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22주일; 겸손한 사람이 되어라.


“의인들이 부활할 때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것들은 그들이 갚을 능력이 없기에 하느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가난한 이들은 사랑을 받았지만 물질적으로는 다시 되돌려줄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뻐하는 것뿐입니다. 그 사람에게 미안해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흐뭇해하시며 대신 갚아 주실 것입니다.

훈이는 이 말씀을 듣고 “내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고민을 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저녁기도를 바치다가 그 고민을 어머니께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는 “네 생일파티에 반에서 생일 파티 초대를 받지 못하는 친구들을 초대하면 어떨까?”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훈이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종선이 생일 때에는 무선 조종 로봇을 선물했고, 진애 생일에는 예쁜 귀걸이를 선물했습니다. 자기 생일에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애와 종선이에게 자신의 생일을 알리지 않으면 그동안 해 준 것들을 못 받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 그러면 저는 아무 선물도 받지 못할 텐데요?”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이 받고 싶은 것을 하느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을까? 그러면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꺼야!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엄마에게 말씀하시겠

지. 그럼 우리 아들이 필요한 것을 엄마가 사줄 수도 있잖아.”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안 사주셔도 되고요. 이번 생일파티에는 반에서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지 못하는 친구들을 초대할게요. 맛있는 것 많이 해주세요.”

“……,”

훈이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입니다.

 

1. 겸손한 사람이 되어라.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루카14,7)을 바라보십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에 정통해 있었고, 그들의 집에서 열리는 잔치 자리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에 관한 대화가 곁들여졌습니다. 따라서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자신의 지식을 내세우고 싶은 마음도 컸을 것입니다. 또한 그런 자리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나이가 아니라 위엄이나 직위에 따라 손님을 앉히는 것이 관례가 있었습니다. 손님들은 각자 자신이 내세우는 서열에 따라 자리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윗자리에 앉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니 그렇게 교만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마다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루카14,8)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네가 최고가 아니다. 다른 이들을 존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다보면 최면에 걸려서 “내가 최고”라고 생각을 하고,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해서입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고,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해서입니다. 다른 이들이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서입니다. 결국 볼 눈이 없고, 볼 마음이 없을 때는 “제 멋”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착각에 빠져 사는 이들이 당하는 수모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루카14,9)

 

2.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예수님께서는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루카14,10)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 ”(루카14,10)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는 옮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나를 낮추어 낮은 자리에 앉았는데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 정신입니다. “높은 곳으로 오르시지요.”하면서 자리를 옮겨주려 한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주변 사람들과 기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바로 예수님 정신임을 꼭 기억합시다.

 

3. 하느님 나라의 원칙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중요한 원칙 하나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14,11)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이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모욕을 주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의 몫입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그저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높이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높아지기 위해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4.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루카14,12-13)

예수님께서는 보답을 받게 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고, 갚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받을 것을 전제로 호의를 베푸는 것은 누구나 합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형제자매들과 관계를 맺을 때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내가 이정도 해 주었으니 다음에 뭘 부탁해도 들어주겠지” “이 사람이랑 친해지면 도움이 되겠어.” 그런 생각으로 사람들을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 이방인들이 부유한 사람들의 자비를 통해서 허기를 채우고,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식사에 초대한 그 주인에게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정작 초대해야 할 사람들은 내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 즉 소경, 절름발이, 불구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은 나를 초대하지 못하지만,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 주실 것입니다. 넘치도록 후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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