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11주일


하느님 나라의 비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는 커가고 있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삶으로 고백하며,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신앙에 입문한 이들도 어느덧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방문하고, 기쁘게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봉헌합니다. 그렇게 믿음의 씨앗들은 싹이 트고, 풍성한 가지를 드리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나라는 커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 믿음 또한 보잘 것 없는 겨자씨와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주님께 뿌리 내리고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나는 어느 순간 커다란 나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말씀 안에서 힘을 얻고, 은총의 비를 맞으며, 사랑의 양분을 주님께로부터 받아야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에 비유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싹이 터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 씨앗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모릅니다. 이 어떤 사람은 바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그가 뿌린 씨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뿌

리 내린 곳이 바로 땅입니다. 땅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씨가 땅에 떨어져야 만이 싹을 내는 것처럼, 신앙도 예수님께 뿌리를 내려야 만이 싹을 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면 결코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믿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은 주님께 뿌리를 내립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그 힘으로 그는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인으로 성장하기에 기도하며 주님 안에 머물고,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며, 온갖 사랑으로 형제자매들을 기쁘게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보며 스스로 놀라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더 확신에 차 기도하며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한없는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갚지 않으면, 우리는 사랑에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을 바라보며, 성령의 이끄심대로 의로운 삶으로 주님께 사랑을 갚아 드려야 합니다. 또한 이 삶(육적인 삶을 버리는 삶,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는 삶)이 나를 멸망에서 구원하며,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해 줍니다.

 

1. 열매 맺는 씨앗

씨가 싹이 트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땅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땅이 주는 양분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땅은 씨를 싹트게 합니다. 목마른 싹을 비가 적셔주고, 태양이 비추어 자라게 하고, 달빛으로 쉬게 합니다. 바람이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구름이 해를 가져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뿌리 내린 신앙인들은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향하게 만들고, 기도하게 만들어주며, 온갖 은사를 풍성히 내려 주시어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게 합니다. 그리고 시련 속에서도 기뻐하며,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 친구가 자신의 젊은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왜 이 젊은 나이에 제 아내를 데려 가십니까? 요즘 평균 연령이 팔십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반도 못살고 가게 하십니까? 어떻게 이리 착하게 살아온 제 아내에게 처절한 고통과 죽음을 주십니까?”

그러나 그 친구는 슬픔이 눈을 가려 하느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탄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시어 이렇게 멋진 남편을 주셨고, 아이까지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남편을 통해서 돌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계획 앞에 사실 부족한 인간은 어떻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고통 속에서도 “예”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기쁨이 주어졌을 때는 온 몸으로 찬미를 드릴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2. 겨자씨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이들은 겨자씨가 작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작은 씨가 3-4미터의 큰 나무로 자란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즉 말씀을 듣고 있는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이 큰 나무가 됩니다. 겨자씨가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신비스러울 만큼 성장하는 것과 같이, 하느님 나라도 처음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놀라운 성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두 눈으로 계속 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통해서 온 가정이 성가정이 되고, 작은 신자들이 모여 어느덧 멋진 공동체를 만들며,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기쁘게 자신의 삶으로 예수님을 전하며, 예수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전해지는 것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성장은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그 성장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성숙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은 “나 하나쯤이야”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 하나는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이런 보잘 것 없는 나를 주님께서는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하나 둘 모여서 교회를 이룹니다. 또한 내 신앙이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서서히 자라나 언젠가는 예비자들과 초심자들이 내 안에 깃들 정도로, 나에게 신앙을 배우고, 도움을 청할 정도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11-2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나해 연중 제 11주일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겨자씨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씨가 3-4미터의 큰 나무로 자라납니다. 겨자씨가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신비스러울 만큼 성장하는 것과 같이, 하느님 나라도 처음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놀라운 성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두 눈으로 계속 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마르4,30-32)

     

    한 사람을 통해서 온 가정이 성가정이 되고, 작은 신자들이 모여 어느덧 멋진 공동체를 만들며,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기쁘게 자신의 삶으로 예수님을 전하며, 예수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전해지는 것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성장은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그 성장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성장하고 성숙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은 나 하나쯤이야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 하나는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이런 보잘 것 없는 나를 주님께서는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하나 둘 모여서 교회를 이룹니다. 또한 내 신앙이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서서히 자라나 언젠가는 예비자들과 초심자들이 내 안에 깃들 정도로, 나에게 신앙을 배우고, 도움을 청할 정도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끔은 감동받은 행동들이 있습니다. 전혀 그런 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어떤 이가 그것을 말없이 해 놓고 사라졌던 경우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눈이 먼 아내와 살아가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형제는 언제나 기도하며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지혜롭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고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형제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눈먼 아내가 성당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월요일은 보통 성당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형제는 월요일에 자기 아내와 함께 성당의 화장실을 청소하였습니다. “당신은 눈이 멀어서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화장실 청소는 나와 함께라면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우리 그렇게 봉사해 보자!” 그렇게 부부는 성당 화장실을 월요일마다 청소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성당 화장실은 참 깨끗해!”라고 말했지만 누가 그렇게 깨끗하게 청소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날도 부부는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당을 둘러보던 본당신부님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는 그 부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자 부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희가 이것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 저희는 더 이상 이 봉사를 못 합니다. 못 본 걸로 해 주십시오.”

