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부활 제 6주일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줍니다. 그 사랑이 바로 예수님 안에 있다는 증거이고, 열매를 맺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1.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랑을 고백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제자들을 사랑하시니 제자들 또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에 붙어 있어야 만이 나무가 주는 영양분을 공급받아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무에게서 영양분을 받아와야 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② 바람이 불고, 어떤 때는 가뭄으로 고생한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렇게 어떤 처지에 있던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말합니다.

③ 포도나무가 주는 것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가지가 열매를 맺듯이, 그렇게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머물며, 그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의 말씀은 내 삶의 등불이 될 수 있고, 예수님의 계명은 나를 이끌어 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④ 예수님 안에 머무는 삶은 예수님과 나를 일치시켜 주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기쁨이 충만하게 만들어 주고, 내 삶을 변화시켜 줍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은 결코 구속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풍성한 사랑 안에서 한없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의무나 부담이 아니라 사랑과 기쁨입니다.

 

2. 계명을 지키는 삶이 주님 사랑 안에 머무는 삶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계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한없는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하느님 안에 머물고 계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러한 뜻을 온전히 받들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도 피와 땀을 흘리셔야만 했고, 마침내는 당신의 목숨까지도 내 놓으셔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샘솟는 기쁨을 느끼셨습니다. 곧 당신이 아버지께 사랑받고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기쁨을 느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그 기쁨을 알게 해 주시려 하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주시고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생활을 모범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계명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맞추는 것이지 아버지께서 내 뜻에 맞춰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예수님의 뜻을 맞추어 하나가 되려고 노력할 때 내가 그렇게 변화되고, 사랑 안에서 일치가 될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예수님처럼 될 것입니다.

 

3. 사랑에로의 초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제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해주고도 자랑하지 않으며, 늘 무엇을 더 해 주어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지 않으며, 하나 해주면 평생 그것 가지고 우려먹으려고 하고, 그거 하나 해 주었으면 되었지 또 무엇을 해 주겠냐고 말합니다. 이제 그는 무엇을 받아낼지를 고민합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나 자신입니다.

 

한 신앙인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려하고,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려 합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기 위하여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그는 바로 내가 닮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봉사를 하다보면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작지만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이, 땀을 흘리고, 시간을 봉헌하고, 내 재물과 열정을 봉헌했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합니다. 그 기쁨은 해 본 사람만이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쁨 안에서 충만할 때 나의 신앙생활은 진정으로 자유롭게 됩니다. 내 마음이 예수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청해도 예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을 것이며, 내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께는 기쁨이 되니 더욱 힘이 나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의 말씀들은 결코 나에게 굴레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큰 기쁨이 되고, 더 큰 기쁨을 줍니다.

 

4. 예수님의 계명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줍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계명으로 주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당연히 그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을 통하여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내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조건을 내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13)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사랑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사랑은 바로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고, 가장 큰 사랑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고 계신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내가 그 큰 사랑을 받았으니 나 또한 그 사랑을 형제자매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숨은 나의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 목숨만큼 소중한 것을 친구를 위해 내 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시간과 마음. 내 정렬과 기도를 내 옆에 있는 친구를 위해서 내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당에 나온 형제자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 형제자매들이 어려운 일을 하고 있을 때 기꺼이 도와주는 것. 쉬는 교우들을 찾아가서 본당 주보를 전해주고, 안부를 물어 주는 것. 친구를 위해서 내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기회는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사랑에는 언제나 희생이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희생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일이나 부담스러운 것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15,14)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은총을 약속하십니다. “친구”가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실천하면 나는 주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말합니다. 그 친구는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고, 함께 하면 기쁨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믿을 수 있고, 내 얘기를 해도 진지하게 들어주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③ 예수님의 친구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요한15,15)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제자들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주인은 종에 대하여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단지 명령을 전달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의 참된 벗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말해서 예수님께 대하여 존경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종은 종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나 벗처럼 주인과 친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벗은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종에서 벗으로 끌어 올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벗으로 생각하시고, 나를 벗으로 대해 주십니다. 이제 나는 내 벗이신 예수님께로부터 들은 것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말씀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신 이유.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한15,16)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신 이유는 제자들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결실을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뽑으신 것입니다. 이제 뽑힌 제자들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모든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들이 참되게 예수님을 믿으며, 그 믿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런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제자들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가르쳐야 하고, 더 나아가 목숨까지도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땀과 피로 맺은 열매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예수님 안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매 맺는 삶은 기도하게 만들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게 됩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청하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말씀드려 다 들어주시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명령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요한15,17)

“사랑!” 말은 쉽지만 사실 너무 어렵습니다. 좋은 사람은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겠는데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미워하지 않는 것도 다행인데,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어려운 것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몸소 보여주십니다. 당신 손과 발에 못을 박는 사람들까지도 용서하여 주십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할만 한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미사가 기쁨이 아니라 분심이 되게 됩니다. 성당에서 봉사를 할 때도 웬만큼 기도하지 않으면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과 봉사를 해야 기쁨이 넘쳐납니다.

