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27주일; 혼인과 이혼


혼인과 이혼

1. 말씀읽기: 마르10,2-16 혼인과 이혼 (마태 19,1-9 ; 루카 16,18-18)

2. 말씀연구

살다보면 서로 싸우는 일도 있습니다. 정말 미운일도 있고, 그 때문에 내가 구속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감정이 상했을 때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살다보면 서로가 할 이야기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들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전과 같아 집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노력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이 갈등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서로가 성격이 다르다고 하여 이혼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지금 미워하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그전에 내가 그렇게 좋아서 쫓아다닌 그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내 옆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봅시다.

 

2.1.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바리사이들

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빕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군중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함정을 파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10,2)라는 주제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합니다. 버릴 수 없다고 한다면 첫째로 모세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모세를 존경하는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등을 돌릴 것입니다. 그리고 버릴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조강지처를 쫓아내고 그 대신 이복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이한 헤로데를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것이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가 목숨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흥미를 가지고 바라보았을 것이고,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의도를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버려도 된다.”고 말씀하신다면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였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하면서 군중은 예수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②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명령했는지 물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다른 말씀을 하실 분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일렀느냐?”(마르10,3) 하고 반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가르침을 몰라서 그렇게 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너희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가르쳤으니 자신들은 그대로 하고 있으니, 그들의 굳은 마음을 돌아보게 하시기 위해 질문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그랬을까요? 신명기 24,1-4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 율법에 따라 아내에게서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한 남편은 그 여인을 쫓아내기 전에 이혼장을 써 주어야만 했습니다. 이 이혼은 쫓겨난 여인 편에서 보면, 자기가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과 재혼을 하기 위하여 필요했던 양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쫓겨난 아내는 재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쫓아 낸 남편은 그 여인이 두 번째 남편에게도 이혼을 당하든가 사별하는 경우에도 다시금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혼의 구실이 되어 있던, “아내에게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이란 성경에서는 확실히 또 오직 하나 아내의 불륜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만일 무엇인가 아내에게 비난받을 중대한 일이 남편 쪽에 있다면 이혼을 할 권리를 잃게 되었습니다(신명22,13-19.28-29). 그리고 유배 이후의 유다인의 성서문학은 혼인을 맺으면 풀 수 없다는 데로 기울고 있었습니다(말라키2,14-16;잠언31,10-31).

 

③ 유다인들의 마음이 완고함을 지적하시는 예수님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과 굳은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마르10,5)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모세의 율법은 유다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하나의 특권이 아닙니다. 모세는 그들의 고집 센 기질, 굳어진 마음, 너그러움이 모자라기 때문에 허용하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혼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해야 했지만 종살이 하던 민족이었기에 그들의 윤리의식을 끌어 높이는 데는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의 인권을 위해서 이혼을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④ 일부일처와 혼인의 불가해소성

하느님께서는 한 처음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들어 이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혼인제도를 마련하셨습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 가정을 이룹니다. 이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묵어 주신 것을 사람이 풀 수 없고, 사람이 갈라놓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혼인의 불가해소성, 참조: 마르10,6-9).

 

⑤ 이혼과 재혼은 간음을 하는 것

제자들이 혼인과 이혼에 대해서 예수님께 다시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마르10,11-12)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잘못된 이혼 관습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남편은 이혼장을 쓸 수 없습니다. 만일 이혼장을 쓰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면 전처의 권리가 아직 성립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간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혼뿐 아니라 일부다처제까지도 금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것도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에서는 여자에게도 남편과 이혼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풍속이 문란해짐에 따라 여자도 곧잘 이 권리를 행사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떻습니까? 서로가 신뢰를 지키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갈라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이혼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남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해야 합니다.

 

2.2.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

① 제자들의 반응

한참 중요한 것을 하고 있을 때 누가 끼어들면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께로부터 이혼에 대해서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강복을 청합니다. 대화가 단절되니 제자들은 신경질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 편에서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아이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②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그런 모습을 보시고 언짢아하십니다. 예수님께 청하는 이를 외면하신 적이 한번도 없으셨고, 제자들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10,14)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깨끗한 마음과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하느님께 온전한 신뢰심을 가진 이들에게 하늘 나라는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

 

③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10,15)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선물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당연히 얻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어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선물입니다. 선물이라면 다 무엇이나 솔직하고, 신뢰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선물을 주는 사람도 행복해 하고, 선물을 받는 사람도 행복해 집니다. “뭘 이런 것을 주나~”하고 투덜거리면서 선물을 받는다면 그는 선물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작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를 현세에서 맛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세에서는 더욱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서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 그 삶이 바로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④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십니다(마르10,16). 아버지가 선물을 주면 고마워서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하는 아이들, 작은 것 하나에도 만족할 줄 알고, 또 그것을 친구들과 나눌 줄 아는 아이들. 의심하지 않고, 누구를 못살게 굴거나 음모를 꾸미지 못하는 아이들. 예수님께서는 그런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모든 것들이 편안해 보입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나는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향하고 있습니까?

