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로서 한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세계적인 공통어는 가톨릭이며, 뜻은 “보편된” 입니다. 즉, 온 세상에 퍼져있고, 누구나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함께 생활하던 제자들인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법통을 오늘날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에 교회가 있지만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전례도 세계 교회가 똑같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자기의 양들인 백성을 돌보도록 그 권한을 사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후계자로 계승되는 가톨릭교회는 지금도 계속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전해 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 전해주어야 합니다.
천주교의 4대 교리는 천주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 상선벌악입니다. 천주존재는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이며, 피조물인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계신데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현존방식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세 위로 계시는데, 성부는 창조주시요, 성자는 구속자이시며, 성령은 구원의 협조자로서 은총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위격으로는 구분이 되지만 하느님은 한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삼위일체입니다. 강생구속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회개하면 하느님 나라의 자녀가 되고, 구원의 상속자가 됩니다. 상선벌악은 말 그대로 하느님께서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상을 받게 되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많은 죄를 짓고 살고 있으며, 그 죄는 반드시 벌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해야 합니다.
십자성호(성호경)는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하고 죽으셨던 십자가를 표시하고 내가 천주교 신앙인임을 드러냅니다. 내 몸에 십자가를 그어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모든 기도의 시작과 끝을 성호경으로 시작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기도를 시작하고 마치면서, 감사할 때, 행복할 때 성호경을 긋습니다. 성호경은“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며 거룩하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문입니다. 그런데 내 몸에 십자가를 그으며 바친다 하여 “십자성호”라고 합니다.
십자성호를 긋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왼손을 먼저 가슴에 대고, ②오른 손가락을 모두 한데모아 이마에서 “성부와” ③가슴에서 “성자와” ④ 왼편 어깨에서 “성” ⑤ 오른편 어깨에서 “령의” 하며 십자를 긋습니다. ⑥ 그 다음 오른 손과 왼 손을 합장하며 가슴에 모으면서 성호경의 남은 부분 “이름으로 아멘”을 외웁니다.
또 작은 십자성호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성무일도(성직자, 수도자들의 평상기도) 초대송을 할 때 입술에 긋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을 때 “주님 영광 받으소서!”하면서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긋게 되는데, 이것은 복음 말씀을 머리로 잘 받아들이고, 그것을 입술로 잘 전하며, 가슴 깊이 간직하겠다는 뜻입니다. 작은 십자성호를 그을 때는 오른손을 살며시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작게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십자가를 긋습니다.
성호경을 자연스럽게 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마치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성호경을 그을 때, 그 감사와 기쁨은 더 커지게 됩니다.
성당은 하느님 백성의 공적예배(전례)가 거행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당에 들어갈 때는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갑니다. 성당에 들어갈 때는 성수를 찍고 기도를 합니다.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아멘.” 또는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두 기도의 특징은 성수를 찍으면서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당에 들어온 사람들의 특징은 밖에서는 세상 풍파에 섞여서 살고 있지만 적어도 성당에 들어 올 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되고, 하느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장궤틀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 왔음을 고백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럴 때 주님 눈에는 나만 보이고, 내 눈에는 주님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성당의 중심은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입니다. 제대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제대 앞에서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고,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이기에 하느님과 함께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당에서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하느님께 기도를 하게 됩니다.
또 성당 안에는 빨간 등이 켜져 있는 감실이 있습니다. 감실은 신자들이 미사 때에 받아 모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몸, 곧 성체를 모셔 놓은 곳입니다. 병자들에게 성체를 모셔가기 위해서 감실에는 늘 성체를 모셔 놓습니다. 또한 신자들이 성당 안에서 성체께 조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 성체를 모셔 놓습니다(성체조배). 예수님께서는 밀떡의 형상으로 감실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서면 감실 앞에서 주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합니다.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께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합니다.
