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이들이 해야 하는 것.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이들이 해야 하는 것.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몸소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6,53)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6,54)

 

자동차는 연료가 없으면 멈춰 버립니다. “생명의 빵도 그렇게 되었으면 쉽게 이해할 텐데…,”하는 분심을 해 봅니다. 미사 참례 한번 안하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성체 한 달 영하지 않으면 말을 못하게 되고, 기도 안하면 숨이 막혀 버리고그렇게 되면 잊어버리지도 않고, 안 찾을 레야 안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난 벌써 걷지도 못하고 숨이 막혀 죽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더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몸은 참된 양식이고,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요한6,55) 매 미사 때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에게 오시지만 당연한 것으로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무딘 마음으로 모셔도 안 됩니다. 언제나 감사하며, 주님과 함께 있음을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며 아멘.” 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전에 신학교에서 선배 부제님이 부제품을 받고 첫 방학을 보내고 와서 해준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처음 성체 분배를 할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 내 손으로 예수님의 몸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몰라.” 그리고 다음 방학 때는 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그 두렵고 떨리던 마음이 모두 사라지고, 성체를 분배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볼 때가 있어!”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내 눈에는 빵과 포도주만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이 없다면 밀떡과 포도주밖에는 안 보일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저 빵과 포도주를 형식적으로 받아먹고 마시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어렵게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죽음으로 나오게 된 보상금(위로금)”으로 작은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일구어서 두 가족이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외아들은 어머니의 마음대로 커 주지 않았습니다. 삐딱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들은 어머니 몰래 작은 밭을 팔았습니다. 도박 빚 때문에 밭을 몰래 팔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그 밭이 어떤 밭인데, 그 밭은 네 애비 피여! 그 밭이 바로 네 애비 몸이란 말여! 어떻게 그것을 팔수가 있냐! 이놈아!~”아버지의 목숨이 밭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머니가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아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던 아들은 그 밭이 그저 밭일 뿐 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6,56)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나이 산에서의 계약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희생 제물로 바쳐졌던 황소의 피를 받아, 반은 제단 위에 붓고(하느님을 대신하는 제단), 반은 이스라엘 백성 위에 뿌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계약의 성립을 표현하였습니다.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제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몸과 피가 새로운 계약의 표징이 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몸과 피는 황소의 피나 만나와는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몸과 피는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성체를 모시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과 함께 살아가니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갈 수밖에 없고, 일상의 모든 삶을 거룩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이들은 큰 힘을 발휘합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을 이기시기 위해 아버지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아버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신 것처럼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이들도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밤을 새워 기도하셨고, 또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듯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이들도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밤을 새워 기도하고, “땀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셨을 때 베드로 사도의 만류에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라고 말씀하실 때의 그 심정을 알고 있기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이들은 인간적인 달콤한 유혹들을 이겨내기 위해 온전히 주님께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확신과 기쁨에 찬 삶을 살아가고, 예수님께로부터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큰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이들은 기도하는 이들이고, 주님과 함께 하는 이들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들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그렇게 주님과 하나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을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간다.”(요한6,57)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모습을 변화시킵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합당한 예복(혼인잔치의 비유)을 준비해야 함을 알고 있기에 의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해 드리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내 옆에 있는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가려고 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기쁘게 해 나갑니다. 하루 종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들을 한다할지라도 오로지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기쁘게 땀을 흘립니다. 그렇게 누가 보든 안보든 간에 자신의 일을 해 나갑니다. 일을 기쁨으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기도와 미사 안에서 큰 은총을 체험하고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굳게 믿어야 하고, 합당하게 받아 모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성체를 받아 모시는 나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것을 기억하면서 나 또한 내 형제자매들을 위해 나의 것을 내어 놓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기에 서로 일치하여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가해 11-20주일, 연중시기(가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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