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성체와 성혈은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성체와 성혈을 상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성체와 성혈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내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던 간에 말입니다.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생명의 빵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밥을 안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신앙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 유다인들의 수군거림
예수님께서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6,41)이라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수군거린 이유는 이렇습니다.
①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그리고 친척들이 누구고…, 즉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참조: 요한6,42)
② 어떻게 사람이 빵이 될 수 있는가? 그것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니 말이 되는가?
수군거린다는 것은 불신으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광야에서 불신과 원망에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성체를 영하는 나의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공기가 눈에 보입니까? 바람이 눈에 보입니까? 하지만 있습니다.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내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믿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2.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요한6,43)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믿지 못하겠거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서라도 믿으면 됩니다. 이해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생활 하는데도 마찬가지 입니다. 혹시 모르는 것이 있다면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오해할 수도 있는 것이고, 내 무지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는 것인데,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수군거려봤자 나오는 것은 헛된 이야기들 뿐 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탈선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말 못할 고민을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상의를 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만그만한 아이들끼리 상담을 해 준다 해도 별로 나아질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잘못된 쪽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상담을 할 때는 나보다 삶의 연륜이 있는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과 해야 합니다.
① 예수님께로 올 수 있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심을 믿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6,44) 사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아버지 하느님의 이끄심입니다. 은총입니다. 즉 원하는 이들에게는 아낌없이 당신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분!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께서 비춰 주시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끌어 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께로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그것은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그 의지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할 때, 하느님께서는 나를 환하게 비추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오는 사람”, 즉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6,44)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방(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책(예수님)을 보려고 하는데, 그 책(예수님)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방문(세례성사)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두우면 문도 못 찾습니다. 또 방이 어두우면 책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하느님 아버지의 이끌어 주심, 비추임)을 켜야 하는데 그 불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비추임입니다.
②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
예수님께로 향하려는 사람들은 아버지 하느님의 비추임을 통하여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요한6,45)라는 예언의 말씀은 나의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은총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고, 기도 중에 응답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고, 주의 깊게 늘 경청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들음을 통해서 “배운 사람”은 삶의 변화가 생겨나고, 하느님의 일을 볼 수 있는 능력과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예수님께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8,27-38절에서 에티오피아의 내시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을 때 필리포스의 도움으로 성경말씀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고, 믿음이 생겨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통해 역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지금도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나를 통해서 형제자매들이 말씀을 듣고 배우고, 믿음이 생겨 주님께로 나아오는 일.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나를 통해서 계속 이루어질 것입니다.
③ 하느님 아버지를 보신 분은 오직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
예수님 말고는 하느님을 두 눈으로 본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오신 예수님만이 아버지 하느님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필립보가 “아버지를 보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라고 하였을 때, “나를 보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생명의 빵으로 힘을 내어 주어진 사명을 열심히 수행한다면, 나는 예수님처럼 그렇게 두 눈으로 하느님 아버지를 뵙게 될 것입니다.
④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시면서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6,47)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 또한 선택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멸망의 길로 들어설지를…, 구원은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과 받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구원에 대한 열망이 있다면 그 선물을 받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열망은 믿음을 생겨나게 하고, 믿음의 눈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게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만이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믿게 됩니다.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아갈 때, 나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⑤ 만나와 생명의 빵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 말씀해 주십니다.“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6,48)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빵”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심을 말씀하십니다. 미사에 참례해서 나는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성체는 나를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그 빵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보려는 마음과, 준비된 마음과, 믿음을 통한 나의 눈은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보게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모르는 유다인들은 과거 이집트를 떠나올 때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만을 생각 합니다. 이런 생각을 예수님께서는 바로잡아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만나와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생명의 빵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만나를 먹은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만나는 육신의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몸은 내 영혼의 음식입니다. 이 빵은 나를 죽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⑥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려 하십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6,51)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당신께서는 “최후의 만찬”과 “수난과 죽음”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고통을 감수인내 하셔야만 하십니다. 예수님의 그 마음을 알아차려야 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피를 마시는 것도 어떤 사람을 잔인하게 살육한다는 뜻을 지닌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잔인한 영화의 대사를 보면 “갈아 마신다.”라는 표현이 “죽여 버리겠다.”라는 의미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분명히 사람 잡아먹는 이야기로 해석하고 즉각 거부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나는 그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하라 하시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면 됩니다. 부족하지만 겸손하게 두 손을 내 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내어 드릴 수 있습니까? 형제자매들을 위해 무엇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까?
