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20주일; 생명의 빵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

(요한 6,51-59)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성체와 성혈. 우리는 그저 감사하며 받아 모실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 받아 모시는 것이 아니라 무상으로,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어떤 때는 아주 성의 없이 받아 모시고, 교만하게 받아 모시기도 합니다. 성체와 성혈은 상징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며,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물게 됩니다.

 

①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살아 있는 빵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 있는 빵(요한6,51)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그 빵으로 힘을 얻어 구원을 향해 한발자국씩 나아갑니다. 성체로 힘을 얻은 신앙인들은 그렇게 생명을 향해,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6,51)

 

② 유다인들 사이의 말다툼

예수님께서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심을 말씀하시자,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뭔가를 보여주면 믿겠다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 왔는데,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의 불신을 드러냅니다. 또 피를 마신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 금지되어 있었고(창세 9,4;신명12,16), 더 나아가 사람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살을 먹는 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결국 그를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 다투어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살을 먹는 다는 것은 전적으로 어느 한 대상 즉, “어느 사람을 거슬러 비방하는”(시편 27,2) 것이거나 또는 그 대상을 파멸시키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피를 마시는 것도 어떤 사람을 잔인하게 살육한다는 뜻을 지닌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잔인한 영화의 대사를 보면 “갈아 마신다.”라는 표현이 “죽여 버리겠다.”라는 의미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분명히 사람 잡아먹는 이야기로 해석하고 즉각 거부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유대인이었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래서 그들의 대표로서 한마디 해야 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나 또한 그들의 이해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웠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려운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야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다보니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생명을 주는 빵이 바로 예수님의 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놀랄 만도 합니다. 내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더 나아가 내가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예수님의 몸임을 굳게 믿고서 모시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오늘 불신의 모습을 보이는 유다인들과 같은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③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6,53)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너무도 당연하고, 너무도 분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살과 피는 바로 성체입니다.

 

1264년 독일 신부님 하나가 로마를 순례하던 중, 「보르세나」에 들러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과연 밀떡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 걸까? 계시지도 않는 예수님을 계신다고 생각하며 헛수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의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사를 거행하는 중에 갑자기 밀떡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밀떡이 살덩어리로 변하는가 하면, 포도주 잔에 있던 포도주가 피가 되어 잔에 흘러넘쳤습니다. 당시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이 사건을 기념하여 교회 축일로 지정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6,54)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심으로써 세상에 생명을 주시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바로 성체와 성혈입니다.

 

④ 합당한 준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합당한 예복(혼인잔치의 비유)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장례미사 때 듣는 말씀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예수님처럼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체로 힘을 얻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체를 힘을 내서 예수님께로 나아갈 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어린 아이들에게 돈을 주어서는 안 됩니까?”라는 질문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가 돈의 가치를 알지도 못할 뿐더러, 쓸 줄도 모릅니다. 용돈을 주기 시작하는 것도,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돈을 쓸 줄도 알아야 주지 않습니까?

 

⑤ 참된 양식이고 참된 음료인 예수님의 몸과 피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고,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요한6,56)입니다. 참된 양식은 육신의 배고픔만이 아니라 영혼을 굶주림을 없애주고, 참된 음료는 육신의 갈증만이 아니라 영혼의 갈증을 없애 줍니다. 성체와 성혈이 바로 참된 양식이며 참된 음료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결코 상징이 아닙니다.

 

⑥ 영성체는 주님과 하나 되는 것

예수님께서는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6,56)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 피를 마시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그리스도 또한 그 사람 안에 머무십니다. 그리스도를 영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 채워지고, 그분에게서 샘솟는 생명의 물을 풍요롭게 마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자녀 옆에 늘 부모님께서 계신 것처럼, 성체를 영한 사람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그리고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시는 이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고, 예수님과 지속적인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어렵게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죽음으로 나오게 된 “보상금(위로금)”으로 작은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일구어서 두 가족이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외아들은 어머니의 마음대로 커 주지 않았습니다. 삐딱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들은 어머니 몰래 작은 밭을 팔았습니다. 도박 빚 때문에 밭을 몰래 팔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그 밭이 어떤 밭인데, 그 밭은 네 애비 피여! 그 밭이 바로 네 애비 몸이란 말여! 어떻게 그것을 팔수가 있냐! 이놈아!~”

 

아버지의 목숨이 밭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머니가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아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던 아들은 그 밭이 그저 밭일 뿐 이었던 것입니다.

