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사순 제 1주일; 광야에서의 유혹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기에 앞서 광야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유혹과 싸우시는데, 이것은 인간이 유혹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모범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선택하고, 헛된 사탄의 약속을 물리치는 것이 바로 유혹을 물리치는 것인데 나약한 의지를 가진 인간은 자주 이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십니다.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단호함 밖에는 없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을 이겨내시는 귀한 모범을 통하여 나 또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당당하게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1.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나가십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한 이유는 공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를 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신뢰와 일치”입니다. 광야에서의 40일간의 단식은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신뢰와 일치에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나 악마에게도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악마는 예수님을 유혹하여 아버지 하느님과의 일치와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깨려고 할 것입니다.

 

① 40일간의 단식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단식하시며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악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참조: 루카4,1-2). 한 끼만 굶어도 배가 고파서 안절부절 못하는데, 40일을 단식하신 예수님의 육체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평상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시련이나 고통이 주어지면 큰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② 아주 작은 것이 나를 망친다.

나도 어떤 큰 일을 하기 전에는 준비를 합니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큰 일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감언이설 등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그 유혹에 빠지게 되면 내가 하고자 했던 것에서 멀리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커다란 물동이도 작은 구멍이 뚤리면 결코 물을 간직할 수 없고, 자동차의 멋진 타이어도 작은 못에 의해 바람이 모두 빠져 버리게 됩니다. 결국 아주 작은 것들이 큰 것을 망쳐 버립니다. 작은 유혹이 결국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을 못하게 하고, 나의 구원을 가로막으며, 더 나아가 나를 파멸로까지 인도하는 것입니다.

 

2. 악마의 첫 번째 유혹 – 빵에 대한 유혹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루카4,3)

악마는 사십 일을 단식하신 예수님께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루카4,3) 예수님께서는 지금 너무도 시장하신 상태입니다. 굶주렸을 때 돌을 빵으로 만들어서 먹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증명하기 위해 돌을 빵으로 만든다면 악마에게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인정되겠지만,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과의 신뢰관계는 깨집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확인하시기 위해 악마가 말하는 증거를 보이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결핍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아들임을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전자 검사를 해서 “자! 봐라~ 내가 우리 아버지 아들 맞지?”했을 때, 아버지는 얼마나 서운하시고, 가슴 아프실까요? 악마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과의 신뢰를 깨뜨려 하느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악마의 교묘한 유혹을 바라보면서 내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도 상대방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안다면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남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려고 할 경우에도 상대방을 잘 알아야 하지만, 은총으로 형제자매를 구하려고 할 경우에도 형제자매의 상태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② 빵의 유혹을 물리치시는 예수님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루카4,4)

예수님께서는 전 생애를 아버지의 섭리와 뜻에 맡겨야 함을 확신하셨고 갈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굶주림에 대해서도 아버지의 사랑에 맡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표현으로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빵 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없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물질만 추구하다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파괴가 됩니까? 얼마나 많은 가정이 상처를 입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빵 만으로 사라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하고, 물질을 움켜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은 바로 악마가 원하는 삶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3. 악마의 두 번째 유혹 -재물에 대한 유혹

①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루카4,7)

악마는 혹시 예수님께서 물질에는 약하시지 않을까 하고 재물로 유혹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율법학자들이나 성서학자들의 이름은 탐욕과 같은 뜻으로 쓰인 일조차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탐욕을 그들이 당당하게 행하고 있는 “코르반 서원”을 통해서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꼬집으신 적이 있습니다.

악마는 혹시 예수님께서도 물질에 관심이 많지 않을까 하며 재물로 유혹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악마는 한편의 영화를 보여주듯 그렇게 세상을 보여주며 유혹합니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루카4,6) 그러면서 조건을 제시합니다.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루카4,7)

 

하지만 이것은 언제나 써먹는 유혹이요 거짓말입니다. 악마는 하느님께 이런 권세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약속을 실행할 힘이 없습니다. 악마는 아담과 하와에게도 하느님과 같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께 이 모든 것들을 주겠다고 유혹을 합니다. 감히 예수님께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상대방이 나를 유혹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상대방의 속셈을 알아차릴 수가 없게 되고,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붕어들이 떡밥이나 지렁이에 속아서 자신들의 생명을 잃듯이 말입니다.

 

② 재물에 대한 유혹을 물리치시는 예수님

–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루카4,8)

하느님의 권리를 빼앗고 하느님 대신 자기에게 절을 하게 하려고 하는 악마. 그가 예수님께 바라는 것은 지극히 무례한 짓입니다. 하느님께만 드릴 경배(절)를 자기에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라는 말씀으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그런데 만일 악마가 나를 유혹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한 번이 아니라 수없이 절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 수없이 절하고 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말하지 못하고 수없이 절하는 나의 모습을 반성하며 하느님만을 경배하고, 하느님만을 섬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4. 악마의 세 번째 유혹 – 명예에 대한 유혹

① 유혹: 성전 아래로 몸을 던져 보시오.

