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위일체는 신비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이것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현존하신다.\” 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께서 한 하느님을 이루신다.\” 삼위일체 교리는 부족한 인간의 머리로써는 다 알아들을 수 없는 초자연적 계시 진리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계시를 떠나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창조된 사물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어느 것도 이 신비를 적당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나는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라고 불리고, 직장에서는 사장님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배우자에게는 “여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아버지요, 사장이요, 여보”이지만 나는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프면 사장님도 아프고, 여보인 나도 아픕니다. 그래서 이 비유로는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초는 몸통과 심지와 촛불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내어줌을 통해서 하나가 되어 빛을 발합니다. 이렇게 삼위일체를 사랑으로 내어주는 관계, 사랑으로 하나된 관계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초의 몸통과 심지는 분리가 가능합니다. 이것도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클로버로 삼위일체를 표현합니다. 클로버 잎이 보통 세 개이니 세 개가 모여서 하나의 클로버를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격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하느님을 엉뚱한 분으로, 머리 셋 달린 괴물로 오해할 수 있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의 신비로서, 계시로서 알려지는 진리입니다. 계시를 떠나서는 인식이 불가능한 진리이기에 나의 이성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가 되었다 하더라도 삼위일체의 신비가 남김없이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삼위일체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믿고 고백하는 것 뿐 입니다. 그래서 나는 큰 소리로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분이신 하느님이십니다.”라고 말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칩니다. 또한 영광송을 바칠 때도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그리고 기도문들도 모두가 아버지 하느님께 드리는 내용으로 되어있는데, 성령 안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쳐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이 영원히 받으소서.” 믿음을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