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세상의 모든 자녀는 부모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면서 모든 이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은 가정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고, 사랑이 넘치게 만듭니다. 집회서의 말씀은 이렇게 우리를 가르칩니다.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집회3,2-4)
자녀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은 특별히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자녀이기에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와 함께 있는 아버지는 다른 이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요, 자녀로부터 사랑받는 아버지는 다른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자녀들은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녀들은 언제나 좋은 모습으로 보여 집니다.
또한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들은 아버지와 함께 하려 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하고, 아버지의 자녀임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머니를 사랑하는 이들은 어머니를 공경하고, 어머니의 말씀에 따릅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가르칠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할 당연한 의무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 하고, 참된 가치를 심어주려고 하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부부의 사랑의 결실이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들이 죄를 용서받는 다는 것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아버지를 공경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들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불명예스럽게 만들지 않게 노력합니다. 아버지를 공경하기에 주변의 어른들을 공경하고, 예의를 지키며, 누가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올바른 일을 수행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부모를 사랑하기에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달리하고, 의로운 삶과 사랑과 배려의 삶을 살아가기에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의인이고, 하느님의 귀한 자녀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하늘에 보물을 쌓아 갑니다. 내가 그렇게 보물을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나를 보시는 부모님들은 얼마나 행복하실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소리가 울려야 합니다. 가정에서 천상의 음악이 흘러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기 위해서 다음의 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음 질문에 ①~④까지의 숫자를 적어 보세요.
①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다. ② 그렇게 할 때도 있다.
③ 그렇게 하려고 노력은 한다. ④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1. 가족은 하느님께서 묶어주시고, 맡겨주신 공동체이기에 서로 존중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 )
2. 가족은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들이기에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 )
3. 가족은 서로 사소한 말에도 경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
4. 가족은 상대방의 결점이나 약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
5. 가족은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6. 가족은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진솔한 대화로 풀어가야 합니다.( )
7. 가족은 상대방을 내 틀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
8. 가족은 서로를 위해서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주어도 계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 )
9. 가족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
10.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배우고, 더 나은 가정을 꾸미기 위해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
성가정은 아기예수님, 성모 마리아, 성 요셉의 나자렛에서의 가정을 가리킵니다. 성가정은 복음서에 잘 묘사되어 있으나 17세기부터 대중적인 신심대상으로 발전되었고 이 때부터 “성가정”이란 명칭 아래 여러 수도회들이 창립되었습니다. 1921년 성가정 축일이 제정되어 예수 공현대축일 후 첫 주일에 지켜지다가 1969년 이래로 성탄 후 첫 주일에 지켜집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주일이 없으면 12월 30일에 이 축일을 지냅니다.
성가정은 중세 말기에 회화(繪畵) 등 예술 작품의 주체로 널리 사용되어 일반대중들의 경건한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르네상스시기에는 특히 제단화(祭壇畵)의 주제로 사용되었습니다. 회화의 주제로서의 성가정은 요셉대신 성모 마리아의 모친 성녀 안나가 포함되기도 하는데, 이는 성모의 무염시태 교리를 나타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성 요셉이 포함된 성가정은 예수 강생의 신비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들의 가정을 성가정에 봉헌하며 가정의 성화(聖化)를 위해 특별히 기도합니다. 또한 많은 본당에서 성가정축일에 가정과 혼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혼인서약 갱신식”을 거행하기도 합니다.
