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은 연중시기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세상의 왕이심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참된 임금님으로 섬기겠노라고 다짐하는 축일입니다. 전례력 안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주님을 왕으로 모시며,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아왔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고 있다면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방식에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마저 돌려 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까지 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달라는 자의 청을 물리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통치방식이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나를 대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방식을 받아들이며, 주님의 모범을 따라서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모욕과 수치심”이 용서하지 못하게 만들고, 화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손해 봤다는 생각과 교만”이 손을 내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직접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1. 빌라도의 심문: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사형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를 생각도 없었고,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킬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들의 모습이 드러나기에,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라도도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감히 예수님을 심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도 유다인들도 예수님께서 누구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 세상의 왕이신 예수님 앞에서 한 지역을 다스린다는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하고 있고, 하느님을 섬기고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하는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사형시키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당신의 유다인의 임금이오?”(요한18,33)라고 묻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애기 위해 예수님을 정치적 반란죄, 곧 메시아를 사칭한 죄로 빌라도에게 고소를 했습니다. “유다인들의 왕”이라는 칭호는 비유다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유다인들은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2. 예수님의 반문: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빌라도는 “유다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 즉 이스라엘을 정치적인 힘으로 구원할 메시아냐?”라고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요한18,34)고 되물으셨습니다. 빌라도의 질문에 “그렇다”와 “아니다”로 대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기다리고 있던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왕”이 아니셨습니다. 당신의 몸을 바쳐 세상을 구원하시는 왕이셨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도 유다인들처럼 그렇게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왕이냐고 물었습니다.

 

3. 빌라도의 질문: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고,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위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꾸짖으시고, 의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시며 성전을 정화하시고,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용서하셨으며, 율법을 완성하셨고,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들의 잘못과 위선이 드러나니까 정치적인 안정을 핑계 삼아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함하였습니다. 사랑과 자비를 모욕과 음모로 값아 드렸습니다.

 

4. 예수님의 나라

예수님께서는 당신 권능으로 세상을 정복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사명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힘으로 세상을 뒤엎는 메시아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서 희생재물이 되시어 하느님과 인간과의 화해의 재물이 되시는 메시아였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제사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셨습니다. 그래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요한18,36)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왕국은 세상의 권력에 의해서는 결코 건설되지 않으며 사랑과 자비로 통치하시는 나라이며, 믿음을 통해서만이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서는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곳, 그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의 통치자들이 지배하는 방식과 다릅니다. 정치적인 힘은 인간을 구속하고, 그 힘을 지속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통제와 희생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왕국은 참된 자유의 왕국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통치야 말로 인간에게 참된 자유와 신뢰를 줍니다.

 

그런데 힘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미친 사람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우리의 물리적인 힘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두려워했으며 말과 정신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사상과 언어의 자유를 훨씬 더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정신의 힘은 빈껍데기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에서 살기를 바란다면 하느님의 통치방식에 온전히 순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참된 임금님으로 섬긴다면 주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기쁘게 헌신하고 순명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온 세상의 임금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당신 사랑을 펼치실 것입니다.

 

 