전례는 하느님백성의 공적인 경신례(敬神禮)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미사, 성사, 성무일도 등)를 전례라고 합니다. 전례를 통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을 공적으로 흠숭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룩하게 되고, 신자들과 형제적 사랑을 나누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룹니다.
신자들이 전례에 참례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참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례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바치신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전례로서, 이때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됩니다. 미사는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를 이루는 거룩한 잔치이고, 예수님의 몸을 함께 모심으로써 하나가 되는 축제입니다.
신자들이 주일에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에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또한 신자들은 주일과 대축일에는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합니다.
전례에 참례할 때는 특별히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함께 전례에 참례하는 이들에게 기도의 모범이 되고, 경건함의 표양이 되며, 은총의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사 중 합장하고 기도하며, 제단과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의 경건함은 외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말씀의 전례 때에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위해 귀를 기울이고, 성찬의 전례 안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거룩한 신비 안에서 감탄하고 황홀해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도 “아! 이분은 경건하게 미사에 참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미사에 참례할 때 나도 변화되고, 내 옆에 있는 이들도 변화가 될 것입니다.
장궤라는 것을 몸을 똑바로 세운 채 오른쪽 무릎을 꿇거나 혹은 두 무릎을 대고 허리를 세운 채 꿇어앉는 것을 말하는데, 가톨릭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하여 주님께 존경을 나타내기 위하여 행하는 자세입니다.
미사 중에 무릎을 꿇는 행위인 “장궤(長詭)”는 자신의 몸을 낮춰 하느님께 존경을 표하는 행위입니다. 미사 중 감사기도(거룩하시도다 후부터 주님의 기도 전) 때와 영성체 시작 전 사제가 성체를 높이 들어올리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을 선포할 때 무릎을 꿇습니다. 거룩하시고 완전하시며 의로우시고 무한히 높으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먼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릎 꿇어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의 자신의 미약함을 드러내고 참회와 흠숭의 마음을 드리며 또한 기도드리는 이의 간구를 더 애절하게 합니다. 하느님이시지만 당신을 낮추어 빵이 되어 나에게 오시는 예수님께 나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장궤틀이 없는 성당에선 보통 서있게 되며, 장궤틀을 사용하기에 공간적으로 비좁은 경우에도 무릎을 꿇는 대신 서있게 됩니다.
또 성당에 들어올 때 오른쪽 무릎만 꿇어 경배 드리며 성호경을 긋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체행렬이 자신의 앞으로 지나갈 때 오른쪽 무릎만 꿇어 경배 드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합당한 존경의 표현인 것입니다.그러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장궤틀이 있다 하더라도 장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살며시 그 자리에 앉거나, 제일 뒤에 있을 경우에는 서 있으시면 됩니다.
장궤틀은 몸으로 기도를 드리기 위한, 겸손과 존경의 자세를 표시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따라서 장궤틀에 발을 올려놓으면 그것은 발틀이지 장궤틀이 아니게 됩니다. 장궤틀은 장궤틀로 사용해야 합니다.
보통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습니다. 그리고 어른 앞에서도 모자는 벗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실내에 들어갈 때나 자신 보다 높은 연배와 위치에 있는 분에게 인사를 할 때는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합니다. 야구 선수들도 경기를 마치고 팬들에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여 관중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드러냅니다. 또한 골프를 칠 때 마지막 홀을 마치면 서로 모자를 벗고 악수하며 인사를 합니다. 이것은 라운드를 함께 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당에 들어갈 때는 모자는 벗어야 합니다. 어느 성지를 순례하신다 하더라도 꼭 모자는 벗으셔야 합니다. 특별히 미사에 참례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모자는 벗어야 합니다.