어떤 할머니가 성당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노환으로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시는 소박한 시골 할머니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이 아버지는 요양원에 모시고, 저보고 함께 살자고 합니다. 나이가 드셨으니 농사를 짓지 말고, 힘든 일 하지 마시고 좀 편안하게 살라고 자꾸 권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 아들이 원하는 것은 부모의 재산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병든 남편을 요양원에 보낼 마음도 없었고, 자녀와 함께 살 마음도 없었으며, 정든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날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주일마다 내려와서 땅을 팔아서 자신에게 달라고 조르고 또 졸랐습니다. 할머니는 또 괴로워서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저도 제 자식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돈을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래도 제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정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집회서는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려주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집회3,5-6)
만일 그 아들이 아버지를 공경했다면 아버지의 재산보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들은 재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재산을 다 받은 후에는 어머니를 모시지 않고, 요양원에 보냈을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이고 어머니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산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더 보내드려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상속받으려고 갖은 계략을 꾸며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회서는 이렇게 부모에 대한 자녀의 자세를 가르쳐주십니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집회3,12-14)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는 않지만 가르쳐야 하고, 배우게 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가정은 “자녀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를 온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다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하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공경과 효행의 길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 알고, 부모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물질적인 후원만을 해 주는 존재로만 대하게 됩니다.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고, 주님을 경외하는 부모로서 자녀와 함께 해야 합니다.
성가정은 주님과 함께 하는 가정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길을 걸으며 함께 하는 가정입니다. 어느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바로 성가정입니다.
부부는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배우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신의의 표지로 서로 반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부의 사랑에는 항상 순탄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자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배우자 때문에 가슴 아파 하기도 합니다. 자녀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자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돕고 더욱 깊이 사랑하며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자녀를 하느님 보시기에 좋게 양육하고 한생을 기쁨과 평화 속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주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정은 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바오로 사도의 권고처럼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콜로새3,12)
하느님께서는 한 처음부터 그렇게 보고 계셨습니다.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 잘 맞으니 하느님께서 미리 정해주셔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보고 계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하느님께서 부부의 선택을 존중하시고, 성사로써 축복하셨다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가로막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축복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가정은 축복받은 사람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그 삶은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으로서의 삶,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으로서의 삶, 하느님의 사랑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보여주며 살아갑니다. 인상 쓸 일이 있어도 너그럽게 웃어주며 넘어가는 삶,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하더라도 온유와 인내를 보여 주는 삶, 그렇게 겸손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가정 안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는“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가족 구성원들 중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줄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나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로 용서하고 판단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과 함께 하는 가정 생활입니다. 성가정의 모습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삶을 살아가면서 몇 가지를 더 당부하십니다.
첫째,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콜로새3,14)
사랑이 없는 가정 생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생활은 아무리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옷을 입었다 할지라도 열매가 없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콜로새3,15ㄱ)
평화가 깨지면 구원에서 멀어집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입은 이들은 평화 속에서 살아가고, 하느님 나라를 맛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내 마음 안에서 평화가 사라지게 되면 그 순간부터 지옥의 문은 활짝 열리게 됩니다. 가정에서 사랑과 기쁨은 사라지고 신뢰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리고 맙니다.
셋째,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콜로새3,15ㄴ)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감사하고, 자녀에게 감사하고, 배우자에게 감사하며,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니 당연히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매 순간 표현해야 합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콜로새3,16)
부모는 자녀의 훌륭한 신앙교사이니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일러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며 기도하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아침 저녁기도, 식사기도는 모두 감사기도입니다. 또한 성경을 읽고 쓰고 묵상하고, 함께 말씀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말씀이 가정에 풍성하게 머무르게 됩니다.
다섯째, “서로 사랑하고 순종하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콜로새3,18-20) 그렇게 순종을 연습하면 하느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하느님이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또 다른 선악과를 따먹으려고 하게 됩니다. 또한 가족을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가족은 명령과 복종을 통해서 움직이는 군대가 아닙니다. 가정은 사랑의 공동체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여섯째,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콜로새3,21)
자녀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훈육은 반드시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자녀들이 알 수 있어야 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을 다스리게 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가정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가정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가정을 본받아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세상의 모든 자녀는 부모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면서 모든 이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은 가정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고, 사랑이 넘치게 만듭니다. 집회서의 말씀은 이렇게 우리를 가르칩니다.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집회3,2-4)
자녀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은 특별히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자녀이기에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와 함께 있는 아버지는 다른 이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요, 자녀로부터 사랑받는 아버지는 다른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자녀들은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녀들은 언제나 좋은 모습으로 보여 집니다.