③ 내 주변의 형제자매들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내어 드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형제자매들로부터 내가 받고 있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또한 형제자매들의 사랑과 나눔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까?
4. 실천사항
① 성체와 성혈이 “예수님의 몸과 피”임을 굳게 믿고, 미사에 참례하기
② 자주 성체조배하기
③ 나의 소중한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는 내가 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영성체
신자들은 영성체에 앞서 성체를 흠숭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혼과 육신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우선 성체를 영하기 위해선 세례성사를 받은 자로서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하므로 만약 대죄(大罪)를 지었다면 고해성사(告解聖事)를 받아 은총의 지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성체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1코린 11,27-29). 청소년들은 유아세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첫영성체 교육을 통하여 성체성사의 의미를 알려주고, 믿음을 키워 주어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알고 또 믿도록 가르친 후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육신의 준비로, 한 시간 전부터 약과 물을 제외한 음식물을 먹지 않는 공심재(空心齋)를 지켜야 합니다. 신자들은 성체를 영함으로써 영혼의 성장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와의 일치 및 신자들 간의 일치를 이루어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나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헌신케 됩니다.
영성체를 할 때는 영성체 성가를 부르는데, 그리스도의 성찬에 초대받았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성가입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성경에서 발췌된 말씀으로 사제가 영성체를 할 때 영성체송을 신자들이 함께 바친 후, 영성체 성가를 부릅니다. 그리고 영성체송은 최후의 만찬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산으로 올라가시며 찬미의 노래를 불렀던 것을 본뜬 것입니다.(마태 26,30, 마르 14,26). 영성체송은 사제가 영성체할 때 시작하고 신자들이 영성체하는 동안 계속하다가 적당한 때에 끝마치는데, 로마 성가집의 응송이나 시편을 사용하거나 주교단에서 인준한 다른 성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6,48)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살아 있는 빵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빵”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십니다. 미사에 참례해서 나는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성체는 나를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그 빵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느낄 수 있고, 믿어야 합니다. 보려는 마음과, 준비된 마음만 있으면 믿음을 통한 나의 눈은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보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모르는 유다인들은 과거 이집트를 떠나올 때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만을 생각 합니다. 이런 생각을 예수님께서는 바로잡아 주십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요한6,49-50)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만나와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생명의 빵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만나를 먹은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만나는 육신의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몸은 내 영혼의 음식입니다. 이 빵은 나를 죽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6,51)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6,51)는 말씀을 통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최후의 만찬”과 “수난과 죽음”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고통을 감수인내 하셔야만 하십니다. 예수님의 그 마음을 알아차려야 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몸을 먹는 다는 것은 분명 무서운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분명히 사람 잡아먹는 이야기로 해석하고 즉각 거부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나는 그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하라 하시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면 됩니다. 사제를 “그리스도의 몸!” 하고 나에게 오실 때, 부족하지만 겸손하게 “아멘” 하고 두 손을 내 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다인들
성체와 성혈은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성체와 성혈을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체와 성혈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내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던 간에 말입니다.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생명의 빵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밥을 안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신앙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6,41)이라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수군거린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친척들이 누구고…, 즉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참조: 요한6,42)
둘째, 어떻게 사람이 빵이 될 수 있는가? 그것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니 말이 되는가?
수군거린다는 것은 불신으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광야에서 불신과 원망에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공기가 눈에 보입니까? 바람이 눈에 보입니까? 하지만 있습니다.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내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믿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요한6,43)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믿지 못하겠거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서라도 믿으면 됩니다. 이해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생활 하는데도 마찬가지 입니다. 혹시 모르는 것이 있다면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오해할 수도 있는 것이고, 내 무지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는 것인데,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수군거려봤자 나오는 것은 헛된 이야기들 뿐 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심을 믿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6,44)
사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아버지 하느님의 이끄심입니다. 은총입니다. 즉 원하는 이들에게는 아낌없이 당신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분!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께서 비춰 주시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끌어 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께로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그것은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그 의지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할 때, 하느님께서는 나를 환하게 비추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오는 사람”, 즉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6,44)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방(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책(예수님)을 보려고 하는데, 그 책(예수님)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방문(세례성사)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두우면 문도 못 찾습니다. 또 방이 어두우면 책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하느님 아버지의 이끌어 주심, 비추임)을 켜야 하는데 그 불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비추임입니다.
