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의 집필”
사실 복음서는 사도들 당시에는 기록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자기들의 머리에 남아 있었고, 또 목격한 증인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격 증인들이 사라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다보니 잘못 전해질 가능성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영세한 사람들에게, 신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사가들은 복음을 기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80년대에 복음서를 집필하기에 앞서 예수님의 사건에 대해서 기록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루카 복음은 50-60년대에 쓰인 예수님의 어록(Q)을 바탕으로 70년경에 쓰인 마르코 복음서를 참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루카 복음사가가 자기 나름대로 수집한 자료들(루카의 특수 사료)을 바탕으로 복음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루카 복음사가는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루카1,1) 라고 서두에 밝히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자신이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의 상황을 전해 줍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 즉 사도들이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이라는 것입니다(루카1,2). 사도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체험한 것, 목격한 것을 전해주었고, 그것들이 모아진 것이 여럿 있었고 그중에 예수님의 어록이 있었던 것입니다.
테오필로스는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상당한 재산가였을 것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그의 후원을 얻기 위해 그에게 바쳐진 것이었습니다. 복음서를 필사하여 배포하기 위해 드는 경비를 충당할 그 누군가가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재물을 내어 놓아 복음이 기록되도록 하고, 또한 복음이 세상에 선포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루카가 이용한 자료들은 교회 안에서 전해 내려오던 전승으로서, 이 전승은 구원사의 위대한 사건들을 직접 체험한 목격 증인들의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고, 그 사건들을 순서대로 적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복음서들은 태어난 것입니다.
루카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사건들, 이제는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성취되어 가는 과정에 있던 그 사건들에 대해서 기술하려고 합니다. 왜 집필을 하려고 하는지를 밝히려고 합니다. 테오필로스가 배운 것이 진실임을 알려 주려 한 것입니다. 테오필로스는 교회의 가르침을 이미 배운 사람입니다. 그가 배운 것이 진실임을 알려 주려고, 확신을 주려고 복음서를 집필한 것입니다(루카1,4). 즉, 꾸며낸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탄생, 기적, 수난, 죽음, 부활, 승천 등) 사실임을, 진실임을 확신시키고자 집필한 것입니다.
1. 갈릴래아에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시면서 공생활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오시어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습니다(루카4,14) 그런데 갈릴래아는 유대인들이 지독히 멸시하던 곳이었습니다.
① 이방인의 갈릴래아- 언제나 외세의 지배아래 놓여있던 갈릴래아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600년 동안 갈릴래아는 외세의 강점과 지배 아래서, 순수한 인종을 보존할 수 없었습니다. 기원전 783년 아시리아의 왕 디글랏 빌레셋이 갈릴래아 지역과 요르단 강 건너편 길르앗 지역 및 지중해안 지역을 병합한 이래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이집트, 시리아 등 열강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갈릴래아 지역은 사마리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이민족들의 이동이 빈번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맨 처음 언급한 “이방인들의 갈릴래아”(이사8,13-9,1; 마태4,15)는 잡다한 인종들의 거주지인 것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주민이 순수한 유대 민족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갈릴래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유대인들이 갈릴래아를 다스리지 못했기에 갈릴래아의 이방화는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에서보다 심화되었습니다.
② 이방인의 갈릴래아- 유대 전통에 무관심한 경향이 있던 갈릴래아.
갈릴래아인들은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고 이방인들의 영향에 대해서 조심성이 덜했기 때문에 유대 전통에 무관심한 경향이 있었고, 남부 유대 지방 및 예루살렘과 긴장 관계를 갖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환상적인 민족주의자들이었고 자유를 사랑하는 자들로서 더러는 혁명적 성향을 보였습니다. 그러한 갈릴래아에 대한 남부 유대적 시각은 부정적이고 때로는 경멸적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의 갈릴래아”라는 말은 그래서 때로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③ 이방인의 갈릴래아- 빈곤층이 늘어만 가는 갈릴래아.
갈릴래아 지역은 비옥한 땅이어서 농업 소출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갈릴래아 사람들은 로마 정부의 무자비한 세금 징수와 팔레스타인에서 부과된 종교세(11조)는 비옥한 지역 농민들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헤로데 왕은 막대한 재산을 탕진했기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소농 지주들은 무거운 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땅을 포기하게 되고, 소작인으로, 그 다음에는 날품팔이로 몰락했습니다. 반면 예루살렘 등지에서는 그들의 땅을 가진 지주들이 늘어갔습니다.
④ 이방인의 갈릴래아- 모든 면에서 멸시받던 갈릴래아
갈릴래아는 유다의 편에서 보면 지리적으로, 신학적으로 변방에 속하는 지방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갈릴래아\”라고 불렸습니다. 갈릴래아에 사는 사람들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갈릴래아는 약속된 땅의 변두리로, 그 주민들은 하느님 백성에 속하기도 어려운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 사는 많은 소외 계층과 외국인들은 유다인들에게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버림받고 소외된 갈릴래아 지방에서 당신의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미 이사야 예언자는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임마누엘이라는 메시아의 빛”이 비칠 것을 예고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갈릴래아를 비추셨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기쁜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