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 주시는 예수님
어느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루카7,36). 이 여인이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습니다(루카7,38).
그녀는 죄가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으며,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눈물로 적신 예수님의 발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렸습니다. 그리고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사람의 발에 입 맞추는 것은 지극히 겸손한 태도로서, 생명을 구해 준 사람에게나 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그녀는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회개하고 용서를 받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죄인을 향한 예수님의 온유와 자비를 보고 그녀는 감동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벌써 회개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마음먹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깊은 통회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굳게 믿고 있었기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흐르는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렸으며 입 맞추고 향유를 발라 드렸던 것입니다.
주님께 용서를 청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린 여인은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루카7,50)라고 말씀하시며 그녀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 여인은 용서받은 사람이고,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믿음은 그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예수님 앞에 드러내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였으며, 마침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주님께서는 그 눈물을 닦아 주시며 구원을 주십니다. 진실하게 용서를 청할 때, 주님께서는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평안히 가라.”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회개의 눈물은 과거의 나를 변화시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고, 죄로 인한 고통이 아니라 평화와 기쁨만이 흐르게 합니다. 비록 몸은 과거에로 다시 돌아가려고 끊임없이 유혹에 빠져들 수 있지만, 주님의 사랑과 은총은 나를 온전히 바꿔 놓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진실한 회개와 찬미와 감사를 통하여 내 삶을 변화시켜 봅시다.
예수 성심 성월①
예수 성심 성월은 예수님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는 달로서 가톨릭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이 있는 6월을 예수 성심 성월로 지정하여 축일을 성대히 기념하고 성시간과 기도회 등 예수성심을 공경하는 신심행사를 통하여 성심의 신비를 묵상합니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인간적 신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예수성심을 공경하고 묵상함으로써 신자들은 기도와 희생, 보속으로 그 사랑에 보답할 것을 다짐합니다. 또한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예수성심께 일치시킴으로써 신앙생활에 큰 활력을 가져옵니다. 교회는 특별히 성월기도로서 ‘예수성심께 천하 만민을 바치는 기도’를 바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내는데, 예수 성심이 성체성사와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입니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부터 시작하여 점점 보편화되었습니다.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전례력에 도입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6월 한 달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 인간을 향한 조건없는 사랑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 드리려고 노력해 봅시다.
예수 성심 성월 ②
예수님께서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가 수녀가 된 지 3년째 되던 해인 1673년 12월 27일,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어느 날, 기도에 몰두하고 있던 그녀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위에는 십자가가 있고 주위에는 가시관이 둘러있는, 사랑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자신의 성심을 보여주시면서 “보라! 사람들을 이렇듯 사랑하였고, 그들에게 이렇듯 많은 은혜를 베풀었건만 이 무한한 사랑에 대해 오직 배은망덕만 당하는 이 성심을! 내 성심은 망각과 무관심 그리고 무례를 견디고 때로는 특별한 사랑의 유대로써 내 성심과 밀접히 결합된 이들로부터 이 모든 능욕을 당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체 성혈 대축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 금요일을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축일(예수 성심 대축일)로 정하고, 그날 영성체하는 것은 물론 제대 위에 성체를 현시함으로써 예수 성심이 받은 불경을 배상하기 위하여 엄숙히 보상 행위를 하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성심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경하도록 권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사랑을 부어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그녀는 매주 목요일 밤마다 한 시간 동안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셨던 고통의 시간을 묵상하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첫 번째 목요일 밤마다 한 시간 동안 본당에서 성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시몬이라는 바리사이가 예수님을 초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눈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마음을 아셨고, 그녀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초대한 이는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루카7,39)하며 예수님을 판단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예언자시라면 당신께 손을 댄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알았다면 그 여인의 접근을 막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예수님을 사랑했다면 그는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게 막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고 있는 시몬에게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루카7,40)라고 말씀하시면서 오백 데나리온 빚을 진 사람과 오십 데나리온 빚을 진 사람의 예를 드십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입니다. 그런데 빚을 진 사람들은 모두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채권자는 두 사람의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빚을 탕감 받은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더 고마워하고 감사하겠느냐 물으십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질문에 정확히 대답을 합니다.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루카7,43)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하듯이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더 고마워 할 것입니다.
비유의 뜻은 이렇습니다. 채권자는 예수님이시고 빚(죄)진 사람(죄 지은 이)은 죄 많은 여인과 예수님을 초대한 시몬입니다. “사랑”과 “감사”는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발치에 있던 그 죄 많은 여인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를 행동으로 드러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으로 드러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사랑과 감사를 시몬의 행동과 대조를 시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루카7,44-45)
죄 많던 여인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극진한 사랑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일반적인 환대와 예의의 표현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몬은 그녀를 죄인으로 멸시했고, 더 나아가 그녀를 통해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