악마는 예수님을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갑니다. 그리고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예수님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루카4,9)라고 유혹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대답하시니 성경 말씀으로 유혹을 합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루카4,10-11)

 

성전 꼭대기에서는 성전 광장이 보입니다. 성전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들은 모두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일 “내가 바로 메시아요!”라고 말한다면 로마의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호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당시 군중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바로 정치적, 군사적으로 힘이 있는 메시아로써, 힘으로 로마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실 메시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명을 부여받고 세상에 오신 메시아가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하실 메시아이십니다. 그러므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예수님의 사명이 바뀌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악마는 유혹합니다. “몸을 던지시오.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 군중들 속으로! 그리고 외치시오. ‘그대들을 로마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실 그리스도, 구세주는 나다’ 하고 말이오. 그렇게 외치면 군중들은 당신을 환호하며 환영할 것이오. 메시아라면 그렇게 세상 모든 이들에게 드러나야 하지 않겠소? 당신은 그 일을 하러 온 것이니 뛰어 내려 보시오. 그리고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당신을 시중들게 하실 것이니, 천사들이 손으로 당신을 받들어 당신의 발에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지 않겠소? 자 뛰어 내려 보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렇게 악마는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렇게 군중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면서 권력을 얻으려 했다면 굳이 인간이 되실 이유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유혹은 처음의 마음을 잊게 만들고, 하느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유혹의 끝은 실망과 상실과 좌절임을 알아야 합니다.

 

② 권력에 대한 유혹을 물리치시는 예수님

–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루카4,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하시면서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늘 조용히 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군중들이 기적만을 바라고 예수님께로 몰려드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믿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일으키시어 군중들을 믿게 하실 마음이 없었습니다.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셨을 때에도, 군중들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움직임이 보이시자 조용히 산으로 피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억지로 회개시키시지는 않으십니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했을 때의 책임은 내가 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기에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마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신명6,16)고 말씀하십니다.

 

③ 하느님을 떠보는 행위는 악마의 모습

가끔은 성경을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해서 가르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악마도 그렇게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 편에서 하느님께 억지로 기적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협박하는 것이니 하느님께서 좋아하실리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시지 결코 떠보는 행위를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하느님을 떠보는 말을 자주 한다면, 그것이 바로 악마의 모습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5.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 떠나갔다.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님을 떠나갑니다(루카4,13). 그러나 아무리 굳은 믿음이 있다할지라도 방심하면 넘어갑니다. 군중들의 환호 속에서, 제자들의 인간적인 사랑 속에서 유혹은 언제나 다가옵니다. 단 한 번의 극복으로 모든 유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번의 유혹은 더 크게, 더 감미롭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이기기 위한 방법은 끊임없는 성찰과 기도와 하느님과의 일치입니다. 그래야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유혹을 당한다 할지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6.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당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계셨고, 그 사명을 수행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가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와의 친교 안에 늘 머무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돌을 빵으로 만들어 드실 마음이 있으셨다면 단식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악마에게 절하여 세상의 제물을 얻으려 했다면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지도 않으셨을 것이며, 힘으로 세상을 뒤집어엎을 계획이 있으셨다면 굳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굳이 인간이 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오셨는지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없이는 결코 유혹을 물리칠 수 없고,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면 아버지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 또한 주님의 일을 하려 한다면 기도해야 하고,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주님과 일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예수님께서는 몸소 광야에서 사십일 간 단식하시며 유혹을 물리치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할 차례입니다. 악마와 싸우면 예수님께서는 연전연승하지만 나는 지금 연전연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확고한 신뢰와 기도없이는 악마와 싸워서 이길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악마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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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 1주일; 광야에서의 유혹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재의 수요일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보여주는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기에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내 삶의 중심으로 만들어 주님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고, 오늘도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 나아갑니다.

    그런데 인간인지라 단식을 할 때에는 단식하는 것을 자랑하고 싶고, 기도할 때는 기도하는 것을 자랑하고 싶고, 자선을 베풀 때에는 그 자선을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로부터 나의 행위에 대해서 칭찬받고 싶고, 형제자매들로부터 존경받고 싶어 합니다. 나의 행위에 대해서 형제자매들로부터 칭찬과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보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혹은 언제나 내 앞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 유혹을 이겨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내 옆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니

    그 삶을 위하여

    오늘도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하느님께 돌아가려 힘껏 노력 한다네.

    언제나 주님 앞에서 죄를 짓지만

    주님께서 당신 자애로 나를 불쌍히 여기시면

    내 허물 씻어지고, 내 잘못 깨끗이 지워 짐을 알고 있기에

    이렇듯 슬퍼하며 자비를 청한다네.

     

    내가 원하는 삶은

    신랑과 신부가 신방이 아니라 주님 앞에 먼저 나아오듯

    그렇게 모든 것에 앞서 주님을 생각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라네.

    그렇게 주님을 내 삶의 첫 자리에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라네.

    내가 원하는 삶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나의 의로운 삶,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삶을 기뻐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하는 행위들은 당연한 것이니 자랑할 이유가 전혀 없고,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 숨을 쉬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나를 하느님께서는 의롭다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물론 칭찬을 안 해주셔도 나는 이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은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나에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비천한 사람을 굽어보시고 속죄하는 사람을 용서하시는 하느님 아버지!

    제가 지은 죄를 주님 앞에 내려놓으니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주님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재를 받았사오니, 주님께 소홀히 한 저의 모든 잘못을 뉘우치게 하시고, 주님께로부터 멀어진 저의 모습에 슬퍼하게 하시며 참된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 슬퍼하는 이가 위로를 받는 것처럼 그렇게 뉘우치고 주님께 돌아서게 하시어 주님의 위로로 가득 채워 주소서.

     

    오늘 하루, 저의 눈에서 눈물이 그치지 않게 하시고, 가슴을 치며 저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소서. 이 머리에 뿌려진 이 재를 기억하며, 흙으로 돌아갈 것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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