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부활 제 3주일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24,36)

제자들은 함께 모여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들 중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에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고 있을 때, 만화의 주인공처럼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제자들 가운데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24,36)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평화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마련하신 평화이며, 제자들 안에 사라졌던 희망과 믿음과 기쁨을 다시 찾아 주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죽음에서 생명에로 건너가는 평화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제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두려워함과 배반의 고통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을 치유해 주시는 평화입니다. 그 평화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1.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는 제자들

예수님께서 갑자기 그들에게 나타나시자 제자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루카24,37)하였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발현에 제자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혹시 예수님께서 유령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자신들의 눈 앞에서 처절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닫힌 문을 통과하시어 그들 앞에 나타나셨으니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놀라느냐?”(루카24,38)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루카24,38)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 그래서 보고 싶은 분이셨지만 갑자기 나타나셨기에 놀라는 것입니다. 의혹이 있는 것입니다. 혹시 유령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뭐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부족한 내가, 내 생각대로이것저것을 한정시켜 놓고 의혹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서 의심하는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손과 발을 보아라.”(루카24,39)

그리고 만져 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루카24,39)고 말씀하시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제자들에게 증명해 주십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심을 드러내시며, 의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심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십니다.(루카24,40) 못에 뚫린 손과 발을. 바로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맞습니다. 틀림없이 스승이신 예수님이 맞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짜 육신을 가지신 모습으로 부활하셔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2.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음식을 드시는 예수님

안절부절 못했던 제자들. 그런데 두려움과 공포가 기쁨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리둥절해 있는 제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기뻐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 체험은 너무도 기쁘고 가슴 벅찬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도 그립고 보고 싶으면 헛것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유령이 아님을 보여주시기 위해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루카24,41)라고 물으십니다. 허상은 음식을 먹을 수 없지만, 사람은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구운 물고기 한 토막”(루카24,42)을 드립니다. 저녁을 먹고 난 후였기에 남은 음식이 별로 없었을 것이고, 즉시 준비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육체적 한계로부터 자유로워 지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알아 뵙지 못했던 것이고, 마리아 막달레나도 모습을 보고는 알아 뵙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닫힌 문을 열지도 않고 통과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입증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육신의 음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지만 제자들이 믿게 하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므로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잡수셨습니다.

 

3.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함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루카24,44)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이 성경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루카4,21)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과 예언서들과 시편을 비롯한 성경 전체가 예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이시며, 예언을 실현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성전정화를 통하여 옛 경신례를 폐지하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게 되는 살아계신 성전이 되신 분이십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루카24,45) 원하는 것만을 듣고자 했던 마음을 버리고, 들어야 하는 것과 알아야 하는 것에 마음과 귀를 열도록 해 주셨습니다. 공생활을 하시면서 그렇게 말씀을 해 주셨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듣는 말씀은 새롭게 다가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니 구약의 모든 말씀들이 ! 그렇구나!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루카24,46) 즉 미리 예언된 대로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겪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고, 지금 그렇게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선포

예수님께서는 구원받기 위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마르24,47)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부르심을 받았고, 사명을 부여받았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셨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크신 구원 계획의 시작점이 바로 이스라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시작되어 온 세상이 하느님께 믿음을 고백하게 하기 위해 출발점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믿지 않는 이들이 말하는 외래종교가 아니라 나를 향해서 멀리서부터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손길이요, 구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24,48)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모든 것들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바로 그 증거고,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이 일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나 또한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내 사명입니다. 사도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그리스도, 메시아이심을 모든 민족에게 가르치고 거룩하게 할 권리를 받은 것입니다. 증인이라면 증언해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으로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으셨다는 것을,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렇게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삶으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걷고,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실천하고 전해야 합니다. 만일 탈모로 고생하는 사람이 효과 있는 발모제를 팔고 있다면 과연 사람들이 그 사람의 말을 믿어 줄까요? 전혀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전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삶을 보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믿고 있다면 나의 삶은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 안에서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느끼고, 체험하고, 그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주님을 삶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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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부활 제 3주일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24,48)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모든 것들을 이루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루카24,46) 즉 미리 예언된 대로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겪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이 일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이라면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에 그것을 증언해야 하고,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말씀들이 이루어짐을 보았기에 그것을 증언해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으로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으셨다는 것을,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언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모든 민족에게 가르치고 증거 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통해 사람들을 믿게 하고, 회개의 세례를 받아 구원받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나 또한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나의 사명입니다. 그렇게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삶으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걷고,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실천하고 전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전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삶을 보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믿고 있다면 나의 삶은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 안에서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느끼고, 체험하고, 그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주님을 삶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말로는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삶으로는 누구나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아갈 때 성령께서는 내 삶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게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하심을 굳게 믿으며, 삶으로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성경 안에서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으며, 그 예수님의 모습을 형제자매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됩니다. 성체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 뵙고, 성체를 모신 신앙인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구원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으려 하는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주님께로 향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십니다. 이 기쁜 소식이 모든 이들에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새로 태어난 신앙인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증언하고 증거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는 기쁜 주일 됩시다.

