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1. 말씀읽기:마태28,16-20
2. 말씀연구
오늘은 모든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전교 주일입니다. 전교주일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장엄한 명령에 따라, 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날 교회는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나 전교 지역의 교회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돕고자 1926년부터 10월 마지막 전 주일을 “전교 주일”로 정하여, 신자 본연의 사명인 선교 의식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전세계 교회의 선교 활동을 위하여 많은 기도와 희생을 바쳐야 합니다. \’전교 주일\’에는 특별 헌금을 봉헌하여 교황청 전교회로 보내져 전 세계 전교 지역을 돕는 데 쓰입니다. 또한 내 주변의 믿지 않는 이들과 쉬고 있는 친구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알리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자고 권해야 하고, 나 자신 또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겠노라고 다짐해야 합니다.
2.1.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
①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
제자들은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시고 하늘에 오르시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선교 사명을 부여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열한 제자라는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빠진 한명은 바로 유다입니다. 유다도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마음을 잘못 먹으면 나 또한 유다처럼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나는 곳은 산에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유혹을 받으셨지만 빵과 권력과 재물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마태4,8).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당신 백성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있는 곳 또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고,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열한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것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하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가장 장해가 되는 것은 바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확신만 있다면, 굳은 믿음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②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마태28,18)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그런데 가끔은 “예수님께서 과연 나에게 무엇을 해 주실 수 있을까? 그런 능력이 있으신 분이신가?”하고 의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믿음을 가집시다. 그리고 굳게 믿읍시다.
2.2. 사명을 부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으로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28,19-20)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으로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를 당부하십니다.
①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이제 구원에로 초대된 이들은 유다인들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에게로 확대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데 모든 민족 사람들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자로 삼는다는 것은 그들의 스승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승이 된다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가르칠 것이 있고, 그들이 나에게 배울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말씀을 실천하고, 말씀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신앙의 스승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신자들이 신앙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신앙 안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매력은 바로 삶으로 드러납니다. 서로 나누고, 아끼고 존중해주는 삶. 그렇게 살아갈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나에게 다가오고, 예수님에 대해서 묻게 되고, 나는 그에게 예수님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②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라
세례는 그리스도 신앙을 공식적으로 고백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모든 은총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성실하게 걸으며,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립니다.
그런데 내가 내 형제자매, 이웃 친척들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심을 내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는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내 믿음을 내 생각과 말과 행위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어야 하고, 한분이신 하느님께서는 삼위가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즉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어야합니다.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은 이제 과거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롭게 태어나기에 이제 빛의 자녀답게 살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다짐해야 합니다. 또한 세례를 주기 위해서는 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통해서 그에게 다가갈 때, 그는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형제애를 느끼게 됩니다.
③ 예수님의 명령과 가르침을 지키게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하시며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가르치심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가르침을 제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키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가르침은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르쳐 지키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지켜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라는 말씀. 말씀 듣고 실천하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씀.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지키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믿지 않는 이들이 내 삶을 보고서 믿게 되고, 그들 또한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 사랑임을 알게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억지로 하게 되면 언젠가는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세하게 알려주고, 따뜻하게 함께 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내가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깊이 묵상하며, 그 말씀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위해서 내가 실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알아야 가르칠 수 있고, 가르쳐야 그들이 받아들이고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어지는 기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이 “신앙은 기쁨”임을 알게 될 때, 그들은 신앙을 받아들이고,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내 삶으로 신앙을 가르치고 좋은 모범을 보여 봅시다. 그렇게 할 때 하느님의 나라는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진정한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④ 내가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예수님께서는“내가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제자들 혼자의 힘만으로는 당당하게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어 이끌어 주셔야 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 까지 나와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시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이고,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과 늘 함께 머무시면서 주님께서는 힘을 주십니다.
