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성야 주보


부활 성야 미사

오늘은 성토요일이면서 밤에는 부활성야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런데 부활 성야 미사는 성토요일 미사가 아닙니다. 부활대축일 미사입니다.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에는 미사가 없습니다. 또한 아무런 예절이 없는 날은 성 토요일입니다. 이날 교회는 신자들이 하느님의 구원에 감사하며, 예수님과 함께 세속에서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남을 묵상하도록 합니다. 수난과 죽음이 있어야 만이 부활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토요일은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날이면서, 어떻게 해야 내가 주님과 함께 부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시간으로는 해가 지면 다음날이 시작되는 것이기에 교회는 이 밤에 성대하게 예수님의 거룩한 부활을 기뻐합니다. 구약의 독서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이끌고 계신지, 그리고 종살이하던 백성들을 어떻게 해방시키셨는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종살이하던 백성들이 하느님의 구원으로 자유를 얻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녀로서 참된 자유와 해방을 얻었음을 기뻐하게 합니다.

부활성야의 전례에서 특별한 것은 바로 빛의 예식입니다. 새 불을 축복하여 부활초에 불을 밝히고, 예수님께서 빛이심을 고백하며 예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시작이요 마침이요,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시대도 세기도 주님의 것이오니, 영광과 권능이 영원토록 주님께 있나이다. 아멘” 이라는 기도에서 드러나듯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니 찬미와 영광을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제는 “주 그리스도님,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상처로 저희를 지켜 주시고 보살펴 주소서. 아멘.”하면서 초에 파 놓은 구멍에 향 덩이를 꽂으며 기도를 하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초를 들고 행렬을 하면서 “그리스도 우리의 빛!”하고 외칩니다. 빛은 어둠을 밝히고, 길을 안내합니다. 가야 할 길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크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제 신자들의 손에는 모두 부활초가 타오르고 있고, 사제는 부활찬송(Exsultet)을 노래합니다. 이 부활찬송은 하느님의 오묘하신 구원사업에 감탄하며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에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성야 미사에 참례하는 나는 주님의 구원에 감사하며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예수님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죄에서 죽고 은총안에서 다시 살아나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굳게 다짐해야 합니다.

 

1.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하는 여인들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습니다. 이 여인들은 사랑하는 이들이었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예수님의 몸에 향료를 발라드리는 것 밖에 없었기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새벽 일찍 주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2. 빈무덤

그런데 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무덤이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무덤이 비었다는 것은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꺼내갔다는 것일 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무덤에 계시지 않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덤이 빈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3. 천사의 알림

빈 무덤을 바라본 여자들이 그 일로 당황하고 있는데, 눈부시게 차려입은 남자 둘이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으로 숙이자 두 남자가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루카24,5-7)

 

천사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살아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무덤에 계실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수난과 죽음만을 받아들이고 부활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다시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임을 말씀 하셨습니다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제야 여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냈습니다.

 

4. 부활의 소식을 알리는 여인들

무덤이 빈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믿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여인들은 천사로부터 부활소식을 들었기에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덤이 비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믿어야 합니다. 비록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여인들은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이에게 이 일을 다 알렸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이 여인들로부터 전해들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눈앞에서 처절하게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말해준다면 믿어야 합니다. 그가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 주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 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해 주는 이야기들을 믿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절망에 빠졌기 때문에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게 된다면 그 절망은 사라지고 다시 희망이 솟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5.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 사도

다른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무덤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그전에 말씀하신 부활예고가 떠올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인들이 전해준 부활소식을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무덤으로 달려가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예수님을 감쌌던 아마포만 놓여 있었습니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예수님을 꺼내갔다면 아마포가 남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직 확신은 없지만 베드로 사도는 “속으로 놀라워하며”(루카24,12) 동료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이해해야 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으니 믿는 것입니다. 부활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믿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내 곁에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나의 확신을 통해서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6. 부활달걀

부활달걀은 부활절의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달걀은 겉으로는 죽은 듯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깃들어 있어 옛날부터 봄, 풍요, 다산 등 보이지 않는 생명의 상징이었습니다. 또 달걀은 예수님께서 묻히신 돌무덤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부활달걀을 선물하는 풍습은 17세기 수도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세기에는 사순절 동안 고기와 생선뿐만 아니라 우유, 달걀도 먹지 않았고 부활절이 됐을 때 비로소 달걀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부활의 기쁨을 이웃과 나누기 위해 달걀을 선물로 주고받는 풍습이 유래되었습니다.

“삶은 달걀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걀은 둥글둥글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둥글둥글하게 살아야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가 진 부분을 다듬어서 둥글둥글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비록 어수룩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의로운 사람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달걀은 부활의 기쁨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절한 대상입니다. 21일 만에 부화하는 병아리는 신앙인들에게 열심히 살아야 만이 부활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1은 7의 3배수 인데, 7은 성경에서 완전한 숫자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살고, 열심히 살고 또 열심히 살아야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는데, 병아리가 부화하려면 “엄마! 저 여기 있어요!” 하고 안에서 껍질을 쪼아대면, 어미닭이 밖에서 “아! 우리 아기가 나올 때가 되었구나!”하고 달걀을 쪼아서 병아리가 쉽게 나올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도 부활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부활에 대해 열망하면, 하느님께서 그 삶과 정성을 보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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