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성체와 성혈 대축일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체성사를 기념하고 묵상하는 날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첫 목요일이나 주일에 지내게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주일에 지냅니다. 이 대축일은 1264년 우르바노 4세 교황 때부터 지내왔습니다. 전에는 성체 축일과 성혈 축일이 따로 있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함께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많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 주신 사랑을 묵상하게 합니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받아 마셔라.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예수님께서는 벗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사랑”입니다.

 

1) 성체성사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성체성사”는 우리 신앙인들의 삶의 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사랑이신 주님과 일치하며, 성체성사의 힘으로 더욱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기에 우리 모두는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성체성사는 우리를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합니다.

 

① 성체성사의 제정

무교절 첫날인 과월절(해방절)에는 오후 2-6시에 성전에서 가족마다 어린양 한 마리씩 잡았습니다. 식구가 적은 경우에는 몇 집이 어울러 어린양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과월절(해방절) 준비일은 누룩 없는 빵만 먹는 무교절 축제 첫날이기도 합니다. 이 날부터 무교절 축제는 여드레 동안 계속됩니다. 따라서 해방절 준비일 겸 무교절 첫날에는 누룩 넣은 빵을 집 안에서 말끔히 없애고 누룩 없는 빵을 넉넉히 마련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다 차리면 좋겠냐고 여쭈었고, 예수님께서는 이러 이러한 곳에 차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렇게 파스카 음식을 차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은 최후의 만찬이었습니다. 이 만찬이 끝난 후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중에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십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예수님께서는 빵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어린양의 피로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고, 하느님께 서원하며,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지만 이제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서 마시는 새 포도주는 “십자가의 제사를 통하여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이루신 다음 얻게 되는 “승리와 기쁨의 음료”입니다. 그 기쁨이 바로 예수님께는 새 포도주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구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시고, 하느님 나라를 활짝 여시어 우리와 함께 기뻐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②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받아들이신 십자가 희생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사 중에 당신의 몸을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심으로써 주님과 하나 되고, 성체를 모심으로써 소죄를 용서받고, 더욱 힘차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성체는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체 안에 계신분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성체 안에 계신 분이 바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시고, 빵이 되어 오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나에게 베풀어 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릴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길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이심을 우리는 진실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굳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최후만찬 중에 빵과 포도주를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말씀 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22,19-20)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생명의 빵이 되시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십자가 제사의 제물로 바치셨고, 그 제물을 음식으로 나누어 주심으로써 우리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어린양이 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생명의 양식이 된 것입니다.

 

③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

히브리인들은 기도하고자 할 때 자신들이 귀중히 여기는 것을 사제에게 가져갔습니다. 대부분이 양을 치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은 대개 양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면 사제는 양을 제단으로 끌고 가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 양을 제단 위에 올렸습니다. 양을 봉헌한 이들은 그 양을 바라보며, “주님, 이 양을 저와 같이 여기소서.”하며 기도하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양을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제단 위에 올려지셨고, 괴로움에 허덕이셨고, 마침내 아버지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단 위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높이 들어 올려진 우리의 새로운 어린양이십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1,29)라고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제가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면서

“아버지, 저희를 구원해주신 성자의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과 승천을 기념하고, 성자의 재림을 기다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룩하고 살아 있는 이 재물을 아버지께 봉헌하나이다.”

라고 기도하는데, 이것은 사제가 하느님 아버지께 이 새로운 양을 봉헌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새로운 어린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백한다는 것은 결국 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함께 머무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우리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성체를 모시는 일이 없어야 하며, 성당 안에서 내 행동을 더욱 경건하게 해야 하며, 감실 앞으로 자주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시편에서는 노래하는 것처럼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을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시편116,12-13)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체기적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8세기 중의 어느 날 아침, 성 바실리오회 소속의 한 수사 신부가 미사를 드리면서 예수님께서 성체 성사에 실제로 현존하심에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가 빵과 포도주의 성 변화를 위한 축성을 끝낸 순간, 갑자기 제병이 살아있는 살로 변하며 포도주가 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놀란 신부는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어서 미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보여주었고, 그들은 곧 뛰쳐나가서 란치아노 시 전체와 인근 지방들에 알렸다고 합니다.