    그렇게 부부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봉사를 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당은 깨끗해졌습니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 깨끗함과 아름다움이 있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의 희생과 봉사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이 기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봉사로 성장해 나갑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을 전해줍니다. 우리 그렇게 작은 겨자씨가 되어서 하느님 나라를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천들을 하나씩 해 나갑시다.

  2. 관리자 님의 말:

    믿음의 그릇을 키워 가는 하느님 백성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는 커가고 있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삶으로 고백하며,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신앙에 입문한 이들도 어느덧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방문하고, 기쁘게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봉헌합니다. 그렇게 믿음의 씨앗들은 싹이 트고, 풍성한 가지를 드리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나라는 커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가르치실 때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습니다.(마르4,33-34)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친절하게도 비유를 들어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그릇은 그릇의 크기만큼 담아 줄 수 있습니다. 1리터의 그릇에는 많아야 1리터의 기름을 담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상황은 다릅니다. 제자들은 많은 기름을 담아 세상 사람들에게 퍼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릇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따로 일일이 그 뜻을 풀이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고,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 당신 백성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는 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자들의 믿음과 신앙의 그릇이 커지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믿음과 신앙의 그릇이 더 커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주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 마음의 문이 열릴 때 마음이 움직일 수 있고, 마음이 움직일 때 몸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힘들 것입니다.

     

    내 믿음은 보잘 것 없는 겨자씨와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주님께 뿌리 내리고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나는 어느 순간 커다란 나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말씀 안에서 힘을 얻고, 은총의 비를 맞으며, 사랑의 양분을 주님께로부터 받아야만 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주님께 뿌리 내리고,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있는 나는 열매를 맺어야 하고, 내가 맺은 열매로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기뻐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시는 우리 주님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갑시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그 기쁨을 우리 얼굴에 표현해 봅시다. 주일 미사에 기쁘게 참례하고 있는 우리의 기쁨을 온 몸으로 표현해 봅시다. 기도하고 있는 우리의 기쁨,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있는 우리의 기쁨을 온 몸으로 표현해 봅시다. 그렇게 우리 함께 기뻐합시다.

     

  3. 관리자 님의 말: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에 비유하십니다. 이 비유에서 어떤 사람은 바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그가 뿌린 씨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뿌리 내린 곳이 바로 땅입니다. 땅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씨가 땅에 떨어져야 만이 싹을 내는 것처럼, 신앙도 예수님께 뿌리를 내려야 만이 싹을 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면 결코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믿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4,26-27)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은 주님께 뿌리를 내립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그 힘으로 그는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인으로 성장하기에 기도하며 주님 안에 머물고,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며, 온갖 사랑으로 형제자매들을 기쁘게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보며 스스로 놀라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더 확신에 차 기도하며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마르4,28)

    씨가 싹이 트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땅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땅이 주는 양분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땅은 씨를 싹트게 합니다. 목마른 싹을 비가 적셔주고, 태양이 비추어 자라게 하고, 달빛으로 쉬게 합니다. 바람이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구름이 해를 가져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뿌리 내린 신앙인들은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향하게 만들고, 기도하게 만들어주며, 온갖 은사를 풍성히 내려 주시어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게 합니다. 그리고 시련 속에서도 기뻐하며,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 친구가 자신의 젊은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왜 이 젊은 나이에 제 아내를 데려 가십니까? 요즘 평균 연령이 팔십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반도 못살고 가게 하십니까? 어떻게 이리 착하게 살아온 제 아내에게 처절한 고통과 죽음을 주십니까?”

    그러나 그 친구는 슬픔이 눈을 가려 하느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탄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시어 이렇게 멋진 남편을 주셨고, 아이까지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남편을 통해서 돌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계획 앞에 사실 부족한 인간은 어떻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고통 속에서도 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기쁨이 주어졌을 때는 온 몸으로 찬미를 드릴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슬픔 속에서 절망을 움켜잡을 것이 아니라 그 슬픔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마르4,29)

    농부는 곡식이 익으면 곧 낫을 대어 수확합니다. 자신이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자연이 알아서 해 주었습니다. 신앙인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주님의 은총 속에서 기쁘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그렇게 열매를 맺을 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큰 영광을 주십니다. 낫은 심판을 나타내는 표상입니다. 수확 때는 종말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열매 맺는 신앙인으로 자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께 뿌리 내리고, 주님께 온전히 나를 맡겨야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는 나를 통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실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 나라는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분명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나라입니다. 이 하느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함은 분명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나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바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내가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노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쓰실 수 있도록 맡겨 드려야 합니다.