  2. 관리자 님의 말:

    내 손과 발을 보아라.”(루카24,39)

    제자들은 함께 모여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고 있을 때, 만화의 주인공처럼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제자들 가운데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24,36)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평화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마련하신 평화이며, 제자들 안에 사라졌던 희망과 믿음과 기쁨을 다시 찾아 주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죽음에서 생명에로 건너가는 평화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제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두려워함과 배반의 고통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을 치유해 주시는 평화입니다. 그 평화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그들에게 나타나시자 제자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루카24,37)하였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발현에 제자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혹시 예수님께서 유령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자신들의 눈 앞에서 처절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닫힌 문을 통과하시어 그들 앞에 나타나셨으니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놀라느냐?”(루카24,38)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루카24,38)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 그래서 보고 싶은 분이셨지만 갑자기 나타나셨기에 놀라는 것입니다. 의혹이 있는 것입니다. 혹시 유령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뭐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부족한 내가, 내 생각대로이것저것을 한정시켜 놓고 의혹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서 의심하는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손과 발을 보아라.”(루카24,39) 그리고 만져 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루카24,39)고 말씀하시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제자들에게 증명해 주십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심을 드러내시며, 의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심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십니다.(루카24,40) 못에 뚫린 손과 발을. 바로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맞습니다. 틀림없이 스승이신 예수님이 맞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짜 육신을 가지신 모습으로 부활하셔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유령이 아님을 보여주시기 위해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루카24,41)라고 물으십니다. 허상은 음식을 먹을 수 없지만, 사람은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구운 물고기 한 토막”(루카24,42)을 드립니다. 저녁을 먹고 난 후였기에 남은 음식이 별로 없었을 것이고, 즉시 준비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입증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 앞에 계십니다. 의심하지 말고, 기쁨에 넘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갑시다. 그렇게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3. 관리자 님의 말:

    무교절

    과월절과 무교절 축일은 같은 축일이 아니었습니다. 과월절은 닛산 14일 밤부터 15일 밤까지의 축일이었고, 무교절 축제는 니산 14일에서 21일까지 일주일에 걸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 두 가지 축일이 혼돈되었기에 이 일주일간을 과월절 또는 무교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무교절은 빵에 누룩을 넣지 않고 먹는 축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탈출할 때 누룩 없는 빵을 먹은 것을 기념하여 집안의 모든 누룩을 없애고 7일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이때 묵은 곡식으로 만든 누룩이 든 빵은 더 이상 쓸 수 없었으며 빵은 새로 추수한 곡식으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축제는 나중에 파스카 축제와 합쳐졌습니다. 그래서 파스카라고 하는 무교절이 다가왔다.”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무교절 첫날은 해방절 양을 잡는 날을 말합니다. 이제 음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후 2-6시에 성전에서 가족마다 어린양 한 마리씩 잡습니다. 그런데 식구가 적은 때는 몇 집이 어울러 어린양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해방절 준비일은 누룩 없는 빵만 먹는 무교절 축제 첫날이기도 합니다. 이 날부터 무교절 축제는 여드레 동안 계속됩니다. 따라서 해방절 준비일 겸 무교절 첫날에는 누룩 넣은 빵을 집 안에서 말끔히 없애고 누룩 없는 빵을 넉넉히 마련해야 합니다.

     

  4. 관리자 님의 말: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도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요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로부터 파견을 받아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셨습니다.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성령 강림 이후, 제자들의 삶은 변했습니다. 당당하게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수행하였습니다.

     

    어느날,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사람들에 의해 들려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불구자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불구자(앉은뱅이)의 처지는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에 의해 더욱 초라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불구자는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면서 사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3,6)라고 말하며 불구자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치유 받은 불구자는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 벌어졌습니다. 온 백성은 불구자였던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고자 할 때, 주님께서는 당신 손길을 내밀어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가 치유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못할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사도들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과 병자를 치유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과 소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이 능력은 더 크게 발휘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믿음의 힘으로 불구자를 치유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 인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불구자를 치유한 것을 결코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사도3,12).