그런데 밖에서 모자를 쓰고서 성당에 온 경우에는 모자를 벗었을 때 머리 모양이 눌려서 신경이 쓰일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항암치료를 하시는 분들은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고, 머리를 다치신 분들은 모자로 머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모자를 쓰고 미사에 참례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모자를 쓰고 미사에 참례하고 계시다면 “아! 저분은 좀 불편하신 분이시구나!”라고 생각하시면서 있는 그대로 배려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모자와 미사포는 다릅니다. 미사포는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고, 외전인 단정함과 내적인 준비를 하고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겨울 철, 춥다는 이유는 자녀가 성당에서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끝까지 고집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녀와 성당에서 그 문제로 다투기 보다는 조용히 미사를 끝내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가정에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왜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지, 예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면 분명 다음 부터는 고집을 피우지 않을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옵니다. 교회를 이끄시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지상 대리자는 교황님이십니다. 현재(2018년) 교황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십니다. 한 나라나 큰 지역의 목자는 추기경님이시고, 각 교구(교회의 행정구역)의 목자는 주교님이십니다. 그리고 각 본당(지역)의 목자는 신부님이십니다. 규모가 큰 본당은 보좌신부님께서 본당신부님과 함께 사목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정의 목자는 가장입니다. 각 가정은 가장 작은 교회의 단위로서 가장들이 그 교회를 이끌고, 예수님께로 향하게 만듭니다.
교회 안에서의 신분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구분은 서로의 높고 낮음에 의한 구분이 아니라 서로의 역할을 통한 구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의 신분은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보다 더 큰 칭호는 없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칭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때, 믿음 안에서 순명 할 때,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교회의 조직은 신앙과 전통과 순명으로 이어지고 유지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며 가정의 일치를 이루듯, 구역은 구역장에게 순명하고, 레지오 단원들은 레지오 단장에게 순명합니다. 이 순명은 일치를 이루기 위한 순명이며, 공동체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기 위한 순명입니다. 그리고 이 순명은 신앙과 전통과 교회의 일치를 위한 일에만 해당됩니다.
교회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먼저 “예!”하고 순명하고, 그 다음에 “해 보니까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다시 그것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위해 새로운 결정과 방향을 제시하게 됩니다.
천주교는?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로서 한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세계적인 공통어는 가톨릭이며, 뜻은 “보편된” 입니다. 즉, 온 세상에 퍼져있고, 누구나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함께 생활하던 제자들인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법통을 오늘날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에 교회가 있지만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전례도 세계 교회가 똑같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자기의 양들인 백성을 돌보도록 그 권한을 사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후계자로 계승되는 가톨릭교회는 지금도 계속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전해 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 전해주어야 합니다.
천주교의 4대 교리는 천주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 상선벌악입니다. 천주존재는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이며, 피조물인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계신데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현존방식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세 위로 계시는데, 성부는 창조주시요, 성자는 구속자이시며, 성령은 구원의 협조자로서 은총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위격으로는 구분이 되지만 하느님은 한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삼위일체입니다. 강생구속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회개하면 하느님 나라의 자녀가 되고, 구원의 상속자가 됩니다. 상선벌악은 말 그대로 하느님께서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상을 받게 되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많은 죄를 짓고 살고 있으며, 그 죄는 반드시 벌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해야 합니다.
십자성호(성호경)
십자성호(성호경)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하고 죽으셨던 십자가를 표시하고 내가 천주교 신앙인임을 드러냅니다. 내 몸에 십자가를 그어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모든 기도의 시작과 끝을 성호경으로 시작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기도를 시작하고 마치면서, 감사할 때, 행복할 때 성호경을 긋습니다. 성호경은“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며 거룩하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문입니다. 그런데 내 몸에 십자가를 그으며 바친다 하여 “십자성호”라고 합니다.
십자성호를 긋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왼손을 먼저 가슴에 대고, ②오른 손가락을 모두 한데모아 이마에서 “성부와” ③가슴에서 “성자와” ④ 왼편 어깨에서 “성” ⑤ 오른편 어깨에서 “령의” 하며 십자를 긋습니다. ⑥ 그 다음 오른 손과 왼 손을 합장하며 가슴에 모으면서 성호경의 남은 부분 “이름으로 아멘”을 외웁니다.