 

열심히 봉사를 하던 형제가 어느 날부터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봉사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① 신부님께 잘 보이려고 저런다. ② 뭔가 욕심이 있어서 저런다. ③ 할 일이 없으니까 저런다. ④ 잘난 체 하려고 저런다.”는 여러 가지 말을 들었고,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왜 아직도 이 모양이냐…,”이런 모든 말들은 “너 나오지 마라. 너 하지 마라.”라는 말도 들렸고, 결국 조용히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성당에 나왔습니다. “이런 시련은 당연한 것이었구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봉사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 더욱 열심히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야 힘을 낼 수 있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비록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내뱉어도 그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하면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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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부활 제 6주일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사랑

    예수님은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시고, 사랑밖에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온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국어사전에 사랑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관계나 사람.

    둘째,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마음을 베푸는 일.

    셋째, 어떤 대상을 매우 좋아해서 아끼고 즐기는 마음.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 나와 가족과의 관계, 나와 친구들과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는 모두 이 사랑 안에서의 관계이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려하고, 예수님과 함께 머물려 하며, 예수님께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서운한 일이 생기면 기도도 안하고, 주일미사에 참례도 안 하고, 마음을 돌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해 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알게 되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알고는 있는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려니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안하고, 또 안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라고 합니다. 알고는 있는데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알고 있는 것이 가슴으로 가기 전에 입에서 벌써 나가버립니다. 그래서 말만 앞서게 되고, 말로는 벌써 성인들의 경지에 올라섰으며, 하느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그런데 행동은 말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나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서는 사랑이 타 오르고 있고, 예수님을 향해서 마음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나의 기쁨입니다. 사랑하다보니 내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 놓으니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큰 기쁨이요 행복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또 다른 기쁨을 붙들어서 예수님 안에 머물게 합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확고하지는 않지만 나도 예수님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신앙인이라고 부릅니다.

  2. 관리자 님의 말:

    가족 사랑

    아주 멋진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또 열렬히 좋아하며 연인으로 발전하고, 그렇게 한생을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하며 하느님 앞에서 하나가 된 이들이 바로 부부입니다. 그리고 그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존경하며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바로 자녀들입니다. “부부, 부모, 자녀는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 존재이며, 사랑으로 가득 찬 관계입니다.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내 가족을 위해서 가족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려 하고, 내 가족과 함께 머물려 하며, 내 가족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 주고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 가족으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다투고 싸우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장 큰 소리를 많이 내고, 내 주장을 펼치는 곳이 가정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그런데 가족에 대한 서운함은 서로가 조금씩은 있습니다.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에 서운함 생겨나는 것이고, 사랑하기에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되기에 아쉬움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의 특징은 서운함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금방 풀어진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작은 몸짓, 말 한마디 등으로 풀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왜냐하면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질책하거나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부족해도, 나약해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내 가족을 사랑한다면 부족해도, 나약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내 가족은 좀 더 나아가지를 바라고, 내 가족이 좀 더 능력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웃보다 더 뛰어나기를 바라고, 좀 더 높은 위치에 서기를 바랍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비교하기도 하고, 잘 되라고 하는 말이라 하면서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워 기도하시면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도 함께 모여 기도할 때 가족 사랑은 더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가족이 모두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가정의 특징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가족의 구성원들은 화목한 것을 바랍니다. 평화로운 것을 바랍니다. 각자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기를 바랍니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바랍니다. 그리고 또 간절히 원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할 때 신앙은 계속해서 성장하게 되고, 신앙이 계속해서 성장하게 될 때 사랑은 더 깊어지게 됩니다. 사랑이 더 깊어지게 될 때 어떠한 처지에 있든,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변함없이 한 마음이 될 수 있고, 한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가족은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3. 관리자 님의 말:

    이웃 사랑

    나는 내 친구들과 이웃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을 매우 아끼고 좋아하며,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내 사랑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해주고, 그들의 기쁨을 내 기쁨처럼 함께 기뻐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조건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내 마음에 들며, 나에게 잘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면, 나를 배려하면…,” 그래서 그들로부터 상처를 조금 받게 되면 외면하기도 하고, 돌아서기도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당신 제자들을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사랑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예수님처럼 그런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운하다 할지라도 이해하면서, 용서하면서, 처음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좋을 때만 좋은 친구로 남아 있지 않고, 안 좋은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함께 하고, 또 함께 해 주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다 할지라도 그의 생각을 존중해주며 그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내가 사랑했고, 좋아했고, 함께 했던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내 틀에 그를 맞추려고 하다 보니 그의 부족한 모습이 보이고, 나와 다른 것이 보이고, 내가 손해를 봤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웃사랑은 조건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나에게 잘 해 주었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내 앞에 있기 때문에 그에게 잘 해 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가 특별한 능력이나 재력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귀한 자녀이기에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은 시기와 판단과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이해와 배려와 나눔과 용서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앙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원한을 품고 서로 미워하거나 그렇게 미워하는 사이를 말합니다. 앙숙이 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원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망을 품고 머물게 되면 그 원망은 미움과 분노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해질 때 까지 성난 체로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난 상태로 잠을 자게 되는 것이 앙숙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보통 우리는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고양이는 반가우면 꼬리를 접고,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흔듭니다. 고양이는 화가 나면 꼬리를 세우고, 개는 무서우면 꼬리를 내립니다.

