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의 포교활동

순교자들의 포교활동

신자들은 죄인으로 혹독한 고문과 심문을 당했지만 고난을 기쁘게 이겨내어 심문을 하던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그 관직을 그만둔다든가 아니면 그들이 신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시절만 좋으면 나도 천주를 믿을텐데.” 하면서 순교자들의 무죄함과 의로움을 알았다고 합니다.

 

순교자들은 체포되어 관장의 심문대나 고문대 앞에서도 포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관장 앞에서 신앙을 변론하거나 교리 해설을 통하여 오히려 천주교의 옳음을 전하였고, 많은 비유들을 곁들인 교리 해설은 관장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관장들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말 잘 하는 귀신이 붙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또한 부녀자들의 교리변론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어린 아이에서부터 시작하여 80세 노인들조차도 논리정연하고 알맞은 비유로 그들의 심문대 위에서 포교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신자들이 거의 스스로 공부하고 익힌 내용들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전문적인 교리신학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양 신부님들의 서툰 우리말로 놀라운 신앙적 지식을 간직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들은 서적이나 신앙인들의 입전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익혔던 것입니다. 공동체가 공동체에게 교리를 전해주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입에서 입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순교 선열들의 교리에 대한 지식과 신앙은 그들이 처해 있었던 무지나 연령이나 환경 및 남녀를 불물하고 대단히 깊었고, 철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바라본다면 현대의 자유로운 신앙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은 반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조선교회의 특징은 순교하여 죽은 자가 많을수록 신자수는 늘어갔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순교하면 열이 생기고, 열이 순교하면 백, 천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1801년 박해 이후에 성직자가 한 분도 안 계셨던 30여 년을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숨어 살았던 신자들의 피 눈물 나는 활동을 통하여 조선 교회는 유지되어 왔고, 더욱 성장하였습니다.

 

내가 상황이 좋아야 만이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굳게 믿고만 있다면 나는 그 믿음을 선포할 수 있고, 선포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거나,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자신의 신앙을 부끄러워한다면 결코 복음을 선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누구와 함께 있든지 내가 신앙인임을 명심하고, 내 신앙을 선포해야 합니다. 또한 진실을 말하고, 정의 편에 서 있기에 불이익을 당한다 할지라도 나는 신앙인으로서 옳은 일들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하는 복음선포입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내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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