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황홀한 체험, 그리고 내가 머물러야 하는 곳

황홀한 체험, 그리고 내가 머물러야 하는 곳

 

예수님께서 거룩한 모습을 드러내실 때 제자들은 황홀경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마태17,3)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예언자들을 대표합니다. 즉 율법과 예언의 말씀은 모두 예수님께 종속되고, 예수님 안에서 모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고, 예언의 말씀을 모두 성취하러 오셨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루어야 할 예언은 메시아가 십자가 위에서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는 이유는 예언된 모든 것들은 이루어져야 하며,“수난과 죽음앞에서도 굳은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수난과 죽음을 당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이곳에 머물기를 청하는 베드로 사도

너무도 놀라운 것을 보게 되면 시선은 고정됩니다. 그리고 발걸음도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지금 베드로 사도가 그렇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놀라운 광경에 넋을 잃었습니다.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고,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광경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눈길이 머물고, 눈길이 머문 곳에 몸도 머물게 됩니다. 이 기쁨 속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태17,4)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머물기를 청하며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태17,4)

이 큰 기쁨과 황홀함 속에서 자기 자신은 잊어버린 것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이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사는 것처럼, 그렇게 베드로 사도는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 눈에는 오로지 주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머물 때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편안함이나 영광스러운 자리에 머물고자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시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고,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그 고통은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이 기쁨으로 힘을 얻어 다시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쁨을 가지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입니다.

 

2. 하느님의 말씀

베드로 사도는 황홀한 순간에 머물고자 했지만 그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 큰 기쁨 속에 머물고자 청했지만 그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구름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17,5)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3. 내가 머물러야 하는 곳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유혹,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만 머물고 싶은 유혹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기쁘게 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는 잘 지내고, 그와 함께라면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불편하거나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마음을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는 것이고,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려는 마음자세와 노력입니다. 주님과 함께 머물며,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과 함께 가며, 주님과 함께 만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를 하다보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분명 이렇게 기도했을 때는 큰 기쁨이 있었고, 황홀경도 있었고, 주님의 응답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기도해도 건조함과 메마름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 과정을 겪으면서 계속해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맛을 추구하는 그 마음도 버리고 주님께로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기도방법을 바꾸려고 하고, 자꾸 맛을 추구하려 하고,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쫓아가려 합니다. 사이비종교나 이단에 빠지는 이유도 그 맛을 추구하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모르기에 그렇게 맛을 추구하다 엉뚱하게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머물러야 하는 곳은 주님께서 계신 곳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이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그 자리를 떠나라 하시면 과감하게 떠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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