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28주일;부자청년의 예수님 따르기


부자청년의 예수님 따르기

1. 말씀읽기: 마르코10,17-30

2. 말씀연구

나는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필요없는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버린 것은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움켜 잡아서 내가 맡고 있는 공동체를 망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부자청년의 모습을 통해 내가 어떻게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묵상해 봅시다.

 

2.1. 부자청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질문과 예수님의 가르침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청합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예수님 발치에 엎드렸지만 나름대로의 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그들 병에 대한 치유였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는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10,17)하고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은 것은 예수님께 대한 존경의 표시이고, 또한 그가 청하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절박하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 “선하신 스승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아첨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 죄인으로 불리는 이들과 죄인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들어왔고 또 본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고, 사랑스럽게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시는 그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① 하느님만이 선하심을 알려 주시는 예수님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선하신 스승님”이라는 호칭을 거부하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마르10,18)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호칭을 거부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선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참된 완전 자체이신 하느님에게만 들어맞는 말씀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그 영광을 모두 돌리시는 것입니다.

 

② 계명들을 지켜라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하느님께 대한 의무보다는 이웃에 대한 계명을 상기시키십니다. “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마르10,19) 인간이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바로 이런 계명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이의 생명을 내가 좌지우지 않는 것, 다른 이의 재물을 내가 함부로 하지 않는 것,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을 구분하며, 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 것, 부당하게 다른이의 재물을 가로채지 않는 것, 부모를 공경하는 것들”을 충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깊이 있게 들어가보면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살인을 해야 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절망에로 떨어트리고, 좌절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내 뱉는 말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크게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거짓증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증언대에서 상대방을 모함하기 위해 거짓증언을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하는 것들 중에는 “모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구에게 전해 듣고”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전해 들었다 할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다시 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귀와 내 혀를 길들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거짓증언을 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횡령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함부로 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횡령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내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없이 방관하고 방치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들, 내가 관리해야 하는데 관심 없는 것들, 그래서 망가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재산을 함부로 하는 것이니 결국 횡령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 부자 청년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인이나 도둑질, 횡령, 부모공경, 간음 등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면서, 그것을 범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과의 관계를 충실히 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니, 더욱 충실하게 이 계명을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③ 다 지켜왔다고 말씀드리는 부자 청년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뜻밖에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마르10,20)청년의 대답은 자신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그의 성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으로 보입니다. 열심한 유다인들 중에는 자기가 하느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성실한 랍비들은 항상 율법의 전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랍비들 가운데에는 인간의 윤리적 능력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경건한 사람까지도 자기의 죄 때문에 그의 의로움 보다도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생각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생각하면서도 부족한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④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그런 청년을 예수님께서는 대견해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10,21)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그에게 완전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재산을 버린다는 것은 새로운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일,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일, 모든 자연적인 청빈보다도 가치 있는 것입니다. 버렸기에 그 빈곳에 하늘의 보화를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놀고 싶은 것 다 놀고 나서 봉사를 하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으로 봉사를 하게 되면 “급하게 해야 될 공동체의 일”이 있을 때는 언제나 “부재중”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일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봉사자들은 시간관리를 잘 해야 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습니다.

 

⑤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가는 부자 청년

그런데 부자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모든 것을 버리면 자유롭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결정을 할까요? 그는 순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마르10,22) 왜냐하면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 부자청년은 솔직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아닌 척 하지도 않고, 거짓으로 대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라기 보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주님을 따르지 않을까요?

그런데 입으로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옵니다.”라고 고백을 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척”만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결코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2.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이유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자청년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버려야 할 것들, 내려 놓아야 할 것들의 목록”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놀랐을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르10,24-25)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버리지 못하면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빠져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주어 붙잡고 있기에 못 나가는 것입니다. 부자라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보다는 재물에 대한 열정이 더 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가 마음을 재물로 두고 있기에 하느님 나라에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재물을 붙잡고 있기에 하느님 나라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재물이 사람 마음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도 슬퍼집니다. 의인이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물에 대한 소유욕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부자 청년.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성당에도 잘 나가고,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그 신앙이 무너져 버립니다. 그렇게 부자청년처럼 돌아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고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를 달지 말고, 솔직하게, “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는데요. 저는 그것만큼은 어려운데요…,” 그리고 “제가 능력이 없어서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말고, “사실 제가 할 마음이 없어서 못하겠습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① 깜짝 놀라는 제자들 –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제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마르10,26)라고 서로 말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다 할지라도 세상 것들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 재물에 마음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다 있습니다. 그것을 버린다는 것이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하고 서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구원은 내가 무엇을 했기에 그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② 구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

