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오르시는 예수님
– 승천-
사랑 때문에 이 땅에 내려오시어 사랑을 심으신 분.
나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내려오시어 목숨까지 내어 놓으신 분.
그분 바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시니
나의 구원자 예수님이시네.
목자 없이 헤매는 양들에게 착한 목자가 되시어 푸른 풀밭으로 이끌어 주셨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이들을 위로하시며 그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신 분.
자비를 청하는 이들의 청을 한 번도 외면하지 않으셨고,
회개하는 죄인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신 분.
그분 바로 나의 주님, 나의 예수님이시네.
나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에 오르셨고,
몸소 희생제물이 되시어 나의 죄를 씻어 주신 분!
미리 말씀하신 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시어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음을 보여주셨고
죄에서 죽을 때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알려 주신 분
그분 바로 나의 주님, 나의 예수님이시네.
부활하시어 사십 일 동안 제자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고
하늘로 오르시기 전에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나에게 주신 분이 바로
나의 주님, 나의 예수님이시니,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네.
나의 주님, 나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기쁨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살아가네.
사랑 때문에 이 땅에 내려오시어 사랑을 심으신 분.
나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내려오시어 목숨까지 내어 놓으신 분.
그리고
그 사랑의 사명을 이제 나에게 맡겨 주시고
오늘 하늘로 오르신 분.
하늘로 오르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며,
주님 말씀하신 사랑의 삶을 살아갈 때,
나 또한 하늘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시는 분.
나를 하늘로 불러 올려 주실 것임을 약속해 주시는 분.
그분 나의 주님이시니,
주님계신 곳에 머물고 싶어 오늘도 사랑 가득 담아 기쁜소식을 선포하며 하늘을 바라보네.
그분 바로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주님,
나의 구원자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라네.


예수님의 승천
승천대축일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신 것을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승천 대축일은 부활대축일로부터 40일째 되는 날에 기념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지 40일째 되는 날에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시고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런데 40일째 되는 날은 목요일인데, 목요일이 의무축일이 아닌 곳에서는 주일로 옮겨서 이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ascension)과 성모님의 승천(assumption)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당신 스스로 하늘에 오르시는 능동적인 의미를 갖지만, 성모 승천은 올림을 받으시는 수동적인 승천(몽소승천)의 의미를 갖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해 인간 구원에 대한 당신의 계획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 육신과 영혼을 지닌 채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사도 1, 9)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모두 이루시고 다시 당신의 영광스러운 자리로 돌아가셨다는 것(사도신경: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오른편에 앉으시며)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모든 뜻을 이루고 하늘로 오르신 승천은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이 모두 이루어졌음을 드러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사랑을 예수님을 통해서 온 세상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몸소 인간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고 이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사명을 모두 완수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기쁨 안에서 생명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기쁨을 혼자만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삶의 자세이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 기쁨을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전하지 못한다면 나는 기쁨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랑하고 싶은 것, 외치고 싶은 것, 너무 벅차서 함께 나누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1. 믿고 세례를 받는 이들
예수님께서는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16,16)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모든 이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는 믿고 세례를 받겠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믿지 않고, 더 나아가 예수님을 반대할 것이니 구원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믿고 세례를 받았다 함은 믿음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형태로 나아갑니다. 세례 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는 것은 새로운 삶에로의 초대를 거절하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물가로 나가야 합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수영을 하겠다고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물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수영을 하고 싶은 사람은 물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수영은 하고 싶지만 물가를 찾지 않는 이는 결코 수영을 할 수 없습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때 구원을 살아갈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고 세례를 받은 이들은 주님께로 나아가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로 나아가는 이들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걷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걸으신 길을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구원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2. 믿는 이들에게 따르는 표징들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16,17)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이런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굳게 믿고 있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새로운 언어”를 말할 수 있습니다. “영가와 찬가”를 말할 수도 있지만 믿음을 통해서 내가 하던 예전의 말들, 즉 “나와 상대방을 죽음으로 이끌던 말들”을 버리고 “나를 살리고 상대방을 살리는 말들”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몰랐을 때 하던 모든 말들을 잊어버리고 이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에서 나오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세상 끝까지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또 손으로 뱀을 집어 들어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사도행전 28장에서 로마로 가던 바오로 사도는 뱀에 물리고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바오로 사도의 손에 뱀이 달라붙자 바오로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입지 않는 것을 보고 오히려 바오로를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사도28,1-6). 또 열병과 이질에 걸려 있는 이를 기도와 안수로서 고쳐 주었습니다(28,7-10).