또한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들은 아버지와 함께 하려 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하고, 아버지의 자녀임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머니를 사랑하는 이들은 어머니를 공경하고, 어머니의 말씀에 따릅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가르칠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할 당연한 의무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 하고, 참된 가치를 심어주려고 하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부부의 사랑의 결실이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들이 죄를 용서받는 다는 것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아버지를 공경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들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불명예스럽게 만들지 않게 노력합니다. 아버지를 공경하기에 주변의 어른들을 공경하고, 예의를 지키며, 누가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올바른 일을 수행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부모를 사랑하기에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달리하고, 의로운 삶과 사랑과 배려의 삶을 살아가기에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의인이고, 하느님의 귀한 자녀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하늘에 보물을 쌓아 갑니다. 내가 그렇게 보물을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나를 보시는 부모님들은 얼마나 행복하실까요?
나의 가정은 성가정입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소리가 울려야 합니다. 가정에서 천상의 음악이 흘러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기 위해서 다음의 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음 질문에 ①~④까지의 숫자를 적어 보세요.
①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다. ② 그렇게 할 때도 있다.
③ 그렇게 하려고 노력은 한다. ④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1. 가족은 하느님께서 묶어주시고, 맡겨주신 공동체이기에 서로 존중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 )
2. 가족은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들이기에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 )
3. 가족은 서로 사소한 말에도 경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
4. 가족은 상대방의 결점이나 약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
5. 가족은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6. 가족은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진솔한 대화로 풀어가야 합니다.( )
7. 가족은 상대방을 내 틀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
8. 가족은 서로를 위해서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주어도 계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 )
9. 가족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
10.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배우고, 더 나은 가정을 꾸미기 위해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
점수 계산 법: 선택점수(①*10점, ②*7점, ③*5점, ④*3점)들의 합계 =?
80점 이상: 와 성가정을 이루셨군요?
70점 이상: 성가정을 이루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군요.
50점 이상: 좀 더 노력을 하셔야겠군요.
50점 이하: 노력 안하시지요?
성가정 축일을 맞이하여 우리 가정이 성가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성가정 축일
성가정은 아기예수님, 성모 마리아, 성 요셉의 나자렛에서의 가정을 가리킵니다. 성가정은 복음서에 잘 묘사되어 있으나 17세기부터 대중적인 신심대상으로 발전되었고 이 때부터 “성가정”이란 명칭 아래 여러 수도회들이 창립되었습니다. 1921년 성가정 축일이 제정되어 예수 공현대축일 후 첫 주일에 지켜지다가 1969년 이래로 성탄 후 첫 주일에 지켜집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주일이 없으면 12월 30일에 이 축일을 지냅니다.
