 희생과 봉사를 하고자 해도, 내 몸이 그것을 불편해 하면 나는 희생과 봉사를 꺼리게 됩니다. 그래서 단식은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를 더욱 단련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단식은 육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음식을 먹지 않으면 내 육신은 죽게 됩니다. 그런데 육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내 영혼까지 죽여서는 안 되고, 영혼과 육신의 부활을 굳게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아가면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함을 알고 있습니다.
단식기도를 하면서 내 몸이 주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해 왔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단식기도를 하면서 내 몸이 주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해 왔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단식기도를 하면서 내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하여 내 몸이 주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나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고, 나 혼자의 힘으로는 언제나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은총을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청해 봅시다. 반드시 들어 주심을 굳게 믿읍시다.
예수님께서는 개인적인 생활을 접고, 이제 메시아로서의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위해 세례를 받고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시며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계시며,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물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의지를 더욱 굳게 하시고, 3년간의 공생활을 준비하시도록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① 빵의 유혹
먼저 사탄은 40일 동안 단식을 하신 상태인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그런데 굶주렸을 때 돌을 빵으로 만들어서 먹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지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아들임을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증명하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4,4)
② 권력의 유혹
사탄은 예수님을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 성전 꼭 데기로 모시고 갑니다. 높은 탑 아래에는 성전의 광장이 있었는데 그 광장에 있는 이들은 모두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으로 세상을 뒤엎을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마음이 있으셨다면 굳이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사명을 바꾸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어기게 만들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이 세상을 죄의 사슬에서 풀어 준다는 것이 아버지 하느님의 뜻임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4,7)
③ 재물에 대한 유혹
사탄은 한편의 영화를 보여주듯 그렇게 세상을 보여주며 유혹을 합니다.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4,9) 언제나 써먹는 유혹이요 거짓말입니다. 사탄은 이런 약속을 실행할 힘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속으로 얼마나 웃으셨을까요? 자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또한 재물을 가지고 구원사업을 펼칠 계획이 있으셨다면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4,10)
예수님께 사탄은 완패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완승을 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빵으로 만들어 드실 계획이 있으셨다면 굳이 단식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세상에 군림하는 메시아로서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이셨다면 굳이 인간이 되지 않으셨을 것이고, 악마에게 절하여 재물을 얻으려 하셨다면 굳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은 단호하게 거절해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유혹에서 벗어납시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유혹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의 유혹을 물리치면 또 하나의 유혹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그 유혹을 물리치면 어느덧 내 마음 안에는 지나친 믿음의 오만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겨내는 방법은 예수님처럼 단호하거나 그 유혹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냅다 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사순시기”와 “사순절” 정의
국어사전에서는 시기와 절의 의미에 뚜렷한 구분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시기’(時機)는 ‘정한 때나 기회’를, ‘절’(節)은 ‘규칙이나 제도’를 내포합니다.
1. 절(節)
‘-절(節)’이라 함은 어떠한 특정 날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로,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명절(名節)’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뜻으로, 광복절, 개천절 등이 그 예입니다. 둘째로, 절기를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 ‘절기(節氣)’의 뜻을 강조하여 나타내는 말로, 부활절, 성탄절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2. 시기(時期)
‘시기(時期)’란, 어떤 일이나 현상이 진행되는 시점을 말하며, ‘때’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을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시기이다.’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대림시기, 성탄시기, 사순시기, 부활시기가 모두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3. “사순절”에서 “사순시기”로의 변천
교회는 절과 시기를 함께 사용하다가 「미사 경본 총 지침」(2009)의 전례주년에서는 ‘절’(節)이라는 단어가 모두 삭제되고 ‘시기’(時機)로 대체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용어의 혼선은 시대적인 언어의 습성과 관습에 따른 현상이며, 한글 통일법에 맞추어 수정하고 있는 과정의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