 

성체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빵과 포도주만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이 없다면 밀떡과 포도주밖에는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신앙의 눈이 없기에, 기도하지 않기에 성체를 모시고도 주님 안에 머물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요한6,57)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성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오신 주님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일을 하실 수 있던 힘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힘은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체를 영한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갑니다. 그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어린아이와 씨름을 하면 매번 패하는 천하장사와도 같은 것입니다. 자신이 병아리인줄 알고 독수리를 두려워하고 있는 새기 독수리와도 같습니다.

 

⑦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요한6,58)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만나는 육신을 위한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신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총지위에서 성체를 받아 모시고, 성체를 모신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삶은 예수님 안에서의 삶이고, 예수님과 하나 되는 삶입니다. 성체를 모신 나의 삶은 예수님을 보여주는 삶입니다. 받은 은총에 감사하며,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며, 참된 나눔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기쁨이고, 이 기쁨 안에서 살아 갈 때, 주님께서는 한생을 성체를 모신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임을 알고 있고, 또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11-2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나해 연중 제 20주일; 생명의 빵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내 아이의 영성체

    어느날 베드로 형제가 학생미사에 참례하여 아들 요한이 어떻게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미사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고, 독서와 복음이 선포될 때는 옆에 있는 친구들과 장난을 하였습니다. 또 영성체를 하고서도 친구들과 장난하며 진지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형제는 아이니까 그렇겠지. 미사에 참례하는 것만도 어디야!”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도 학생미사에서 그렇게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베드로 형제는 요한이가 미사에는 참례하고 있으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 형제는 이 문제를 아내와 함께 상의했습니다. 그리고 미사의 중요성을 알려 주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베드로 형제는 아들 요한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내와만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한이가 말을 걸면 듣는 척만 하고, 대꾸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요한이는 시무룩해지고,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는 드디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베드로 형제는 요한에게 모르는 척 물었습니다.

    우리 아들! 왜 우니?”

    그러자 요한이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마치 내가 없는 사람처럼 대하잖아. 내가 뭘 잘못했다고.”

    베드로 형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엄마 아빠는 너와 함께 이 식탁에 함께 앉아 있잖아.”

    그러나 요한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말했습니다.

    함께 앉아 있으면 뭐해! 나랑 얘기도 하지 않는 걸.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걸. 내 얘기에 관심도 없는 걸.”

    그러자 베드로 형제는 요한이를 껴안아주며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요한이를 쳐다보지 않고, 요한이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으니까 슬프지? 엄마 아빠는 요한이의 슬픔을 통해서 예수님의 슬픔을 요한이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었단다. 오늘 요한이는 미사에 참례해서 예수님을 바라보았니?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니?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시고 감사 드렸니? 아마 예수님께서도 슬프실 거야. 오늘 미사에 참례하는 요한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엄마 아빠는 이것을 이야기 해 주고 싶어서 오늘 식탁에서 요한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란다.”

    요한이는 용서를 청했습니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제가 아직 미사가 뭔지 몰라요. 말씀을 듣는 것 보다는 친구랑 얘기하는 것이 더 좋아요. 하지만 오늘 이 시간부터는 미사에 참례하면 예수님만 바라볼게요. 예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 않을께요.”

    그러자 엄마도 아들을 안아주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얘야! 너는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란다. 그러니 우리는 특히 미사에 참례할 때는 예수님께 특별히 감사를 드려야 한단다.”

     

    요한이는 엄마 품에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엄마! 앞으로는 그렇게 할께요. 예수님께 감사 드릴께요.”

     

     

  2. 관리자 님의 말:

    빵이 된다는 것

    성찬의 전례중에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됩니다. 그리고 이 누룩 없는 빵을 제병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보통 가르멜 수도원에서 제병을 만들어 각 본당에 제공하기에 제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예전에는 제병을 만드는 틀을 이용해서 성당에서 복사님들이 만들었습니다. 성당에서 제병을 만들 때, 제병을 굽고 남은 것을 아이들이 옆에 앉아서 얻어먹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가르멜 수도원에 미사를 가면 수녀님들이 제병을 만들고 남은 조각들을 가지고 빵을 만들어서 주시기도 합니다.