또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는 독이 든 음식을 먹고도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독을 넣은 사람들을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헤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이들은 죽음의 영역이 아니라 생명의 영역에 머물기 때문에 아무런 해도 입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위험이나 유혹도 믿는 이에게서 구원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믿는 이에게서는 충만한 기쁨과 넘치는 생명력이 흘러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옆에 있는 이들에게까지도 전해지게 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또한 믿는 이들은 죽음은 죽음으로서 끝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알고 있는 것을 전해주고, 믿고 있는 것을 같이 믿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나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도 큰 기쁨이 됩니다. 나의 주님께서는 그 기쁨을 함께 나누라고 복음선포의 의무를 사명으로 부여해 주셨습니다. 행복해지도록 사명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 안에서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실천해 봅시다. 내 기쁨을 전해 봅시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 입니까?
기도에 전념하며 복음을 선포하는 우리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신 다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사도1,9). 예수님께서 이렇게 지상에서의 모든 사명을 모두 마치시고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절망을 했다가 부활을 체험하고 다시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제자들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하늘만 쳐다보는 있을 때 천사들이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1,11)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만 쳐다보면서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니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체험한 제자들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기도에 전념합니다. 나도 제자들처럼 그렇게 기도에 전념하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나도 힘이 들 때, 포기하거나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힘들 때는 기도의 응답과 맛이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싫고, 미사가기 싫고, 모든 것이 귀찮아 질 때가 있습니다. 또 힘들고 어려울 때는 예수님께서 옆에 안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힘을 낼 엄두도 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천사들처럼 그렇게 옆에서 격려해주고, 성실한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제자매들은 큰 힘이 됩니다. 구역모임도 큰 힘을 줍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함께 하고 있다가 형제자매들의 진심이 담긴 신앙체험을 이야기를 듣게 될 때, “주님께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시는구나!”를 체험하게 됩니다.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살아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행하며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나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주님께서 계속해서 힘을 주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방전이 되면 충전을 시켜주어 늘 새로운 것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듯이, 기도에 전념할 때 주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충전시켜 주십니다. 주님의 손을 잡고 있는 나는 언제나 충만한 충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나를 더욱 힘차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주님의 손을 꼭 잡아야 합니다. 기도에 전념하며 성령의 이끄심에 맡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천사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힘을 주며 주님께로 나아가게 만들어 주며, 함께 복음을 힘차게 전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 그렇게 힘차게 복음을 전합시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해 나갑시다.
예수님의 승천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지 40일 만에 부활한 육신과 영혼을 지니신 채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에서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생활을 마치시고 올리브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 세상을 떠나신 역사적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십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강생하신 천주 성자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완성하신 다음에 다시 당신의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당신을 낮추시어 아버지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아버지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완성하셨고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는 것은 성자 하느님의 자리에 다시 앉으셨다는 것입니다. 오른쪽은 권능과 힘과 영광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승천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다시 한 번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체험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시는 하느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용서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당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온 생애를 순종하시며 사셨습니다. 당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밤을 새워 기도하셨고, 언제나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당신 백성들에게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베푸셨고,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나 또한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야 하며, 일상 삶 안에서 주어지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주님 안에서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게 됩니다. 영혼과 육신의 부활을 믿고 있는 우리도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영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을 자비로우신 심판관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비로우신 심판관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사도들의 삶을 내 삶으로 만들며 주님 안에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