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18주일;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요한6,24-35

 

빵을 배불리 먹은 군중들은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 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6,26)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6,27)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지금까지 내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해 보며, 생명의 양식을 찾아 주님께로 나아가는 내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해 봅시다.

 

1. 예수님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빵을 배불리 먹은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자신들을 구원하실 분, 자신들을 인도하여 잘 살게 해 주실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군중들은 그곳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음을 알고 다시 배를 나누어 타고 카파르나움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서 호수를 건너신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가끔은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욕심을 부려야 예수님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늘 머문다고 착각하면서 실상은 예수님을 찾지 않고, 예수님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예수님을 발견한 군중들은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요한6,25)라고 물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아직 스승님으로, 주님으로 고백하지는 못합니다. “라삐”는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라삐”로 불리시기에는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요?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신데,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신데…, 이들은 아직 예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2. 생명의 빵이심을 밝히시는 예수님

① 군중의 마음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

군중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오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6,26)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왜 당신을 찾아 왔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군중들은 예님께서 빵을 많게 하시는 기적을 보았기에, 그리고 빵을 배불리 먹었기에 예수님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적이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기적임을 알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표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로 나아가고 있으며, 자주 미사에 참례하는 나에게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네가 나를 찾는 것은 ( ) 때문이다.” 한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②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마라.(요한6,27)

예수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6,27)고 말씀을 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과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 빵은 썩어 없어질 양식이지만 성체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배불리 먹이는 빵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는 성체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는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사실 썩어 없어질 양식들은 내가 추구하는 것들 중에서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과 해 보고 싶은 것들 중에는 썩어 없어질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신앙생활을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날이며 산으로 바다로 가려고만 생각하지 말고, 재미있는 유원지를 찾으려고 합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③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

나는 얼마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요한6,27)을 얻으려고 힘쓰고 있는지를 반성해 보아야하고, 하느님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루하루 바쁜 일과에 쫓겨서 생활하다보면 하느님을 잊고 살아갈 때가 있지만,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기억하면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에로 몸과 마음을 돌리게 됩니다. 몸과 마음을 돌리게 되면 영원한 생명은 당연히 내 앞에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당연히 주시기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복음을 실천하는 삶. 그것이 바로 생명의 양식을 얻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양식을 나에게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체를 모시고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잊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주시려 하고, 나는 받지 않으려 합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잊고 살아갑니다. 이 모습이 내 모습이라면 영원한 생명과 나는 관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④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주시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6,27)라는 미래적 표현을 통해서 이 양식은 구원의 선물로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예수님의 몸과 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로 주시기로 이미 결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요한6,27)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셨다는 것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확증해 주셨다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임을 보증한다는 것입니다.

 

⑤ 하느님의 일을 묻는 군중들(요한6,28)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당신이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6,28)하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6,29)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① 사람을 살리는 일 ② 평화를 주고, 기쁨을 주는 일 ③ 배려하고, 나누는 일 ④ 믿고 따라주는 일 등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표징을 요구하는 군중들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알아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유다인들은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께” 오히려 표징을 요구합니다.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요한6,30) 아무리 얘기해도 이들에게는 소용없는 일입니다. 어떤 기적을 보여준다 할지라도 그들은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할 것입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은 아닐까요? 끊임없이 다른 기적들을 찾아 나서고, 내가 만족할 때까지, 내가 인정할 때까지 기적을 요구하는 삶고 있지 않을까요? 내가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려는 마음을 버릴 때, 나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 안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며,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기 위해 주님께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①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하려는 군중들⓿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이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일을 이야기 합니다. 즉 유다인들이 가장 위대하게 생각하는 모세를 내세우며,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한 모세의 기적과 같은 기적을 보여 주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모세가 만나를 내려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려주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르기에 예수님을 모세처럼 그렇게 능력 있는 예언자 중의 하나로 보려 하고, 모세가 행한 것과 같은 비슷한 것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고 전해들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보았다면 그저 믿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말고 모세와 같은 기적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②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하느님 아버지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 주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이심을 알려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예수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요한6,32)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하느님의 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빵이심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나와 하느님의 빵은 비교를 할 수 없는 것이며, 당연히 모세를 예수님께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미사 안에서 늘 예수님의 성체를 모시고, 그 성체로 힘을 얻어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 힘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생명에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생명이 없는 사람의 얼굴은 표시가 납니다. 생명이 없는 사람의 가슴은 온통 다른 것으로 차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없는 사람의 손에는 나눔과 희생이 없습니다.

