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막시무스 주교님의 “주님이 받으신 세례의 신비”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자 요르단강에 내려가실 때 그 강에서 천상의 예식과 표지로 축성되기를 원하셨다고 복음서는 말합니다. 비록 주님의 탄생과 그분의 세례 사이에 수년의 간격이 놓여 있지만, 양일 다 같은 시기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주님의 탄생 축일 바로 후 같은 전례 시기에 주님의 세례 축일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세례 축일도 탄생 축일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탄 때 사람으로 탄생하여 나타나셨지만 오늘 세례 받으실 때 신비 속에 하느님으로 다시 탄생하듯이 나타나십니다. 성탄 때 동정녀를 통해서 탄생하셨지만 오늘은 신비 안에서 탄생하십니다. 사람으로서 탄생하실 때 그의 모친 마리아의 품에 안겨 계셨습니다. 오늘 신비를 통해서 당신 신성을 보여 주실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그 음성으로써 그를 포용하십니다. 그때 어머니 마리아는 아기를 고이 품에 안고 귀여워하셨습니다. 오늘 아버지께서는 애정 어린 증언으로 당신 아드님을 보살피십니다. 어머니는 그를 동방 박사들에게 내어 주어 흠숭하도록 했습니다. 오늘 아버지께서는 그를 뭇 민족들에게 드러내시어 경배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 예수님께서는 성세대에 내려오시어 당신의 거룩한 육신이 물로 씻기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거룩하신 분께서 왜 세례 받기를 원하셨는가?” 자, 들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으시는 것은 당신이 그 물을 통하여 성화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통하여 그 물이 축성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의 몸이 정화되기 위해서가 아니고 당신이 접촉하시는 그 물을 정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께서 축성 받으심으로써 물이 축성되었습니다.
구세주께서 세례 받으실 때 우리 세례물이 정화되고 세례대도 정화되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세례 받을 민족들이 그 물을 통해서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신뢰심을 갖고 그를 뒤따르도록 그리스도께서는 앞장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나는 구약의 다음 사건을 세례의 예표로서 이해합니다. 불기둥이 앞장서 홍해를 거쳐 지나감으로써 이스라엘 자손들이 용감하게 뒤쫓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불기둥이 물을 먼저 지나가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통과할 길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울로 사도의 말에 의하면 이 사건은 세례의 상징이었습니다. 광야의 구름이 이스라엘 사람들 위에 머물고 물결이 그들을 담고 있을 때 어떤 면에서 보면 세례가 분명히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은 변함없으신 주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때 불기둥 속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앞장서 가신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이제는 세례로써 당신 몸이라는 기둥으로 그리스도 백성들을 앞장서 가신 분도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그 당시 뒤따르던 사람들 앞을 비추어 주셨던 불기둥이시고 이제 신자들의 마음에다 빛을 부어 주시는 불기둥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시에 물 속의 길을 견고히 하셨고, 이제 성세대에서 신앙의 발자취를 견고히 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