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 경배 예절”
● 찬미를 받으소서. 아기 예수님
◎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님
● 저희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이 되시어 초라한 마구간의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
◎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님
● 모든 영광과 권능을 버리시고,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아기 예수님!
◎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님
●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주시며, 구원을 주시기 위해 겸손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으신 아기 예수님
◎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님
● 보잘 것 없는 목자들의 경배를 기쁘게 받아 주신 아기 예수님!
◎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님
● 이 밤! 저희의 부족한 찬미와 경배를 기쁘게 받아 주시는 아기 예수님!
◎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님
● 기도합시다. 온 세상에 평화와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
◎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바라보면서 저희가 주변에 있는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게 하시어 아기 예수님의 평화와 구원을 전하게 하소서. 저희가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봉사하여,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여, 온 세상 모든 이들이 한 마음 한 몸으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게 하소서. 또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저희에게 평화와 구원의 은총을 주시어, 마침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게 하소서. 아멘.
1. 구유의 의미
성탄을 맞이하여 교회는 성당 안과 밖에 다양한 마구간을 만들고, 그 안에 구유를 설치합니다. 그리고 그 구유에는 포대기에 쌓여 뉘여 있는 아기 예수님을 모셔 놓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초라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시어 포대기에 쌓여 구유에 누워 계셨고, 그것이 목자들에게는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알아 뵐 수 있는 표징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유는 지역에 맞게, 그리고 특색 있게 꾸며져 성탄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성탄시기에는 다양한 구유가 등장하지만 교회 안에서 대표적인 구유는 “베들레헴의 구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이고, 그 역사적인 의미를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 성당의 구유가 유명한데,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모셔진 구유의 나무는 12세기 이래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구유라고 인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성당의 중앙제대 밑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성당과 달리 따로 인위적인 구유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기 예수님의 구유의 일부가 보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각 본당에서 볼 수 있는 성탄구유는 1223년 성탄 때 아씨씨의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유래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동료들과 은둔생활을 하시던 중에 성탄 행사를 보다 더 의미 있게 지내고자 베들레헴의 외양간을 본뜬 마구간을 만들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짚으로 가득 찬 마구간을 만들고 그곳에 구유를 만들어 놓은 다음 그 곁에 당나귀와 황소를 배치하였습니다. 당나귀는 체구가 작으면서도 허리가 튼튼하여 등에 짐을 지우고 다니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당나귀의 장점은 대단히 겸손한 동물입니다. 하지만 단점은 고집이 많아 주인의 음성을 듣지 않고 이기적인 기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세상살이에 바쁜 모든 이방인들을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황소의 특징은 인내와 충성입니다. 구유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황소의 의미는 죄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을 참는 인내심을 황소를 통해 유대인들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나귀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상징하고, 황소는 유대인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당나귀와 황소를 통해서 아기 예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유를 만들 때는 반드시 황소와 당나귀를 한 마리씩 배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프란치스코 성인을 통해 구유에 대한 신심이 증가되었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풍속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구유를 만들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오시는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2. 구유경배
이 세상 어느 부모도 자신의 자녀가 초라한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의 몸을 통하여 이 세상에 강생하실 때 마구간에서 태어나시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시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 외아들까지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는 구유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재물이 있는 이들만, 권력이 있는 이들만”을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라한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면서 “아기 예수님! 제가 좋아하는 사람만, 저를 좋아하는 사람만을 사랑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구유를 경배하면서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며. 이 큰 사랑을 받았으니, 이 사랑을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나눔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께서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니 “나 또한 나를 낮추어 겸손하게 살아가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언제나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구유경배를 하면서 구유예물을 바치는데, 이 예물은 단순한 봉헌이 아닙니다. 이것은 가장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을 아기 예수님처럼 대하며, 그들을 돕겠다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유를 경배하면서 “눈이 열려 아기 예수님의 구유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내 삶은 변화될 것입니다. 아기예수님의 탄생이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가 되는 것처럼, 내 삶도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평화가 될 것입니다.
3. 성탄트리
성탄 기간 중 화려한 전구나 별, 장식품등으로 성탄트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선물을 놓고 함께 나눕니다. 언제부터 크리스마스 때 나무를 장식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1600년경 독일에서 맨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이 지방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성당 앞 정원에서 낙원극(樂園劇)을 공연하였는데, 낙원극을 공연하는 동안 ‘생명의 나무’(창세 1,9)를 상징하는 상록수에다 하얗고 동그란 과자를 달고, 나무 주위에다 촛불을 피워 나무를 빛나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남부 독일 지방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파라다이스(Paradais)라고 부르고 있음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중세의 낙원극에서 유래되었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 후 크리스마스트리는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나타나게 되고, 현대에는 전 세계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 나무를 장식합니다.
그리고 성탄트리 아래에 다양하게 준비한 선물을 내어 놓고, 성탄미사 후 함께 선물을 나누기도 합니다. 성탄트리가 빛나야 하는 이유는 아기 예수님 때문이고, 아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이들이 성탄을 기뻐하는 것이니 성탄트리 아래에 선물을 갖다놓고 서로 나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산타클로스
산타클로스는 세인트 니콜라스(Saint Nicholas)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고 다니는 붉은 외투 차림에 흰 수염의 노인을 산타클로스라고 하는데, 미국에 이주해온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전해져 세계 여러 나라에 대중화되었습니다. 원래는 4세기 전반에 터키의 남부에 살았던 성 니콜라오(St. Nicholaus) 주교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산타클로스의 복장을 보면, 주교님의 빨간 수단이 떠오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자선심이 많고 특별히 어린이를 사랑했던 성 니콜라오가 어린이들을 방문하여 선물을 나누어주었다는 전설과 결부하여 성탄 전날 밤(24일), 어린이들의 양말 속에 장난감과 과자를 가득 채워주는 풍습이 발전되었습니다. 신대륙 발견 이후 미국에 이주해 온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이러한 옛 가톨릭 관습을 그대로 보존, \’신비의 사람 방문\’이란 관습으로 되살려 12월 5일에서 25일 사이에 실시하여 현재까지 계속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교회가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지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분은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없어질 선물을 나누어주시는 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 없어지지 않는 선물을 주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