 

②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6,35).

군중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생명을 주는 그 빵을 늘 달라고 청합니다.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의 빵이심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를 계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의 빵이십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주림과 목마름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아모 8,11)과 은혜(이사55,1-2)및 하느님의 현재함(시편42,3)을 동경하는 것에 대해 자주 상징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일을 하며 예수님을 굳게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수님을 통하여 말씀의 식탁에서 배부를 것이며, 은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게 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풍성한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행복선언에서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마태5,6)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굳게 믿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가난을 감수하고, 고통을 참으며 역경 가운데에서도 인내하는 온유한 사람들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에 따르며, 하느님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성체성사는 한없는 은총과 기쁨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은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두 손을 내밀어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십시다. 마음을 다해 “아멘”하고 응답합시다.

 

4.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께 나는 어떻게 어떤 자세로 향하고 있으며, 얼마나 자주 주님을 모시기를 열망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성체를 모셨을 때의 기쁨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③ 나는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5. 실천사항

① 자주 미사에 참례하여 성체를 모시기

②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알고, 자주 감실 앞으로 나아가기

③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들이 누구인지 알려고 노력하기

 

6.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11-2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나해 연중 제 18주일;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예수님을 찾아 나선 사람들

    빵을 배불리 먹은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자신들을 구원하실 분, 자신들을 인도하여 잘 살게 해 주실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요한6,24). 군중들은 그곳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음을 알고 다시 배를 나누어 타고 카파르나움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서 호수를 건너신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가끔은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욕심을 부려야 예수님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늘 머문다고 착각하면서 실상은 예수님을 찾지 않고, 예수님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발견한 군중들은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요한6,25)라고 물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아직 스승님으로, 주님으로 고백하지는 못합니다. “라삐는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라삐로 불리시기에는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요?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신데,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신데…, 이들은 아직 예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왜 당신을 찾아 왔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시는 기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빵을 배불리 먹었기에 예수님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빵을 배불리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빵을 많게 하신 그 기적이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기적임을 알지 못했기에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표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6,26)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네가 나를 찾는 것은 ( ) 때문이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첫째, 네가 나를 찾은 것은 나에 대한 굳은 믿음 때문이다. 둘째, 네가 나를 찾은 것은 한 주간의 은총에 대한 감사때문이다. 셋째, 네가 나를 찾은 것은 의로운 삶 안에서 오는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은총을 청하기때문이다. 넷째, 네가 나를 찾은 것은 네가 하느님의 참된 자녀요, 신앙의 기쁨을 알기때문이다.” 라고 이렇게 나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말씀 들으려고 더욱 노력해 봅시다.

  2. 관리자 님의 말:

    생명의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빵을 배불리 먹은 군중들은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 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6,26)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6,27)라고 말씀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과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영생을 다르게 만듭니다. 빵은 썩어 없어질 양식이지만 성체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배불리 먹이는 빵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는 성체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는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식을 얻으려고 힘을 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6,27)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얼마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에 힘쓰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미사에 참례하고, 아침저녁 기도를 정성스럽게 바치고 복음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한 주일에 한 번은 복음을 나누며 주님의 말씀이 가정에 깊이 뿌리 내리게 하고 있고, 지금 이 순간 만족을 주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쏟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나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알고 있고, 주님께서 성실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이고, 주님의 성체를 모시고 싶은 열망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 위로와 힘을 얻기 위함입니다.

    내가 레지오를 하는 이유는 생명의 양식을 찾아 힘을 쓰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며 주님께로 나아가기 위함이고, 내가 구역모임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신앙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기뻐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내가 매일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자비의 기도를 바치고, 15기도를 바치고, 9일 기도를 바치고,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성무일도를 하는 이유는 생명의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는 것이며, 주님 앞에 머물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6,27)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주님께서는 주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더욱 힘을 내는 신앙생활을 우리 함께해 나갑시다.