 

혼인성사(혼배성사)

1. 혼인성사란?

혼인 성사는 그리스도인 남녀가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자유로운 계약을 맺고 결합하여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성사입니다. 혼인의 목적은 부부가 사랑하고 일치하고, 그 사랑의 열매인 자녀를 낳아 기르기 위한 것입니다. 혼인의 특성은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입니다. 단일성은 일부일처제가 아닌 어떠한 형태의 혼인도 배격한다는 것이며, 혼인의 불가해소성은 하느님께서 묶어 주셨기에 인간이 풀 수 없다는 것, 즉 이혼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혼인성사는 세례성사를 받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이루는 성사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혼인 생활은 성사 생활입니다. 혼인성사는 다른 성사와는 달리 부부 스스로 성사를 이루게 합니다. 그런데 두 신자의 혼인이 교회에서 인정하는 유효하고 합법적인 성사가 되려면, 성직자와 2명 이상의 증인들 앞에서, 그리고 자유로이 혼인 합의를 표명해야 합니다.

 

2. 교회의 규정

신자가 교회의 혼인 예식을 따르지 않고 혼인하거나 교회의 허락(관면)없이 비신자, 또는 타종교인과 혼인을 한다면, 교회법상 혼인 장애(조당)에 놓이게 됩니다. 혼인 장애의 상태에 놓인 이들은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지만 성사 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비신자와 혼인하려는 신자는 혼인한 다음에도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고, 태어날 자녀에게 천주교 신앙을 교육시키겠다는 서약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관면혼배라고 합니다.

 

3. 혼인성사 전에 지켜야 할 절차

① 가나 혼인 강좌

혼인성사를 받고자 하는 젊은 예비 부부는 먼저 교회에서 실시하는 가나 혼인강좌를 이수해야 합니다. 가나 혼인강좌에서는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 혼인강좌를 통해 젊은 예비 부부는 자신들의 혼인생활을 미리 설계하고, 서로가 서로를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② 혼인 신청서 작성

혼인을 하기로 결정하였으면 당사자들은 본당신부님께 가서 혼인 신청서를 작성하여야 합니다. 혼인 신청서는 한 달 전에 제출하는 것이 좋고 늦어도 15일 전에는 제출해야 혼인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본당신부님과 함께 혼인 일자, 장소, 예식방법, 혼인문서의 작성 일자 등에 대해서 의논하고 정해야 합니다.

 

③ 혼인 문서 작성 시 준비물

혼인 당사자들은 각자의 세례 증명서와 가족관계 증명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세례 증명서는 세례 받은 본당에서 발급해 주는데, 사무실에 자신이 세례 받은 본당을 알려주면 사무실에서 처리해 줍니다. 또한 가족관계 증명서는 발행된 지 6개월 이내의 것을 제출해야 합니다. 가족관계 증명서를 통해 당사자의 민법상 혼인장애 유무와 생년월일, 성명 등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④ 혼인 문서 작성

본당 신부님과 정해진 날짜에 예비 신랑 신부는 혼인문서를 작성합니다. 이 혼인이 자신들의 자유로운 의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모든 이들의 축복속에서 거행되는 것임을 확인하게 하고, 혼인 당사자들의 교회법과 민법에 정해진 장애의 유무를 확인하며, 혼인의 의미, 혼인의 목적과 특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교육받게 됩니다. 이 진술서는 본당신부님과 직접 한사람씩 별도로 작성되어야 합니다.