    앙숙이 되는 이유는 내 틀에 상대방을 맞추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고, 이해하고 배려하기 보다는 판단하고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이웃을 좋아하고 아끼기 위해서는 이해하려 해야 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해야 합니다. 내 이웃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늘 명심하며 너그럽고 자비를 베푸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상대방의 허물을 바라보지 않고 ! 내 탓이구나!”라는 것을 생각하며 이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웃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조건을 버려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입니다. 내 이웃과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 더욱 노력해 봅시다.

  4. 관리자 님의 말:

    예수님의 친구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은총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15,1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실천하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친구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말합니다. 그 친구는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고, 함께 하면 기쁨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믿을 수 있고, 내 얘기를 해도 진지하게 들어주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내 곁에 계셔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실천하면 나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15,15)

    종과 친구는 다릅니다. 종에게는 어떤 일을 지시할 때 그의 의견을 묻지 않고 단지 명령을 합니다. 그러나 친구에게는 명령하지 않고 그의 뜻을 물어보며 부탁을 하고,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며, 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합니다. 그렇게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존재가 바로 친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종으로 대하시지 않고 벗으로 대해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을 위해서 행한 모든 것에 대해서 기억해 주시고 고마워해 주시며, 더 좋은 것으로 보답을 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나는 이렇게 주님께로부터 사랑을 받게 됩니다.

     

  5. 관리자 님의 말: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랑을 고백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요한15,9)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셨듯이 그렇게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제자들을 사랑하시니 제자들 또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에 붙어 있어야 만이 나무가 주는 영양분을 공급받아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무에게서 영양분을 받아와야 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둘째, 바람이 불고, 어떤 때는 가뭄으로 고생한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렇게 어떤 처지에 있던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포도나무가 주는 것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가지가 열매를 맺듯이, 그렇게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머물며, 그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의 말씀은 내 삶의 등불이 될 수 있고, 예수님의 계명은 나를 이끌어 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넷째, 예수님 안에 머무는 삶은 예수님과 나를 일치시켜 주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기쁨이 충만하게 만들어 주고, 내 삶을 변화시켜 줍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은 결코 구속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풍성한 사랑 안에서 한없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의무나 부담이 아니라 사랑과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15,10)

    하느님의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셨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늘 기도하시며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한없는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바로 아버지 하느님 안에 머물고 계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받들기 위해서 몸소 인간이 되셔야 했고, 피와 땀을 흘리셔야만 하셨으며, 마침내는 당신의 목숨까지도 내 놓으셔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고, 아버지 하느님의 기쁨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온 세상에 펼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그 기쁨을 알게 해 주시려 하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주시고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계명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지 주님께서 보잘 것 없는 나의 뜻에 맞춰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의 뜻을 이루며 주님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할 때 나는 주님 안에서 변화가 되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과 일치하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15,11)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서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고, 우리 모두가 그 기쁨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기쁨이 충만하다보니 누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마저 돌려 대 줄 수 있는 것이고,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까지 가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이 충만하기에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 안에서 기쁨이 충만할 때 나의 신앙생활은 진정으로 자유롭게 됩니다. 내 마음이 예수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청해도 예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을 것이며, 내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께는 기쁨이 되니 더욱 힘이 나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의 말씀들은 결코 나에게 무거운 짐이나 나를 억압하는 굴레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큰 기쁨이 되고, 더 큰 기쁨을 줍니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해 주고, 또 내가 해 주고 싶은 것을 해 주어도 자랑하지 않고, 늘 무엇을 더 해 주어야 할지를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얻지 못하는 이들은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면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고, 상대방에게 무엇을 주기 보다는 상대방이 나에게 당연히 해 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봉사를 하다보면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작지만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이, 땀을 흘리고, 시간을 봉헌하고, 내 재물과 열정을 봉헌했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합니다. 그 기쁨은 해 본 사람만이 아는 것입니다. 나눔의 기쁨이 얼마나 큰 지는 나누는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봉사를 하는 이들의 기쁨은 그것을 함께 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빼앗기려 하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주님과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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