    제병을 만들기 위해서는 밀이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가루가 된 밀이 물과 혼합되어 밀가루 반죽이 됩니다. 제병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곱게 부서지지 않는다면 결코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과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믿는 모든 이들이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17,2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것처럼 나도 내 것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밀가루가 물과 섞여서 하나가 되듯이 그렇게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밀가루가 물을 받아들여야 만이 다른 밀가루와 일치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만이 형제자매들과 일치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밀가루 반죽은 제병틀에 담겨서 열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 강한 열이 가해지면 빵이 타 버리고, 너무 약한 불은 빵을 만들지 못합니다. 적당한 온도의 열이 반죽에 가해질 때 맛있는 빵이 됩니다. 밀가루 반죽은 반드시 열을 만나야만이 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맛있는 빵이 되어 형제자매들에게 나를 내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 향한 열정이 나를 불사를 때, 나는 향기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빵은 제병 모양으로 찍어서 성합에 담아 미사 중에 성체로 축성을 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시게 됩니다.

    빵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내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빵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힘을 얻었다면 그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 힘은 형제자매들과 일치함을 통해서 발휘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나를 내어 놓고 형제자매들과 맞출 수 있어야 하니 겸손과 비움을 통해서 형제자매들과 일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치할 때 밀가루가 빵으로 변화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향기나는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 향한 열정이 나를 불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향한 열정을 불태울 때, 나는 향기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그렇게 살아갑시다.

     

  3. 관리자 님의 말:

    성체를 모시기 위한 준비: 은총지위, 공복제

    성체를 모시기 위해서는 영적인 준비와 육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영적인 준비는 은총지위에 있는 것으로서 회개와 감사를 통하여 내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성체를 영하기 전에 나는 내 삶을 반성해야 합니다(성찰). 또한 고백성사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회개). 회개한 영혼은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마음으로 성체를 감사히 받아 모십니다.

    그리고 육적인 준비로는 성체를 모시기 한 시간 전부터는 공복재(空腹齋)를 지켜야 합니다. 공복제는 영성체 하기 전에 한시간 전부터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미사에 참여하기 전에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환자가 약을 먹는 경우나 목이 말라 물을 마시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영적인 준비와 육적인 준비는 모두 중요합니다. 육적인 준비가 되어야 만이 영적인 준비가 되고, 영적인 준비가 되어야 만이 육적인 준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준비된 모습은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자세로 드러납니다. 경건한 모습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영적인 준비와 육적인 준비를 잘 하고 있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경건하게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성사로 힘을 얻어 사랑과 나눔과 일치의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됩시다.

  4. 관리자 님의 말:

    1. 성시간

    성시간(聖時間)은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의 하나로 한 시간 동안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그분과 함께 하는 시간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마태 26,40)라고 하신 성경 말씀에 근거합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전 겟세마니에서 피땀 흘리시며 고통 중에 기도하시던 예수님과 함께 한 시간 깨어 기도하며 희생을 바치는 것입니다. 상처받으신 예수 성심과 마음을 같아 하면서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회심과 구원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며 보속을 바치는 것입니다.

     

    성시간 신심은 예수 성심 신심과 관련이 깊습니다. 예수 성심 신심의 주제는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기억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핵심은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입니다. 예수 성심 신심은 성 베르나르도(1090-1153)의 그리스도 수난에 대한 신심을 시작으로 13세기 프란치스코 회원들에 의해 대중적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16세기에 이르러 예수회 회원들이 이 신심을 열심히 전파함으로써 완덕에 대한 열망이 예수님의 내적인 삶, 즉 성심에 대한 공경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녀 말가리다 알라콕(1647-1690)은 자신이 체험한 환시로 이 신심이 광범위하게 전파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167312월부터 1675년 중반까지 말가리다 알라꼭 수녀는 예수그리스도의 발현을 보았는데, 그때에 여러 차례 인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성심을 드러내시면서 사람들이 그분의 인류구원의 고통에 동참하는 기도의 시간을 가질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구체적인 메시지(내용)는 목요일과 금요일 사이에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기도할 것(성시간)과 매월 첫 금요일에 영성체할 것(그 당시엔 매일 영성체하지 못했음, 조심스럽게 본당신부나 지도신부의 권고와 지도에 따라 철저히 준비하여 영성체했음) 등이었습니다.