 

⑤ 혼인 공시

혼인 공시는 본당신부님께서 혼인 면담과 문서 작성을 끝내고 “이들이 혼인합니다. 혹시 혼인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으면 알려 주십시오.”하는 의미로 본당 게시판이나 주보 등에 알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공시를 통해 이들의 혼인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축복을 청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혼인하기에 아무 장애도 없음이 다른 근거(예: 가족관계 증명서)로 확인되면 혼인 공시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교회법 1067조)

 

⑥ 혼인 예식 당일의 증인 대동

성당에서 혼인 예식을 거행할 때에는 반드시 양쪽에 한 사람씩 증인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혼인 예식이 끝나는 대로 증인들은 혼인 문서에 이름과 주민등록 번호를 적고, 서명을 해야 합니다. 이 증인들은 혼인 예식에 반드시 참가해야 합니다.

 

⑦ 혼수 준비하며 싸우지 않기.

혼인을 할 때는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일이기에 양가 집안 모두 긴장하고, 젊은 예비부부들도 들뜬 마음으로 이것저것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혼수 때문에 파경에로 치닫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혼인을 할 때 혼수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본질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혼살림을 준비하면서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등을 돌려서도 안 됩니다. 그것 하나 양보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혼인생활은 가시밭길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양가 집안에서 도와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랑 신부도 서로 마음을 비우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21-3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나해 연중 제 27주일; 혼인과 이혼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부부의 사랑

    사랑의 감정이 생길 때는 상대방이 좋게 보이고, 상대방이 나를 배려해 줄 때는 마치 세상을 얻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해 합니다. 그래서 그런 상대방의 사랑에 마음을 활짝 열고 상대방을 사랑합니다.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배려 해 주기 보다는 배려 받기를 원하고, 사랑해 주기 보다는 사랑 받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나 중심적으로 움직이지 않게 되면 서운해 하고, 작은 갈등과 오해들은 미움으로 바뀝니다. 더 나아가 화해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뀔 때는 그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게 되면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큰 힘이 생겨나고 신뢰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미움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때가 있는 듯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처음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들어 이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혼인제도를 마련하셨습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 가정을 이룹니다. 이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묵어 주신 것을 사람이 풀 수 없고, 사람이 갈라놓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혼인의 불가해소성, 참조: 마르10,6-9).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10,6-9)

    서로가 신뢰를 지키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갈라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이혼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남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해야 합니다.

    살다보면 서로 싸우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정말 미워지기도 하고, 사랑의 이름으로 구속을 하기도 하고, 비교 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감정이 상했을 때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살다보면 서로가 할 이야기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들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전과 같아집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노력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이 갈등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서로가 성격이 다르다고 하여 이혼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지금 미워하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그전에 내가 그렇게 좋아서 쫓아다닌 그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관리자 님의 말: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10,2)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빕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군중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10,2)라는 주제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합니다. 만일 안 된다고 하면 모세의 규정을 어기는 것이니 백성들이 예수님께 등을 돌릴 것입니다. 또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동생의 아내와 결혼한 헤로데를 공적으로 질책하는 것이 되니 헤로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헤로데는 조강지처를 쫓아내고 그 대신 이복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안 된다고 하면 분명 헤로데에게 즉시 보고를 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가 헤로디아의 분노를 샀고, 결국 목숨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된다.”고 하면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말로만 그러셨구나!”하면서 백성들이 예수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흥미를 가지고 바라보았을 것이고,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의도를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다른 말씀을 하실 분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마르10,3) 하고 반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가르침을 몰라서 그렇게 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너희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그랬을까요? 신명기 24,1-4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 이혼은 쫓겨난 여인 편에서 보면, 자기가 자유롭게 되었다는 공적인 문서를 받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재혼을 하기 위하여 필요했던 양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쫓겨난 아내는 재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쫓아 낸 남편은 그 여인이 두 번째 남편에게도 이혼을 당하든가 사별하는 경우에도 다시금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율법에 따라 아내에게서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한 남편은 그 여인을 쫓아내기 전에 이혼장을 써 주어야만 했습니다.

    이혼장은 히브리말로 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율법학자가 쓰고 두 증인이 서명하고 처의 후견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내는 자유롭게 되고 부모가 있으면 친정에, 또 부모가 죽었을 경우는 친구 또는 친척 집으로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나이가 어린 어린이는 아내의 손에 남겨지지만, 부양의 의무는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여섯 살 난 사내아이는 아버지와, 딸은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는데, 어느 경우나 아버지에게 부양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혼의 구실이 된 아내에게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이란 성경에서는 확실히 또 오직 하나 아내의 불륜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만일 무엇인가 아내에게 비난받을 중대한 일이 남편 쪽에 있다면 이혼을 할 권리를 잃게 되었습니다(신명22,13-19.28-29). 그리고 유배 이후의 유다인의 성서문학은 혼인을 맺으면 풀 수 없다는 데로 기울고 있었습니다(말라키2,14-16;잠언31,10-31).