5.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빌라도는 예수님께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요한18,37)하고 묻습니다. 빌라도의 이 말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왕이시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요한18,37)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진리에 속한 사람입니다(요한18,37).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증언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참되게 기도하며 하느님을 온전히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진리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나를 이끄시어 예수님을 참된 임금님으로 섬기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진리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며, 하느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진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증인이며,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계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진리에 속한 사람이고, 그렇게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왕국 편에 선 사람은 누구일까요?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빌라도가 진리 편에 선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 것과 같이 진리 편에 선 사람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아차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빌라도는 진리 편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내립니다. 그렇다면 나는 진리 편에 선 사람일까요?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맞이하여 내가 참으로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있는지를 깊이 묵상해 봅시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인지를 깊이 묵상해 봅시다. 빌라도가 진리 편에 선 사람이었다면 결코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진리편에 선 사람들이었다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했을 것이고,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진리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명할 것이며,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참된 나의 왕으로 모시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내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으로, 진리 편에 선 사람의 모습으로 주님을 섬깁시다. 그래서 주님의 통치방식인 사랑과 자비와 용서에 온전히 따르는 내가 되어 봅시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31-34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나해 연중 제 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온 세상의 임금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 성화는 교회가 신앙의 해를 보내면서 공식적으로 선택한 성화로서 1170년 경의 작품인데, 작자는 미상입니다. 회벽에 타일의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으며, 시칠리아 체팔루 주교좌성당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시칠리아 섬의 체팔루 주교좌성당 제단 상부의 이 그림은 원래 명성이 있었지만 교회가 신앙의 해상본으로 선택함으로써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작자 미상의 12세기 작품인 이 모자이크는 비잔틴 양식이며 동방교회 전통에 따라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라고 불립니다. 그 말은 전능하신 분,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체팔루 주교좌성당은 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성당으로, 이 모자이크를 제작하기 위해 멀리 콘스탄티노플에서 기술자들을 데려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성화는 교회가 신앙의 해를 보내면서 공식적으로 선택한 성화로서 1170년 경의 작품인데, 작자는 미상입니다. 회벽에 타일의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으며, 시칠리아 체팔루 주교좌성당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시칠리아 섬의 체팔루 주교좌성당 제단 상부의 이 그림은 원래 명성이 있었지만 교회가 신앙의 해상본으로 선택함으로써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작자 미상의 12세기 작품인 이 모자이크는 비잔틴 양식이며 동방교회 전통에 따라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라고 불립니다. 그 말은 전능하신 분,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체팔루 주교좌성당은 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성당으로, 이 모자이크를 제작하기 위해 멀리 콘스탄티노플에서 기술자들을 데려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앙의 해를 지낸 모든 신자들은 이 성화를 가지고 있고, 또 모든 성당들도 이 성화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 작품을 다빈치의 작품으로 생각하시는데 400년의 시간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또한 성화는 예수님이나 성모님, 성인들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성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주님께로, 성인들께로 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기억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것입니다. 일상 삶을 살아가면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기억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2. 관리자 님의 말:

    그리스도왕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의 임금님이십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순명하셨고, 성부께 들어 높임을 받으시고, 지상의 사명을 완수하신 후 당신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왕국은 바로 하느님 나라이며, 임금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하느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십니다. 온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오며, 하느님 아버지를 참되게 섬기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왕은 구약에서 예언되고 준비되었습니다. 가나안 정착시기에 왕정의 필요를 느낀 이스라엘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탄생시켰고, 왕조의 존속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왕조가 몰락하자 종말의 왕인 메시아가 약속되었습니다(에제 34). 왕이신 메시아에 대한 백성들의 기대는 인간적인 희망과 현세적인 왕권관념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지상생활 동안 백성들의 기대와는 다른 왕직을 수행하셨습니다. 수난과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 때 백성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왕으로 찬양하였고, 빌라도 앞에서 당신이 이스라엘 왕임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참조: 요한 18,36-37).

     

    예수님의 왕국은 세상의 왕들처럼 힘으로 통치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사랑과 용서와 자비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에서 보여 주십니다. 병사들은 예수님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서는,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인사하고 조롱하였습니다. 또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고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하였습니다. 이런 조롱을 받으셨지만 예수님께서는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마르23,34)

     

    이렇게 그리스도왕께서는 십자가 위에서당신이 어떤 왕이신지를 명확하게 보여 주십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께서는 당신 왕권을 이렇게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왕의 영광은 재림 때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왕국은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요,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입니다(교회헌장 36). 이 왕국은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확장됩니다(사도 1:8). 그러므로 사랑과 자비와 용서로 다스리시는 이 나라의 시민인 나는 예수님의 통치방식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왕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섬기신 것을 기억하며, 나 또한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그리스도왕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왕을 섬기며, “그리스도왕의 통치 아래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나는 하느님의 것이 되고, 하느님께서는 나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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