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수난과 죽음을 앞에 두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확고한 힘을 주기 위해서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거룩한 변모를 통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구름 속에서 제자들에게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사순 시기 주님의 거룩한 모습을 기억하면서 주님께서 걸으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묵상해 봅시다. 그렇게 할 때 나는 주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2.1.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십니다(루카9,28).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은 세 명 뿐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왜 안 데리고 올라오셨을까요? 이들만 특별히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신앙인들은 편애와 선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사랑하신 이유가 “편애인가? 아니면 선택인가?” 크게 보아야 합니다.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옹졸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잘못 생각하면 부모님은 늘 동생이나 형만 사랑한다고 느낄 수가 있고, 혼자 스스로 소외될 수도 있습니다. 본당에서는 열심한 교우들만 신부님께서 사랑하신다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가 자존감이 떨어지면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덜 사랑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각자가 자신이 소중한 사람임을 생각할 때 선택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도 사랑받고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으뜸인 베드로, 열 두 사람 중 최초로 예수님을 위하여 피를 흘리게 될(44년) 야고보, 그리고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요한. 이 세 사도만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도만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보게 되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자존감은 “예”하면서 시기와 질투를 하지 않습니다.
2.2.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① 기도 중에 변모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습니다(루카9,29).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하시면서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셨고 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그렇게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인간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희생제물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큰 권능과 힘으로 자신들에게 참된 평화를 주시는 메시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처절한 죽음 앞에서 “아! 우리가 잘못 믿고 있었구나!”하면서 좌절할 수 있습니다. 그때 힘을 내어 “헛되이 믿고 따른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거룩하신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② 기도 중에 거룩하게 변하는 신앙인들의 모습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기도 중에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들도 기도 중에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품위를 보여 줍니다. 내 안에는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과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 그리고 내가 싫어 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내가 보여 주고 싶은 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나의 본 모습이 드러나고, 형제자매들이 싫어하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충동을 억제하지 않으면 무서운 괴물로도 변모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과 거룩하게 변모하신 모습을 통해서 나 또한 기도를 통해 변화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거룩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온화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만이 내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의 빛과 소금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빛이라면 당연히 빛나야 합니다. 소금이라면 당연히 맛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기도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 됩니다.
성당에 들어가다 보면 형제자매님들의 뒷모습에서 빛이 나고 있음을 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 형제의 뒷모습이 빛나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형제는 그 뒤에 예수님께서 서 계심도 볼 때가 있습니다. 너무도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형제 앞에만 서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기도하는 이 옆에 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입니다. 나 또한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봅시다.
③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세와 엘리야
거룩하게 변모하신 예수님 앞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예언자를 대표합니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루카9,30-31)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를 탈출한(출애굽) 백성들에게 율법을 전해주었고,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메시아의 길을 준비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율법과 예언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 종속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폐지자가 아니라 완성자”이심을 드러내는 것이고, 구약의 모든 예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의 희생제사를 통하여 구약의 예언을 완전하게 이루실 것입니다.
④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된 제자들(루카9,32)
예수님께서는 기도 중에 거룩하게 변모하셨고, 예수님 앞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관하여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보니, 그들 눈에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있는 두 사람”(루카9,32)도 뵙게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이 모습이 너무도 황홀해 보였을 것입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들 눈에 비쳐진 황홀한 모습. 제자들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소망이 이곳에서 실현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⑤ 영광스러운 순간에 머물고 싶어 하는 베드로 사도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루카9,33) 베드로 사도는 이 황홀한 광경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영원하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머물기를 청합니다. 자신들을 위한 초막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⑥ 사도들이 머물러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
베드로 사도는 지금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시려는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8,20)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려는 이들은 머물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열정이 잠시도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머물러야 하는 곳은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들입니다.
⑦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제자들은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머물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고, 그들 모두는 구름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모든 인간을 두렵게 합니다. 제자들도 이 상황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9,35)라는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영광에만 머물려고 하는 것은 주님의 제자들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것은 유혹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기 위해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는 것이 바로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과연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잘 듣고 있을까요? 내가 좋은 것만을 찾지 말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을 따르는 방법입니다.
2.3. 엄청난 체험을 간직한 제자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 구름, 그리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 이러한 놀라운 상황이 사라진 뒤에 제자들의 눈에는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너무 놀란 제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기쁘거나, 너무 슬프거나, 너무 당황스러울 때, 우리는 아무 말을 못하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은 마음 깊이 이것을 간직하고 내려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이 말을 해 주어도 믿을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아직까지 예수님을 자신들이 믿고 싶은 방식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아직 그들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지도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부활을 체험한 다음에야 비로소 “아하! 그 말씀이었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구나!”하고 무릎을 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 이후에 다볼산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셨던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서 더욱 믿음을 키워 나갔을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추구하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9,35) 사순 제 2주일을 맞이하여 내가 어떻게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고 있는지를 돌아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