     

    랍비 힛레루는 결혼 후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다.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친척 앞에서 불손한 태도를 취했다. 베일을 쓰지 않고 외출을 했다. 다른 남자와 말을 했다. 고기를 지나치게 태웠다. 국의 소금 맛이 너무 짰다. 가정의 비밀을 다른 이들에게 흘렸다.”는 이유들이 아내의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랍비 아키바는 더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을 경우 전처를 내 쫓을 수 있는 권리를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무슨 이유가 닿기만 하면 남편이 아내를 버릴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혼장이 얼마나 악용되고 있는가를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마르10,5)는 말씀을 통해서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과 닫힌 마음을 가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모세가 왜 그렇게 가르쳤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사실 모세의 율법은 유다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하나의 특권이 아닙니다. 모세는 430년간 종살이하면서 굳어진 그들의 마음 상태를 알고 계셨기에 허용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이혼을 금지하는 법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 종살이하던 이들의 윤리의식을 끌어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여인들의 인권을 위해서 이혼을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잘못된 이혼 관습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남편은 이혼장을 쓸 수 없습니다. 만일 이혼장을 쓰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면 전처의 권리가 아직 성립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간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혼뿐 아니라 일부다처제까지도 금하십니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것도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에서는 여자에게도 남편과 이혼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부부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며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는 혼인 생활은 사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갈등만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3. 관리자 님의 말:

    혼인에 대한 교회의 규정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를 이루는 혼인은 창조주께서 제정하셨으며, 이 혼인을 주 그리스도께서는 성사의 품위로 들어 높이셨습니다. 혼인성사는 세례 받은 남녀가 서로 주고받는 혼인 합의로 이루어지고, 한 몸이 됨으로써 완결됩니다. 혼인성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을 상징하며,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은총을 부부에게 줍니다. 이 성사의 은총은 부부의 인간적 사랑을 완성하고, 해소할 수 없는 그들의 결합을 굳건하게 하며,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반려자로서 그들을 지켜 거룩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신랑 신부가 서로 자신을 주고받는다는 합의를 확정하신다.”

    그리고 부부는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줌을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 앞에서 서약합니다. 진정한 부부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받아들여진다.”

    혼인은 사랑하는 남녀가 하나가 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는 부부를 성사로 묶어 주시어 절대로 풀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 부부는 혼인성사를 통하여 고유한 은총을 받게 됩니다. 이 은총은 부부의 사랑을 완전하게 하고, 해소될 수 없는 그들 사이의 일치를 강화합니다. 그리고 이 은총으로 부부들은 부부 생활은 물론 자녀 출산과 교육을 통하여 성덕에 나아가도록 서로 도와줍니다.”

     

    혼인의 소명은 창조주께서 내신 남자와 여자의 본성에 새겨져 있으며, 주 그리스도께서는 세례 받은 남녀의 결합을 성사의 품위로 들어 높이셨습니다.

    창조주께서 제정하시고 당신의 법칙으로 안배하신, 생명과 사랑의 내밀한 부부 공동체는

    인격적인 합의로 맺은 결코 철회할 수 없는 계약으로 세워진다.” (사목 헌장, 48)

     

    성경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남자와 여자의 창조 이야기(창세 12) 로 시작하여 어린양의 혼인 잔치 이야기(묵시 19; 21)로 끝을 맺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인과 그 신비, 혼인의 제정과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의미, 그 기원과 목적, 죄로 인한 혼인의 어려움, 마침내 그리스도와 교회의 새 계약[新約] 안에서 이루어진 혼인의 새 의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남녀의 사랑을, 당신이 사람을 사랑하시는 그 절대적이고 변함없는 사랑의 표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창세 2,24).

     

    혼인의 신비를 밝히는 한 처음의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확인하셨고(마태 19,4-6), 바오로 사도는 이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을 두고 한 말이라고 천명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에페 5,31-32).

     

    혼인성사는 바로 이 같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새 계약 안에서 이루어지는 남녀의 결합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 남녀의 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맺는 계약, 곧 신비로운 혼인의 효과적인 표징인 성사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나타내고 또 그 은총을 나누어 주는 성사입니다.