    말가리다 수녀는 당시 고해 사제 및 지도사제들에게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 후 성시간 신심이 시작되어 계속 전파되었습니다. 뒷날 교황 비오 8(1829-1830)는 성시간 신심을 실천할 경우 전대사를 받도록 인준했습니다. 그 후 근 200년 동안 우리 교회에서는 교황님들의 권면과 함께 성시간을 매월 첫 목요일이나 첫 금요일에 실천하였습니다.

    본래 성체 현시와 분향 후 말씀의 전례와 함께 독서 복음을 봉독한 후 강론을 하고 묵상하고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예수성심께 천하 만민을 위해 바치는 기도등을 드리고 성체 강복으로 끝냅니다. 교회의 전통에 따라 미사, 영성체 및 성시간에 참여하면 전 대사 받을 수 있습니다.

     

    2. 성체조배

    성체조배란 성체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성체 앞에서 특별한 존경을 바치는 신심행위로서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자주 성당에 와서 감실에 모셔진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성체조배를 함으로써 성체에 현존하는 그리스도께 흠숭(欽崇)과 사랑을 표현하고 성체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3.성체현시와 성체강복

    가톨릭 교회는 초대 교회 공동체 때부터 전례 생활의 중심으로 성체성사를 중요시하였습니다. 이 전례는 언제나 사제의 강복으로 끝났는데, 이는 혹독한 박해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자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을 나누어 준 것입니다.

    성체강복은 성체를 현시하여 신자들이 조배하게 하고 사제가 성체로써 강복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성체 현시나 성체 조배와 병행하여 거행하는 예식입니다. 14세기 초에 최초로 증언되고 있는 성체 강복 예식은 성체 축일에 행한 행렬에서 기원합니다. 공동체가 함께 모여 사제가 성체를 성광에 모셔 분향하고 성가와 장엄 기도로써 성체께 특별한 찬미와 공경을 드리고 이 성체로 강복을 받았습니다. 성체강복은 축일과 주일, 사순절, 피정, 40시간의 성체조배 중에 행해지며, 각 주교들이 지정한 다른 날에도 행해집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통적 의식이 단순화되고, 신자들이 좀 더 주의 깊게 성체를 조배할 수 있도록 기도와 성가, 낭독 등의 다양한 방법들이 허용되었습니다.

     

    4. 성체거동

    성체거동은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성광에 모시고 함께 행렬을 하며 모든 이에게 복을 빌어주고, 모든 이가 복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성체거동을 통하여 신자들에게는 성체신심을 북돋우고,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큰 힘을 줍니다.

    신앙인들은 성체 안에서 가장 큰 힘과 위로를 받습니다. 그 성체를 모시고 행렬하는 신앙인들은 세상의 유혹과 당당히 싸워 이기고 개선하는 용사들과 같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성체를 모시고 세상의 유혹과 훌륭히 싸우며 주님 앞으로 나아감을 다짐하게 하고자 성체거동을 합니다. 성체거동은 마지막에 성체강복으로 이어집니다.

     

  5. 관리자 님의 말: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몸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 있는 빵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그 빵으로 힘을 얻어 구원을 향해 한발자국씩 나아갑니다. 성체로 힘을 얻은 신앙인들은 그렇게 생명을 향해,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6,51)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빵은 바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살입니다.(요한6,51)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6,52) 유다인들은 불신의 도를 넘어서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피를 마신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 금지되어 있었고(창세 9,4;신명12,16), 더 나아가 사람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살을 먹는 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결국 그를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 다투어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유다인이었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래서 그들의 대표로서 한마디 해야 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나 또한 그들의 이해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웠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려운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야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다보니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생명을 주는 빵이 바로 예수님의 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놀랄 만도 합니다. 내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예수님의 몸임을 믿지 못한다면 불신의 모습을 보이는 유다인들과 같은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6,53)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살과 피는 바로 성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먹도록 내어주는 이 빵은 바로 예수님 자신의 몸으로써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6,54)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그 살과 피가 바로 성체와 성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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