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이 성전을 허물어라.(요한2,19)

이 성전을 허물어라.(요한2,19)

예수님께서는 장사꾼들의 소굴로 변한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그러나 장사를 통하여 이익을 추구하던 이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요한2,18) 이 말 안에서 예수님의 권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이라는 말을 통해서 그들 스스로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신들을 꾸짖으려면 그만한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 권위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는 수많은 표징들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기에, 또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 이들은 어떤 표징을 보여 주어도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허물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끄러워 할 줄 모르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언제나 되돌아보지 않고, 죄만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우리면서 내 잘못을 뉘우칠 줄 아는 이들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을 향하여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2,19)하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몸을 허물도록(죽음으로) 자유롭게 내주지만, 사흘 안에 다시 세우실(부활) 것입니다. 그리고 찬미와 경배를 드릴 성전이 예수님 자신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유다인들은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요한2,20)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이들은 황당했을 것입니다. “성전을 허물라는 말씀사흘 안에 다시 세우시겠다는 말씀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어쩌면 예수님을 정신병자 취급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생각하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사람들은 돌로 지은 성전, 46년이나 걸려서 지은 성전을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이 성전임을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 성전이고, 참된 경배는 예수님께 드려야 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드려야 하며, 예수님과 함께 드려야 합니다.

 

또한 성전을 허물라는 것은 이제 유다인들의 경신례를 폐기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미와 경배를 드릴 성전이 예수님 자신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식만 남은 경신례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돌이나 나무로 지은 건물을 돌보는 경신례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믿음과 사랑과 경건함이 사라진 성전은 성전이라고 말할 수가 없고, 믿음과 사랑과 경건함이 사라진 전례(경신례)는 결코 하느님을 찬미하는 전례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집이고, 하느님의 집입니다.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을 성전이라고 한다면 하느님이시며, 하느님 아버지와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성전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나 또한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이기에 내 몸 또한 주님의 성전이고, 이 성전을 거룩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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