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목요일
성목요일은 성주간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순절에 해당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이날 저녁미사에는 대영광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로부터 시작하여 성주간의 성월요일, 성화요일, 성수요일을 거쳐 성목요일 주님만찬 저녁미사 직전에 끝나며 이어서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성목요일 자체는 사순절의 마지막 날이 되지만 성목요일의 저녁미사는 사순절기간에 해당되지 않으며,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성목요일
성목요일은 성주간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순절에 해당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이날 저녁미사에는 대영광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로부터 시작하여 성주간의 성월요일, 성화요일, 성수요일을 거쳐 성목요일 주님만찬 저녁미사 직전에 끝나며 이어서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성목요일 자체는 사순절의 마지막 날이 되지만 성목요일의 저녁미사는 사순절기간에 해당되지 않으며,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① 성유축성미사
이날 보통 각 교구에서는 오전에 주교좌 성당에서 성유축성미사를 봉헌하고, 미사 중에 “사제서약 갱신식”을 거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며 성체성사를 세우셨기에, 성목요일을 성체성사를 거행할 사제직 탄생의 날로 연관 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남겨주신 “사랑의 계명”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왕직, 예언직,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으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계명과 실천, 내어줌의 봉사와 섬기는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② 대영광송
성삼일은 최고의 축제일이기에 교회는 크나큰 축제일을 시작하면서 전야제를 가집니다. 이 전야제가 바로 주님만찬 저녁미사의 입당으로부터 대영광송에 이르기까지의 순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전야제에서 교회는 성삼일의 절정인 부활성야의 기쁨이 임박했음을 미리 알리고 맛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성목요일 저녁의 대영광송입니다. 부활성야의 대영광송이 모든 대영광송들 중 최고의 대영광송이라면 성목요일의 대영광송은 이 부활성야의 대영광송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대영광송을 부르는 방식은 부활성야의 대영광송을 부르는 것과 동일합니다.
사제가 대영광송을 선창하면 성가대와 회중은 성대한 오르간 반주와 함께 대영광송을 부르기 시작하며 지역에 따라서는 그와 동시에 종소리를 온 세상에 울립니다. 이 대영광송이 끝나면 전야제가 끝나게 되고 본격적으로 성삼일의 첫날인 성금요일의 수난과 죽음의 신비에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대영광송이 완전히 끝난 후부터 종과 악기를 사용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③ 세족례
성목요일 최후의 만찬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을 재현하는 세족례를 거행합니다. 그리고 세족례를 통해서 섬김의 삶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13,14-17)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섬기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④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심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그냥 말로만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먼저 보여주시고 행하라는 계명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하라는 계명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13,34-35)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셨기에 당신백성을 돌보셨고, 당신 백성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조건이 있는 사랑도 아니고, 대가를 바라는 사랑도 아닙니다. 그런 사랑을 하라고 예수님께서는 권고가 아니라 의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이 말씀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⑤ 겟세마니 기도(마태26,36-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어라.(마태26,36),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수난의 잔을 마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고통을 당하시기에 그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고, 예수님께 가해진 고통은 상상할 수가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결코 쉬운 죽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당신의 고통을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태26,38)
지금 이 순간 제자들이 해야 하는 것은 주님과 함께 깨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통스럽게 기도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이해하고,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고 있는 제자들만큼 예수님께 큰 힘이 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 제자들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계속 하실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모두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깨어서 할 일은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을 위해서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다음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26,39)
이 일을 하러 오셨지만 그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기에 괴로워하고 계십니다. 이런 유약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영웅적인 모습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메시아가 아니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활 하면서 힘들고 지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 할지라도 힘을 내라고 모범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고통은 고통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나가는 사람들이 바로 신앙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기도는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하느님께 협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 안에서 “기도의 효과”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지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다면 기도하지 말아야 될까요? 해도 소용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기도 할까요? 우리 눈에는 기도의 효과가 없는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효과를 보십니다. 즉 고통스럽지만 당당하게 십자가를 지실 수 있는 힘을 얻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마태26,40)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시간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깨어서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 곁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통을 바라보며 위로해 드리고, 나 또한 그런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기도하며 주님처럼 결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유혹입니다.
성체성사의 제정(마태26,26-3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를 위해서 내어 주십니다.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내 피다.” 특별히 성 목요일 최후의 만찬 미사에서는 성체성사의 의미에 대해서 더욱 깊이 생각해 보고, 나는 성체를 어떻게 모셨으며, 모신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①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26,26)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26,26)
자신의 몸과 피를 다른 이들을 위해서 내어 준다는 것. 이것은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이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성체성사는 나를 위해서, 나의 구원을 위해서 주님의 죽으심을 거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나를 위해서 내어 주시는데, 너무도 나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줘 버리고 자신은 죽음을 택하시는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나는 오늘도 무딘 마음으로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성체를 모시기 위해서는 영적인 준비와 육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영적인 준비는 은총지위에 있는 것으로서 회개와 감사를 통하여 내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성체를 영하기 전에 나는 내 삶을 반성해야 합니다(성찰). 또한 고백성사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회개). 회개한 영혼은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마음으로 성체를 감사히 받아 모십니다.
그리고 육적인 준비로는 성체를 모시기 한 시간 전부터는 공복재(空腹齋)를 지켜야 합니다. 미사에 참여하기 전에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환자가 약을 먹는 경우나 목이 말라 물을 마시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어떤 분은 성체를 모시면 가슴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 분은, 성체를 모시기에 부당하지만 내 안에 오신 예수님께 너무도 감사하고 당신을 모신 감실로서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성체를 모시면 꼭 체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자신은 죄가 너무 큰데, 감히 예수님을 모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성체를 모시지 않는다 함은 나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성체를 모신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죄를 짓고 살기에 더러운 내 마음 안에 예수님을 모신다는 것이 너무도 죄송스럽고, 성체를 모시고 또 죄를 짓는다는 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성체를 영할 때 마다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러니 올바른 마음 가짐 없이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을 살피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7-2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성체와 성혈을 모셔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② 받아 마셔라. 이는 내 계약의 피다.
예수님께서는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26,27-28)
예수님께서는 다른 희생제물의 피가 아니라 당신 피로 새 계약을 맺어 주십니다. 십자가에서 세상 모든 이를 위해 피를 흘리심으로써 하느님과 새 계약을 맺어 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몸과 피가 바로 참된 양식이고 참된 음료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양식이요, 신앙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영적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6,51-56)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체를 모실 때, 그리고 그 힘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함께 잔치에 참례하게 될 것입니다.
성체를 모시고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비방하지는 않았는지, 나는 얼마만큼 성체를 자주모시며, 성체모시기를 갈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돌아보면서 부족하다면 도움의 은총을 청하면서 노력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