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부활 제 2주일; 토마스의 불신앙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의 기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 말씀을 통해 제자들의 마음은 기쁨이 넘쳐났고, 그동안 자신들이 겪은 모든 고통과 부활을 믿지 못했기에 부활을 믿지도 못했고, 무덤을 지키지도 못했던 죄스러운 마음들이 한 순간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토마스 사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동료들이 전해준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믿지 못했기에 겪어야만 했던 마음의 고통,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 토마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보지 않고도 믿고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기억해 보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늘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

①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19)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요한20,19). 유다인들을 피해 숨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마음은 불안과 초조, 절망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잠겨 있는 문을 통과 하시어 불안과 초조와 절망으로 가득한 제자들 가운데에 서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하신 말씀은 바로 “평화”였습니다. 이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평화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성취한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부터 온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진(죄)으로 집이 무너져 아이들이 지하에 깔리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 공기가 없어서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었는데(죄의 결과), 그래서 아버지가 무너진 폐허를 걷어내고, 온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감수하며 파 내려가 마침내 아이들이 있는 곳 까지 피땀을 흘리며(수난과 죽음) 굴을 팠습니다. 신선한 공기가 아이들에게 전해지면서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괜찮니?”하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얻은 평화입니다. 그 평화를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②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는 예수님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닫힌 문을 통과하여 자신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요한20,20). 예수님의 구멍 난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는 십자가 위에서 처절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지금 예수님께서 자신들 앞에 서 계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결코 유령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③ 제자들의 기쁨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들 앞에 나타나시자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습니다(요한20,20). 자신들의 눈앞에서 처절하게 고통당하시고, 그렇게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니 제자들의 기쁨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두려움과 절망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을 통해서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제자들은 삶의 모든 가치를 잃었습니다. 제자들의 꿈과 희망이 사라지고, 그들 마음은 온통 절망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제자들도 부활을 맞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도 영광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땀 흘리고, 번민하고, 역경을 이겨내지 않은 열매는 아무 가치도 없고, 또한 열매도 맺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

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20,21).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온통 기쁨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20,21)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해야 합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시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것처럼, 제자들도 그 평화를 전해주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겸손하게 당신을 낮추셨고, 섬기러 오셨습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갚지 않으셨고,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셨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셨으며, 수난과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로부터 파견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살아가며, 예수님께서 짊어지셨던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 일을 해야 합니다.

 

② 성령을 받아라(요한20,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힘을 주십니다. 그 힘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숨을 불어 넣는다는 것은 죽어 있는 존재에게 생명을 주는 행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아담을 창조하시고 숨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흙덩이가 생명을 간직한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죽은 상태입니다.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가졌던 꿈과 희망은 모두 사라진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전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적으로 죽어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20,22)

 

③ 성령께서 하시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고 싶다 할지라도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을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제자들이 유다인들이 두려워서 골방에 숨어있을 때, 성령께서는 제자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문을 박차고 나가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분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했고,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당당하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행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하느님을 공경하게 만들고, 자신의 구원과 형제자매들의 구원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실천하게 만들어주십니다. 또한 선과 악을 구분하게 만들고,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당당히 내어 놓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또한 말 하는 이는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증언하고, 증거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하느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임을 알게 해 주시고, 당당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④ 맺고 푸는 권한(죄의 용서 권한)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다음,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20,23)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받았다는 것은 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도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용서를 청하며 하느님께 고개를 숙일 때, 교회는 그 죄를 풀어 줍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죄를 용서해 주는 권한은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처 부수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죄의 용서권한을 주셨습니다. 죄의 용서 권한을 주신 이유는 당신을 믿는 모든 이들을 고통 속에서 벗어나 기쁨과 희망 속에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을 것이다.”는 말씀을 통해서 그대로 두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기쁘고,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나 구원 안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했으면 용서를 청하는 것이고, 용서를 청하면 기꺼이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통하여 새로 나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영원한 생명에 도움이 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결코 온전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용서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만이 완전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용서를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용서를 받으려면 그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온전한 신앙인이어야만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3.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① 토마스의 불신앙

그런데 열두 제자 가운데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습니다(요한20,24). 토마스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20,25)라고 전해주었지만 토마스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20,25)하고 말하였습니다.

 

② 동료가 말하면 믿어야 합니다.

토마스는 처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분이 부활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토마스는 제자들이 보고 싶어 했던 것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제자들이 헛것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것이라도 보길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토마스가 제자들에게 한 말 안에서 공동체의 모습을 발견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0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다고 토마스에게 말 하였습니다. 그런데 토마스는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너무도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기에 믿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부활을 전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동료들입니다. 동료가 말하면 믿어야 합니다. 함께 일하는 봉사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봉사자에게 믿지 못할 말을 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어찌 보면 열두 제자들은 아직 한 팀이 되지 못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사실 높고 낮은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주님 안에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참조: 2,19-22)에서 하느님의 한 가족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아니라 무척 중요한 사람입니다. 내가 바닥이라면 그는 천장이고, 기둥이요, 벽인 것입니다. 바닥만 있는 집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천장만 있는 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멋진 집이라 할지라도 문이 없다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으며, 어떻게 도둑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토마스가 지금 잊고 있는 것은 바로 “동료”라는 것입니다. 동료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섬기는 사람들이고, 여럿이지만 결국 하나요 한 몸입니다. 내 옆에 있는 이가 말하니 나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합니다. 나에게 이익이 될 것 같은 말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도 믿어야 합니다.

 

③ 불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닫혀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열려 있어야 보이고, 들리는데 닫혀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고, 형제요 자매라고 지내왔지만, 동료로서 함께 지내왔지만 그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문제요,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 “우리 예수님 만났어!”

토마스: “정신들 차려! 너무 충격이 커서 그럴 거야.”

제자들: “진짜라니까?”

토마스: “3일전에 돌아가실 때 그 모습 생각 안나?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신 분이 살아나셔. 너무 보고 싶으니까 환영을 본거야!”

제자들: “진짜라니까?”

토마스: “난 내 손가락으로 그분의 손에 난 상처에 넣어보고,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어 보지 않기 전에는 결코 믿지 못하겠어.”

 

이럴 때 내가 제자들 중의 하나라면 어떻게 말할까요?

 

④ 토마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기쁨에 넘쳤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토마스는 의심과 고통 속에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드레가 흐른 날,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서시며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26) 그리고 토마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20,27)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토마스가 원하는 방식으로 토마스를 믿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⑤ 토마스의 신앙고백 :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20,28)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토마스는 기쁨에 넘칩니다. 그의 눈에는 오로지 주님이신 예수님만 보입니다. 그래서 토마스는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20,28) 이제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굳게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굳게 믿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을 결코 내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내 눈으로 보아야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손으로 만져 보아야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기에 내가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신을 버리고“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토마스 사도의 삶이 변했듯이 내 삶도 변하게 될 것입니다.

 

⑥“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20,29)

예수님께서는 토마스를 향하여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20,29)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행복하다고 칭찬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예수님 부활의 목격 증인은 아닙니다.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사라질 때 행복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더욱 진실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욱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4.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

제자들이 복음서를 기록한 이유는 목격 증인들이 사라져 가면서 말씀의 왜곡이나 변형 등을 우려했고, 예수님께서 금방 오실 줄 알았지만 더디 오시니까 신자들의 믿음을 위해서,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서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바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사가들은 자기들이 필요한 것들을 모아서 기록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기 위한 것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많은 표징들을 모두 기록했다면 엄청난 양의 말씀들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이유는 신자와 비신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요한20,31)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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