예수님께서는 부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큰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도들이 반문하는 것처럼 구원받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10,27)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해서 당연하게 구원을 요구하겠습니까? 그분께서 주시면 좋고 안주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안주실 리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 될 도리를 다하고 마지막에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의 비결 아니겠습니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합니다. “모든 것을 놓고도 혹시 붙잡고 있는 것은 없는가?”를 고민하면서 주님의 은총에 의지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넘치도록 후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③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10,28)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버렸다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④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이들이 받게 될 상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받게 될 상을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10,29-30)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보니 물질적인 것들이나 인간적인 것들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예수님께서는 더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 때문에 가족을 버린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사제나 수도자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집을 떠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가족에 대한 일이 서로 상충될 때 이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사실 우리가 가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나를 낳아 주신 분이요, 키워 주신 분이요, 함께 피를 나눈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정을 이차적으로 생각하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전례봉사를 하기에 명절에도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성당 공동체와 함께 하는 이들이 바로 그런 이들입니다. 가족들이 여행을 간다 할지라도 “성당에서 하고 있는 봉사” 때문에 갈등하고, 마침내 성당 일을 먼저 하는 이들도 바로 그런 이들입니다. 이러한 열정이 있기에 신앙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르10,31)라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을 말하고 꼴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부자청년이 지금은 모든 것을 잘 지키고 살아가고 있지만 재물에 연연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는 결국 구원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사도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엉뚱한 것에 집착하거나 잘못된 이상을 품는다면 그들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주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구원의 문에 바짝 다가가 있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제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차지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넘치고 후하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내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버린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리고 버렸다고 생각하는데 버리지 못한 것, 그래서 참되게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③ 내가 부자청년이었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나의 삶은 어떻게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21-3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나해 연중 제 28주일;부자청년의 예수님 따르기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10,28)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버렸다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받게 될 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보니 물질적인 것들이나 인간적인 것들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예수님께서는 더 많은 은총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 때문에 가족을 버린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사제나 수도자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집을 떠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가족에 대한 일이 서로 상충될 때 이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사실 우리가 가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나를 낳아 주신 분이요, 키워 주신 분이요, 함께 피를 나눈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정을 이차적으로 생각하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자리에서 봉사하는 분들이 신앙생활을 첫 자리에 놓고 살아가기에 여행을 가는 것도 고민하고, 휴가를 떠나는 것도 고민합니다. 그리고 더 나가가 가족이 함께 모이는 자리와 봉사가 겹칠 때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봉사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열정이 있기에 신앙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르10,31)라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을 말하고 꼴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부자청년이 지금은 모든 것을 잘 지키고 살아가고 있지만 재물에 연연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는 결국 구원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사도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엉뚱한 것에 집착하거나 잘못된 이상을 품는다면 그들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주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구원의 문에 바짝 다가가 있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분명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차지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넘치고 후하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관리자 님의 말: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이유

    하느님께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큰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르10,24-25)

    버리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빠져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주어 붙잡고 있기에 못 나가는 것입니다. 부자라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보다는 재물에 대한 열정이 더 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가 마음을 재물로 두고 있기에 하느님 나라에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재물을 붙잡고 있기에 하느님 나라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성당에도 잘 나가고,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그 신앙이 무너져 버립니다. 그렇게 부자청년처럼 돌아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고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를 달지 말고, 솔직하게, “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는데요. 저는 그것만큼은 어려운데요…,” 그리고 제가 능력이 없어서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말고, “사실 제가 할 마음이 없어서 못하겠습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마르10,26)라고 서로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구원은 내가 무엇을 했기에 그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10,27)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해서 당연하게 구원을 요구하겠습니까? 그분께서 주시면 좋고 안주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안주실 리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 될 도리를 다하고 마지막에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의 비결 아니겠습니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합니다. “모든 것을 놓고도 혹시 붙잡고 있는 것은 없는가?”를 고민하면서 주님의 은총에 의지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넘치도록 후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나를 구원에로 이끌어 줍니다. 그러므로 비우는 삶, 내어 주는 삶을 습관화 시켜 봅시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 봅시다. 그렇게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 봅시다.

