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불구자를 치유하는 베드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사람들에 의해 들려 왔습니다. (사도3,1-3)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였으며 이 사람이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습니다. 이 불구자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불구자(앉은뱅이)의 처지는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에 의해 더욱 초라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불구자는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면서 사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이 때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다음 빈 칸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나는 ▢도 ▢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 ▢▢ ▢▢ ▢▢▢▢의 ▢▢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3,6)
베드로 사도는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3,6)라고 말하며 불구자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치유 받은 불구자는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 벌어졌습니다. 온 백성은 불구자였던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습니다.
① 베드로 사도가 기적적인 치유를 할 수 있는 이유
첫째,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못할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사도들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과 병자를 치유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과 소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이 능력은 더 크게 발휘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믿음의 힘으로 불구자를 치유한 것입니다.
둘째,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과 공명하며, 예수님의 손이 되어 불구자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치유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치유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님 안에 머물 때 베드로 사도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볼 수 있고, 나 또한 예수님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 머물 때 형제자매들의 모습 안에서도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에게 예수님을 보여 줄 수 있게 됩니다.
②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치유는 당연한 것
치유 받은 그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있던 백성들은 크게 경탄하며 ‘솔로몬 주랑’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백성을 보고 너무도 겸손하게, 그리고 너무도 당당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사도3,12).
베드로 사도는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이러한 기적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5. 솔로몬 주랑에서 베드로 사도의 설교
① 하느님의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 사도는 지금 앉은뱅이의 치유를 목격한 유다인들이 바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했던 것을 기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사도3,13)
이 말을 들은 유다인들은 가슴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이 베드로 사도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종이라고 부른 까닭은 예수님의 일생이 제2이사야서(이사40-55장)에 나오는 하느님의 종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대신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이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라는 것입니다.
② 생명의 영도자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나가는 길이요, 진리이시기에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영도자이십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3,15)
죽은 이들의 부활에 있어서 첫째 되시는 예수님께서 다른 이들을 영생에로 인도하는 분이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영도자이십니다. 생명의 영도자를 유다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그분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자신들이 바로 그 부활의 증인이라고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께서 내 생명을 이끌고 계심을 알고 있어야 하고,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얻으려고 예수님께로 나아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가까이에 있는 이들은 나의 삶을 보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