    씨앗의 비유를 들으면서 하느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이끄시어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셨는지를 돌아봅시다. 그리고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는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아봅시다. 그리고 어떻게 주님께 의탁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결심해 봅시다. 분명 예전의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의 모습은 다릅니다. 그리고 나는 내 옆에 있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내가 되어 봅시다.

     

  4. 관리자 님의 말:

    예수 성심 성월

    예수 성심은 예수님의 심장만을 분리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생의 신비와 수난과 죽음, 성체성사 설정 등을 통하여 보여 준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일컫는 것입니다(마태 11:29 참조). 특히 교부들은 예수님의 성심을 사랑과 은총의 샘으로 생각하여 십자가상에서 군사의 창에 찔리어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온 것을(요한 19:34) 천상 보화의 창고에서 무수한 은혜가 쏟아져 나온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예수 성심은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님의 사랑과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느님 은총의 근원이며 사랑의 표현입니다. 또한 인간의 사랑의 응답을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교회는 6월에 특별히 예수님의 성심을 공경하기 위해 예수 성심 성월로 제정하였습니다. 또 예수 성심 대축일을 성대히 기념하고 성시간과 기도회 등 예수성심을 공경하는 신심행사를 통하여 성심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하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인간적 신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예수성심을 공경하고 묵상함으로써 신자들은 기도와 희생, 보속으로 그 사랑에 보답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들의 마음을 예수성심께 일치시킴으로써 신앙생활에 큰 활력을 가져옵니다. 교회는 특별히 성월기도로서 예수성심께 천하 만민을 바치는 기도를 바칠 것을 권장합니다.

  5. 관리자 님의 말:

    예수님의 성심과 우리의 사랑

    교회는 예수님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할 수 있도록 성체성혈 대축일 다음 주의 금요일에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킬 수 있도록 정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성심이 성체성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기에 와서, 이전에 소수의 신비주의자나 성인들에 국한되던 것에 비해 상당히 일반화되었고, 성 요한 에우데스는 예수성심 신심과 그 축일 제정의 신학적이고 전례인 기초를 확립하였습니다. 그리고 16731227, 프랑스 방문회 수녀였던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에게 예수님께서 발현하시어 성심 공경과 성심이 공적으로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마르가리타 마리아는, 교회는 바로 예수 성심이 상징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임을 알리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내세우신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번째 발현에서)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아끼지 않고 마음이 지치고 녹아내릴 정도로 인간을 사랑한 성심을 보라. 그런데 나는 대부분 이 사랑의 성사에서 그들로부터 배은망덕과 냉담과 경멸을 받을 뿐이다. 나는 성체 성사에서 나를 부끄럽게 하는 미지근하고 나태한 마음이 나에게 끼친 손상을 너의 열성으로 보상하도록 내가 너에게 준 마음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축일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1956년 비오 12세는 예수 성심 공경에 관한 회칙을 발표하여 예수성심 공경을 더욱 구체화하였습니다.

     

    성녀 마르가리따 마리아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께서 당신의 성심이 특별한 공경을 받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원하시는 이유는 우리 영혼에서 당신이 얻어 주신 속량의 효과를 새롭게 하시는 데 있다고 봅니다. 성심은 겸손한 이들의 마음을 채우려고만 하시는 고갈됨이 없으신 샘으로서 영혼들이 기꺼이 당신의 선의에 따라 살도록 준비시켜 주십니다. 이 성심에서 세 가닥의 물줄기가 중단 없이 흘러나옵니다. 첫 번째의 물줄기는 죄인들에 대한 자비의 물줄기로서 그들에게 회개와 참회의 영을 흘려 내보내십니다. 두 번째의 물줄기는 온갖 고통을 받는 이와 특히 완덕을 지향하는 이들을 위로해 주는 사랑의 물줄기로서 그들에게 어려움을 이겨낼 도움을 주십니다. 세 번째 물줄기는 주님이 당신과 합일되기를 원하시는 가장 완전한 벗들을 위한 사랑과 빛의 줄기로서 그들에게 당신의 지혜와 욕망을 전달하시어 각자의 고유한 실정에 따라 당신의 영광을 증대시키는 데 그들이 완전히 헌신하게 하십니다. 이 성심은 온갖 선을 담고 있는 심연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과 연합되어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회개로써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이지만 결국에는 거기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기 위함입니다.

     

    예수 성심 성월을 보내고 있는 유월, 우리 함께 주님의 마음을 알아 드리기 위해 노력합시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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