 

1970년과 1971년에 기적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조사를 시행하였는데 해부학, 병리 조직학, 화학 및 임상 현미경학 교수이며 아레쪼(Arezzo) 병원의 수석 의사였던 오도아르도 리놀리(Odoardo Linoli)박사가 시에나 대학교의 인체 해부학 교수였던 유명한 로져 베르텔리 교수의 도움을 받아 3개월에 걸쳐 조사를 했습니다

 

 그의 발표 내용을 요약해보면

① 성체 기적의 성혈은 참으로 피이며, 성체는 참된 살이다.

② 그 살은 심장의 근육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③ 그 살과 피는 인간의 살과 피이다.

④ 피와 살의 혈액형은 동일하다. 이것은 그 피와 살이 동일인으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혈액형이 같은 두 사람으로부터 왔을 수도 있다.

⑤ 피 안에는 정상적인 피에서와 같은 정상적인 비율의 단백질들이 발견되었다.

⑥ 피에서는 또한 다음의 무기물들이 발견되었다. 염화물, 인, 마그네슘, 칼륨, 정상보다 약간 적은 양의 나트륨, 그리고 정상보다 많은 양의 칼슘.

 

 

  교수는 다음의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a. 이 살이 인간의 심장으로부터 해부적으로 잘라온 것일 가능성은 전무하다.

b. 그 살과 피를 보존하기 위하여 화학적인 방부 조처를 취한 흔적은 없다.

c. 그러므로, 그 살과 피 안의 단백질과 무기물들이 대기와 미생물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부패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절대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다.

 

  1973년에 이태리의 의사이며 생물학자인 요셉 비온디니(Joseph Biondini) 교수는 세계 건강 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에 리놀리 교수의 검사 결과를 제출하였고 세계 건강 기구는 이 보고서의 특별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일곱 나라들로부터의 전문가들로 하여금 리놀리 교수의 분석 결과를 조사하도록 위임하였다고 합니다. 핵의학 등 최첨단의 기술이 동원되었던 15개월 간의 연구 끝에 그 국제적인 과학 위원회는 리놀리 교수의 결론들을 완전히 확인하였습니다.

 

그들의 보고서는 세계 건강 기구의 공식 출판물들에 실을 수 있도록 준비되었고, UN 산하의 과학자들은 란치아노의 성체 기적이 \”유래가 없는 케이스\”이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단정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2) 성체성사의 삶

그러므로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고백하는 이들은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시편에서

찬양 제물을 바치는 이가 나를 공경하는 사람이니 올바른 길을 걷는 이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 주리라.”(시편 50,23)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으니 찬양 제물을 바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이며, 그 길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사랑의 길입니다. 또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서로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일치하는 길입니다.

 

①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삶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서로 섬기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랑하라고 나에게 주신 사람들을 온전히 사랑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생명의 빵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오시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빵을 나누어 먹은 형제자매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생명의 빵으로 나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한 것입니다. 제자매들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형제자매들을 사랑한다면 형제자매들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 뵙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②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삶

또한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고백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착한 행실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그래서 서로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일치하는 길을 걷는 이들입니다.