내가 어떤 능력이 있어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능력이 없지만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말씀을 굳게 믿고서 주님 말씀을 세상 끝까지 선포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 선포
선교(宣敎)라는 말은 “종교를 전도하여 널리 알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마르 16,15)는 주님의 지상 명령을 그동안 끊임없이 수행하였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 선포가 시작된 지 2000년이 넘었지만 오늘날에에도 선교는 아직도 시작에 머물고 있으며 그러기에 모든 교회는 혼신을 다하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선교는 말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선교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모든 그리스도교 가정과 교회의 생활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증거는 모든 신자들이 선교사가 될 수 있는 최선의 복음적 증거 방법입니다. 세상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복음적 생활이란, 바로 인간을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연대하는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증거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명제인 것입니다.
또한 선교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께로부터 모든 인간이 사랑받고 구원된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 선포는 하느님 은총과 자비의 선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가 구원된다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선포의 주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체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은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새롭고 신성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과 세상에 대한 “기쁜 소식”입니다.
또한 이러한 선포는 교회의 일방적 권리가 아니라 모든 이의 권리가 되어야 하기에, 그 개인과 생활에 맞도록 전해질 수 있어야 한다.
“기쁜 소식”에 대한 교회의 선포는 그리스도교적 회개를 지향하며, 신앙으로써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완전하고 진지하게 귀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를 기쁘게 맞이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돌볼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늘어나는 냉담자들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교회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들이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면 냉담자들이나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수 없고, 신앙의 기쁨을 말할 수 없으며, 회개의 삶은 감히 꺼내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교사명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나 세상에서 하느님의 현존의 표지인 그기스도교 공동체를 건설되고 그것이 교회로 발전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전체 교회와 지역 교회들과 모든 선교 단체들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 전체에 주워졌습니다.
삶으로 내 믿음을 선포하는 것, 내 기쁨을 전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우리 선교합시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선교합시다.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신앙의 기쁨을 생각과 말과 행위로 전해 봅시다.
전교주일
전교주일은 전교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선교지역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돕기 위해 교회가 정한 주일입니다. 매년 10월의 끝에서 2번째 주일이 전교주일입니다. 전교주일은 1822년 프랑스의 리용에서 전교회(傳敎會)가 창설된 이후 신자들에게 전교열을 고취시키고 전교회원의 모집을 위해 설정되어 1922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전교회가 교황청 사업으로 승격되면서 전 세계 교회로 확대되었습니다. 그 뒤 교황 비오 11세의 뒤를 이은 비오 12세, 요한 23세 등도 대대적으로 전교사업을 권장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전교사업이 중요하게 거론되어 1965년 12월 7일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Ad Gentes)이 바오로 6세에 의해 반포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1970년 주교회의 임시총회에서 전교주일이 들어 있는 10월을 한국 교회 고유의 ‘전교의 달’로 정하였습니다. 전교주일에는 세계 각 교회에서 전교사업을 위한 특별헌금이 실시되고 기도회와 모금운동이 전개됩니다. 특히 로마에서는 각 신학교와 수도원이 총동원되어 이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대규모의 기도회와 모금운동이 전개됩니다.
전교주일에 봉헌된 기금은 세계 각지에서 전교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보내지게 됩니다. 고향과 가족을 떠나 예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서 다양한 곳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있기에 오늘도 세상에 복음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이 세상을 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전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전교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입니다.
선교는 사랑에 사랑을 더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권하는 것처럼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 활동과 그 근본정신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기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사랑이 있기에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바로 주님께 대한 사랑과 복음을 선포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선교의 원천이며 원동력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 어머니가 자녀와 함께 매일 저녁 기도를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기도를 잘 바치던 아들이 어느날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곤해 죽겠는데 저녁기도를 꼭 해야 해요?”
어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이 모든 일을 끝내고 잠들기 전에 저녁기도를 바치고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는데, 아들은 피곤한 몸으로 저녁기도를 바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아들은 또 말했습니다.
“자유롭게 기도하면 되지, 꼭 기도서에 있는 내용으로 기도를 해야 하나요? 남이 써 놓은 것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요?”