성가정은 중세 말기에 회화(繪畵) 등 예술 작품의 주체로 널리 사용되어 일반대중들의 경건한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르네상스시기에는 특히 제단화(祭壇畵)의 주제로 사용되었습니다. 회화의 주제로서의 성가정은 요셉대신 성모 마리아의 모친 성녀 안나가 포함되기도 하는데, 이는 성모의 무염시태 교리를 나타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성 요셉이 포함된 성가정은 예수 강생의 신비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들의 가정을 성가정에 봉헌하며 가정의 성화(聖化)를 위해 특별히 기도합니다. 또한 많은 본당에서 성가정축일에 가정과 혼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혼인서약 갱신식”을 거행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의 아버지 공경
어떤 할머니가 성당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노환으로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시는 소박한 시골 할머니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이 아버지는 요양원에 모시고, 저보고 함께 살자고 합니다. 나이가 드셨으니 농사를 짓지 말고, 힘든 일 하지 마시고 좀 편안하게 살라고 자꾸 권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 아들이 원하는 것은 부모의 재산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병든 남편을 요양원에 보낼 마음도 없었고, 자녀와 함께 살 마음도 없었으며, 정든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날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주일마다 내려와서 땅을 팔아서 자신에게 달라고 조르고 또 졸랐습니다. 할머니는 또 괴로워서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저도 제 자식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돈을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래도 제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정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집회서는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려주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집회3,5-6)
만일 그 아들이 아버지를 공경했다면 아버지의 재산보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들은 재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재산을 다 받은 후에는 어머니를 모시지 않고, 요양원에 보냈을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이고 어머니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산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더 보내드려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상속받으려고 갖은 계략을 꾸며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회서는 이렇게 부모에 대한 자녀의 자세를 가르쳐주십니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집회3,12-14)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는 않지만 가르쳐야 하고, 배우게 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가정은 “자녀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를 온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다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하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공경과 효행의 길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 알고, 부모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물질적인 후원만을 해 주는 존재로만 대하게 됩니다.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고, 주님을 경외하는 부모로서 자녀와 함께 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생활
성가정은 주님과 함께 하는 가정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길을 걸으며 함께 하는 가정입니다. 어느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바로 성가정입니다.
부부는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배우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신의의 표지로 서로 반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부의 사랑에는 항상 순탄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자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배우자 때문에 가슴 아파 하기도 합니다. 자녀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자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돕고 더욱 깊이 사랑하며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자녀를 하느님 보시기에 좋게 양육하고 한생을 기쁨과 평화 속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주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정은 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바오로 사도의 권고처럼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콜로새3,12)
하느님께서는 한 처음부터 그렇게 보고 계셨습니다.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 잘 맞으니 하느님께서 미리 정해주셔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보고 계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하느님께서 부부의 선택을 존중하시고, 성사로써 축복하셨다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가로막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축복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가정은 축복받은 사람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그 삶은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으로서의 삶,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으로서의 삶, 하느님의 사랑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보여주며 살아갑니다. 인상 쓸 일이 있어도 너그럽게 웃어주며 넘어가는 삶,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하더라도 온유와 인내를 보여 주는 삶, 그렇게 겸손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가정 안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가족 구성원들 중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줄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나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로 용서하고 판단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과 함께 하는 가정 생활입니다. 성가정의 모습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삶을 살아가면서 몇 가지를 더 당부하십니다.
첫째,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콜로새3,14)
사랑이 없는 가정 생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생활은 아무리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옷을 입었다 할지라도 열매가 없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콜로새3,15ㄱ)
평화가 깨지면 구원에서 멀어집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입은 이들은 평화 속에서 살아가고, 하느님 나라를 맛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내 마음 안에서 평화가 사라지게 되면 그 순간부터 지옥의 문은 활짝 열리게 됩니다. 가정에서 사랑과 기쁨은 사라지고 신뢰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리고 맙니다.
셋째,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콜로새3,15ㄴ)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감사하고, 자녀에게 감사하고, 배우자에게 감사하며,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니 당연히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매 순간 표현해야 합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콜로새3,16)
부모는 자녀의 훌륭한 신앙교사이니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일러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며 기도하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아침 저녁기도, 식사기도는 모두 감사기도입니다. 또한 성경을 읽고 쓰고 묵상하고, 함께 말씀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말씀이 가정에 풍성하게 머무르게 됩니다.
다섯째, “서로 사랑하고 순종하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콜로새3,18-20) 그렇게 순종을 연습하면 하느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하느님이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또 다른 선악과를 따먹으려고 하게 됩니다. 또한 가족을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가족은 명령과 복종을 통해서 움직이는 군대가 아닙니다. 가정은 사랑의 공동체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여섯째,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콜로새3,21)
자녀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훈육은 반드시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자녀들이 알 수 있어야 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을 다스리게 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가정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가정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가정을 본받아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