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면 즉시 “예!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라는 대답이 나올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행복한 사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과연 나는 행복한 사람인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그런데 오늘날에는 종종 행복과 불행의 기준이 변질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행복을 향한 발걸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불행을 향한 발걸음인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행복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주님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1. 예수님께로 몰려든 많은 군중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루카6,17).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고,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들려주시며,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치유와 위로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군중들은 매력적인 예수님께 몰려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로 모여든 사람들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손을 잡고 예수님께로 데려온 사람들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내가 주님께로 향해야 하고, 형제자매들을 주님께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도 큰 무리를 이루어 주님께로 모일 수 있어야 합니다.
2. 행복 선언
①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루카6,20) 가난한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여겨지는 가련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 주시면서 그들을 격려하십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하느님께 희망을 걸 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그들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이들을 하느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활짝 열어 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②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루카6,21)고 말씀하십니다. 가난과 굶주림은 인간을 짓누르는 환경들입니다. 힘 있는 자들에게 짓밟히고, 가진 것 마저 빼앗기는 사람들. 이들은 인간적인 면에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희망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그렇게 하느님만을 바라고 살고 있기에 하느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는 다는 것을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③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6,21)고 선언하십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이들은 하루 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이 상황을 극복해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께 애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다는 것은 자신의 부모가 돌아가셔서 슬피 우는 것처럼, 자신의 죄 때문에,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죄를 짓는 것 때문에 가슴아파하며 우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그들을 위로하시어 웃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죄로 기울어진 자신의 모습을 바꾼 이들은 주님 안에서 큰 기쁨을 얻게 될 것이고, 그날에 “정말 잘했구나!”하며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게 고통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슬픔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만을 바라보지 말고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하느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④ 행복하여라. 사람의 아들 때문에 모욕과 중상을 당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루카6,22)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했기에 하루 벌어서 겨우 하루를 살 수 있었고, 그러기에 율법을 지키지도 못했고, 다른 민족에게 지배를 받고 있었기에 참된 자유도 없었습니다. 같은 민족이었지만 백성의 지도자들은 가난한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율법도 모르는 족속이라고 무시하면서 구원에서 멀리 있다고 단죄하였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소외당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들은 회당에서 쫓겨나고 모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지금 당하고 있는 미움과 모욕과 중상모략 너머에 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가치를 알고 있기에 보잘 것 없는 것(미움과 모욕과 중상모략)들을 외면했습니다. 비록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당당하게 이겨냈고,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그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는 행복을 던 것입니다. 하지만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참된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미워하고,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모략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루카6,23)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넘치도록 후하게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3. 불행선언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굶주린 이들, 우는 이들, 박해받는 이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신 다음에 그 반대의 사람들에게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이 불행 선언은 심판과 단죄가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려 회개하도록 하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이 불행선언을 듣고 즉시 회개하고 뉘우친다면 마지막 날에 닥칠 심판에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①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루카6,24)고 선언하십니다. 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면서 하느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지 않으니 주변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자로의 어려움을 외면한 부자가 결국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그렇게 지금 받은 위로로 만족하게 될 것이며,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②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루카6,25)고 말씀하십니다. 부유한 이들, 배부른 이들, 그리고 웃는 이들은 이 세상의 재화를 소유하여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그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여도 외면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육적으로는 배부르겠지만 영적으로는 굶주리고 있고, 그 영적인 굶주림이 계속 될 때는 결국 하느님 나라와는 거리가 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주림과 목마름을 채운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다는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차지한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배부름에 만족하게 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③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루카6,25) 라고 선언하십니다. 지금 행복이라고 생각되었던 그것이 불행으로 바뀔 날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기준과 방향을 하느님께로 향한 것이 아니라 육신의 쾌락에서 찾았고, 부의 많음과 그것이 주는 안락함에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참된 행복으로 이끌어 주지 못합니다. 그들은 구원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마음에는 하느님께서 자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어느 한 자리도 내어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멸망의 길로 향하다가 심판 때에는 결국 절망에 빠지게 되고, 위로받을 수 없는 슬픔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얼굴에서 결코 웃음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④ 불행하여라. 모든 사람이 좋게 말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루카6,26)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은 예언자들의 길을 따릅니다. 예언자들은 동족들로부터 박해와 배척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원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박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고, 잘못한 백성들에게 하느님 벌을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 예언자들은 군중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했고,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들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반대도 받지 않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거짓 예언자들처럼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만 하고,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으며, 절제하고 희생하는 삶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했기에 거짓 예언자들은 군중들로부터 인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을 하느님께로 돌아서지는 못하게 하였습니다.
옳은 말과 행동이지만 백성들의 눈치를 보느라 싫은 소리 하나도 하지 않은 이들은 거짓 예언자입니다. 하느님의 뜻에는 관심이 전혀 없고, 오로지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만을 찾아 헤맨 이들은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들은 자신도, 백성들도 멸망의 길을 걷게 했습니다.
하지만 참된 예언자는 백성이 듣기 싫어해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가 나를 좋게 말한다면 “내가 진리 편에 서지 않았구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에 집착하려는 영혼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4. 참된 행복에 이르는 길
참된 행복에 이르려는 사람은 지금 주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할 수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을 주님께로 향해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주님께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자비로운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고, 변화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게 됩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참된 행복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참된 행복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기쁘게 걸어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