  4. 관리자 님의 말:

    사랑(1코린13,1-13)

    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5. 관리자 님의 말:

    부부대화

    혼인의 사랑이 지니는 또 다른 특징은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고 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말과 행동으로 자유롭게 그리고 관대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침묵은 때로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그리고 동기간에도 무언의 억압이 될 수 있지만, 제때 하는 적당한 말은 사랑을 보호하고 키웁니다. 사랑은 또한 성장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욱더 사랑하십시오.”(1테살 4,9).

    부부의 사랑은 하느님의 은총에 날마다 행동으로 응답할 때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혼인성사에서 부부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은 또한 부부가 은총 안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키워나가라는 요청입니다.

    좋은 와인은 시간과 함께 숙성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부부는 끊임없이 대화해야 합니다. 대화는 혼인과 가정생활에서 사랑을 체험하고 표현하며 촉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136). 하지만 대화는 장시간 힘들게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 젊은이와 어른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사랑을 표현하고 참다운 대화를 촉진하는 태도를 계발해야 합니다.

     

    첫째, 함께하는 시간을 내야 합니다. 그 시간이 소중한 시간이 되려면 상대방의 말을 인내하며 주의 깊게 경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간의 대화는 대체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배우자는 자신의 아픔과 갈망과 분노와 희망과 꿈을 알아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배우자의 요청에 나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이는 내 말을 안 들어요. 듣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다니까요.”

     

    둘째,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말이나 생각을 결코 함부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관심을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

    셋째, 늘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내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오히려 내 생각을 바꾸고 키워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일치는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안의 일치입니다.

    넷째,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단어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다섯째,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토론에서도 자신의 가치, 신념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지 상대방을 제압하고자 하는 자세는 좋지 않습니다.

    여섯째, 소중한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따분하고 부질없는 대화가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독서나 개인적 성찰, 묵상, 기도 혹은 주변에 대한 관심을 통해 내적으로 풍요로움을 가꿔야 합니다.

    대화! 참 어려운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부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사랑의 도구입니다. 잠들기 전 하루 10! 꼭 마음을 열고 사랑을 속삭이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만들어 갑시다.

  6. 관리자 님의 말:

    묵주기도

    묵주기도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온 생애를 묵상하며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 묵주기도를 사랑하고, 이 묵주기도를 바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이 묵주기도는 주님과 나를 결합시켜 주며,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과 연결시켜 하느님 나라를 향하게 만들어 줍니다.

    로사리오 기도는 동정 마리아의 장미꽃다발”(Rosarium Virginis Mariae)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보통 묵주알을 세면서 바치는 기도라는 뜻에서 묵주기도로 불리고 있습니다. 로사리오 기도를 바친다는 것은 장미꽃들로 엮은 기도의 화관을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묵주기도의 기원은 초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교인들은 자기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머리에 장미꽃으로 역은 관을 쓰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전해져 신자들은 기도 대신 장미꽃을 봉헌하곤 했습니다. 특히 박해 당시 신자들은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에 끌려가 사자의 먹이가 될 때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썼는데 이것은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데 합당한 예모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박해를 피한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면서 순교자들이 썼던 장미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 가지씩 바쳤다고 합니다.

    묵주기도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날마다 시편을 각각 50편이나 100편 또는 150편씩 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머리에 쓰는 관처럼 둥글게 엮어 하나씩 굴리면서 기도의 횟수를 세었는데, 이렇게 고안해 낸 묵주는 기도하는 사람을 분심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고 전심으로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12세기 삼종기도가 널리 보급됨에 따라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도 매우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대신하여 성모송50번이나 150번 외우기도 하였는데, 이를 성모의 시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때에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매우 다양하게 등장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성모님의 다섯 가지 기쁨 즉, 성모 영보(領報), 예수님의 성탄,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승천, 성모 승천 등이 묵상될 때마다 성모송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여기에 13세기부터는 영광송이 더해져 처음에는 성모송마다, 그 후에는 성모송 열 번마다 영광송을 바쳤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일반적인 형태의 묵주기도는 15세기 후반에 생겨났습니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알랑 드 라 로슈수사는 1470, ‘매괴회’(玫瑰會)라는 신심 단체를 만들어 묵주기도를 열심히 보급하였습니다. 그는 묵주기도의 주제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강생, 수난, 부활에 따라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로 나누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기도는 더욱 널리 퍼져 나갔고, 15세기 말에 이르러 전통적인 신비 15단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고, 돌아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 빛의 신비가 추가되면서 20단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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