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과: 스테파노의 순교 2
④ 성령을 거역한 행동
스테파노는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사도7,51)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이 있을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테파노는 최고의회 의원들을 향하여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라고 말하며 교만하고 하느님을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는 그들의 죄를 지적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했지만 결코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응답하지 못했기에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스테파노는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사도7,52)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유다인들의 죄를 꼬집으며 지금 최고 의회 의원들도 똑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들을 죽였던 것처럼 “의로우신 분(예수님)”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따르지 않았기에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예언자들의 입을 막아 버렸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성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계약을 지키지 않았고, 하느님의 규정들을 지키지도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하느님의 백성, 선택된 민족이라고 자만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느님의 자리에 올라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⑤ 스테파노의 순교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사도7,56)
최고 의회의 의원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고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듣다 보니까 “자신들이 바로 의로우신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라고 말하고 있었고, 영적인 눈이 열린 스테파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습니다. 스테파노는 본 것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스테파노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사울은 그 살인자들이 스테파노를 죽일 때 그 일을 옹호한 사람으로 훗날 이방인의 사도가 된 바오로 사도입니다.
스테파노는 살인자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7,59)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7,60)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 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스테파노는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하며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갔습니다.
살아가면서 타인의 가슴에 수많은 돌들을 던집니다. 물론 수많은 돌을 맞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를 맞으면 보통 수십 개 수백 개의 돌로 응수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손해를 봤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비방합니다. 유다인들은 스테파노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스테파노의 말이 귀에 거슬렸을 뿐만 아니라 스테파노의 말이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눈이 멀고 귀가 막혔습니다. 그랬기에 스테파노에게 돌을 던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믿고 있는 이들은 이렇게 잘못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것을 덮기 위해 먼저 공격을 하는 경우가 가정에서나 공동체 안에서, 직장에서 종종 발생합니다. 지금은 그것이 잘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느 날,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아!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하고 후회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타인에게 돌을 던질 때는 “내가 이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이 돌을 던져야만 하는가?” “왜 던지려고 하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해 보야 합니다. 그리고 집어든 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눔 1: 형제자매들의 마음에 돌을 던지는 행위는 무엇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8,7) 그러자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고, 마침내 모든 이들이 돌을 내려놓고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있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주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중에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봉사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보다 작은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할 일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손해를 보면서 살아갈 때 그것이 결코 손해가 아님을 알게 될 때가 오게 됩니다. 삶의 가치는 세상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평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손해를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5,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5,44)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스테파노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으면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7,60)하고 외칩니다.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용서입니다. 그 용서를 죽을 때까지 행하지 않는다면 내가 주님께로부터 용서받는 다는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신앙인.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살아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마태5,46)라는 말씀을 기억하는 신앙인. 그런 신앙인의 기도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신앙인의 임종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하면서 나 또한 그렇게 주님의 은총 안에서 주님을 찬미하며 주님께로 돌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이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다가 주님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제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는 내가 되려고 노력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