어머니는 아들에게 차근차근 이야기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이 잠들기 전에 저녁기도를 하는 것은 큰 기쁨이란다. 하루를 마치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서 하루를 감사할 수 있음에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단다. 우리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하시는 아빠가 계시기에 우리가 이렇게 편안한 밤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지. 작은 것이지만 함께 모여서 감사할 때, 그 모습을 바라보시는 우리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리고 엄마랑 아빠는 네가 할 일을 다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네가 끝나는 시간에 함께 기도하려니 너무 늦어지는 것 같구나. 앞으로는 좀 일찍 함께 기도하면 좋겠구나. 그리고 네가 저녁기도를 바치고 싶을 때 우리를 초대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어머니는 또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의 기도문은 어느 한 순간 누가 쓴 것이 아니라 긴 신앙의 역사 안에서 정리되고 또 정리되어 주님의 말씀과 가르치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귀한 보석과 같은 존재란다. 다이아몬드도 돌에 붙어 있거나 땅속에 묻혀 있으면 그렇게 빛나지 않지만 세공사가 깎아내고 또 깎아내어 빛을 발하게 한 것처럼 기도문들도 긴 시간동안 그렇게 다듬어져 우리에게 보석처럼 주어진 것이란다. 지금은 네가 그 의미를 모르니 와 닿지 않겠지만, 네가 기도문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네 입에서 그 기도문이 멈추지 않을 것이란다. 엄마와 아빠도 자주 바치는 기도문들이 입에 베어 있단다.”
사랑은 모든 교회 활동의 출발점이며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따라서 진실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잘못되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강요하게 되면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지도 않습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으로 알게 하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배울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부모님들은 그것을 배워서 가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그 기쁨과 좋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하는 기도와 선교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은 사랑에서 나와야 하고, 애간장이 탄다 할지라도 사랑으로 기다리며 보듬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란 무엇인가?
교회는 “교회로부터 파견된 복음의 전파자들이 온 세계에 가서 복음 전파의 임무와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백성들과 집단에 복음을 선포하여 신앙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업을 선교”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영혼 구원을 위해 모든 타종교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것만이 그 목적이 되지만,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선교를 토착화와 관련시켜 교회가 아직 뿌리를 박지 못한 백성이나 집단에 있어서 복음을 선포하며 신앙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살아가게 하는 일을 선교라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단지 비신자들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성사를 베푸는 것으로만이 아니라,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쇄신시켜 복음적인 새 생활(에페4,23-24; 콜로새3,9-10)에로 이끌어 주며, 각 지역 문화의 깊은 근원에까지 복음이 생명력 있게 파고들어 문화를 복음화시키는 것을 선교라 말합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을 복음화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음화는 세 가지로 크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고유한 의미에서의 선교인 외방 선교인데, 외방선교는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백성이나 집단’,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있는 사람’, ‘그들의 문화나 아직 복음의 영향을 입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입니다.
둘째, 적합하고 견고한 교회 구조를 갖추고 신앙과 생활에 열성적이고 자기 지역에 복음의 증거를 확산시키면서 보편적 선교 의무를 느끼는 교회 공동체의 사목적 활동을 말합니다.
