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의 생활
오늘은 예수님과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가정을 이루어 서로 사랑하고, 순명하며 지낸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 가정이 성가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런데 성가정은 어떤 가정일까요? 성가정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가정입니다. 그래서 그 가정에서는 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함께 기도하며,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청하고, 서로를 배려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 서로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성가정은
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하느님의 사람으로 받아들입니다. 가족 모두가 하느님의 사람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합니다.
② 서로가 신뢰하고, 끝까지 믿어주며, 사소한 말에도 경청해 줍니다.
③ 문제가 생기면 함께 기도하며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큰소리가 오가거나 누군가를 탓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④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려 하지 않고, 장점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⑤ 대화할 줄을 압니다. 내 뜻만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줍니다.
⑥ 서로를 위해서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주어도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늘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함께 하려 합니다.
1. 파스카 축제을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성가정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순례는 그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순례할 의무가 없었고, 남자들은 열세 살부터 순례를 하면 되었지만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는 것으로 보아 마리아와 요셉은 어린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하였고,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었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먼 길을 걸어 가야하는 순례는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차가 있어도, 또 성당에서 차량을 운행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뭐가 있다는 핑계로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가정의 모범을 기억하면서 주일은 반드시 지키는 가정이 됩시다. 자녀들에게 주일에는 성당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이 들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2. 파스카 축제 후 예수님을 잃어버린 마리아와 요셉
축제 기간이 끝나자 마리아와 요셉은 다시 나자렛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그런데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그것도 모르고,“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루카2,44) 하룻길을 갔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소년 예수님을 찾아보았지만,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소년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
소년 예수님께서는 평상시에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행동하셨던 것 같습니다.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하며 하룻길을 갔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믿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그만큼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
3. 성전에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찾은 마리아와 요셉
마리아와 요셉은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루카2,46)있었습니다.
당시 율법 교사들이 가르치는 방식은 토론식이었습니다. 토론이나 논쟁을 통하여 제자들을 가르치고, 스스로의 실력도 키웠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과 성경에 대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잘 하셨기에 율법 교사들은 소년 예수님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루카2,47)하였습니다.
① 마리아와 요셉의 안도와 걱정
마리아와 요셉은 율법 교사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안도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일 동안 예수님을 찾아 헤매며 가슴 조인 마음은 이렇게 표현이 됩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2,48) 예수님께 하신 말씀은 부모의 속 타는 마음을 “절제하고 또 절제하여” 던진 말씀입니다. 얼마나 속이 터지셨겠습니까? 일단 한번 쥐어박고 보는 우리의 부모님들과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② 예수님의 답변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속 타는 부모의 마음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2,49)
그런데 마리아는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라고 말하며 자신들이 소년 예수님의 부모임을 알렸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요셉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집”이라는 말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고, 하느님께 바쳐진 곳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집에 있어야 하고, 하느님과 함께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 일을 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③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마리아와 요셉
하지만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루카2,50). 사실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계셔야 할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잘못하신 것은 아닙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실 요셉과 마리아가 있어야 할 곳도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록 몸은 밖에서 일로 지쳐있다 하더라도 마음은 늘 성전으로 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미사에 더욱 자주 참례하려고 노력하고, 성체 앞으로 자주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소년 예수님께서 구약의 전통과 율법의 규정들이 몸에 밸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 주었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주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과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잠시 잊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못 알아들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언어를 못 알아듣는 경우는 부모의 것만을 강조할 때와 자녀와의 대화가 부족할 때입니다. 마음을 열면 보이고, 귀를 열면 들립니다. 그러므로 자녀와 함께 할 때는 언제나 부모의 것만을 강조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자녀와 함께 해야 합니다.
4. 성가정의 생활
① 순종
소년 예수님께서는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순종하며 지내십니다. 자녀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순종하시며 지내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가정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가정, 그 가정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루신 성가정입니다. 성가정의 가장이시면서도 늘 겸손하게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요셉성인이 이루신 가정이 바로 성가정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총을 품으시고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살아가신 어머니”가 이루신 가정이 바로 성가정입니다.
② 마음 깊이 간직
마리아와 요셉은 감당할 수 없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기에 어려움도 많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의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모르기에 더더욱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2,51)라는 말씀을 통해서 마리아와 요셉이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가정의 부모들은 하느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마음 속 깊이 간직하는 삶을 살아가셨던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모든 것들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가정의 부모가 그렇게 했다면 성가정을 닮고자 하는 모든 가정의 부모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녀들을 이해하려 하고, 기다려 주려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 주려고 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도 자녀를 이해할 수 있고, 자녀들도 부모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③ 성장해 가시는 소년 예수님
나자렛에서의 생활은 예수님의 성장과 성숙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습니다.”(루카2.52)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언제나 함께 계셨다는 것이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사람들은 성장해가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큰 기쁨과 놀라움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은 예수님께 대한 “총애”로 드러났을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성장하도록 마리아와 요셉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