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힌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
대림시기에는 대림환을 만들고 4개의 초를 준비합니다. 하나씩 불을 밝히며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이제 촛불이 하나 켜졌습니다. 이 촛불은 세상을 밝히고, 나를 비춥니다. 내 안의 어둠을 몰아내고, 깨어서 주님을 기다리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깨어 있는 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깨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 잠들어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였으면 좋겠는데 잘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것을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잊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이유는 마음이 없어서인 듯 합니다. 마음이 없기에 의지가 약해지고, 마음이 없기에 성실하게 깨어 있는 이들 옆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림시기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언제 오신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깨어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당황스럽지 않겠지만, 기다리지 않는 이들에게는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재림 때의 상황을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마태24,37)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노아는 홍수가 날 것을 알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벌을 자초했습니다. 사람들은 무관심 속에서 쾌락만을 얻으려고 골몰하였고, 결국 그렇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오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희망적인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내 삶을 변화시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절망적으로 바라본다면 노아의 말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것처럼 나 또한 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노아 때의 사람들의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에만 의존하지 말고 나의 구원자이신 주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노아는 홍수를 알렸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39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마태24,38-39ㄱ)고 전해주는 것처럼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하느님의 심판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살아가는 데만 관심이 있는 나. 예수님의 말씀에는 귀를 막고, “일하고, 놀고, 사람 만나느라고 시간이 없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혼식 때문에 주일 미사에 빠지는 가정의 아이들은 시험 때는 당연히 성당에 오지 않습니다. 집안에 손님이 오셔서, 그래서 분주해서 성당에 나오지 않는 가정의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에 성당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저런 일로 성당에 안 오고, 부모님은 다른 일 때문에 안 오고…,
원인은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있는 가정에서 누군가가 그랬다가는 난리가 날 것입니다. 신앙이 있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하게 알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내 가정도 그렇게 말씀을 듣고 움직여야 합니다.
노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배를 만들어 생명을 구했습니다. 준비한 사람은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이들은 결국 멸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마태24,39ㄴ)라고 말씀하십니다. 홍수가 닥쳐 모든 것을 휩쓸어 갈 때까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멸망에는 관심 없이 살아왔던 것처럼, 깨어있지 않은 사람들도 결국 그렇게 멸망할 것입니다. 준비하지 않는다면 어떤 경우에서든지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황하지 않는 방법은 준비하는 것이고, 대비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께서 기쁘게 봐 주실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0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마태24,40-41)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선택된 이들은 누구고 남겨진 이들은 누구일까요?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남겨진다는 것. 선택받지 못한다는 것. 버려진다는 것. 늦가을 밭을 둘러보면 뽑지 않은 “무우”며 “배추”들, 그리고 “고추”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작거나 벌래 먹었거나 보잘 것 없는 것들입니다.
뽑힌다는 것. 그것은 선택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뽑아도 좋은 것만을 뽑습니다. 그런데 남이 나를 뽑아 주길 바랄 때에는 나 또한 좋은 모습으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분이 언제 나를 뽑으러 올지 모릅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기다려 주시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마음가짐은 다른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은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만을 생각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예수님의 사랑받는 자녀)을 위해서, 가족(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준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향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힘든 일 속에서도 늘 감사하며 예수님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맷돌질을 하는 두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여자는 맷돌 가는 데 완전히 빠져있고(일, 자신의 삶, 쾌락 등), 다른 여자는 사람의 아들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기에(앉으나 서나 주님 생각.^*^)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남겨두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두 사람 중 하나를 뽑는다면 누구를 뽑겠습니까? 어떤 사람을 뽑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뽑힐 수 있는 사람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