예수님께로 향하려는 사람들은 아버지 하느님의 비추임을 통하여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요한6,45)라는 예언의 말씀은 나의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은총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고, 기도 중에 응답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고, 주의 깊게 늘 경청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들음을 통해서 “배운 사람”은 삶의 변화가 생겨나고, 하느님의 일을 볼 수 있는 능력과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예수님께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요한6,45)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27-38절에서 에티오피아의 내시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을 때 필리포스의 도움으로 성경말씀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고, 믿음이 생겨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통해 역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지금도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나를 통해서 형제자매들이 말씀을 듣고 배우고, 믿음이 생겨 주님께로 나아오는 일.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나를 통해서 계속 이루어질 것입니다.
가끔은 불신의 불이 내 안에서 타오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성실한 신앙인들과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성인전을 읽으면서 성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신의 불이 나를 태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믿음의 불이 나를 타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유다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 중에 내 모습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혹시 발견하였다면 얼른 삶의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주님께로 방향을 돌려 믿음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6,47)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하느님을 압니다. 하느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고, 하느님의 구원을 갈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외아드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펼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을 아시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요한6,46)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하느님을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직접 본 사람은 없습니다. 오로지 아드님이신 예수님만 아버지 하느님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언젠가 필립보가 “아버지를 보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라고 하였을 때, “나를 보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생명의 빵으로 힘을 내어 주어진 사명을 열심히 수행한다면, 예수님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고 하느님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체성사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6,47)
그러므로 나는 선택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구원의 길에서 멀어질 지를…, 구원은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과 받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구원에 대한 열망이 있다면 그 선물을 받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열망은 믿음을 생겨나게 하고, 믿음의 눈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게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만이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믿게 됩니다.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아갈 때, 나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나는 지금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고 있고, 미리 맛보고 있습니다. 그 삶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 안에서 참된 기쁨과 구원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아갑시다. 믿음 안에서 살아갑시다.
당신 자녀를 돌보시는 하느님
아합이 북이스라엘을 통치할 때,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들을 박해하는 아합에게 가뭄을 예언하였습니다. 아합이 보기에는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린 사람은 엘리야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린 사람은 아합과 아합 집안이었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저버렸고, 바알을 따랐기 때문입니다.(1열왕18,17-18)
삼년 째 되던 해에 엘리야 예언자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 450명과 대결을 합니다. 당연히 결과는 엘리야의 승리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마음은 하느님께 돌아섰지만, 아합과 그의 아내 이제벨은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두려운 나머지 일어나 목숨을 구하려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엘리야가 광야의 어느 싸리나무 아래로 들어가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잠이 들었는데, 천사가 나타나 엘리야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하고 말하였습니다. 엘리야가 깨어 보니,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누웠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천사는 다시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그렇게 일어나 먹고 마셨고,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 음식을 내려 엘리야로 하여금 그 음식으로 힘을 내게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예언자가 힘을 내야 하는 이유는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엘리야 예언자는 호렙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살다보면 엘리야 예언자만큼 힘든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자녀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자녀들은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았기에 힘을 냅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엘리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길을 떠났지만 그 길을 주님께서는 인도하셨습니다. 가끔은 힘들고 지칠 때 뒤로 물러나고 도망을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옆에 계시며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자녀들은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두려움과 근심걱정을 바라보지 말고 나를 이끌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주님께서는 늘 응답해 주십니다. 그 곤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갈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우리는 언제나 힘을 내야 하고, 주님께서는 언제나 힘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신 빵을 먹은 엘리야는 호렙으로 가며 가슴에서 이런 탄성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이러한 탄성이 우리의 입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이끌어 주시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