또 작은 십자성호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성무일도(성직자, 수도자들의 평상기도) 초대송을 할 때 입술에 긋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을 때 “주님 영광 받으소서!”하면서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긋게 되는데, 이것은 복음 말씀을 머리로 잘 받아들이고, 그것을 입술로 잘 전하며, 가슴 깊이 간직하겠다는 뜻입니다. 작은 십자성호를 그을 때는 오른손을 살며시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작게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십자가를 긋습니다.
성호경을 자연스럽게 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마치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성호경을 그을 때, 그 감사와 기쁨은 더 커지게 됩니다.
성당에 들어가면
성당은 하느님 백성의 공적예배(전례)가 거행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당에 들어갈 때는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갑니다. 성당에 들어갈 때는 성수를 찍고 기도를 합니다.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아멘.” 또는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두 기도의 특징은 성수를 찍으면서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당에 들어온 사람들의 특징은 밖에서는 세상 풍파에 섞여서 살고 있지만 적어도 성당에 들어 올 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되고, 하느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장궤틀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 왔음을 고백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럴 때 주님 눈에는 나만 보이고, 내 눈에는 주님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성당의 중심은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입니다. 제대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제대 앞에서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고,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이기에 하느님과 함께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당에서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하느님께 기도를 하게 됩니다.
또 성당 안에는 빨간 등이 켜져 있는 감실이 있습니다. 감실은 신자들이 미사 때에 받아 모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몸, 곧 성체를 모셔 놓은 곳입니다. 병자들에게 성체를 모셔가기 위해서 감실에는 늘 성체를 모셔 놓습니다. 또한 신자들이 성당 안에서 성체께 조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 성체를 모셔 놓습니다(성체조배). 예수님께서는 밀떡의 형상으로 감실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서면 감실 앞에서 주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합니다.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께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합니다.
전례에 참례하는 자세
전례는 하느님백성의 공적인 경신례(敬神禮)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미사, 성사, 성무일도 등)를 전례라고 합니다. 전례를 통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을 공적으로 흠숭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룩하게 되고, 신자들과 형제적 사랑을 나누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룹니다.
신자들이 전례에 참례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참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례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바치신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전례로서, 이때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됩니다. 미사는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를 이루는 거룩한 잔치이고, 예수님의 몸을 함께 모심으로써 하나가 되는 축제입니다.
신자들이 주일에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에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또한 신자들은 주일과 대축일에는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합니다.
전례에 참례할 때는 특별히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함께 전례에 참례하는 이들에게 기도의 모범이 되고, 경건함의 표양이 되며, 은총의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사 중 합장하고 기도하며, 제단과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의 경건함은 외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말씀의 전례 때에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위해 귀를 기울이고, 성찬의 전례 안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거룩한 신비 안에서 감탄하고 황홀해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도 “아! 이분은 경건하게 미사에 참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미사에 참례할 때 나도 변화되고, 내 옆에 있는 이들도 변화가 될 것입니다.
장궤(長跪)
장궤라는 것을 몸을 똑바로 세운 채 오른쪽 무릎을 꿇거나 혹은 두 무릎을 대고 허리를 세운 채 꿇어앉는 것을 말하는데, 가톨릭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하여 주님께 존경을 나타내기 위하여 행하는 자세입니다.
미사 중에 무릎을 꿇는 행위인 “장궤(長詭)”는 자신의 몸을 낮춰 하느님께 존경을 표하는 행위입니다. 미사 중 감사기도(거룩하시도다 후부터 주님의 기도 전) 때와 영성체 시작 전 사제가 성체를 높이 들어올리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을 선포할 때 무릎을 꿇습니다. 거룩하시고 완전하시며 의로우시고 무한히 높으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먼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릎 꿇어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의 자신의 미약함을 드러내고 참회와 흠숭의 마음을 드리며 또한 기도드리는 이의 간구를 더 애절하게 합니다. 하느님이시지만 당신을 낮추어 빵이 되어 나에게 오시는 예수님께 나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장궤틀이 없는 성당에선 보통 서있게 되며, 장궤틀을 사용하기에 공간적으로 비좁은 경우에도 무릎을 꿇는 대신 서있게 됩니다.
