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24주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1. 말씀읽기: 마르 8,27-35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다 (마태 16,13-20 ; 루카 9,18-21)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다 (마태 16,21-23 ; 루카 9,22-22)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마태 16,24-28 ; 루카 9,23-27)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군중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게 된 이들은 예수님께서 특별하신 분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의 사명을 가지고 온 이”임을 모르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예수님의 참된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제자들에게 “메시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인간적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의 고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깊이 묵상해 봅시다.

 

2.1.“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8,27)

예수님께서는 카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마을들을 향하여 가시다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8,27)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치유와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특별한 분으로 고백하고 있었고, 마귀들은 쫓겨나면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당신이 힘으로 세상을 바꿀 정치적인 메시아로 드러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베푸시고도 치유 받은 이들에게 침묵을 요구하였고, 마귀들도 입을 다물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셨습니다.

 

① 군중들의 생각

제자들은 자신들이 들었던 이야기를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이는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참조: 마르8,28).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저분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나신 분이시다! 저분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시기 위해 오신 엘리야이시다! 저렇게 능력을 보이시니 저분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시다!”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임을 모르는 군중들은 메시아보다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 못합니다. 엘리야는 벌써 왔습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세례자 요한이 벌써 와서 길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틀에 사로 잡혀 있으면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합니다.

 

②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8,29)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의 이런 저런 견해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8,29)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의 생각보다는 제자들의 생각을 더 궁금하게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부르셨고, 이제 예수님의 일을 해야 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고 있는 제자들의 생각입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③ 베드로 사도의 고백 –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8,30).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스승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마르8,30)라고 명료하고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베드로 사도의 대답일 뿐만 아니라 제자들 모두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가 고백한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말 안에는 아직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담겨있지는 않습니다.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 이후에야 비로소 온전하게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들이 바라는 것들을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님의 일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뿔뿔이 흩어졌던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주님! 저는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제 삶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주어지면 겟세마니 동산에서 제자들이 도망쳤던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께로부터 도망치기도 합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갈등의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그리고 입으로만 “주님! 주님!”하지 말고, 삶으로 보여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인사하고, 서운해도 한 번 참고, 욕심 부리지 않고, 형제자매들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 밀어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주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메시아이심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십니다.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마르8,30)고 엄중히 이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나 세상의 왕들처럼 인간적인 영화를 누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고난과 죽음을 받으실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당신께서 누구이신지가 명확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2.2.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많은 고난을 겪고, 죽음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마르8,31)고 말씀하시면서 메시아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사흘” 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짧은 기간의 고난과 시련을 표현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 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그분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호세아6,1) 또한 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의인은 죽어서 삼일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① 베드로 사도의 인간적인 사랑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사도는 예수님을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뜁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스승이 그렇게 죽는 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자신이 막고자 할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 사도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걸었던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신다면 모든 기대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니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② 베드로를 꾸짖으시는 예수님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8,33)하고 꾸짖으십니다. 아마 모두가 놀랐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도 베드로의 마음과 똑같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하셨을까요? 베드로 사도의 사랑은 예수님을 괴로운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에서 멀리 하게 하려는 유혹으로 예수님께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베드로는 사탄이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단호하게 사탄을 물리치신 것처럼, 가장 가까운 제자의 달콤한 말도 단호하게 물리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처럼 단호하게 “사탄아 물러가라!”하면서 물리치던지, 요셉이 포티파르의 아내에게서 도망치듯 그렇게 냅다 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혹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그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맙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끔은 내 눈으로 보기에도, 내 생각에도 “이건 아닌데…,”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나를 유혹하여 아닌 것을 옳게 보게 하고, 옳은 것을 틀리게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단호하지 않으면 결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냅다 튀지 않으면 결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의 인간적인 위로에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 또한 유혹이 밀려올 때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단호하게 말하고, 냅다 튀어야 합니다.

 

2.3.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 – 버림과 십자가를 짊어 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8,34)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고, 마침내 나 자신도 그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데 있어서 많은 분심이 있고, 많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기쁘게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데 장애되는 나 자신의 욕심이나 이기심, 아집 등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때, 나는 주님 안에서 주님을 따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제자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음의 형틀인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죽음을 맞이하러 처형장으로 나서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광경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모든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고, 온갖 조롱과 모욕 속에서도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4.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

예수님께서는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8,35)고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자기 목숨을 구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기 영혼을 구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 놓아야 합니다. 그릇에 담긴 물을 쏟아야 신선한 물을 다시 담을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비울 때, 주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넘치도록 후하게 채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비우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그래서 하느님께 등을 돌린 사람들은 결국에는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현세의 삶을 살아가면서 나보다는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장애되는 것을 하나씩 극복해 나간다면 결국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나약함이나 인간적인 사랑들이 마치 그것이 하느님의 일이라고 착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버리고, 잡을 것은 잡고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기쁜 마음으로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나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나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더욱 기뻐하시게 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을 합니다. 나 또한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나의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자신을 버리고 내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는 삶입니까?

 

③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시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4. 알림

①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이끄실 수 있도록 나를 맡겨 드리기

② 주님을 따르는데 장애되는 것들 5가지 버려보기

③ 예수님께 상을 받기 위하여 더욱 노력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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