     

  3. 관리자 님의 말:

    부자 청년의 예수님 따르기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청합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예수님 발치에 엎드렸지만 나름대로의 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그들 병에 대한 치유였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10,17)

    그가 무릎을 꿇은 것은 예수님께 대한 존경의 표시이고, 또한 그가 청하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절박하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 선하신 스승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아첨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 죄인으로 불리는 이들과 죄인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들어왔고 또 본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고, 사랑스럽게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시는 그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선하신 스승님이라는 호칭을 거부하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마르10,18)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호칭을 거부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선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참된 완전 자체이신 하느님에게만 들어맞는 말씀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그 영광을 모두 돌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하느님께 대한 의무보다는 이웃에 대한 계명을 상기시키십니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마르10,19)

    인간이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바로 이런 계명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이의 생명을 내가 좌지우지 않는 것, 다른 이의 재물을 내가 함부로 하지 않는 것,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을 구분하며, 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 것, 부당하게 다른 이의 재물을 가로채지 않는 것, 부모를 공경하는 것들을 충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깊이 있게 들어가 보면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살인을 해야 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절망에로 떨어트리고, 좌절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내 뱉는 말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크게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거짓증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증언대에서 상대방을 모함하기 위해 거짓증언을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하는 것들 중에는 모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구에게 전해 듣고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전해 들었다 할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다시 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귀와 내 혀를 길들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거짓증언을 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횡령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함부로 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횡령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내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심 없이 방관하고 방치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들, 내가 관리해야 하는데 관심 없는 것들, 그래서 망가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재산을 함부로 하는 것이니 결국 횡령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청년은 뜻밖에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마르10,20)

     

    청년의 대답은 자신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그의 성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으로 보입니다. 그런 청년을 예수님께서는 대견해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10,21)

    재산을 버린다는 것은 새로운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버렸기에 그 빈곳에 하늘의 보화를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그에게 완전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마르10,22) 왜냐하면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 부자청년은 솔직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아닌 척 하지도 않고, 거짓으로 대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라기 보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지 않을까요?

    입으로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옵니다.”라고 고백을 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척만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결코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가를 부를 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사랑 하는 내 주 앞에 모두 드리네…,”라고 하는데, 어찌 보면 이런 성가는 빈말이 아닐까요?

  4. 관리자 님의 말: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의 십계명

    내용은 같지만 10가지의 계명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유다교와 개신교의 대부분은 탈출기 20,2-6절을 둘로 나누어 제 1계명과 제 2계명으로 하였는데, 우상숭배 금지를 특별한 규정으로 든 것은 이교도에게 둘러 싸여 있는 당시의 환경에 잘 부합합니다. 그리고 이하 번호를 하나씩 뒤로 밀어 17절은 제 10계명으로 했습니다. 이런 분류는 유다인 철학자 필론 및 성 아우구스티노 이전의 많은 교부들이 지지한 것이며, 성경 원문과는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성 아우구스티노 시대 이후 가톨릭교회와 오늘의 루터교파는 2-6절을 제 1계명으로 하고 또 17절을 둘로 나누어 제 9계명과 제 10계명으로 구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현대의 우상을 재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우상숭배의 위험은 없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1계명을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고 분류하고 그 안에 온갖 우상, 특히 재물의 우상을 경계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현대의 우상인 재물은 결코 함께 섬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교 시대의 환경에 어울리는 것입니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아내와 재물을 구분합니다. 당시 남성 중심사회에서 아내는 자신의 재산에 속했지만 아내는 재산 목록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하느님의 귀한 자녀이고 남자와 평등하게 창조된 존재이며,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가 탈출기 2017절의 말씀을 두 가지 계명으로 구분하여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로 구분한 것은 참으로 잘 한 것이며, 예수님께서 인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해 주신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인권과 평등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5. 관리자 님의 말:

    십계명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이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십계명의 법규들은 왕이 백성을 통치하는 그런 법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법이고, 양심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자연스러운 법들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자연법을 그 원리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양심에 어긋난 것은 모두 죄입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온 세상의 창조자이신 하느님을 섬기지 않으면 그것도 신앙인이 할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를 규정하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가르칩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계명을 지키기로 다짐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지켜야 하는 것을 지키고, 그 계명을 지킴을 통해 하느님 자녀로서의 품위를 드러내기에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계명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계명은 나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녀로서 품위를 누리게 하고, 나를 의롭게 만들어 주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가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앙인들은 계명을 지키고 있기에 늘 겸손의 삶을 유지합니다. 어느 누가 있어 계명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계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에 더욱 겸손하게 살아가면서 주님의 자비하심에 의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는 이에게 아낌없이 복을 내리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탈출20,6)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5,19)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는 삶은 구원에 이르는 삶이고, 그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이도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계명은 생명을 줍니다. 계명은 사랑을 살아가게 합니다. 계명은 예수님을 닮게 합니다. 아이가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 어머니의 눈앞인 것처럼 인간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곳은 하느님의 눈앞입니다. 그러므로 계명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계명을 지키는 삶은 분명하게 내 삶을 변화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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