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요한2,13)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습니다.(요한2,14-15)
성전은 바로 하느님의 집이고, 하느님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에서의 모든 행동 하나 하나는 하느님 앞에서의 행동임을 알고, 경건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성전을 얼마나 경건하게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혹시 성전을 학교 교실이나 기타 공공장소로 생각하지는 않았는가에 대해서 깊은 반성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제들은 거룩한 곳을 더럽히는 장사꾼들의 상거래를 말리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상거래를 통해 큰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멸망 전의 한 신심 깊은 율법학자는 탄식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사제이지만 그의 자식들은 재무관이었다. 그들의 사위는 성전의 검사관이며 그들의 하인들은 우리들에게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을 만들어 소와 양을 모두 쫓아버리셨습니다.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셨고 그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제물로 비둘기를 팔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비둘기장을 열어 비둘기를 놓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2,16)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이 드러나고, 하느님의 집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유다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더욱 죽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성전은 내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성전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성전에서 조용히 하자는 형제자매들의 말에, 성전에서 경건하게 기도하자는 신자들의 말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성전을 성전답지 못하게 만드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쩌렁쩌렁한 예수님의 꾸지람을 들은 상인들은 당황하여 성전에서 물러갔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성전을 정화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요한2,17)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의 이러한 열정은 내가 본받아야할 열정입니다.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될 수 있도록 내 열정을 바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향할 것 입니다. 나와 함께 기쁘게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릴 것입니다.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
성전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온 세계의 유다인들은 봉헌물과 희생 제물을 예루살렘 성전에 바쳤습니다. 그 봉헌물과 희생 제물을 사제들이 관리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정말 손쉽게 돈을 벌어들이는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돈벌고 권력 잡는 짓을 경건한 예절로 변장시키는 장소로 둔갑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익금의 상당 부분을 세금 바치듯 사제들에게 바치는 장사치들을 쫓아냄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짓누르고 빼앗는 종교 지도자들을 고발하십니다. 이어서 성전의 멸망을 예고함으로써 그들의 종교 제도가 이미 망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이 참된 성전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돌이나 시멘트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인간의 몸과 마음 안에 그리고 따뜻한 인간 공동체와 신앙 공동체 안에 거처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성전 뜰은 이방인의 광장이라고 부르는 하급 광장이었고, 그 곳까지는 이방인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통은 그 곳에서도 항상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름길로 지나다니는 일조차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특히 과월절 전후에는 무시되고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이 바치는 제물은 상거래의 구실이 되었습니다. 회랑에 매어 놓은 소, 양 파는 점포, 광장 어디에나 벌려 놓은 환금상 등에 의해 이 거룩한 성전이 소아시아의 색채를 띤 아수라장 같은 큰 장터가 되어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성전에 바칠 제물(부자의 경우 소 한 마리 혹은 양, 가난한 사람의 경우는 비둘기 한 마리)과 성전세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세는 성전 세겔로 바쳐야 했는데 시중에는 로마 화폐만을 사용했기에 성전에서는 환전상이 필요 했습니다.
그런데 사제들은 거룩한 곳을 더럽히는 장사꾼들의 상거래를 말리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상거래를 통해 큰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셔나는 예루살렘 멸망 전의 한 신심 깊은 율법학자의 탄식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사제이지만 그의 자식들은 재무관이었다. 그들의 사위는 성전의 검사관이며 그들의 하인들은 우리들에게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을 만들어 소와 양을 모두 쫓아버립니다.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셨고 그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제물로 비둘기를 팔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친절하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비둘기장을 열어 비둘기를 놓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성전은 하느님의 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것을 통해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유다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더욱 죽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쩌렁쩌렁한 예수님의 꾸지람을 들은 상인들은 당황하여 성전에서 물러갔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거리낌 없이 단행하신 강한 이 정화 행동은 시편 69편 9절에서 “당신 집을 향한 내 열정이 나를 불사릅니다.”라고 한 것의 실현이라고 생각게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의 이러한 열정은 내가 본받아야할 열정입니다.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될 수 있도록 내 열정을 바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향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