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기도와 용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청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청해야 할 것은 마음 닫힌 이의 마음을 돌려 다시 하느님께로 향할 수 있도록 청하는 것이고,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청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청하는 것입니다. 나만의 능력이나 힘으로는 온전히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둘이나 셋이 하게 되면 주님의 은총 안에서 할 수 있고, 상처받았다 할지라도 치유하면서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우리의 청원을 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는 이와 함께 기도하면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고 내 마음도 알아주는 이와 함께 마음을 모아서 주님께 청한다면 주님께서는 그 청을 들어 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개인의 청원도 잘 들어주시지만 공동체의 청원을 더 잘 들어주십니다. 왜냐하면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는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공동체가 기도한다면 반드시 들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보잘 것 없는 한 영혼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이나 셋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려 모일 때, 예수님께서는 그 안에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그 기도는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기도이고, 그 기도를 하느님 아버지께서 꼭 들어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예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모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모여서 기도하는데, 이것은 당연히 들어 주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바로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자매가 다른 자매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함께 하면 할수록 많은 상처를 받았기에 드디어 그녀는 결심했습니다.
“그래! 다시는 그를 보지 말자! 그와 함께 하지 말자.”
그렇게 결심한 밤에 침묵하시던 주님께서는 기도 중에 이런 응답을 하셨습니다.
\” 얘야, 나는 그 아이도 사랑한단다.\”
그 자매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미워하던 사람도, 그래서 다시는 안 보려고 단죄 했던 그 사람도 하느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랬었지, 하느님께서는 그도 사랑하시지. 나처럼…,”
하느님께서는 아우 아벨을 죽인 죄인 카인에게도 그러셨습니다. “아무도 너를 다치게 두지는 않겠다. 너를 죽이지 못하도록 표를 찍어 너를 다치게 하면 일곱 갑 절 벌을 내리리라.”
내가 용서하는 이유는 일곱 갑 절 벌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그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아프게 해드리는 고통이 나에겐 더 큰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용서하는 것이고, 그가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를 용서하는 것이며, 내가 늘 용서받으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용서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용서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용서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비우고 겸손해질 때, 사랑과 용서가 자라나게 됩니다. 사랑과 용서가 내 안에 있지만 교만과 분노가 가로막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상처를 주고 멀어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되게 기도할 때 교만과 분노가 자리를 비키게 되고, 사랑과 용서가 드러나게 됩니다. 먼저 손을 내밀게 됩니다. 내가 진실하게 받아들일 마음이 있고, 용서할 마음이 있을 때 더더욱 깊이 있고 간절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용서는 쉽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작은 잘못도 용서해 줄 수 없습니다.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만이 참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그를 용서해 주십니다. 내가 그를 용서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 어떻게 용서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고 있는지, 아니면 기도하고 있는 척 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용서할 마음이 있는지, 용서를 청할 마음이 있는지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형제가 잘못을 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고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일곱 번을 이야기 합니다. 일곱 번이라는 숫자를 이야기 한 것은 적어도 베드로 사도가 용서하려고 노력하겠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 용서한다는 것은 용서 할 만큼 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못을 범한 사람이 뉘우치지도 않고, 삶을 바꾸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용서해 주어야 할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한없이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무한히 용서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이 말씀은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용서해 주시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도 용서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내 형제를 용서한다면 하느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헤아리신 다면 감당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의 용서하심과 자비로우심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위로요 희망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용서하시고, 무한히 자비로우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남을 용서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하게 기도하면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도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진실하게 기도할 때, 둘이나 셋이 마음을 모아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반드시 들어 주십니다. 굳게 믿으며 기도하고, 용서의 삶을 살아가는 내가 되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