셋째, ‘새로운 복음화’, 또는 ‘재복음화’로서 그리스도교 전통을 가진 나라들과 일부 신생교회들 중에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신앙의 활력을 잃어버렸거나, 때로는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서 유리된 생활을 하는 경우에 요청되는 선교활동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이 되기는 하지만 특수한 선교활동과 신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와 새로운 복음화는 엄격히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 끝까지 파견된 교회의 첫째가는 임무는 외방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는 나의 문화,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생활하게끔 하는 것, ‘복음화’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 안에서 철저히 구현되도록 하는 노력입니다. 이것은 곧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 하느님 나라의 구현입니다. 인종, 문화, 계층을 막론하고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약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민족은 물론이고 이미 복음이 전하여진 곳 안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복음의 열정이 식었다면 새로운 복음화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선교는 교회 활동의 모든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것은 선교활동으로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삶 자체가 선교가 되어야 하고, 세상 곳곳에서 선교하는 이들을 마음을 다해 도와주고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은 순간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선교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할 것인가? 이것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1. 사제의 복음화
선교는 복음화시키는 것입니다. 복음화는 단지 말 몇 마디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화를 이루는데 있어 강론, 교리교육, 홍보수단의 활용, 성사 등의 방법들이 다 중요하지만 선교사의 증거적인 삶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대인은 스승의 말보다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듣는다. 스승의 말을 듣는다면 스승이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현대의 복음선교 41항)
따라서 본당 공동체를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제가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매월 성경강좌를 하고, 매일 미사에 깊이 있는 강론을 하며, 성사집행을 성실하게 하고, 주보를 통하여 교리교육을 한다 할지라도 본당 신자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면 본당 공동체의 복음화는 멀고도 먼 길이 됩니다.
“선교사는 선교하므로 성덕에 도달해야 한다.”(현대의 복음선교 76항)
아무도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을 남에게 줄 수 없고, 소경은 소경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제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을 꽃피우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꽃을 피우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현대의 복음선교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 청빈과 희생, 현세 권력에 굴하지 않는 자유, 성덕생활의 표양”(현대의 복음선교 41항 참조)
그러므로 “생활의 모범과 말의 증거로써”(선교 교령 11항) 사제는 선교활동을 해 나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사제는 교회의 다른 어떠한 지체보다도 복음을 전하는 책임의식을 자신 안에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사제를 사제직의 봉사자가 되게 하고, 일생 동안 해야 할 무수한 활동들을 서로 합치게 하며 사제의 활동에 특수성을 부여하는 것은 사제의 복음 선포 활동에 일관하고 있는 목적인 것입니다.(현대의 복음선교 68항)
사제는 이미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자체로 선교사이지만 또한 특별히 그리스도로부터 선교사로 임명된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의 선교사명에 대한 협력자입니다. 그러므로 사제들은 선교사의 정신과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자신의 생활이 선교에의 봉사에로 바쳐졌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언직, 사제직, 왕직 수행을 통하여 선교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 중 특히 자신의 고유한 직무인 성체성사의 집행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신자들을 그리스도 안에 결속시켜야 합니다. 아울러 사제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함으로써 성체성사 안에 일치를 이루게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제들은 사목상의 여러 활동들 중에서도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복음 선포에 주력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제는 신자들에 대한 교리 교육과 강론을 통해 복음 선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며 선교에의 소명을 고취시켜야 합니다.(선교교령 39항 참조)
교회의 문제는 어쩌면 사제의 문제입니다. 사제가 복음선포에 소홀하고, 부족한 인성을 가지고 있기에 모범이 되지 못하기에 교회에 문제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고, 배울 것이 없는 공동체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인사이동을 통해서 공동체를 새롭게 하고, 변화를 줍니다. 부족한 사제에게도 어쩌면 하나는 배울 것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격이 있는 사람만 아버지라고 불리게 된다면 이 세상에 아버지로 불리 수 있는 아버지가 몇이나 될까요?
2. 신자들의 복음화
신앙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며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며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왕직, 예언직,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백성으로 살아가며 세상 사람들이 주님께로 향하게 만들고, 세상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합당하게 주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 중에는 “사제가 필요한 곳에 사제를 모시고 가는 삶”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냉담자들에게 사제를 모시고 가고, 병자들에게 사제를 모시고 가며, 신앙에 관심이 있는 비신자들과 사제를 만나게 하는 일, 이것이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주도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배우고, 배운 것이 나의 삶이 되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각 분야의 세계 랭킹 상위권에 드는 사람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능력을 유지시키고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없다면 결코 상위권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삶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려 하지 않는다면 기도생활은 그저 형식일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나야 합니다. 그 향기는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베어나지 않고, 주님께 의탁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내가 복음화되지 않으면 선교는 “레지오 단원이나 활동으로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