 

사제는 미사 중 감사 기도 3 양식에서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를 굽어보소서. 이는 주님 뜻에 맞갖은 희생 제물이오니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성자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저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 몸이 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사제는 아버지 하느님께 우리가 지금 봉헌하는 제사를 굽어보시기를 간구하며, 특히 예수님께서 우리를 아버지께 봉헌하시기 위해 치르신 값비싼 대가, 즉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예수님의 죽음을 살펴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파스카의 신비를 굳게 믿고 의지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체성사의 삶은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 뵙고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의 빵이심을 고백하며, 같은 빵을 나누어 먹은 형제자매들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주님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③ 내어줌의 삶

나를 내어 주는 삶. 그 삶만큼 사랑 넘치는 삶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모든 것을 주고도 아깝지 않은 사람입니다. 계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십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도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받아 모신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그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보답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눠 주면서, 이해하면서, 손해 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내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흉내 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밀떡 속에 계신 주님을 내 눈으로 알아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체를 모신 나는 주님을 알아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성체를 모신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성체를 모신 사람은 뭔가 다릅니다. ① 겸손한 삶을 살아가며, ② 성당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고, 자주 성체 앞으로 나아가려 하며 ③ 말없이 봉사하며 ④ 환하게 잘 웃습니다. ⑤ 나눔의 삶을 살아가며 ⑥ 공동체와 일치하여 주님의 일을 하려하고 ⑦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기에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고, 빵이 되어 오시는 주님을 알아 뵈오며,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실 때 더욱 굳은 믿음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지 않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주님의 성체를 모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1-1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나해 성체와 성혈 대축일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성체성사의 삶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고백하는 이들은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시편에서는 찬양 제물을 바치는 이가 나를 공경하는 사람이니 올바른 길을 걷는 이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 주리라.”(시편 50,23)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으니 찬양 제물을 바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찬양제물은 바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우리의 삶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이며, 그 길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사랑의 길입니다. 또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서로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일치하는 길입니다.

     

    1.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삶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서로 섬기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랑하라고 나에게 주신 사람들을 온전히 사랑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생명의 빵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오시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빵을 나누어 먹은 형제자매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생명의 빵으로 나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한 것입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형제자매들을 사랑한다면 형제자매들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 뵙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2.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삶

    또한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고백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착한 행실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그래서 서로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일치하는 길을 걷는 이들입니다.

     

    사제는 미사 중 감사 기도 3 양식에서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를 굽어보소서. 이는 주님 뜻에 맞갖은 희생 제물이오니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성자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저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 몸이 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사제는 아버지 하느님께 우리가 지금 봉헌하는 제사를 굽어보시기를 간구하며, 특히 예수님께서 우리를 아버지께 봉헌하시기 위해 치르신 값비싼 대가, 즉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예수님의 죽음을 살펴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파스카의 신비를 굳게 믿고 의지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체성사의 삶은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 뵙고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의 빵이심을 고백하며, 같은 빵을 나누어 먹은 형제자매들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주님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3. 내어줌의 삶

    나를 내어 주는 삶. 그 삶만큼 사랑 넘치는 삶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모든 것을 주고도 아깝지 않은 사람입니다. 계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십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도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받아 모신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그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보답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눠 주면서, 이해하면서, 손해 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내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흉내 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밀떡 속에 계신 주님을 내 눈으로 알아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체를 모신 나는 주님을 알아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성체를 모신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성체를 모신 사람은 뭔가 다릅니다.

    첫째, 겸손한 삶을 살아가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둘째, 성당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고, 자주 성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셋째, 말없이 봉사하며 환하게 잘 웃습니다. 넷째, 나눔의 삶을 살아가며 공동체와 일치하여 주님의 일을 하려합니다. 다섯째, 모욕을 모욕으로 갚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기에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바라보려 하기에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니 빵이 되어 오시는 주님을 알아 뵈오며,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체를 받아 모실 때 더욱 굳은 믿음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지 않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주님의 성체를 모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 관리자 님의 말:

    성체기적

    8세기, 어느 날 아침, 성 바실리오회 소속의 한 수사 신부가 미사를 드리면서 예수님께서 성체 성사에 실제로 현존하심에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가 빵과 포도주의 성 변화를 위한 축성을 끝낸 순간, 갑자기 제병이 살아있는 살로 변하며 포도주가 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놀란 신부는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어서 미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보여주었고, 그들은 곧 뛰쳐나가서 란치아노 시 전체와 인근 지방들에 알렸습니다.