  3. 관리자 님의 말:

    하느님의 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양식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사실 보잘 것 없는 노력에도 예수님께서는 마구마구 퍼 주십니다. 왜냐하면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풍요로움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드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계시다는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과 구원을 베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 앞에 있는 이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6,28)

    예수님께서 그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6,29)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원하십니다. 오롯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이 서로 배려하고 나누며 평화로운 삶을 원하십니다. 그 일을 예수님께서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하나가 될 때,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들과 특별히 다른 것도 없는 존재이고, 나자렛이라는 촌동네에서 태어나셨으며, 특별히 무엇을 배우신 분도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과 치유, 놀라운 가르치심 등에 마음이 흔들리기는 하지만 끝까지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거부하면서 하느님의 일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삶, 형제자매들에게 먼저 손을 내 밀고 기쁘게 다가가는 삶, 형제자매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며 삶으로 신앙의 신비를 보여 주려는 삶, 앞에서 이끄는 이들을 뒤에서 밀어주며 격려해 주고 함께 하는 삶,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삶. 이 삶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삶입니다. 이 삶이 바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내 눈앞에 있고, 내 옆에 있습니다. 이제 마음을 활짝 열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의 일을 기쁘게 해 나가는 내가 되어 봅시다.

  4. 관리자 님의 말: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생명을 주시는 일, 풍요로움과 구원을 체험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하시면서 유다인들의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알아듣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 유다인들은 끊임없이 표징만을 요구하였습니다.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요한6,30)

    유다인들은 수많은 표징을 보았습니다. 하느님이 아니시면 결코 일으키실 수 없는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른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이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일을 이야기 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요한6,31)

    유다인들은 그들이 가장 위대하게 생각하는 모세를 내세우며,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한 모세의 기적과 같은 기적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세가 만나를 내려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려주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기에 예수님을 모세처럼 그렇게 능력 있는 예언자 중의 하나로 보려 하고, 모세가 행한 것과 같은 비슷한 것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고 전해들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 요구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말 중의 하나가 전에는 이렇게 했는데…,”라는 것입니다. 10년 전에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지금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10년 전에 사용하던 컴퓨터를 지금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없습니다. 하기 싫어하는 사람 중에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 중에는 변화를 싫어하고, 자신의 노력이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서 전에는 이렇게 했는데…,” 하면서 불평을 하고, 조건을 내세웁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보았다면 그저 믿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말고 모세와 같은 기적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은 아닐까요? 끊임없이 다른 기적들을 찾아 나서고, 내가 만족할 때까지, 내가 인정할 때까지 기적을 요구하는 삶고 있지 않을까요? 내가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려는 마음을 버릴 때, 나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 안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며,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기 위해 주님께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 준 장본인은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알려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요한6,32)

    하느님께서는 바로 예수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요한6,33)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 생명을 주시는 빵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생명을 주는 그 빵을 늘 달라고 청합니다.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요한6,34)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의 빵이심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를 계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의 빵이십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모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6,35)

    하느님의 일을 하며 예수님을 굳게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수님을 통하여 말씀의 식탁에서 배부를 것이며, 성찬의 식탁에서 생명의 빵을 얻게 됩니다. 또한 주림과 목마름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아모 8,11)과 은혜(이사55,1-2)및 하느님의 현재함(시편42,3)을 동경하는 것에 대해 자주 상징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안에서 충실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며, 하느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이십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알고 있는 우리 모두는 주님의 성체를 모시기 위해 더욱 힘쓰는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표징을 요구하지 말고, 주님께 믿음을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신앙인들은 미사 안에서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고, 예수님의 성체를 모시고 그 성체로 힘을 얻어 살아가게 됩니다. 은총의 호수인 미사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며 굳은 믿음을 주님께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 봅시다.

     

     

  5. 관리자 님의 말:

    영성체

    그리스도인들은 미사에 참례하여 말씀의 식탁에서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 성찬의 전례 안에서 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체를 통하여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며, 모두 함께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셨기에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영성체의 방법으로는 성체(聖體)만 영()하는 것, 성체를 성혈(聖血)로 축성된 포도주에 적셔서 영하는 것, 성체를 영하고 성혈을 마시는 것 성혈만 영하는 것 등의 4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로마 전례에 있어서 사제는 성체와 성혈을 모두 영하고(양형영성체) 신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체만 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형상으로 영성체를 하든지 온전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신다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원칙대로 성체만 영해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영성체를 할 때는 성체 앞에 깊이 인사하고 가장 겸손한 손을 내밉니다. 왼 손을 오른손으로 받치고,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하고 외치면 아멘하고 응답하고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혀로 영성체를 하지 않고 가장 겸손한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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