또 성당에 들어올 때 오른쪽 무릎만 꿇어 경배 드리며 성호경을 긋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체행렬이 자신의 앞으로 지나갈 때 오른쪽 무릎만 꿇어 경배 드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합당한 존경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장궤틀이 있다 하더라도 장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살며시 그 자리에 앉거나, 제일 뒤에 있을 경우에는 서 있으시면 됩니다.
장궤틀은 몸으로 기도를 드리기 위한, 겸손과 존경의 자세를 표시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따라서 장궤틀에 발을 올려놓으면 그것은 발틀이지 장궤틀이 아니게 됩니다. 장궤틀은 장궤틀로 사용해야 합니다.
성당에서는 모자를 벗습니다.
보통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습니다. 그리고 어른 앞에서도 모자는 벗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실내에 들어갈 때나 자신 보다 높은 연배와 위치에 있는 분에게 인사를 할 때는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합니다. 야구 선수들도 경기를 마치고 팬들에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여 관중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드러냅니다. 또한 골프를 칠 때 마지막 홀을 마치면 서로 모자를 벗고 악수하며 인사를 합니다. 이것은 라운드를 함께 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당에 들어갈 때는 모자는 벗어야 합니다. 어느 성지를 순례하신다 하더라도 꼭 모자는 벗으셔야 합니다. 특별히 미사에 참례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모자는 벗어야 합니다.
그런데 밖에서 모자를 쓰고서 성당에 온 경우에는 모자를 벗었을 때 머리 모양이 눌려서 신경이 쓰일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항암치료를 하시는 분들은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고, 머리를 다치신 분들은 모자로 머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모자를 쓰고 미사에 참례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모자를 쓰고 미사에 참례하고 계시다면 “아! 저분은 좀 불편하신 분이시구나!”라고 생각하시면서 있는 그대로 배려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모자와 미사포는 다릅니다. 미사포는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고, 외전인 단정함과 내적인 준비를 하고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겨울 철, 춥다는 이유는 자녀가 성당에서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끝까지 고집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녀와 성당에서 그 문제로 다투기 보다는 조용히 미사를 끝내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가정에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왜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지, 예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면 분명 다음 부터는 고집을 피우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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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조직
가톨릭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옵니다. 교회를 이끄시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지상 대리자는 교황님이십니다. 현재(2018년) 교황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십니다. 한 나라나 큰 지역의 목자는 추기경님이시고, 각 교구(교회의 행정구역)의 목자는 주교님이십니다. 그리고 각 본당(지역)의 목자는 신부님이십니다. 규모가 큰 본당은 보좌신부님께서 본당신부님과 함께 사목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정의 목자는 가장입니다. 각 가정은 가장 작은 교회의 단위로서 가장들이 그 교회를 이끌고, 예수님께로 향하게 만듭니다.
교회 안에서의 신분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구분은 서로의 높고 낮음에 의한 구분이 아니라 서로의 역할을 통한 구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의 신분은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보다 더 큰 칭호는 없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칭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때, 믿음 안에서 순명 할 때,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교회의 조직은 신앙과 전통과 순명으로 이어지고 유지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며 가정의 일치를 이루듯, 구역은 구역장에게 순명하고, 레지오 단원들은 레지오 단장에게 순명합니다. 이 순명은 일치를 이루기 위한 순명이며, 공동체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기 위한 순명입니다. 그리고 이 순명은 신앙과 전통과 교회의 일치를 위한 일에만 해당됩니다.
교회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먼저 “예!”하고 순명하고, 그 다음에 “해 보니까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다시 그것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위해 새로운 결정과 방향을 제시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