    1970년과 1971년에 기적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조사를 시행하였는데 해부학, 병리 조직학, 화학 및 임상 현미경학 교수이며 아레쪼(Arezzo) 병원의 수석 의사였던 오도아르도 리놀리박사가 시에나 대학교의 인체 해부학 교수였던 유명한 로져 베르텔리 교수의 도움을 받아 3개월에 걸쳐 조사를 했습니다.

     

     그의 발표 내용을 요약해보면 성체 기적의 성혈은 참으로 피이며, 성체는 참된 살이다. 그 살은 심장의 근육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살과 피는 인간의 살과 피이다. 피와 살의 혈액형은 동일하다. 이것은 그 피와 살이 동일인으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혈액형이 같은 두 사람으로부터 왔을 수도 있다. 피 안에는 정상적인 피에서와 같은 정상적인 비율의 단백질들이 발견되었다. 피에서는 또한 다음의 무기물들이 발견되었다. 염화물, , 마그네슘, 칼륨, 정상보다 약간 적은 양의 나트륨, 그리고 정상보다 많은 양의 칼슘.

     

     교수는 다음의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첫째, 이 살이 인간의 심장으로부터 해부적으로 잘라온 것일 가능성은 전무하다. 둘째, 그 살과 피를 보존하기 위하여 화학적인 방부 조처를 취한 흔적은 없다. 셋째, 그 살과 피 안의 단백질과 무기물들이 대기와 미생물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부패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절대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다. 1973년에 이태리의 의사이며 생물학자인 요셉 비온디니 교수는 세계 건강 기구에 리놀리 교수의 검사 결과를 제출하였고, 세계 건강 기구는 이 보고서의 특별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일곱 나라들로부터의 전문가들로 하여금 리놀리 교수의 분석 결과를 조사하도록 위임하였습니다. 그리고 15개월 간의 연구 끝에 그 국제적인 과학 위원회는 리놀리 교수의 결론들을 완전히 확인하였습니다.

    그들의 보고서는 세계 건강 기구의 공식 출판물들에 실을 수 있도록 준비되었고, UN 산하의 과학자들은 란치아노의 성체 기적이 유래가 없는 케이스이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단정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3. 관리자 님의 말:

    성체와 성혈은 예수님의 몸과 피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성체성사는 우리 신앙인들의 삶의 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받아 마셔라.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생명의 빵이 되시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십자가 제사의 제물로 바치셨고, 그 제물을 음식으로 나누어 주심으로써 우리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어린양이 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생명의 양식이 된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은 기도하고자 할 때 자신들이 귀중히 여기는 것을 사제에게 가져갔습니다. 대부분이 양을 치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은 대개 양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면 사제는 양을 제단으로 끌고 가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 양을 제단 위에 올렸습니다. 양을 봉헌한 이들은 그 양을 바라보며, “주님, 이 양을 저와 같이 여기소서.”하며 기도하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양을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어린양의 피로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고, 하느님께 서원하며,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지만 이제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제단 위에 올려지셨고, 괴로움에 허덕이셨고, 마침내 아버지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단 위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높이 들어 올려진 우리의 새로운 어린양이십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1,29)라고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제가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면서 아버지, 저희를 구원해주신 성자의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과 승천을 기념하고, 성자의 재림을 기다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룩하고 살아 있는 이 재물을 아버지께 봉헌하나이다.”라고 기도하는데, 이것은 사제가 하느님 아버지께 이 새로운 양을 봉헌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새로운 어린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백한다는 것은 결국 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함께 머무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우리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형식적으로 성체를 모시는 일이 없어야 하며, 성당 안에서 내 행동을 더욱 경건하게 해야 하며, 감실 앞으로 자주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시편에서는 노래하는 것처럼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을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시편116,12-13)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받아들이신 십자가 희생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사 중에 당신의 몸을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심으로써 주님과 하나 되고, 성체를 모심으로써 소죄를 용서받고, 더욱 힘차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성체는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릴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길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4. 관리자 님의 말:

    교회가 전례력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들

    교회는 전례주년을 통해서 신자들이 전례 안에서 주님을 알게 하고, 주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성인들을 기억하게 하고, 성인들의 삶을 본받게 합니다. 특별히 부활시기부터 성체와 성혈 대축일까지의 내용을 기억해 보고자 합니다. 부활시기를 보내며 교회는 신자들이 사도행전을 통해서 어떻게 부활의 증인으로서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40일을 보내고 주님의 승천을 맞이하였습니다. 주님의 승천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더욱 명확하게 알게 해 주었고, 우리의 사명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기다리며 다락방에서 열흘 동안 기도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게 하고, 성령께서 내려오셨을 때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내맡겼던 것을 기억하게 하고 현재화시켜 줍니다. 그렇게 해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서 받은 성령을 다시 느끼게 하고, 그 성령의 이끄심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두근거리며 성령칠은 뽑기를 통해 성령의 뜻을 묻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성령을 체험한 교회는 그 다음 주일에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며 성자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성령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게 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의 삶을 살아가도록 권고합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명확하게 알려 준 교회는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지내며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게 합니다.

    교회의 전례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전례력에 더욱 관심 가져 봅시다.

  5. 관리자 님의 말:

    부자와 당나귀

    하루는 안토니오 성인이 강론을 하는데, 성당 뒷좌석에 오랫동안 냉담하다가 모처럼 나와서 앉아 있는 귀족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미사에 참례하고는 있지만 거만하게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당에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랑 하러 온 것이겠지요. 물론 성체를 모시기 위해서 미사 전에 고백성사를 보지도 않았고, 성체를 모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토니오 성인께서는 그 귀족에게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형제님! 저랑 내기 하나 하시겠습니까?”

    무슨 내기를요?”

    당나귀 한 마리를 3일 동안 굶긴 다음에, 당나귀가 좋아하는 당근을 오른쪽에, 그리고 축성된 성체를 왼쪽에 놓고 당나귀가 어느 쪽을 먼저 선택하는가?’ 입니다. 물론 저는 성체 쪽을 먼저 향할 것이라는데 걸겠습니다.”

    하하하! 그럼 제가 이긴 내기군요. 저는 당연히 당근 쪽에 걸겠습니다.”

    그 냉담자 귀족은 신부님께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신부님이 당나귀를 3일 동안 성체 있는 곳으로 가도록 교육시킬지 모르니, 제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3일이 지났습니다. 날이 밝자 동네 사람들은 성당으로 몰려왔습니다. 그 거만한 귀족은 3일 동안 굶긴 당나귀를 의기양양하게 끌고서 성당으로 왔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당나귀가 어떻게 행동할까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 앞으로 나온 당나귀는 두리번거리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당근이 수북하게 쌓인 것을 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를 돌려 성체가 있는 곳으로 가더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하면서 성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거만한 귀족도 당나귀의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성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믿음을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예수님께 믿음을 드리고 있을 때, 당나귀는 그제야 당근 있는 곳으로 천천히 가서는 배고픔을 채웠다고 합니다. 당나귀도 알고 있는 것을 사람이 몰라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6,54)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성체를 모셔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의 성체를 모시고, 더욱 힘을 내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주님의 성체를 모심으로써 주님처럼 변화되어 형제자매들에게 내어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봅시다. 성체와 성혈은 내 눈에는 빵과 포도주로만 보이지만 예수님의 몸과 피입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미사에 참례하고, 확고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하고 사제가 외칠 때 아멘!”이라고 응답하며 주님의 성체를 모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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