    베드로 사도는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자랑할 만도 하고, 교만할 만도 할 텐데 베드로 사도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는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사도3,13)

    베드로 사도는 지금 앉은뱅이의 치유를 목격한 유다인들이 바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했던 것을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다인들은 가슴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이 베드로 사도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영도자를 유다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그분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자신들이 바로 그 부활의 증인이라고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사도3,16)라고 알려 줍니다. 이렇게 유다인들을 믿음에로 초대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유다인들을 형제라고 부르면서 예수님의 죽음을 유다인들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회개와 믿음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다는 것을 알려 주면서 회개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사도3,19)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죄를 용서받으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기를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선 사람과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께 등을 돌린 사람의 삶은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1편에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다르듯이, 살기를 원한다면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릴 것이 아니라, 시냇가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는 잎이 시들지 아니하고, 제때에 열매를 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로 생기를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증인의 삶은 생기를 찾게 하여 열매를 맺게 삶을 살아가게 해 주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게 해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내가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 나갈 때, 주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은 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께 맡겨드리고, 내 손과 발과 입을 주님께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나를 통해서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주님의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5. 관리자 님의 말:

    구역장은 누구인가?

    구역장은 구역의 영적 지도자로서 구역에 속한 교우들을 돌보며 구역에서 본당신부를 대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구역장의 직무로는 예비자 인도, 구역 교우들의 교리교육, 춘추판공(判功) 준비, 교적정리, 구역의 재산 관리, 냉담자 권면, 비신자들에 대한 전교 등의 직무를 수행하며 구역모임을 주관합니다. 또한 구역의 병자들이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본당신부와 긴밀히 연결하고, 장례미사까지 연결시켜 줍니다. 그리고 구역안에 속한 비신자중 신앙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임종자에게 대세(代洗)를 집행하고, 장례를 도와줍니다.

    이러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구역장은 직무수행에 필요한 신덕(信德), 지덕(智德), 열심, 순명, 진실, 지식 등의 덕행을 의무적으로 닦아야하며 피정과 교육을 통하여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본당의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장은 본당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사목회와 함께 본당신부를 보좌하고 교우들과 신부 사이에 중재역할을 하며, 신부 유고시 신부를 대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본당회장의 직무는 사무 보조, 예비자 교육, 병자 방문, 냉담자 권면, 신부 유고시 본당 공동체를 교구와 긴밀히 연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회장제도는 한국 천주교회 고유의 제도로 한국 천주교회의 특수한 상황, 즉 박해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교회 창설 이후 박해를 피해 산간벽지로 숨어든 교우들이 독특한 교회공동체인 공소(公所)를 이루게 되면서 신부들이 적은 숫자로 수많은 공소를 관리할 수 없게 되자 신부들을 대리할 수 있는 평신도가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교회 당국에서는 지도급 평신도를 뽑아 교육시키고 그들에게 합법적인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신부를 보좌하게 하고 신부가 없는 지역에서는 신부를 대신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회장제도는 박해시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체계화되었고,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후로는 더욱더 체계화되어 1923년 회장들의 지도서 회장직분의 간행을 계기로 한국 교회에 정착되었습니다. 그 뒤 회장제도는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에 도입된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사목협의회 등의 제도와 조화를 이루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목은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 그렇게 하느님 백성을 돌보는 것입니다. 사목이 세상의 구원을 위한 봉사라면 참되고 유일한 목자는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으로 말미암아 구원된 모든 이들을 받아들여 한 몸을 이루시고 그 머리가 되시어 지체로 삼으시고 들을 당신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목자란 넓게 보면 예언자요 사제요 왕이신 그리스도의 사명에 참여하는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입니다. 좁게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과 주교를 본 목자로 하여 이를 협조하는 사제들을 말합니다.

    구역장은 본당 신부의 사목의 동반자입니다. 그러므로 구역장은 그 구역의 사목자인 것입니다. 구역의 사목자인 구역장은 자기 자신을 성화하고, 구역의 형제자매들을 성화시키는 사명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구역장은 어느 친목 모임의 회장이 아닌 것입니다.

    그 구역의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 구역모임이니, 그 구역모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게 해야 하고, 그 구역모임에서 성령으로 가득차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섬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가득 차 서로의 입에서 찬미가가 흘러 나오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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