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21주일;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심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 저 사람 혹시 미친 사람 아닌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생명을 얻고 싶으면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된다고 되풀이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떠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내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고백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 사도처럼 고백을 해야 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주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① 예수님을 떠나려는 사람들: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에 관하여 하신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하며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6,60)하면서 투덜거렸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그들은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둘.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까지 하고 있습니다.

셋. 그들은 예수님을 모세보다 못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며, 자신들의 수준으로 예수님을 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오늘의 나의 모습입니다. 나는 성체 성사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요, 하느님이심을 확고하게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확신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하는 척,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척 하고 있는 모습이 내 모습일 수 있습니다.

 

복잡한 기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의 사용 방법을 알고 나면 얼마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지 그는 모릅니다. 자신의 머리를 탓하지 않고 기계를 탓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해서 그 말씀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해서 하느님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②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요한6,61)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믿지 못하고 투덜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그들은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들어도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진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귀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요한6,61)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숨은 생각까지도 보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생명의 양식이심을 고백하기를 거부하고,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③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한 질문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요한6,62)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지 못하는 이들이 부활과 승천을 체험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체험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 믿겠소.”라고 말할까요? 그래서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반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④ 영과 육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시면서 육적인 생각이 아니라 영적인 생각을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요한6,62)는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이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는 이들입니다.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기에 눈앞에 펼쳐진 하느님의 구원을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지혜와 자신의 지식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이해하려 한다면 결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기에 생명으로부터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로 내어주실 당신의 몸과 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듣는 청중들은 그것을 육적인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주시는 성체(살과 피)는 나의 살과 피와 전혀 다릅니다. 성분은 같지만 서로 다른 흑연과 다이아몬드처럼 그렇게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이해할 수 있고,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⑤ 알고 계신 예수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요한6,64)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과 육적인 삶은 다릅니다. 그래서 삶이 다르기에 표현되는 것도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요한6,64)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들의 내면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행동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삶의 발자국들은 믿음의 발자국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내딛고 있는 곳에 자신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행동은 믿음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아니면 불신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적인 것에 의해 판단하거나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생각하며 영적인 것에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불신의 마음이 믿음의 마음으로 바뀌고, 여러갈래로 갈라지는 마음들이 주님을 향해 하나로 합쳐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⑥ 예수님께로 올 수 있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요한6,65)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과 허락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누구는 허락하셨기에 예수님을 따를 수 있고, 누구는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면 결국 내가 예수님을 안 따르고 있는 것은 하느님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무리 아버지가 엄하시다 하더라도 자녀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할 때 끝까지 말리시지는 않습니다. 나중에는 잘 해보라고 격려를 해주십니다. 부르심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할 때(사제나 수도자, 평신도, 기타 성소) 그분께서는 말리지 않으십니다. “그래? 그럼 한번 열심히 해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마음이 있다면 그분께서는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허락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믿음의 생활을 하고 싶어 할 때 하느님께서는 힘을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내가 온전히 나를 맡기고 믿음의 은혜를 찾으려 한다면 아버지께서는 나를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허락은 나의 마음을 전제로 합니다. 억지로 끌고가시지는 않으시는 분,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끝까지 존중해 주시는 분, 그분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마음만 있다면 예수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만 있다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것이며, 마음이 없기 때문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것입니다.

 

⑦ 떠나가는 제자들(요한6,66)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던 그 자체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셨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들은 떠나면서 예수님을 탓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의 무딘 마음과 어리석은 머리를 탓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성당을 떠날 때는 하느님 때문에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 떠납니다. 알아주지 않아서 떠나고, 상처받았다고 떠나고, 다른 일이 바쁘다고 떠나고…, 결국 하느님 때문에 성당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 성당을 떠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⑧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6,67)

이렇게 제자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6,67)하고 물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무엇을 버리고 따랐는지 모르겠지만, 이 열 두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돌아갈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없어야 합니다.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 이후에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고, 주님을 결코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⑨ 베드로 사도의 고백 (요한6,68-69)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6,67)라고 물으셨을 때, 슬펐을 것입니다.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 사도는 멋진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6,68)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지셨는데,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자신만이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님을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6,69)라는 말씀을 통해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만 되면 주님을 떠나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을 체험한 제자들이 이렇게 변화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결국 성당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나 또한 예수님을 굳게 믿고 예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떠나려는 사람들은 표시가 납니다. ① 신앙생활에 관심이 없습니다. ② 의무적으로 주일을 지킵니다. ③ 봉사에는 관심이 없고 말이 많습니다. ④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⑤ 성경 읽기를 소홀히 하고 미사 올 때 성경을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⑥ 고백성사 보기를 꺼려합니다. ⑦ 참 많은 핑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다면 알고 있는 대로, 믿고 있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더더욱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떠나려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어 주님께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우리가 생명의 양식인 주님을 두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신앙생활을 하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공동체를 떠나려고 생각했던 적은 없습니까?

 

③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육적인 것에 마음을 두는 사람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이렇게 베드로 사도처럼 고백하기 위해서는 주님 안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주님을 어떻게 알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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